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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아미타불...()...
청화큰스님: 보영스님
일시: 2003년 11월 26일
장소: 전남 혜운사
혜운사, 그리고 큰스님의 고무신
여기 절을 짓고 빚도 많이 져서 탁발을 하시다가 늦게 오세요. 제가 열 살 인가 그랬는데 큰 길까지 마중을 가면 동네 분들이 고구마를 삶아 주시나봐요. 그걸 손수건에 싸가지고 오세요. 대중들하고 같이 나누어 먹고. 당신 제자들이랑 같이 결재를 하세요. 그런데 한번은 절집에서는 운집해서 목탁을 치고 그러거든요. 감태라고 있어요. 바다에서 나는 풀, 그냥 먹을 수도 있고 반찬으로 먹을 수도 있는 풀, 방바닥에 두시고 그걸 먹자고 목탁을 치신 거예요.
빚을 져서 여기 앞에 매화도라고 있어요. 아는 분이 있어서 빚을 얻으러 가셨더라구요. 금산사에 있을 때 잠깐 들렀다 가셨거든요? 근데 한겨울인데 그때는 내복도 귀했죠. 홑껍데기를 입고 가셨다가 오셨는데 까만 고무신을 신고 계셨는데 뒤꿈치가 닳아서 째지니까 철사로 그걸 묶으셨어요, 고무신을. 동네에 내려 걸어가는 게 상당히 멀었어요. 그게 철사가 계속 뒤꿈치를 스쳐서 피가 나신 거예요. 그런 것들 그 때는 그런가보다 했는데 지금은 너무 마음이 아파요. 그 분 성격에 빚 얻으러 가셨는데 오죽 하시겠습니까. 결국은 못 얻고 오셨더라구요. 친분이 상당히 있던 분이었는데 결국은 거절 당하셨나봐요.
일시: 11월 30일
장소: 전남 정광사
한생 태어나지 않은 셈치고 공부하다가 죽자!
이게 작년 생신 때 갔는데 당신께서 이걸 써서 지갑에 넣어서 주셨어요. 사세라고 하시대요. 지난 겨울, 음력으로 11월 6일이 큰스님 생신이세요. 제가 한 번도 안 빠졌는데 지난해에도 갔었죠. 누구 따라 갔는지 모르겠는데, 갔더니 이것을 사세라고. 생전에 쓰신 글을 사세라고 그러셨나봐요.
여기에 넣어서. 저는 아무 생각 없이 받았거든요. 당신께서 이미 이것을 알고 주신 것 같습니다. 저는 정말로 항상 저에게 뭘 잘 주시니까요. 저에게 있는 책이나 그런 것들이 다 스님께서 주신 거예요. 이게 당신이 가신다는 것을 알고 주신 것 같아서 저는 받아서 가방 속에 넣었다가 열반하신 다음에 ‘아, 이걸 그래서 주셨구나’ 그래서 알았어요.
제가 큰스님을 기억하기로 4살 때 저를 운문암에서 만났다는 데 저는 기억이 없죠. 7살 때인가 혜운사 계실 때 그 때 뵌 기억이 나요. 당신이 사셨는지 그건 몰라도 지갑이 되었든 볼펜이 되었든 잘 주세요. 큰스님에게 받은 것도 많고요, 조그만 칼 같은 것도 많이 받았어요. 저 혼자 있을 때도 많이 주셔서. 여러 사람이 같이 있을 때 주신 것이 아니고 저를 따로 부르셔서 웃으면서 주시더라구요. 저에게 써주신 글도 많거든요. 붓글씨, 편지도 70통 정도가 돼요.
제가 중노릇을 잘 한 것은 큰스님 때문이에요. 큰스님이 아니면 못했다기보다 안했죠. 큰스님 곁에는 향기가 나요. 범부에게 느껴지는 그런 것이 없어요. 제가 행여라도 속된 생각을 하고 있으면 바로 아시거든요. 저한테 채찍하는 말씀을 늘 하셨어요. 금생 한생 태어나지 않은 셈치고 공부하다가 죽자, 늘 그러셨어요.
내가 키가 커서 큰스님인가?
큰스님의 은사인 대화상님이 속가의 저희 고모님이 대화상 아버님에게 가셨어요. 그러니까 저희 아버님이 또 대화상에 대해 끔찍하세요. 대화상이 어디 가자고 하면 모든 것을 팽개치고 나서는 분이에요. 저희 모친도 속가에서 대화상을 모시게 되었어요. 공양도 해드리고 그랬다 하더라구요. 그 큰스님께서는 운문암에 제가 4살 때 오셨다고 하거든요? 근데 제가 몇 년이라는 세월을 지나서 저희 모친이 저를 데리고 혜운사에 가셨어요. 근데 목수들이 집을 짓고 그러더라구요. 어리니까 집을 짓나보다 했는데 그 때 기억을 해요. 그 때 인연이 지금까지죠.
