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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정맥 23 구간(미사치 ~ 논실마을)
1. 산행일자 : 2009년 7월 25(토)
2. 산 행 지 : 도솔봉(1,123.4m)
3. 출발일시 : 7월 25일(토) 04시 (시간엄수)
4. 출발장소 : 수원 경기도 여권 민원실 앞
5. 산행개요 :
전남 순천시 서면∼황전면 고갯마루 미사치에서 출발 깃대봉(858.2m) → 월출봉(768.1m) → 형제봉(861.3m) → 등주리봉(897m) → 도솔봉(1,123.4m) → 따리봉(1,127.1m) 너머 한재에서 광양시 옥룡면 논실마을로 하산하는 이번 산길 최고봉은 따리봉(또아리봉)이다. 또한 도솔봉은 최고의 조망터 역할을 감당해내고 있다.
전 코스가 지그재그로 휘감아 도는 주능선 길 동쪽과 서쪽의 중간지점에서, 호남정맥길 마지막 용트림과 북쪽 섬진강 건너 지리산 주능선 남사면을 다 볼 수 있다.
남쪽으로 이어지는 물길은 순천동천, 광양천, 광양동천 계곡수는 곧장 광양만으로 흘러들지만, 북쪽으로 쏠려간 회룡천, 간문천, 중대천 등은 섬진강 물결 따라서 광양만으로 빨려든다.
6. 산행 참가자 : 강동규, 강영재, 노승애, 박상호, 안상경, 윤희원, 이용준, 이태인, 장현옥 등 9명
7. 날 씨 :
8. 총 산행 거리 및 소요 시간
○ 총 산행 약 16.2km, 8시간 20분 정도 소요(접근로 3.0km, 1시간 10분 포함)
9. 일정 및 소요시간
[1] 구간별 거리 및 주요 산 높이
황전터널입구←[1.0km]→미사치(450m)←[2.0km]→859.9m봉←[2.0km]→월출재(700m)←[3.2km]→형제봉(861.3m)←[3.0km]→새재(810m) --- 도솔봉(1,123.4m)←[1.2km]→참샘이재(970m)←[0.8km]→따리봉(또아리봉, 1,120m)←[1.0km]→한재(850m)←[2.0km]→논실마을
[2] 산행일정
(1) 산행지 가는 길
수원(04:00) ∼ 천안논산간, 호남고속 ∼ 순천IC ∼ 순천(07:50/아침/08:40) ∼ 840번도로 ∼ 황전터널입구(09:10)
(2) 산행 코스 및 소요 시간
황전터널입구(09:20) -- 미사치(09:40) → 계족산분기점(10:50) → 깃대봉(11:00/11:10) → 월출재(11:35) → 마지막임도(11:45/11:55) → 삼각점/하동428(12:50) → 형제봉(12:55/점심/13:35) → 새재(13:55) → 삼거리봉/890(14:10) → 1,060봉(14:45/14:55) → 도솔봉(15:15) → 980봉/헬기장(15:40) → 참샘이재(15:45/15:55) → 따리봉(16:30) → 한재(17:00) -- 논실마을(17:50)
[3] 산행 후
논실마을(18:00) ∼ 840번도로 ∼ 광양(식사 및 숙박, 18:30 ∼ )
[4] 산행의 실제(산악대장 제공 자료)
(1) 산행지 가는 길
수원(04:40) ∼ 천안논산간, 호남고속 ∼ 주암휴게소(07:45/아침/08:30) ∼ 순천IC ∼ 840번도로 ∼ 황전터널입구(09:09)
(2) 산행 코스 및 소요시간
황전터널입구(09:20) -- 미사치(09:36) → 계족산분기점(10:37) → 깃대봉(10:44/10:56) → 월출재(11:35/11:41) → 삼각점/하동428(12:31/12:42) → 형제봉(12:47) → 새재(12:54) → 890봉(13:08/점심/13:30) → 도솔봉(14:21/14:42) → 980봉/헬기장(15:03/15:11) → 참샘이재(15:14) → 따리봉(15:41/15:53) → 한재(16:21/16:24) -- 논실마을(16:47)
(3) 산행 후
논실마을(17:05) ∼ 840번도로 ∼ 광양(식사 및 숙박, 17:30 ∼ )
[5] 탈출로 및 편의사항
○ 선창네집(061-763-2113, 장어),
○ 제일송어산장(762-6630)
○ 시내식당(061-763-0360, 불고기)
10. 산행기(참고자료)
[1] 미사치( 미사치(美沙峙)
○ 순천시(황전면, 서면)
○ 비포장도로, 사거리안부
○ 순천시 서면 청소리
[2] 계족산 481m 전남 순천 서면>>>
(1) 위치 : 순천시 서면 청소리
(2) 높이 : 해발 727m
(3) 산행코스
순천시 서면, 광양시 봉강면, 구례군과 접해 있어 방향에 따라 다를 수 있으나 순천에서는 청소골에서 오르는 코스와 청소년 수련원에서 오르는 코스가 있습니다. 대개 청소골에서 오르는데 청소골의 종점 부근에 구례로 터널 공사를 하고 있는 현장이 있습니다. 이곳에서 출발합니다.
