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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오름 / Sunrise
박은숙
내가 처음 밴쿠버에서 한국입양 가족들의 모임인 ‘Sunrise / 해오름’ 와 만난 것은 4년 전, 어둠을 밝히는 하얀 겨울 'Big Family Day' 잔치가 있던 날이다. 'Big Family Day' 는 성인이 된 한국 입양인이 어린 입양아를 위해 벌이는 한국의 뿌리 잔치이다. 한국 입양인이 위 행사를 위해 영사관에 귀빈 초청 및 후원 요청을 했으나 단지 몇 사람만이 초대에 응했다.
‘Big Family Day'에 초대받은 ’해오름‘ 모임의 아이들은 양부모님과 함께 극장 로비에 마련된 한국 문화 체험에 나섰다. 얼굴에 태극기, 페인팅을 하기도 하고 준비된 한국 음식인 김밥, 김치, 잡채, 불고기 등을 맛있게 먹었다. 더러는 한국 음식을 처음 접하는 데도 불구하고 눈물을 쏟으면서도 매운 김치를 마다하지 않았다. 아이들의 DNA는 이미 김치의 매운 맛이 처음 맛보는 낯선 음식이 아님을 알아 차렸을 게다. 어머니의 어머니가 뿌리 내림한 그 음식 맛의 깊이가 아이들로부터 배어 나오는 순간을 나는 여전히 잊지 못한다.
곧 극장 안에서는 한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슬라이드가 상영되었다. 1950년대 가 소개되자 한국 전쟁으로 인한 고아들의 모습이 화면을 가득 채웠다. 부모를 잃고 눈물이 글썽글썽한 어린 누이가 동생을 업고 있는 화면 뒤로 폐허가 된 시가지의 모습은 처참했다. 이때부터 시작된 한국의 전쟁고아 입양이 지금까지 이어져 현재 이십만이 넘는 한국 입양아가 세계 각국에 퍼져 살고 있다. 한국 입양에 대한 슬라이드 상영을 끝으로 다채로운 한국 무용과 태권도 그리고 탈춤, 사물놀이 등의 공연이 이어졌다. 공연을 관람하는 동안 아이들은 기어 다니고 이리 저리 뛰고 극장 안을 헤집고 돌아다녔다. 잠시도 앉아 있을 새 없이 바쁜 양부모의 분주함이 여느 부모와 다르기 않았다. 아이들의 모습을 향해 셔터를 누르는 순간순간, 가슴이 열리는 묘한 느낌이 떨림으로 다가왔다.
행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내내 아이들을 위해, 또한 나 자신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무엇일까? 하는 깊은 생각에 그 날 밤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노란 머리 양부모들의 눈망울에 비친 아이들의 표정 하나하나가 내게도 크나큰 사랑으로 다가온 까닭이었다. 행사에 참석해 적은 성의로 후원금이나 건네는 일회성 관심으로는 부족하고 간절한 내 마음의 소리는 어느새 아이들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행사에 참여한 아이들의 사진을 보내 주겠노라고 적어 온 주소가 문득 떠올랐다. 사랑이 가득 담긴 아이들의 스냅 사진과 함께 아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싶다고 조심스레 제안을 했다. 몇 몇 관심 있는 가족이 한글 교육을 희망했다. 수업을 할 장소나 교사도 없는 상황이었다. 몇 년 동안 중국과 캐나다 현지 지역사회에서 한글 교육을 했던 경험과 세계 속의 한국인이라는 자긍심만 가지고 동분서주 한글 교육에 필요한 환경과 자료를 준비하기 위해 쫓아 다녔다.
각각의 아이들이 사는 곳이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실현 가능한 일이 아니라며 모두들 말렸다. 하지만 그대로 주저앉기에는 아이들을 향해 열린 내 마음이 허락하지 않았다. 캐나다가 다민족, 다문화 국가라고 해도 나 또한 타국에서 겪었던 외상적 스트레스와 문화적 마찰로 겪었던 어려운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겪을 정신적 충격을 잘 완화 시켜 줄 뭔가가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느껴졌다.