저희 모친이 금타 대화상과 큰스님도 시봉을 한 셈이에요. 어디 가서 삼동결제하고 먼저 들르시는 곳이 저희 절이에요. 묘한 것은 큰스님이 30 갓 넘은 걸로 기억해요. 저와 24년 차이가 나요. 근데 혜운사에서 기억을 하는데 어린 나이에 뵈어도 이마가 훤했어요. 눈빛이 맑고 청명한지 보통 30대 초반이면 점잖을 나이는 아니잖아요. 그 때나 지금이나 똑같으세요. 그리고 그 때부터 모든 이들이 큰스님이라고 하대요? 농담 삼아 그러세요. 내가 키가 커서 큰스님인가 그러셨어요.
혜운사에서 삼동결재하시는데 큰스님 혼자였던 것 같구요, 제자분들이 그 때 20대 학생들이 같이 결재를 하셨던 것 같아요. 큰스님 때문에 스님도 많이 되었구요, 혜운사 와서 공부도 하고 그랬어요. 고향분들도 나이가 아무리 많으셔도 큰스님을 어른대접 하세요. 어쨌든 특이한 분이세요.
금타 대화상의 보리방편문, 그리고 출가
92년도에 모친께서는 91년도인가 잘 모르겠는데 그 때 돌아가셨어요. 친부께서는 오래 전에 돌아가셨어요. 제가 12살 때인가 13살 때 돌아가셨어요. 기억에 있죠. 부친께서는 당신 안중에 아무도 없어요. 금타 대화상에 지극정성이시지, 아무튼 그러셨어요. 가정이고 뭐고 때려 치고 무조건 금타 대화상이었어요.
법명이 대용으로 알고 있어요. 법련스님하고 우리 부친하고는 형제뻘 되세요, 사형사제 지간이에요. 법연스님에게 수계를 받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일현, 일현스님. 우리 모친과 부친께서는 불교교리가 좋고 그런 것이 문제가 아니었어요. 무조건 금타 대화상이 좋아서 그러셨어요. 가정도 안중에 없으셨죠, 저희들은 그게 굉장한 불만이었어요.
처음에 큰스님께서 무슨 절로 출가를 하셨대요. 근데 그 절에서는 공부를 못 하겠더래요. 그래서 운문암으로 갔어요. 스님은 평생 사촌동생에게 감사해 하세요. 그 곳을 인도해 주셨다고. 그래서 법연스님을 뵙고 금타대화상의 보리방편문을 보시고 바로 이거구나 하고 눌러 앉으셨죠. 그때만 해도 나라에 절이 있는 곳이 없죠. 불이 들어오는 곳도 없고.
스님은 참선도 하셨지만 책을 너무 좋아하세요. 근데 낮에는 책을 볼 시간도 없으셨대요. 아침 굶죠, 오전 내내 참선하죠. 오후에는 나무를 때러 가고, 저녁에는 정진을 하고 그러니까 책 볼 시간이 없더래요. 빨래고 뭐고를 손수 하시니까 책 볼 시간이 없어서 이불 속에 들어가 보리방편문도 베끼고 그러셨대요. 당신에게는 처음 절에 가셔서 양에 안 차셔서 뛰쳐나오신 거죠. 경전도 흔하지 않고. 잠깐 계셨다고 그래요. 아니다 싶으면 바로 나오시지 오래 계실 분이 아니에요.
난 잠이 없어, 많이 자면 한두시간 자지.
제가 가장 강한, 곁에 갈 수 없을 정도로 풍기는 것은 사성암에 계실 때에요. 해제 조금 전에 갔는데 감히, 나는 인간 세상에 살고 큰스님은 성자와 같은 모습이어서 가까이 가기가 겁이 나대요. 벽송사에서 한철 나실 때도 그러셨어요. 보통 절에 가면 참선하는 대중방이 있고 각 방이 있는데 큰 방 구석에 책 몇 권이랑 주무시고 그랬다고 하대요.
평소에도 뵈면 큰스님 누워계신 것을 본 적이 없어요. 난 잠이 없어, 많이 자면 1, 2시간 자지. 그러면서 저희들에게 잠도 많이 자고 시간낭비 한다고 그러세요. 근데 스님은 몇 생을 닦아오셨고 저희는 금생에 처음 절집에 들어온 것일 수도 있는데 어떻게 그게 됩니까. 큰스님께서 꾸중하실 때는 단단한 마음을 먹지요. 큰스님은 능히 그러고도 남으실 분입니다.
