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부터 제주는 이상하게 내게 가까운 곳이 되었다.
올해 충북작가회의에서 섬으로 떠나는 여름문학교실에서 제주를 간다고 하기에 참가신청을 하였다. 섬이라는 천혜의 아름다움 속에 4.3이라는 슬픈 현대사를 간직하고 있는 역사와 문학의 공간으로서 제주도를 탐방하기 위해 마련된 이번 행사는 8월 15~17일까지 원래 예정된 행사여서 처음에는 딸과 아들아이를 데리고 참석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휴가철 성수기로 인한 부득이한 주최측의 난관으로 하여 이번 23~25일로 행사가 밀리게 되어 개학을 맞는 아이들을 동반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움으로 남았지만 다행히 내가 참석할 수 있는 시간이어서 새벽에 혼자 집을 나선다.
제주에 도착하자마자 서울에서 온 채길순 선생님을 비롯한 세명과 합류하여 제주대에 근무중인 제주작가회의 김동윤 교수의 안내로 우리는 첫번째 일정을 시작한다. 제주작가회의는 지금 거의 회원들의 출타로 공황중인데 그곳 작가회의에서 맞이할 뭍에서의 손님들이 세팀이나 동시에 제주에 왔다고 한다. 실천문학팀에서 현기영선생님의 지상의 숟가락 하나 독후감 당선자들을 데리고 전날 내려왔고 동학팀들이 또 왔고 섬으로 떠나는 우리 문학교실 팀이 왔는데, 제주의 김수열시인과 강요배 화백을 비롯한 몇몇 사람은 제주시에서 보내주는 영국 에딘버러축제 견학을 위해 일주일 제주를 비웠고 김경훈, 오승국시인을 비롯한 많은 작가회의들은 중국에서 열리는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제주를 떠나 손님맞이가 부족하다며 김동윤교수는 정중하게 이해를 구한다.
제주 자연사 박물관 숲에서 우리는 제주섬 사람들의 삶과 문학에 대해 김동윤 교수의 강연을 먼저 들었다. 여름의 끝인데도 날씨는 너무 더워 숲 속에서 듣는 강의도 후덥지근하고 땀이 줄줄 흐르지만 모두는 첫 강의인지라 더없이 진지하다. 초등학생 두명을 비롯하여 대학생, 제일 나이가 많으신 오십대 중반의 아주머니까지 다양하게 구성된 답사팀들은 그렇게 4.3의 섬 제주에의 첫발을 딛는다.
오후에는 4.3이라는 현대사의 슬픔이 서린, 그러나 더없이 아름다운 자연을 품고 있는 제주도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소설--현기영 선생님의 『지상에 숟가락 하나』가 6월의 MBC 느낌표 도서로 선정된 기념으로 기획된 소설의 무대를 찾아온 실천문학 팀들과 합류, 북촌초등학교와 관덕정을 비롯한 용연까지 함께 했는데 그곳에서 뜻밖에 이흔복시인과 이재무, 박철 고영직시인까지 만나는 행운을 얻는다. 우리는 뜻밖의 곳에서 우리가 만난 것에 환호하고 동갑내기 이흔복 시인은 점심을 먹고 잠시 기다리는 중 그 사이를 못참고 기어코 맥주 한잔을 마시는 배려(?)를 베풀어 덕분에 오후의 기행 내내 마신 맥주보다 더 많은 땀을 흘리는 비싼 댓가를 치루어야만 했다.
두 팀이 함꼐 합류하면서 두 팀을 각각 인솔하던 제주의 강덕환 사무국장과 김명숙 작가를 만나고 우린 현기영선생님과 아내되시는 양정자시인의 안내를 받으며 현선생님의 소설과 4.3. 그리고 제주도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날씨는 너무도 혹독하게 더워서 설명하시는 선생님도 듣고 다니는 사람들도 그 무더위는 이길 수가 없어서 일정이 빠르게 진행되고 더위에 지친 사람들이 견뎌내는 시간은 한계가 있어서 함께 다니는 일은 서로에게 벅찬 일이 되고 있다. 결국 오늘 저녁까지 함께 하기로 했던 일정은 취소되고 네시경 각자 처음의 두 팀으로 갈라져 일정이 진행되었다.
너무도 더운 날씨 탓에 일정은 조금 변경되어 해안도로를 따라 흐르다가 와흘본당으로 갔다. 몇사람이 둘러싸야만 그 아름을 가늠할 수 있는 거의 사백년 된 팽나무 두 그루에는 제주의 무속을 대변할 모든 것들이 걸려있었다. 오랜 시간 이어온 제주도 무습을 엿보기에는 와흘본당만으로도 충분한 느낌이다.