먼저 아이들이 거주하는 지역의 가장 가까운 곳에 사는 한인 자원봉사자를 모집했다. 아직도 한국이 해외 입양을 시키느냐며 놀라움 반, 아이들에 대한 연민 반으로 자원봉사자들이 몰려들었다. 자원 봉사자의 자질은 예상 밖으로 매우 뛰어났다. 최소 학력이 대졸이었고 화려한 사회적 경력 또한 뒤지지 않는 재원들이었다. 함께 머리를 맞대고 학습 자료를 만들고 수업 프로그램을 짜 가면서 주 일 회 아이들의 개별 방문 수업을 시작했다. 처음 몇 개월간은 잘 유지가 되는 듯 했으나 하나 둘씩 개인적인 사유를 들어 그만두기 시작했다. 일단 개인적인 시간을 장기간 나누는 것에 대한 부담감과 언어에서 오는 한계에 부딪힌 것이 커다란 걸림돌이었다. 또한 가르치는 대상의 가정이 한국적 언어 환경이 아니라 한국 교재를 가지고 가르치기도 어려웠다. 게다가 지도하는 아이들의 나이가 어려서 일일이 교재나 교구를 만들어서 사용해야 하므로 수업 준비에 많은 시간 할애가 필요했다. 한글 교육을 원하는 가족이 늘어나는 만큼 그만 두는 자원봉사자도 함께 늘어났다. 한 번 시작한 수업을 중도에 멈출 수 없어서 자원봉사자들의 빈자리를 내가 채워 나갔다.
한글 교육만을 위한 한글 교육은 전혀 실전에 도움이 되지 못했다. 아이들의 연령과 성격, 건강, 그리고 재능을 파악하여 가르치는 아이들마다 교수법을 달리했다. 그림에 재능이 있는 아이는 그림그리기를 통해 한글과 접목하였고, 음악을 좋아하는 아이 같은 경우는 노래로, 리듬으로, 때로는 전통 악기를 통해 뿌리 글자를 가르쳤다. 부모가 함께 수업에 참여하는 가정이 교육적으로 좀 더 효율적인 것을 깨달았다. 한글 수업에 참여하기 부담스러운 부모님을 설득하기 보다는 아이들 수업을 마치고 부모들과 함께 한 달에 한 번은 한국 음식 만들기를 했다. 만드는 음식의 재료를 사기 위해 한국 마켓을 함께 가고 준비된 재료를 다듬고 음식을 만들어 나가면서 말하기, 듣기의 효과가 빠르게 나타났다. 한국 음식 만들기를 통해 한글과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고 이 때 나누는 정감은 동·서양의 문화를 하나로 꽃피우는 아름다운 소통의 계기가 되었다. 한글 수업을 하는데 음식을 만들고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하고 한국 전래 놀이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다른 한글 교사들은 비효율적이라 생각할지 모르겠다. 솔직히 고백하건데, 자음과 모음을 익히는데 족히 일 년은 걸렸다. 사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한글 교육보다 심리적 불안감을 이겨낼 수 있도록 정서적 안정과 사랑을 주는 것이었다.
한 예로. 엘리는 17개월에 입양되어 온 남자 아이다. 위로 먼저 입양되어 온 형 캘빈이 있는데, 외상적 스트레스 장애로 4살이 넘도록 한 단어 밖에는 말을 하지 못한다. 캘빈을 위해서 동생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양부모는 다시 한국에서 엘리를 입양해 왔다. 엘리는 한 달이 넘도록 난폭하게 손에 잡히는 대로 던지고 울기 시작하면 그칠 줄을 몰랐다. 새로 온 동생이 울면 캘빈이 따라 울었다. 양부모가 나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엘리가 캐나다에 오기 전에 먹었을 법한 음식을 장만해서 아이들의 집으로 찾아갔다. 집 안은 깨지고 부서진 물건들, 그리고 아이들이 먹지 않고 엎어 버린 음식들로 발 디딜 틈도 없이 아수라장이었다. 아이가 짓밟아 놓은 음식들은 어른이 먹기에도 거북할 만큼 기름져서 아직은 유동식이 필요한 아이에게 스트레스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아이에게 양부모가 알려 준 한국 이름을 불렀다.