다. 소요시간 : 5-6시간(코스에 따라 변동)
<출처> 순천인(http://suncheonin.kr/new/bbs/board.php?bo_table=sc1&wr_id=4 )
<청소리(淸所里)>
전라남도 순천시 서면에 잇는 里이다. 계족산의 서쪽 자락에 있으며, 전형적인 중산간 지역이다. 동천이 남류하고 있고, 북쪽으로 갓꼬리봉이 있다. 자연마을로는 관풍정, 송내(솔안이), 원골, 청소리(청소)가 있다. 관풍정은 정자나무가 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송내는 솔밭의 안쪽이 된다하여 붙여진 아름이다. 원골은 원집이 있다하여 붙여졌으며, 청소리는 청소가 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문화재로는 보물 제 804호인 정혜사 대웅전이 있다.
[3] 깃대봉
○ 삼각점(하동24/1991재설)이 있는 깃대봉(858.2m)에 올라가면 벤치들과 안내판이 반겨주고 형제봉에서 도솔봉과 똬리봉을 지나 백운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가깝게 펼쳐진다.
○ 3개면(순천 서면, 황전면, 광양 봉강면) 경계
깃대봉에서의 지리산 조망은 단연 압권이다. 천왕봉이 너무 선명하게 다가오고, 반야봉과 나머지 봉우리들도 손에 잡힐 듯이 보인다. 미사치에서 깃대봉까지의 등로는 도로를 기준으로 본다면 고속도로에 해당할 만큼 넓고 부드럽다. 하지만 깃대봉에서 형제봉까지는 비좁고 많은 잡목 때문에 고난의 길이다.
< 여수지맥 >
3개면 경계 삼거리에서 『안치』삼거리를 거쳐 계족산 정상까지는 여수지맥 구간이고, 3개면 경계 삼거리에서 미사치와 갓거리봉을 거쳐 마당치까지는 호남정맥 구간이라 한다. 참고로 여수지맥은 3개면 경계 지점부터 여수반도 끝(3개면 경계 삼거리 ---> 안치 ---> 게족산 정상 ---> 용계산 ---> 성가롤로병원 ---> 검단산성 ---> 앵무산 ---> 안심산 ---> 나진고개 ---> 고봉산 ---> 화양봉화산 ---> 힛도)까지 조상거리 81km 구간이다.
< 대구리(大九里 >
전라남도 순천시 서면에 있는 里이다. 낮은 산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깃대봉이 있다. 마을 앞으로 동천이 흐른다. 지형이 대구처럼 생겼으므로 대구라 칭하였다. 자연마을로는 높은박골, 물골, 어름밭골, 호랭이바웃골마을 등이 있다. 높은박골마을은 높은 바위가 있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물골마을은 물이 흔한 곳이라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어름밭골마을의 지명은 어름(으름)덩굴이 많은 곳이라 하여 지어진 것이다. 호랭이바웃골마을은 호랑이 굴이 있었다는 호랭이 바위가 있는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4] 월출재 : 865지방도
○ 전남 광양에서 구례로 이어지는 고개
○ 사실 월출재를 찾게 된 이유는 또 있었다. 전라남도 광양시나 구례군은 경상남도 하동군과 인접해 있고, 동서화합(?)의 마당이라는 화개장터와 국내 최고의 매실산지인 다압면이 가깝기 때문이다.
