남자가 나이가 들면 드라마에 빠진다고 하던데 저는 그런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드라마를 아주 안 보는 것은 아니지만 날마다 보는 것은 없고 주로 KBS2 티비의 주말 드라마를 보는 정도입니다. 그럼에도 인기 있는 다른 드라마에 대해서 얘기는 종종 듣습니다.
주말드라마는 주로 사랑이야기입니다. 신분상승을 이루기도 하고 주변의 많은 반대를 무릅쓰고 사랑을 쟁취하는 주인공들의 이야기는 언제 봐도 마음 설레게 하기에 충분합니다. 그런 드라마가 인기가 높다보니, 이 시대를 '연예 관찰 시대'라고 얘기하는 것 같습니다.
<결국 우리가 TV를 통해 보고 싶은 것은 연애의 아름다운 순간이다.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의 사랑은, 연애가 궤도에 오르고 현실의 갈등이 끼어들면서 유지하는 데도 급급해진다. <하트시그널>은 커플의 탄생까지만 비추고, <선다방>은 탐색전을 보여주는 데 그치며 <너에게 반했음>은 아예 ‘풋풋한 10대 연애’라는 판타지를 카드로 사용한다.
SNS로, 드라마로, 예능으로…. 다른 이의 연애를 관람하는 데 익숙해진 지금의 현상을 두고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스스로 연애를 포기했기에 타인의 연애를 소비하게 된 세대라고. 그럴지도 모른다.
세상에는 데이트 폭력, 안전 이별, 여성 혐오 등 연애의 시작조차 주저하게 만드는 단어가 넘쳐나고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라는 시인의 물음에 대한 답변은 ‘몰라야 한다’에 가까워졌다. 하지만 그렇다면 SNS의 수많은 커플 인증 샷, 계속 업데이트되는 연애 신조어, 각 학교의 대나무숲 페이지에 올라오는 절절한 사랑 고백들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어쩌면 그 어느 때보다 철저한 개인으로 살아가는 지금 세대야말로, 연인이라는 더할 나위 없이 긴밀한 관계를 간절히 필요로 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믿는다. 때로는 과시적이고 서툴더라도 사랑하고 싶어 하는 마음, 그 마음이 우리 모두를 좀 더 나은 존재로 만들 거라고 말이다.
눈물을 펑펑 흘렸던 만화 속 대사는 다음과 같다. “어른이 된 우리가 지금도 그 순간을 기억하는 건… 그때만큼은 시간이 멈추고, 세상에 우리밖에 없고 이 순간이 무엇보다 진실되며 꿈같고, 찰나이면서 영원처럼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만화의 제목은 <우리들이 있었다>
. 사랑의 가능성을 순수하게 믿었던 우리들이 분명히 어딘가에 있다. 그리고 그 믿음의 원형을 찾아 헤매며, 우리는 오늘도 TV 속 연애를 바라본다.>엘르, 에디터 이마루
요즘 '같이 살래요'라는 드라마에 '황혼 로맨스'라는 얘기가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100세 시대에 어느 정도 나이가 황혼일지는 모르겠지만 나이가 든 사람들이 사랑하고 연애하는 것도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주기는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게 비록 대리만족일지라도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사랑 이야기는 사람들이 바라는 영원한 로망일 것입니다.
時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