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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름과 틀림의 차이는 무엇이고, 구분은 어떻게 하는걸까..
배를 타고 오지마을로 향하는 길이었다.. 선객들은 나처럼 여행객도 간혹 있었지만 대부분이 생업을 위해 일하러 가는 사람과 모처럼 고향을 찾아가는 사람, 도시에서 볼일을 보고 집으로 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예정된 출발시간보다 20여분이나 지났는데도 배는 출발하지 않고 정박해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내가 라오스에 100여일을 생활하고 겪은 경험으로 보았을때 이곳 선착장까지 오는데 행여나 기다리던 버스가 늦게 와서, 집에 두고온 아이를 떼어놓고 오는데 자꾸 보채서, 무더위로 인한 엔진과열로 인해 차가 퍼져서.... 등의 불가피한 이유로 선장이 그들을 위한 작은 배려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출발시간은 늦었지만 나는 느낀바가 많다.. 사람이 시계를 발명하고 그 시간으로 약속을 정하고까지는 좋았지만 세상이 변함에 따라 언제부턴가 우리는 시계에 지배를 받아 살아가고 있다.. 돌이켜보면 회사생활 15년간, 아니지 군대생활, 학교생활 더 나아가 내 삶의 전부가 째깍째깍 그 움직이는 바늘에 따라 내 몸은 움직여왔다.. 1분 1초가 늦으면 교문에서 문을 잠그고 지각했다는 명목아래 엉덩이 부르터지게 매맞던 학교시절, 배가 고프지 않아도 점심시간이면 우르르 식당으로 몰려가 직원들과 영양과잉의 음식을 섭취했던, 배가 고파서 밥을 먹은게 아니라 시간이 되었기에 밥을 먹었던 회사시절, 기상시간 6시면 전날에 무슨 일이 있었건에 구보하고 씻고 밥을 먹고 훈련을 받았던 군대시절까지..
그래서 나는.. 우리는.. 세상은 달라진게 뭐가 있을까..
라오스의 정치경제와 지배세력은 맘에 들지 않는다.. 하지만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서 나는 참 많이 배운다.. 조금 늦더라도, 조금 실수하더라도, 조금 못마땅하더라도 그저 웃으면서 보뺀냥 하는 그들의 삶.... 마음이 풍요롭다..
나는 여행자의 신분이라 낯선곳으로의 여정은 설레임과 호기심으로 가득했기에 일상이 이런곳에서 사는 사람에겐 지루하기 짝이 없는 시간일거라 짐작했다.. 그래서일까, 소음을 내며 힘차게 물살을 가로지으며 달리는 선상에서 바라보는 바깥의 풍경에 흠뻑 취해 있을때 문득 내 시야에 들어온 선내의 잠에 취한 손님들, 그중에 한 아주머니가 신고 있는 뒤꿈치를 덧대어 꿔매 신은 양말과 어린아이가 입고 있는 뒤집혀진 바지에 한동안 시선이 고정되었다..
가방의 카메라를 뒤적이면서 들었던 생각..
다름과 틀림의 차이는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사진을 찍는 이유이기도 했다.. 사진을 보면서, 그리고 잠자고 있는 아이와 아주머니를 보면서 난 생각했다..
다름은 개성이고, 다양성이고, 조화이고, 독창적이며 창의적이라는것.. 즉 사람이 태어나고 자라면서 배우고 듣고 깨달은 것들을 자기 방식대로 삶아서 볶아서 구워서 튀겨서 맛있게 먹고 소화시켜서 자기나름의 향기를 꽃피우는것이라고..
틀림은, 이러한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나만 옳다고 주장하면서 상대방을 배척하고, 무시하고, 심지어는 힘으로 언어로 폭력을 행사하는것이라고..
이 두 사진을 보면서 난 생각했다.. 아.. 양말에 구멍이 나면 버리는게 아니라 저렇게 꿰매어서 다시 신을수 있는거구나.. 아.. 옷을 저렇게 뒤집어 입으면 빨래를 한번 건너 뛸수도 있겠구나 라는걸.. 이게 다름이 아닐까..
구멍난 양말을 버리지 왜 꿰매서 신냐, 거지냐? 옷을 왜 뒤집어 입어, 정신을 어디다 뒀어!! 라고 말하는건 틀림이 아닐까..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정말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된다.. 키큰 사람, 작은 사람, 수다쟁이, 과묵한 사람, 잘난 사람, 못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참으로 다양한 세상이다.. 부디 키큰 사람이 키작은 사람을, 수다쟁이가 과묵한 사람을, 잘난 사람이 못난 사람을 괴롭히거나 망신을 주지는 말자.. 저 고사목처럼 하늘 위에서 보면 다 거기서 거기다..
다름의 존재를 존중하지 않고 틀림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이 없었으면 좋겠다.. 끝까지 다름을 틀림으로 해석해서 상대방을 공격한다면 결과는 뻔하다.. 결국 혼자 남는것..
상대에게 정신적 물질적 피해를 입히지 않는 다름이야말로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데 가장 필요한 덕목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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