잘만 하면 섬진강 주변의 멋진 풍경을 안주 삼아 매화꽃을 감상하며 새콤한 매실주를 맛보거나 지리산 준봉을 바라보며 몸에 좋다는 고로쇠 수액을 마셔 볼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도 있었다.
○ 구례군과 광양시에 걸친 월출재 오프로드는 865번 지방도의 일부구간이다. 넓게 보면 백운산을 중심으로 구례, 승주, 광양, 하동이 둥글게 퍼져 있고, 월출재는 그 가운데를 남북으로 가른다.
이 길을 찾아가는 방법은 두 가지. 섬진강 매화마을 앞을 지나는 861번 지방도 옆 간문리에서 남쪽으로 달리거나, 광양시 봉강면 조령리를 출발해 조령천을 따라가도 월출재에 다다를 수 있다. 둘 중 취재팀은 하천에서 가까운 간문리를 출발점으로 잡았다. 하천리를 떠나 861번 지방도 8km를 달리면 간문리. 여기에서 왼쪽 865번 지방도를 타면 길을 놓치지 않고 오프로드에 닿게 된다.
<출처> http://rgg.kr/~ujeong/link/jinsang2/gojang_page30.htm (광양시 진상면 : 백운산)
[5] 형제봉(861.3m)
○ 전남 광양시 봉강면/ 구례군 간전면 소재
○ 형제봉 정상 : 암봉 ---> 무 표시, 철 계단, 조망 좋음 / 우측으로 수십 길 절벽 / 조망이 절정을 이룸
○ 형제봉 정상은 약간의 거리를 두고 높이와 분위기가 엇비슷한 또 하나의 암봉을 이루고 있음. 그래서 형제봉이란 이름이 붙음
○ "꽃사슴농장 1.961km"라는 이정표가 있음
http://100.naver.com/100.nhn?dir_id=130102160213&docid=805659(네이브백과사전)
[6] 지역탐방 (5) - 전남 광양시
(1) 개요(槪要)
광양시는 전라남도 남동부에 위치해 있으며 동쪽은 섬진강을 경계로 경상남도의 하동군, 서쪽은 순천시, 남쪽은 광양만, 북쪽은 구례군과 접하고 있다. 전체 면적이 448.176㎢이며, 총 인구가 138,730명(2005년12월 기준)에 이르고, 1읍 6면 5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시청소재지는 광양시 중동이다.
전남의 동부권과 경남의 서부권을 잇는 해상교통의 요충지로, 수산물의 보물창고로써 역할을 했으며, 지금은 새로운 국제무역 산업지대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광양만은 여수ㆍ남해반도가 천연적인 방파제 기능을 해 줌으로써 항상 물결이 잔잔하여 선박이 정박하기에 안전하고, 수심이 깊어 대형선박이 다니기에 편리한 곳이다.
(2) 광양시의 특징
① 해상교통의 요충지
해상교통의 요충지 광양시를 중심으로 왼쪽에 하동, 남해, 오른쪽에 순천, 여수가 자리 잡고 있는 광양만 연안에는 예로부터 크고 작은 포구가 곳곳에 자리 잡고 있어 지역간에 활발한 교류가 이루어졌다.
또한, 광양만의 해상교통로는 1900년대 초기까지만 해도 섬진강을 거슬러 올라가 하동의 화개장터와 구례, 곡성등 내륙 깊숙이 연결되었다.
