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남이란 없다"라는 뜻입니다.
"천하무인"은 묵자의 핵심사상인 "겸애"정신을 단적으로 표현하는 말이며...
제 카페에 자료를 올리다가 너무 내용이 좋아 동문카페에도 올립니다.
묵적...이라고도 불리는 묵자...제자백가의 한축을 이루는 묵가의 창시자이며...역사의 희생량이 되어...묵가사상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렸습니다.
오월동주의 고사로 자료가 시작됩니다.
겸애의 정신이 세상에 가득차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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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자』 「노문魯問편」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옛부터 초礎나라와 월越나라는 양자강을 사이에 두고 자주 싸웠다. 초나라 사람들은 물흐름을 타고 나아가고 물흐름을 거슬러 물러섰기 때문에, 나아갈 때는 문제가 없었지만 물러서는 일은 쉽지가 않았다. 반대로 월나라 사람들은 물흐름을 거슬러 나아가고 물흐름을 타고 물러섰기 때문에, 자기 편이 유리하면 적을 쫓기가 쉬웠고 불리할 때도 빨리 물러설 수 있었다. 그래서 월나라가 초나라를 이기는 일이 많았다. 그런데 공수반이란 사람이 초나라를 위해 뱃싸움에 쓰는 갈쿠리와 밀대를 만들어 준 뒤로 적이 약하면 갈쿠리로 끌어당기고 반대로 적이 강하면 밀대로 밀어내기 시작하면서 오히려 초나라가 월나라를 이기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 묵자를 만난 공수반이 뽑내며 물었다. '나는 뱃싸움을 할 때 갈쿠리와 밀대를 쓰는데, 그대가 말하는 의義라는 것에도 내가 쓰는 갈쿠리와 밀대 같은 것이 있소?' 그러자 묵자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내가 말하는 갈쿠리와 밀대는 당신이 만든 것보다 훨씬 좋다오. 나는 사랑으로 상대를 끌어 당기고 공손恭遜으로 막아냅니다. 사랑이 아니면 서로 가까워질 수 없고 공손이 아니면 버릇이 없어지지요. 그렇기 때문에 서로 사랑하고 서로 공손히 대하는 일은 누구에게나 이로운 것이지요. 그러나 그대처럼 상대를 강제로 끌어당겨 못움직이게 한다면 상대방도 당신을 그렇게 할 것이고, 강제로 밀어내서 다가오지 못하게 한다면 상대방 또한 그렇게 할 것이오. 서로 강제로 끌어 당기고 억지로 밀어낸다면 서로를 해치는 것이 되지요. 그렇기 때문에 내가 주장하는 의義 속에 들어 있는 갈쿠리와 밀대가 당신이 만든 갈쿠리와 밀대보다 훨씬 좋다고 하는 것이라오."
묵자와 묵자집단
위 일화에 나오는 묵자의 이름은 적翟이었지만, 정확한 생애는 알려져 있지 않다. 대체로 공자보다 조금 뒤이고 맹자보다 조금 앞이라고 짐작될 뿐이다. 그만큼 묵자의 사상은 지배층에게 반가운 사상이 아니었다. 묵자의 묵墨은 검다는 뜻과 함께 붓글씨에 필요한 먹을 뜻한다. 어떤 학자들은 죄명을 먹으로 떠 넣는 묵형을 받았기 때문에 묵씨가 되었다고 한다. 당시 주나라는 피지배층彼支配層만을 형벌로 다스렸으므로 묵자는 하층민이었을 것이다. 또 다른 학자는 묵자의 피부가 검어서 묵씨가 되었다고 한다. 피부가 검다는 것은 노동계층이었을지 모른다는 말이다. 묵자가 목수들의 연장을 자주 비유로 든 것이나, 그를 따르던 사람들 대부분이 하층 무사나 기술자였던 점도 묵자의 출신 계층을 짐작하게 한다. 사실 묵자는 뛰어난 기술자였다. 하지만 위 이야기에 나오는 평범한 기술자의 논리와 철학자의 논리가 다르듯이, 공수반은 뛰어난 기술자로 기억될 뿐이지만 묵자는 위대한 사상가로 남았다.
묵자의 사상을 따르는 사람들은 집단을 이루고 살았다. 집단의 우두머리는 거자라고 불렸으며, 구성원을 죽이고 살릴 수 있는 강력한 권한을 가졌다. {회남자}에는 묵자를 따르는 사람들이 180명인데, 그들을 불 속에 들어가게 할 수도 있고 칼날을 밟게 할 수도 있으며, 명령을 따르다 죽더라도 발길을 돌리지 않았을 무리라고 하였다. 바로 그 초대 거자가 묵자였다. 묵가집단은 기둥이나 벽에 장식하나 없는 비좁은 방에서 살았고, 흙 그릇에 담긴 옥수수나 조밥과 국 하나만을 먹었다. 여름에는 베옷을 입고 겨울에는 사슴 가죽을 입을 뿐이며, 살아서는 노래나 오락을 즐길 수 없었고, 죽어서도 얇은 관에 초라한 장례만이 가능했다. 그러면서도 규율을 철저히 지켰으며, 오로지 남을 위해 일했다. 벼슬을 하면서도 자신의 봉급 일부를 집단에 보내야 했고, 어떤 사람은 묵가집단의 금기사항인 공격전쟁에 참가했다가 거자로부터 소환당하기도 했다.
다음 일화는 묵자집단의 조직력이 어떠했는지를 잘 보여 준다.