사성암에서도 집이 한 채 있었거든요. 법당이 있고 칠성탱화인가 그런 게 있구, 부엌이 있었는데 큰스님이 법당에 계시더라구요. 사성암에서도 한번도 자리에 누운 적이 없다고 하시더라구요. 그때 제가 갔는데 사성암에 결재하러 갔는데 비몽사몽간에 금타 대화상이 그렇게 기뻐하시더래요. 벙글벙글 웃으시며 청화 왔는가 청화 왔는가 하며 기뻐하셨다고 하더라구요.
제가 남미륵을, 제가 겨울에 꼭 한번은 가거든요. 남미륵에 갔을 때인데 밑에도 위에도 두 명 정도 누울 수 있는 방인데, 큰스님께서 양쪽 귀에 얼음이 들어있는 거에요. 스님, 왜 귀에 얼음이 들어있습니까 그러니까 방이 추워서 그러신다고 하대요. 근데 장작이 부엌에 많았어요, 때시지 그랬더니 다음 사람이 오면 때야 하니까 그리고 방이 따뜻하면 긴장이 풀리니까 그래서 때우지 않았다고 그러더라구요.
하루를 살더라도 수행자의 모습으로
큰스님은 부엌에 낙엽도 하나 없어요. 그만큼 깔끔하셨고 이만한 판대기 하나가 있대요. 밥 때문에 방까지 들어가려면 시간도 아깝고 부엌에서 드시고 들어간 거예요. 반찬을 보니까 콩장하고 단무지, 김, 간장. 그렇게 있으세요. 편지를 보니까 이런 말이 있더라구요. 깨소금을 넣어서 보내달라구.
큰스님은 기름을 안 드세요. 참기름이든 느끼한 것을 싫어하세요. 스님의 식성이 그러세요. 쓴 것도 싫어하시고. 사성암에서도 그 말이 맞을 겁니다. 보살님은 큰스님 곁에 없고 시봉스님이 그렇게 말씀하셨다고 하거든요? 보살님이 장작을 몇 개 넣으면 스님이 다시 장작을 빼고 그러셨다고 하더라구요.
당신이 지은 것도 많구요, 남미륵도 얘기하시잖아요. 지은 거라고. 상원암도 큰스님이 지으셨어요. 어디 허술한 집이 있으면 가서 고치세요. 주변 정리를 다 하죠. 보통 사람은 토굴가면 엉망으로 살아요. 하루를 살아도 정리정돈하고 사세요. 수행자는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신발도 반듯하게 놓여 있어야지, 흐트러져 있으면 꼭 바로 놓고 들어가세요. 조금이라도 흐트러져 있는 것을 싫어하세요. 스님은 절대로 차 안 드세요. 그럴 분이 아니에요. 근데 커피는 드세요. 그냥 홀짝 마시면 되니까요. 식혀야지 우려야지 그렇게 차 마시는 것 때문에 시간낭비 하는 것을 매우 싫어하세요.
일체 인연이 우리의 스승이 될 수 있지 않습니까
큰스님은 팔방미인인 것이 음악, 문학 같은 것도 그래요. 문체 같은 것도 큰스님을 따라갈 사람이 없어요. 하여튼 팔방미인이세요. 제가 강진 하방사에서 기도 중에 공양주 보살이 돌아가셨어요. 큰스님이 그걸 아시고 저에게 주신 편지예요.
기도에 여념이 없이 전심전력을 다하실 줄 믿습니다. 천만 뜻밖에 여러 가지 공양구를 해소해주셔서 감사히 합장기원 하였습니다. 이미 천년고호에 겨울이 오니 오랜 벼리를 한 듯한 삭막한 감회를 지울 수 없습니다. 기도를 도중하차하심은 부득이한 인연으로 체득할 수 없사오나 일체 인연이 우리의 스승이 될 수 있지 않습니까, 보다 많은 시련과 함께 보다 심각한 교훈도 절감하셨을 거라 믿습니다.
저에게 하신 편지는 부처님께 생명을 다 바쳐라, 규율을 잘 지켜라. 이렇게 하지 않으면 부처님께 죄스럽고 우리가 확고히 공부하지 않으면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믿어주겠느냐고 하셨어요. 경책하시는 말씀만 하세요. 제가 16살까지는 말을 높이지 않으시다가 그 이후부터 높임말을 쓰셨어요. 그리고 어떤 편지를 쓸 때는 깍듯이 경어를 쓰라고 하셨어요.