② 21세기를 이끌어나갈 신(新)산업지대
21세기를 이끌어 나갈 신(新) 산업지대 수산물의 보물창고인 광양만에 대규모 산업시설이 들어서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에 여수석유화학단지가 들어서면서부터 이며, 1980년대에는 광양제철소가 세워졌으며, 이어서 1997년 12월에는 광양항 컨테이너부두 1단계 공사가 준공되었으며 계속해서 2,3단계 부두공사와 함께 율촌공단 개발이 이루어진다. 이처럼 광양만 연안에는 대규모 국가기간 산업시설이 들어섬으로써 광양만권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새로운 산업지대로 주목받고 있다. 특히 광양항 컨테이너 부두건설은 '98년 1단계 4선석 개장을 시작으로 2011년까지 총 33선석이 건설되어 앞으로 광양항은 부산항과 더불어 국제무역의 중심항으로, 동북아의 물류거점항으로 자리잡게 된다.
③ 이순신 장군이 해상봉쇄작전 편 해상전적지
한편 광양만은 정유재란이 끝나갈 무렵인 1597년 11월부터 1598년 11월까지 1년 동안 이순신 장군이 명나라 수군과 함께 해상봉쇄작전을 펴서 소서행장이 이끌던 왜병 1만 3천명을 무지른 해상 전적지이다.
당시 소서행장이 거느린 왜군은 순천시 해룡면 신성포에 머무르면서 본국인 일본으로 돌아갈 기회를 엿보고 있었는데, 이순신 장군이 광양만 해상을 봉쇄하자 꼼짝없이 갇히게 되었다.
그러나 소서행장은 명나라 장수에게 뇌물을 주고 끝내 노량으로 달아나게 되었으나 이를 미리 알아낸 이순신 장군이 경남 남해군 노량 앞 바다에서 퇴로를 막음으로써 큰 싸움이 벌어지게 되었으며, 이 노량해전에서 이순신 장군은 전사한다.
이순신 장군에 의해 해상봉쇄가 이루어졌던 1년 동안에 광양만에서는 크고 작은 싸움이 여러 차례 벌어졌는데, 광양만연안에는 임진왜란당시 군량미를 쌓아 두었던 창고 터가 곳곳에 있으며, 소섬, 염소섬, 나팔섬, 북섬 징골, 통사촌 등 전장과 관련하여 붙여진 지명들이 많다.
④ 산업시설에서 펼쳐지는 야경이 절경을 이뤄
광양만 연안에 산업시설이 자리하면서 밤이면 불야성을 이룬 야경이 절경을 이룬다. 광양시청이 위치한 중마동의 가야산 중복도로에서 내려다보는 광양제철소와 컨테이너부두, 그리고 여수 산업단지의 야경이 뛰어나고, 붕장어구이로 유명한 초남포에서 건너다보는 여수산업단지와 율촌산업단지의 야경이 아름답다.
(3) 자연환경
소백산맥의 남단에 해당하는 백운산이 시의 북부에 솟아있으며, 도솔봉, 형제봉, 매봉등이 동서로 늘어서 있어 북부는 험준한 산악지대를 형성하며, 시 면적의 73% 가 산간지대이다. 백운산에서 발원하여 광양만으로 유입하는 동천과 서천의 하류에 비교적 넓은 평야가 형성되어 주요 경작지와 거주지를 이룬다. 남해안에 접해 있기 때문에 바다의 영향을 받아 비교적 온화한 해양성 기후의 특색이 나타난다.
(4) 역 사
○ 고대
백제에 편입된 뒤로는 마로현이라 하였으며, 삼국통일 이후에는 희양현으로 고쳐져 순천군의 영현이 되었다.
○ 고려
초기에 광양현으로 개칭되었다가 1108년(예종3) 감무가 파견되었다.
○ 조선
1413년(태종 13)에 현감이 파견되었으며, 1598년에 순천으로 편입되었다가 다시 분리되었다.
(5) 문 화
민속 - 이 지방 특유의 놀이로 약수제가 있다. 백운산의 특산품인 고로쇠는 신경통에 특히 효험이 있다고 해서, 매년 경칩이 되면 인근 사람들이 모여서 약수를 받아 놓고 하루를 즐기며 마시는 행사가 약수제이다. 이 행사동안 궁도대회, 국악공연, 농악놀이가 계속되는데 이를 위하여 백운사가 건립되었다.
