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대학들어가기 전. 영화에 한참 미쳐있을 때..
이소룡의 불후의 대작 다섯편은 몇번을 보고 또 보고 했는지 모른다.
한번은 밤늦게 길가다가 어느 3류극장에서 한참지난 이소룡 영화를 재상영하길레 교통비까지 달달 긁어 덜렁 보는 바람에..철로를 터벅터벅 걸어서 물경 6시간만에 집에 도착한적도 있다.
이소룡의 영화중 우리에게 잘 알려진 다섯편은 “당산대형(唐山大兄)”,”정무문(精武門)”,”맹룡과강(猛龍過江)”,”용쟁호투(龍爭虎鬪)” 그리고 미완성 최후작품인 “사망유희(死亡遊戱)”다.
그는 “금문녀(金門女)”에 아역으로 첫 출연한 이래, 그후의 6~7편의 영화에 이르기 까지는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않았다. 당산대형부터 우리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인물이다. 나도 그 영화 한편으로 그의 팬이 되었으니까.아니 정확히 말하면 쿵푸(功夫)에 재미를 느꼈다고 할 수가 있겠다.
...
71년부터 그가 죽은 73년초까지 짧은 3년동안에 위 다섯편 영화로 동서양 할것없이 수많은 사람들을 열광케 만들었다. 숱한 팬을 몰고 영웅반열에 오른 그는 1973년 1월. 애인의 집에서 싸늘한 시체로 발견된다. 그의 사후, 쿵푸에 맛들인 팬들이 그를 대신할 스타를 기다렸는데,사실 그런 스타는 이전에도 많았으나 모두 이소룡의 연기에 눌려 빛을 보지 못한 것 뿐이다. 그러다가 우리의 쿵푸매니아 앞에 나타난 것이 성룡(成龍)이다.
“취권(醉拳)”,”사권(蛇拳)”,”소권(笑拳)”은 이소룡과는 또 다른 재미를 우리에게 선사했다. 이소룡영화가 그의 독특한 절권도와 그만의 무기 쌍절곤으로 괴조의 성을 지르며 빠르게 상대를 제압하는 카리스마가 있었다면, 성룡의 영화는 기기묘묘한 온갖 무예를 다 선보이면서 현란한 몸동작을 선보인다.그러면서 자신도 엄청 두들겨 맞는 스타일이다만 강인한 체력으로 이를 극복한후 비상한 최후의 일격으로 상대를 제압, 관중에게 통쾌한 만족을 주는 것이다.
.
이소룡이 무인출신이라면,성룡은 노래도하고 연기도 하는 연예인 출신이다. 따라서 성룡은80년 캐논볼로 국제적 스타에 올랐으나 전통적 무술영화인 쿵푸와는 색깔을 달리하여, 무술에 코믹을 가함으로 순수 무술영화의 맛을 좀 잃어버렸다. 코믹뿐아니라 총에다가 승용차,열차도 등장시켜 한마디로 짬뽕을 만들어 버리고 말았다.
그러는 사이에 원표,유덕화,주윤발,홍금보,장학우등이 한두편 전통무협영화에 출연했으나, 팬을 사로잡기에는 역부족인 인물들이었다. 그들도 또한 나중에 총도 잡고,포카도 치면서 변색되어 버렸다.
이소룡,성룡을 뒤이어 출현한 배우가 바로 유명한 이연걸(리렌지에:李連杰)이다. 지금의 중국인들은 이소룡은 몰라도 이연걸은 너무나 잘 안다. 바로 국민의 영웅으로 취급받고있다. 이 세사람은 각각10년 터울이다.이소룡이 40년생,성룡이 54년생,이연걸이 63년생이다. 이소룡시절의 쿵푸란 명칭이 이연걸시대에 와선 통상 우슈(무술:武術)로 바꾸어 부르게 되었다.
우리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79년에 한국에서 상영한 “소림사”다. 인상깊은것은 까까머리 동승 이연걸이 왼손으론 말고삐를 틀어잡고, 장검을 움켜쥔 오른팔은 허공으로 쭉 뻗으며 손살같이 말을 달리는 장면이다. 그후 소림사는 3편까지 나왔으며, 동방불패,황비홍,모험왕,정무문,의천도룡기등으로 이소룡,성룡 이후 자칫 단절될 뻔한 전통무술영화의 인기를 어느정도 되찾게 되었다.
리샤오룽(李小龍)과 리렌지에(李連杰)
이 두사람을 비교하면 참 재미있는 현상을 발견할수있다.