“준영아, 맘마 먹을까?”
방금 전까지 소리를 지르고 울던 엘르가 울음을 그쳤다.
“맘마?”
“응, 맘마먹자. 준영이 이쁘지!”
준영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준비해 가지고 간 미역국과 계란찜, 김치 그리고 불고기를 잘게 찢어서 한 술 한 술 준영이에게 밥을 떠서 먹여 주었다. 캘빈도 나란히 앉아 물에 씻어 내린 김치와 불고기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제비처럼 입을 벌리고 달라는 시늉을 했다. 아이들에게 밥을 먹이고 요구르트를 손에 쥐어 주었다. 요구르트의 새콤하고 달착지근한 그 맛을 준영이는 기억해 냈는지 얼굴 표정이 밝아졌다. 잠시 후 준영이가 잠 투정을 하길래 꼭 안고 ‘작은 별’노래를 틀어 주었다. 반짝반짝 작은 별이 아름답게 비추는 동안 아이는 아주 평온한 모습으로 새근새근 잠이 들었다. 공갈 젖꼭지를 빨던 그 기억으로 이따금 입술을 삐죽이는 준영이를 뒤로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 날 이후 아이들의 울음은 잦아들었고 갑자기 달라진 환경에 조금씩 조금씩 적응해 나가기 시작했다. 매 주 아이들에게 갈 때마다 한국의 음식을 마련해주고 어릴 적 어머니가 가르쳐 주었던 손유희를 하며 웃음의 끈을 되찾아 주려 노력했다. 두 아이는 이제 형제간의 우애를 쌓아가며 하루하루 한국을 배우고 익히며 두 언어를 또렷하게 발음하기 시작했다. 준영이와 캘빈의 양부모는 말한다. 우리가 너무 행복해서 정말 우리가 이 행복을 가질 자격이 있을까? 라며 눈시울을 붉힌다.
많은 입양 아이들이 어릴 적 받은 정신적 충격으로 인한 정서적 장애를 가지고 있다. 양부모들은 아이들의 발달이 늦은 줄로 착각을 하거나 과히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다가 자폐 판명을 받고서야 짐짓 놀라 병원의 의사 처방에 의한 치료에 들어간다. 나는 아이들에게 빠름을 고집하지 않는다. 교육은 빠름이 처방이 아니다. 느려서 본질이 보이지 않을 만큼 작아도 그 안에 아이가 스스로 깨치고 나올 정체성을 심어주는 것이 아닐까 곰곰 생각해 본다.
한국에서 온 자신의 자녀가 한국을 배운다는 양부모의 기대와 관심이 다소 부담스러워 힘겨울 때도 많았다. 영어 능력이 부족해 그들의 속내를 다 알아 차리지 못해 미안하고 답답한 적은 또 얼마나 많았을까. 그 뿐이랴, 하루 종일 몇 시간씩 운전하고 개별 방문 수업을 해 온 탓에 개인적인 일상과 건강에도 무리가 왔다. 아이들의 한글 수업을 계속 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차에 가끔 힘이 들 때 면 도움을 청했던 대학생인 아들과 친구들이 자원봉사를 자청했다. 게다가 지역 사회로부터 아이들의 한글 교육을 위한 교실을 제공받았다. 아이들이 오는 길이 멀고 힘이 들어도 좀 더 체계적인 모습을 갖추고 한국에 한 걸음 한걸음 다가설 수 있도록 모두 한 곳에 모여 수업을 하기로 했다. 물론 아이들을 데리고 오는 양부모님도 같은 시간에 다른 교실에서 한글 교육과 문화 활동을 하기로 했다. 내일은 함께 모여서 하는 첫 수업 날이다. 원숭이가 나오는 모음 ‘아야, 어여, 오요, 우유, 으,이’ 노래와 떡볶이 만들기로 첫 시간을 달구어야겠다. 아니, ‘무궁화 꽃을 활짝 피워볼까?