형나라에 사는 거자 맹승은 양성군과 가까이 지냈는데, 양성군이 맹승에게 성을 부탁하고 왕의 장례에 참석하러 갔다가 다른 나라로 망명하는 일이 일어났다. 그러자 형나라는 양성군의 땅을 몰수하기 위해 군대를 보냈고, 맹승은 약속을 지키려고 묵가집단에게 사수를 명했다. 그러자 한 제자가 묵가집단이 여기서 모두 죽으면 묵가집단이 끊어질 것이며 아울러 양성군에게도 아무런 도움이 안된다고 반대했다. 그러나 맹승은 거자 자리를 송나라의 전양자에게 계승시킬 것이니 묵가가 끊어지는 일은 없을 것이며, 양성군과의 약속을 어긴다면 앞으로 아무도 묵가집단을 믿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 말을 들은 제자는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자결하였다. 그리고 맹승과 부하들도 모두 전사했다. 전양자에게 맹승의 말을 전하러 갔던 두 사람은 임무를 마치고서 다시 돌아가 싸우다 죽겠다고 했다. 새로운 거자인 전양자가 말렸지만 두 사람은 돌아가서 함께 자결하였다. 이 두 사람은 뒷날 거자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고 비난 받았다. 한자어 가운데 끝까지 지킨다는 뜻의 묵수墨守는 이같은 묵가집단의 행동양식에서 나온 말이다.
묵가집단에는 하급 무사들이 많았다. 그러나 그들은 어떤 전쟁이든 가리지 않는 일반 군인과 달리 오직 강자의 횡포로부터 약자를 지키는 방어防禦 전쟁에만 참여하였다. 또 보통 군인들에게 군인이란 지위는 생계 유지 수단에 불과했지만, 묵가집단에게는 자신들의 철학을 실현해 가는 실천수단이었다. 아울러 일반 군인들은 오직 이기겠다는 생각에만 머물러 있었지만 묵가집단은 군인의 윤리를 승화시켜 새로운 세계를 지향하는 철학으로 높여 갔다. 그들은 이미 군인이나 기술자가 아니라 세계관을 가진 철학자들이었으며, 그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강철같은 동지적同志的 결합을 이루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갈아 없어진다 해도
그렇다면 묵가집단을 이토록 강하게 만든 철학은 무엇이었을까?
그 핵심은 겸애兼愛와 교리交利였다. 겸애는 서로 사랑하자는 뜻으로 정치적 평등을 의미하고, 교리는 서로 이익을 나누어 갖자는 뜻으로 경제적 평등을 의미했다. 두 가지 가운데 핵심은 겸애로서 무차별적 사랑을 의미하며, 겸애의 반대인 별애別愛는 차별적 사랑을 의미한다. 묵자의 겸애철학은 하급 무사집단의 행동양식에서 온 것이다. 예를 들어 성벽에 둘러서서 적을 맞아 싸울 때, 어느 한 쪽이라도 무너지는 날이면 결국 다 죽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따라서 같이 싸우는 우리 편 누구 하나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이며, 서로 아끼고 돕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겸애는 바로 이같은 극한 상황에서 동고동락하던 체험을 철학화한 것이다.
묵자는 자신의 주장이 옳은 근거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만일 당신이 어떤 일로 가족을 누군가에게 맡겨야 한다면 자기 가족과 똑같이 돌봐 줄 사람에게 맡기겠는가, 아니면 자신의 가족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에게 맡기겠는가? 그 경우 누구나 전자를 택할 것이며, 그런 점에서 볼 때 차별적인 사랑보다 무차별의 사랑이 옳다는 것이다.
사실 묵자의 이런 생각은 인간의 감정이 아니라 이성에 호소한 것이다. 묵자는 큰 나라가 작은 나라를 공격하고, 강자가 약자를 못살게 굴고, 귀한 자리에 있는 자가 천한 자리에 있는 사람을 함부로 부리고, 교활한 자가 어리석은 사람을 이용해 먹는 것은 모두 차별적인 사랑 때문이라고 보고, 이를 겸애로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맹자孟子의 표현처럼 '머리부터 발꿈치까지 갈아서 없어진다 해도 그렇게 해서 세상이 이로워진다면 하겠다'는 신념으로 살아갔다.
묵자는 또한 겸애가 옳다는 근거로 세 가지를 들었다. 첫째는 옛날 훌륭했다고 하는 임금들은 모두 자신보다 백성을 위해 힘썼던 사람들이며, 둘째는 백성들이 직접 보고 들은 사실을 보면 그들이 참으로 무엇을 원하는가를 알 수 있고, 셋째는 어떤 정책이나 제도가 국가와 백성들에 이익이 되는지를 따져 보면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 기준은 모두 피지배계층의 입장에 선 주장이다.
민중을 향한 이같은 묵자의 열정은 진시황의 통일 이후 왕권이 안정되면서부터 역사의 흐름 속에 묻혀버리고 오직 협객 집단, 즉 의적 같은 비밀결사들을 통해 명맥을 이어갔다. 하지만 오늘 우리가 사는 사회도 묵자가 살던 2400여 년 전과 별로 다르지 않다. 인류는 더 많은 기술, 더 높은 기술을 끊임없이 요구하면서도 그 기술이 사회에 어떠한 의미를 주는지를 따지기보다 얼마나 돈이 되는 기술인지만을 따지고 있다. 더구나 내가 잘되기 위해 남을 희생시키고, 내 자식만 중요하지 남의 자식은 어떻게 되든 상관하지 않으며, 강자가 약자를, 부자가 가난한 사람을, 큰 나라가 작은 나라를 짓누르는 일이 쉴새 없이 벌어진다.
기술 자체를 중시하기보다는 그 기술이 누구를 위한 기술인지를 따진 묵자의 사상, 무차별로 사랑하고 함께 나누자는 묵자의 외침을 다시금 곰씹어보게 하는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