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아름다운 소신(燒身)공양의 지혜가...
김영희/시인
보랏빛 등꽃이 그늘을 드리우는 푸른 오월, 나뭇잎들이 연두 빛 색감을 마구 풀어놓는 오월, 라일락 잔잔한 향기가 소리 없이 코끝에 스며드는 오월이다. 일년 중 가장 아름다운, 그래서 오월을 계절의 여왕이라고 했던가.
올해도 어김없이 거리 곳곳마다 오색등이 내걸렸다. 며칠 후면 불기 2552년 부처님 오신 날이다. 해마다 이때가 되면 굳이 불자가 아니더라도 저마다의 가슴 속에 간직한 소망들을 연등에다 담는다. 물론 염원하는 것은 다 다르겠지만, 크게 보면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바람이 아닐까 싶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상에는 손만 뻗치면 쉽게 얻을 수 있는 것들이 너무 많다.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가질 수가 있다는 말과도 같다. 그러나 ‘믿음'이라는 것은 그렇지가 않다. 누구든 손만 뻗치면 딸 수 있는 열매가 아니다. 믿음은 그 속에 ‘진실'이라는 열매가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진실로 하나 된 마음이 그곳을 향하지 않거나 무관심하게 대해버리면 절대 찾을 수도, 가질 수도 없다.
그 진리의 열매는 인간이 가장 인간답게, 진실하게 살아가는 길을 안내한다. 그것은 어떤 부자보다 더 많은 넉넉함을 가져다준다. 자신의 오만함과 이기심을 버릴 때 아름다움과 넉넉함은 그 사람에게 다가온다. 행복과 번뇌라는 것도 결국은 마음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불법을 수행한다는 것은 자기의 마음을 찬찬히 더듬는 것이다. 그런데 자기 것에 대한 집착이 강한 사람들일수록 남의 것은 별 대수롭지 않게 여기거나 무관심하게 대한다. 이런 욕망에 사로잡혀 버릴 것을 버리지 못하고, 나눌 것을 제대로 나누지 못하면 죄를 짓고 업을 쌓는 결과가 된다. 결국 마음 속 평화와 행복에서는 점점 더 멀어지고 만다.
보시 같은 수행을 하면 죽음의 시간이 다가왔을 때도 평온한 마음을 가질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아무리 물질이 풍부하다고 해서 누구나 다 보시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가진 것이 없어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보시는 많다.
『잡보장경』에는 재물 없이 보시하는 일곱 가지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즉 ‘무재칠시(無財七施)'가 그것이다.
첫째, 안시(眼施) : 눈으로 하는 보시라는 뜻이다. 항상 부드러운 눈빛으로 사람을 대하라는 뜻이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처음으로 교감하는 것이 눈인사다. 부모가 자식을 대하는 것처럼, 연인들이 다정한 눈빛을 서로 주고받는 것처럼 서로를 바라보면 그것만으로도 상대는 행복해진다.
둘째, 화안열색시(和顔悅色施) : 얼굴로 하는 보시라는 뜻이다. 언제나 온화한 얼굴과 즐거운 모습을 보여주는 보시를 말한다. 웃는 얼굴은 상대방을 편안하게 해주는 마력이 있다. 사람을 대할 때 찡그리지 말고 언제나 웃는 얼굴을 보여주면 웃는 만큼 서로가 행복해진다.
셋째, 언사시(言辭施) : 말로 보시하라는 뜻이다. 사람이 짓는 업 가운데 말로 짓는 업이 가장 많다. 욕설(惡口), 거짓말(綺語), 이간질(兩舌), 이치에 닿지 않는 말(妄語)등이 그것이다. 이런 말들은 서로의 가슴에 비수를 꽂거나 원한을 쌓이게 한다. 말을 할 때는 언제나 친절하게, 진실한 말, 칭찬하는 말을 해야 한다. 또 부드러운 말만 하고 험한 말을 하지 않는다.
넷째, 신시(身施) : 몸으로 하는 보시라는 뜻이다. 사람을 맞이할 때 항상 먼저 일어나 인사하는 것도 훌륭한 보시다. 내가 먼저 손 내밀며 인사하면 상대방도 마음의 문을 연다. 멀뚱멀뚱 쳐다보면 인간관계는 영원히 평행선이다. 남을 존경했을 때 상대도 나를 존경하게 된다.
다섯 째, 심시(心施) : 마음으로 하는 보시라는 뜻이다. 사람을 대할 때는 언제나 온화하고 착한 마음으로 대해야 한다. 타인에 대한 동정과 이해, 관용은 마음으로 할 수 있는 가장 큰 보시다. 같이 아파하고 같이 기뻐하는 마음은 어느 물질보다도 큰 가치를 지닌다. 어쩌면 현대사회에서 가장 절실한 보시인지도 모른다.
여섯째, 상좌시(床座施) : 자리를 양보하라는 뜻이다. 버스나 전철을 탔을 때 빈자리가 있으면 먼저 상대방에게 양보한다. 자리를 양보한다는 것은 나의 이익을 상대에게 양보하는 것과 같다. 작은 보시지만 가장 큰 감동을 주는 것이다.
일곱째, 방사시(房舍施) : 잠자리를 보시한다는 뜻이다. 먼데서 찾아오는 손님에게 잠자리를 내주는 것도 훌륭한 보시다. 귀찮다고 문전박대하는 것이 아니라 환한 얼굴로 잠자리를 챙겨주면 여기서 인간의 따뜻한 정이 생긴다. 그리고 내세에는 궁궐 같은 집에서 살게 된다고 했다.
세상에 홀로 존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너와 내가 있기 때문에 이 세상은 존재하고 또 아름다운 것이다.
향은 자신을 태움으로써 은은한 향기를 내어 온 세상을 맑히고, 초는 자신을 태움으로써 어둠을 몰아내고 주변을 밝은 빛으로 나아가게 한다. 참으로 아름다운 소신공양(燒身供養)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