자녀들에게 한국을 가르치고 배우려는 입양 부모들의 맑게 고인 사랑이 햇살보다 더 따뜻하게 차오르는 아침이다. 어린 새가 둥지에서 날 수 있을 때까지 그 둥지에 온기를 지피는 이, 난 그 이름을 사랑한다. 둥지를 떠난 새가 높이 날 수 있는 그 날을 고대하며 우리들의 아름다운 동행은 지속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지난여름 한국 정부가 지정하고 지원하는 한글학교 지정 신청서를 냈다가 탈락은 했지만 Jason Kobi 가족이 써준 추천서 한 장을 첨부한다. 우리는 이 추천서를 읽어 내려가면서 쉬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아이들에게 박힌 오롯한 사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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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의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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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박은숙 씨에 대한 추천서입니다.
Mr. and Mrs Jason Kobi
4488 Gerrard Place
Richmond, BC, Canada V7E 6S6
박은숙 씨는 약 6개월 간 저희의 두 자녀에게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 기간 동안 그녀는 매주 저희 집에 들러 몇 시간동안 6살, 3살인 저희의 딸과 아들에게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박은숙 씨가 저희 가족에게 얼마나 큰 선물인지 모릅니다. 저희 자녀들은 박은숙 씨를 매주 보고 싶어 안달이고, 그녀에게 배우는 것을 손꼽아 기다립니다. 그녀는 아주 친절하고, 저희 아이들을 사랑하며, 끈기 있고, 창의적이며, 재밌습니다. 박은숙 씨는 아이패드, 한국 음악, 플래쉬카드, 장난감 등, 여러 미디어를 이용하여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가르쳐 줍니다.
그녀는 또한 한국어, 한국 음식, 노래, 편지, 게임 등과 같은 여러 가지 것들을 가르쳐 주어, 아이들이 한국인인 것이 얼마나 특별한 것인지, 그리고 그들의 문화와 언어를 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일깨우게 합니다.
저희 자녀들에게, 또한 저희 모든 가족에게 박은숙씨의 존재는 매우 특별합니다. 저희 자녀들이 한국에서 입양되어 왔고, 제 아내도, 저도 한국인이 아니기 때문에, 박은숙씨는 한국 문화에 대한 연결체입니다. 박은숙씨는 저희 부부를 도와 아이들에게 한국인과 캐나다인 사이에 다리를 놓게 해주었습니다.
제 자녀들은 한국인으로써의 자긍심을 마음속에 간직하며 자라나고 있고, 그러한 연결체가 언제나 강하게 자리 잡기를 소원합니다. 저희는 박은숙 씨가 선생님으로써, 한국인 엄마처럼 계속해서 아이들을 가르쳐주고, 저희 가족에게 특별한 선물이 되길 바랍니다.
저희는 그녀의 가치를 매우 높이 사고, 그녀가 원하는 모든 성장에 대한 열정을 지지합니다. 그녀의 한국어와 한국문화 프로그램이 그녀가 가르치는 아이들에게 더 광범위한 한국문화와 한국어 경험의 집합체가 되길 바랍니다. 박은숙씨에 대해 더 많은 얘기를 듣고 싶으시면 언제라도 연락 주십시오.
Jason Kobi
제 8회 경희 한글 및 한국 문화 지도 체험 수기 공모전 / 우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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