더위에 너무 지쳐서인가, 해안가의 민물이 흐르는 작은 샘같은 곳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몇몇은 물에 풍덩 뛰어든다. 적나라하게 사각팬티 하나입고 용감하게 물에 뛰어든 김희식 시인과 채길순 선생님은 보기에도 시원하다.
일찍 숙소에 도착해 내일의 일정의 하나였던 나의 삶, 나의 문학이라는 주제로 채길순 선생님의 강의를 듣는 것으로 첫날의 공식적인 일정은 끝나고 자유로운 제주를 만나는 시간이 된다. 숙소를 찾아온 고정국 제주 지회장님은 새로나온 시집을 일일이 서명하여 제주에 온 기념이라며 일행에게 주셔서 또 하나의 잊지못할 제주가 된다.
둘째날 전날 더위때문에 하도 고생한 탓인지 일행의 옷차림이 아주 가벼워보인다. 그러나 오전내내 흐린 날씨는 바람까지 불어 오히려 옷을 더 덧입어야 할 정도였는데 그런대로 일정은 순조롭게 진행된다. 그러나 다랑쉬 오름을 가는 길은 대형버스가 들어가기에는 턱없이 좁은데다 그때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해 험난한 제주만큼이나 힘들게 그 길을 간신히 갈 수가 있었다. 좀 무리한 탓인지 입이 다 헐어 너무도 피곤했던 나는 오름길은 포기하고 차에 남아 있었는데 간간이 뿌리던 비가 일행들이 오름 중간쯤 오를 때쯤 급작스런 소나기로 바뀌었다.
비는 한치앞도 가늠 못할 정도로 쏟아부어 차에 남은 몇몇은 걱정스레 일행을 기다렸는데 빗길을 뛰다시피 달려온 사람들은 그대로 물에 빠진 생쥐였다. 미처 젖은 옷들을 갈아입지도 못하고 점심식사를 하기로 한 성읍 민속마을의 한 식당으로 가면서 모두들 기막힌 추억하나씩 안고간다며 그래도 불평보다는 좋은 쪽으로 상황을 해석하는 것을 보며 여행이 주는 여유로움을 다시 느낀다.
점심식사를 하면서 실천문학팀들을 서울로 배웅하고 온 강덕환 사무국장이 김동윤 교수와 우리 팀의 안내를 교대하고 고정국제주 작가회의 회장님이 벌초를 끝내고 합류를 하셨다. 제주는 음력 8월 1일부터 일주일간이 섬사람 전체의 벌초날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가는 곳마다 벌초꾼들이 눈에 띄고 갈옷을 입고 모자를 쓴 아낙들도 심심찮게 눈에 띈다. 육지에서는 벌초를 여자들이 하는 법이 없는지라 그런 풍경들이 이국적으로 다가온다.
오늘의 오후 일정은 우도에서의 행사라 우리는 우도의 선착장으로 향했는데 몇번 제주도에 왔어도 우도는 처음 가보는 곳이고 배를 타는 일 또한 처음 있는 일이라 마음이 많이 설레었다.
오후부터는 다행히 날이 개어서 다시 더위가 시작되었지만 비온 뒤라 전날만큼은 혹독하지 않아 그런대로 견딜만 하다. 입 안이 패인 것이 점점 더 심해져서 배를 탈 때쯤에는 얼굴 한쪽이 붓는 듯 거의 말을 할 수 조차 없어진 나는 처음 타는 배의 풍광을 느껴볼 겨를 없이 선실로 들어가 조금 휴식을 취하려 했지만 제주에서 우도까지 걸리는 시간이 너무도 짧다. 겨우 십이분 정도의 시간...
섬 속의 섬, 우도는 첫인상이 아주 아름답다. 흡사 제주의 축소판처럼 아담한 우도는 숙소조차 바로 해안가에 있었고 숙소에는 작은 풀장까지 있어서 성미급한 몇몇은 채 짐도 내려놓지 않고 풀장으로 뛰어드는 시원함을 연출한다.
"제주가 나를 자꾸 옷을 벗게 하네"
동안의 채길순 선생님은 풀장에서 여유있게 웃음 지으시며 좌중을 웃게 하고 우도에서의 일정은 비교적 여유롭다.