절을 드려도 40대 조금 지나서까지 맞절을 하셨어요. 저희는 얼마나 죄송합니까. 그래도 소용없어요. 맞절을 하셨어요. 나중에는 그냥 합장을 하시더라구요. 그게 얼나마 편한지요. 16살 지나니까 계속 말을 올리시대요? 제가 얼마나 죄송합니까. 저에게 항상 보영스님 그래도 되는데.
미국 팜스프링에서의 3년 결사
큰스님이 어디를 다니셨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부처님의 나라는 가신다고 했는데 도저히 가실 기회가 안된 거예요. 미국은 왜 좋아하시느냐면 거짓말을 안 한다, 법규를 잘 지킨다는 것을 참 좋아하셨어요. 삼보사에서 일주일동안 법회하신 것을 다 보내주셨어요.
저는 다생을 두고도 큰스님에게 갚지 못할 거예요. 저 같은 사람에게 왜 이렇게 하셨는지 모르겠어요. 공부도 안 하고 노는 사람에게. 코팅을 안 해도 되잖아요. 근데 코팅까지 하셔서... 사람들이 제가 딸인 줄 알더라구요. 미국 팜스프링 가셔서 3년 결사할 때 보내주신 붓글씨들, 신미년 불탄절에 보내주셨어요.
이것은 미국 팜스프링 때 3년 결사할 때 보내주신 거예요. 이건 제가 17살 때 써주신 거예요. 지금은 복사가 흔해서 할 수 있잖아요. 근데 그 때 복사가 흔하지 않을 때 이걸 다 써서 주신 거예요. 이것이 그 때는 책이 없으니까 공부하라고 전해주신 거죠. 제가 이걸 찾아서 봅니까 못 보죠.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보내주신거죠.
수행삼덕이 있는데 망상하는 것, 많이 자는 것, 앉은 자세가 바르지 않은 것은 수행에 나쁘다고 한 것이죠. 불교만 공부하라 했지만 예술에 관한 것도 적어주시고 불교의 전래에 관한 것도 도표로 그려주시고.
예술, 지혜를 욕망의 종속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것. 즉 개인의 자아와 물질적 이해를 잇는 것, 진리의 명상에 억양하는 것, 이것이 예술이다. 원소와 원자, 분자, 대승과 소승, 108 번뇌, 문명시대의 종교. 중국 당대의 포대화상의 글도 써주셨네요. 소설의 4요소도 써주셨네요. 장편과 단편, 작가의 갈 길.
법구경에서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문구를 써주셨거든요? 지상에서 유일의 왕이 되는 것보다도 천상에 가는 것보다도 전 세계의 주권을 잡는 것보다도 성 위에 들어가는 것이 더 수성하다. 니체의 글, 괴테의 말과 스피노자의 말도 써 주시고. 요한복음서 제 3장. 그러니 성경도 다 보신 거예요.
된 수행의 길
단식을 시키신 적은 없어요. 저는 큰스님이 하신 것은 다 해보고 싶었어요. 여러 차례 했어요. 일주일, 보름. 제일 많이 한 것이 스무 하루. 태안사에 처음 들어갔을 때 완전 단식. 물만 먹고 하는 거. 요즘은 효소도 먹고 뭐 그러잖아요. 그 때는 제가 알기로 물만 먹는 것인 줄 알았어요.
단식하고 3일 지나면 후회 안하는 사람 없고 마라톤 선수가 뛰다보면 후회 안 하는 사람 없다잖아요. 단식 열흘 정도 하는데 정말 힘들어요. 너무 힘들어요. 근데 그 때 제가 목탁 치며 8시간을 기도했어요. 저, 그만 할랍니다. 그랬더니 하려면 끝까지 해야지 도중에 그만하면 무엇이 되느냐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삼칠일을 채웠지요.
음식이 좋은 것도 있지만 좋지 않은 것도 있더라구요. 열흘이 지나니까 고비를 넘기니까 일꾼들이 와서 밥을 먹는데 밥 먹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는 거예요. 음식을 먹고 있는 사람들이 정말 싫대요. 내 자신이 가볍고 천상 사람처럼 느껴졌어요.
근데 조심할 것이 잘못하면 죽어요. 저도 죽을 뻔 했어요. 밤을 까라고 해서 까다가 먹었는데 죽을 뻔 했어요. 단식이 끝나고 딱딱한 것을 먹으면 안 되거든요.
[출처] 청화큰스님-보영스님 |작성자 세계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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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네~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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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한글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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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이 가까이 계신듯 생생합니다. 고맙습니다 보영스님 나무아미타불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