이소룡은 미국 센프란시스코 출신이다.미국화교인 셈이다. 학창시절부터 싸움판에 나돌아 다니며 깡패 비슷한 생활을 했다. 결국 실전무술에 강한편이다. 가족이 홍콩으로 돌아온 때와 맞춰 약10년동안 홍콩생활을 한적이 있으나 결국 단신으로 미국으로 다시 건너가 버리고 말았다.
대학에선 철학을 전공했다.졸업후 오클랜드에서 무술도장을 경영하면서 도장광고를 위해 몇 개의 무도대회에 참석하기도 했다. 세계무도토너먼트에 출전해 독창적인 절권도시범연무를 펼쳤는데 여기서 당시 tv시리즈 배트맨의 PD 윌리엄 도져를 만난다. 그의 소개로 20세기 폭스사의 무술지도자로 고용된 것을 계기로 영화계에 첫발을 내디딘 것이다.
그에 반해 이연걸은 오리지날 중국산이다. 출생은 심양이나 성장의 대다수는 북경이다. 북경무술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정통무술인이다.95년에는 왕이평,조장군등과 함께 당대 중국10대무성의 칭호를 받기도 했다.
그러고보면 이연걸은 무술의 본토인 중국을 대표하는 유일한 무술배우인 셈이다. 그래서인지 이연걸의 영화에는 애국적인 면이 많이 가미되어 있다. 황비홍시리즈와 최근의 영웅이 바로 그것이다.
두사람이 출연한 영화도 큰 차이가 있다.
이소룡은 그가 개발한 절권도의 빠른 몸짓과 발차기,무기는 쌍절곤을 사용한다. 이연걸은 전통무술인 번자권의 대가로 “보디가드”에서 선보인 따발총권법이 특기다.무기는 봉을 주로 사용한다. 이소룡은 뻑하면 웃통을 벗고 싸우지만 이연걸이 웃통벗고 싸우는 영화는 드물다.
특히 평소에는 평범한 체격이나 웃통벗고 준비운동을 끝낸 이소룡의 근육은 뭇 팬들을 사로잡기에 충분했고 그의 품새사진은 어느곳에서도 인기가 높았다. 나도 몇 장은 벽에 붙혀 놓고 주먹 쥐고 내지르는 폼을 따라한 적도 있다.ㅎㅎ
또 이소룡의 영화는 실전을 방불케하는 실감을 느끼나, 이연걸의 것은 어느정도 영상기술을 가미한 허수를 많이 보이고있다. 두사람 연기의 차이를 잘 비교해 볼수있는 영화가 “정무문”이다. 두사람 다 동일내용의영화에 출연했기 때문이다.
.
이연걸은 이후 서방의 배우와 협연하는 과정에서 전통적 정서의 맛을 조금씩 잃어가지 않나 본다. 히트맨,로메오 머스트다이,러쎌웨폰,키스오브 드래곤 등이 그것이다.
금년에 발표한 “영웅(英雄)”은 전세계뿐 아니라 중국대륙을 후끈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감성영화의 대가 장예모의 예술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나도 세번이나 보았지만, 중국어는 다 알아들을 수는 없었고, 그 웅장하고 정교한 장면구성은 매력적이었다. 특히 심내전(心內戰)과 수상비(水上飛)는 정적인 동양무술의 미를 유감없이 발휘한 작품이다. 다만 이소룡영화와 같은 실전감과 투지력 등, 무술의 본원과는 거리가 좀 있다. 너무 기교적이고 환상적이다.
이소룡과 이연걸.
하나는 암울한 쇄국시대 때 외부에서 탄생한 중국무술의 영웅이고, 또 하나는 중국이 세계로 뻗어나가는 개방시대 때 내부에서 탄생시킨 영웅인 셈이다.
스프링/2003.11.27
첫댓글 하하 칭다오 도우미에서 리샤오롱의 이야기를 듣게되다니.. 의외입니다 ^_^ 저 역시 그의 팬이지요. 미국에 살 때 서점에서 구할 수 있는 모든 관련 서적을 다 모았으며 지금도 칭다오에서도 Tao Of Jeet Kune Do를 잘 모셔두고 있습니다.
어느 배우를 보아도 비교가 안되는 그의 카리스마가 잊혀지지 않습니다. 불같은 리샤오롱과 얼음같은 리렌지에.. 죽어도 다른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는 것은 삶의 발자국을 남기는 것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