우도를 일주할 사람은 일주하고 배를 타고 낚시를 갈 사람은 낚시하러 가고 해수욕장으로 갈 사람을 해수욕장으로 가고 쉴 사람은 쉬고...
난 자꾸만 번지는 통증으로 휴식의 대열에 끼어 숙소에서 쉬면서 우도의 바다를 바라본다.
늦은 저녁을 먹고 다시 강덕환 사무국장의 '4.3이란 무엇인가'강연을 들으면서 우리는 다시 굴곡지게 살아온 제주를 만난다. 오후의 자유시간때문인지 시원한 우도의 바람 덕분인지 강의시간 내내 일행은 숙연하다. 우리가 천혜의 관광지로 알아온 제주가 아닌 너무도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제주의 삶을 들으면서 어떤 주제를 가지고 온 여행이 주는 충일을 느낄 수 있다.
우도의 밤바다는 아름다왔다.
마치 띠를 두른 듯 집어등을 밝혀든 배들은 우도를 둥글게 감싸 어둡지 않게 우도를 밝히고 초승달 뜬 우도의 밤하늘은 청명하고 바람은 한없이 달기만 하다.
일정을 끝낸 후의 바닷가 산책은 적요하고 넉넉하다.
모두 고둥을 잡는다고 후레쉬를 들고 바다로 나가는 것을 보면서 일찍 잠을 청한다.
새벽일찍 자전거로 우도를 일주한다고 정민 사무국장의 깨우는 소리에 잠을 깬다. 이미 날은 밝고 부지런한 몇몇은 화장까지 끝내고 완벽한 자전거 트레킹에 나선다. 마음 같아서는 그 일주 행렬에 참석하고 싶었지만 자전거를 타 본지 하도 오래되어 두시간이 걸린다는 그 일주는 포기하고 제주의 고정국회장님과 바닷가로 나간다.
선생님은 차분하게 시를 쓰는 자세에 대해 이야기를 해 주신다.
사랑이라는 말을 쓰기 전에 그 안에 들은 것을 한번 더 보고 그리움 이전의 것을 들여다보는 법, 그리고 인터넷의 그 경박함보다는 종이책의 그 절실함에 대해서 비어버린 마음을 채우는 법을 알려주신다. 삶의 모든 고통을 견뎌오신 선생님의 말씀은 한마디 한마디 폐부를 찌르고 문득 나는 생각한다.
아무것도 없이 텅 비어버린 내 마음을 채울 진정한 알곡은 무엇인가고. 이렇게 바람처럼 떠돌다 온 우도에서 내가 채워가야 할 것은 무엇인가고. 이상하게 몸이 많이 지쳐있는 이번 여행길에서 반대로 의식은 더 없이 맑고 청명해 나는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많이 가지게 된다.
우도를 떠나오면서 뱃전에 서서 바라보는 제주와 우도의 풍광은 이제 예사롭지가 않다. 작년, 아이들과 3박4일을 통해서 보았던 제주와 4.3을 주제로 하여 이번에 보는 제주로 하여 이제 조금은 제주와 제주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북촌마을을 거쳐 공항근처의 식당에서 본 비디오 4.3을 말한다를 보면서 삼일간의 제주 답사가 주는 확연한 느낌을 정리한다.
초토화작전이 주는 그 무시무시한 살륙의 현장에서 69개 마을 중 60개의 마을이 초토화 되었던 제주... 어찌 한이 없으랴, 어찌 처절한 고통이 없으랴..
이곳에서 태어난 이들이 겪어야 했던 그 아픔들이 그 순간 고스란히 우리의 것으로 전이된다. 같이 갔던 이원익 시인은 연좌제에 강하게 동감한다. 자신들의 가족이 그 연좌제의 그물에 걸려 혹독한 시간을 보내봤기에...
우리가 제주를 조금은 바로볼 수 있었던 것에 대한 원혼들의 감사의 눈물일까? 공항을 떠나기 전에 맑았던 제주는 비에 휩싸이고 비행기는 제주를 떠나면서 내내 구름 속에 있다.
불안정한 기류에 흔들리면서 나는 내 안에 온 제주를 받아들인다. 비로소 제주 사람들의 삶의 방식이 보인다.
충북이 가까와오면서 구름은 걷히고 다시 햇빛이 눈부시다.우리가 제주에 있는 동안 뭍에는 많은 비가 내리고 폭우의 피해를 입은 곳도 있다했는데 우리가 다시 돌아오면서 맑고 눈부시다.
그 환한 도시 속으로 우리는 다시 내려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