한편, 광양농악이 다른 지방과 다른 것은 버꾸놀이에서 북놀이가 더 있다는 것과 김매기 농악을 할 때, 부락간의 접전이 벌어진다는 점이다. 김매기 농악놀이는 양편이 기를 꽂아서 각각 진지를 만들고 나팔을 불어 접전을 한다. 또 백운산 고로쇠 약수 축제, 매화문화축제, 전어축제, 숯불구이축제 등의 다양한 문화축제도 매년 행해지고 있다.
(6) 광양의 명소
① 두꺼비 전설 간직
섬진강의 이름은 본래 모래내 또는 다사강, 두치강으로 불리어 오다가 고려 우왕(1385년 경)때 섬진강으로 부르게 되었다. 고려말기 우왕때에는 왜구의 침입이 많았던 시기인데 광양만과 섬진강에도 왜구의 침략이 극심하였다.
한번은 왜구들이 경남 하동쪽에서 강을 건너 광양쪽으로 침입하려 하자 진상면 섬거에 살던 두꺼비 수십만 마리가 8킬로미터나 떨어진 지금의 다압면 섬진마을 나루터로 떼를 지어 몰려와 울부짖자 왜구들이 놀라 도망쳤다고 한다. 이때부터 당시 두치강으로 부르던강을 두꺼비 "섬(蟾)"자를 따서 섬진강으로 부르고 있다.
이밖에도 섬진강은 임진왜란때에 왜병의 주요 침입로가 되었으며 동학혁명때에는 일군에 쫓긴 동학군 수천명이 강 하류지역에서 장렬하게 최후를 마친 애환어린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② 은어, 참게, 누치, 갱조개가 사는 마지막 맑은 강
섬진강은 5대강(한강, 금강, 영산강, 섬진강, 낙동강)중 가장 맑고 주변 생태계가 살아있어 마지막 남은 맑은 강으로 꼽힌다.
강 좌측에 지리산, 우측에는 마이산 - 내장산 - 무등산 -사자산 -조계산 -백운산으로 이어지는 "ㄷ"자모양의 산줄기인 호남정맥에 둘러싸여 맑고 풍부한 수량을 자랑하고 있으며, 청정물고기의 대명사인 은어와 누치, 참게가 살고 있으며, 강 하류 지역에서는 건강식품으로 인기가 높은 갱조개(재첩) 민물장어, 백합이 잡히고 있어 강의 수질이 맑고 생태계가 살아있음을 증명해 준다.
③ 세가지 신령한 기운을 간직한 백운산
예로부터 광양에는 백운산의 영험한 기운 덕분에 인물이 많이 난다고 알려지고 있다. 특히, 조선조 중종 때의 대학자인 신재 최산두 선생이 봉황의 정기를, 병자호란 직후 몽고국의 왕비가 된 월애부인이 지혜의 동물인 여우의 정기를 타고 난 것으로 전해 오며, 앞으로는 돼지의 정기를 받아 광양 땅에 큰 부자가 나올 것이라고 입을 모으는데 광양제철과 광양항 컨테이너 부두 건설을 눈여겨 볼 수 있겠다.
④ 호남정맥(湖南靜脈)을 완성
백두산∼금강산∼태백산∼속리산∼지리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에서 갈라져 나온 호남정맥이 마이산∼ 내장산∼무등산∼제암산∼조계산을 힘차게 달려와 천리여정을 백운산에서 완성한다.
⑤ 섬진강(蟾津江)을 아우르고 4대계곡 형성
강 동편에 지리산을 두고 "ㄷ"자형으로 뻗어 내린 호남정맥의 모든 산들이 섬진강을 만들어 내는데 일조하지만 일등공신은 단연 백운산이다. 마지막 150리 물길을 이루어서 광양만까지 인도하는 역할을 백운산이 맡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백운산은 10여 킬로미터에 달하는 4개의 능선이 남과 동으로 흘러내리면서 4개의 깊은 계곡(성불(成 佛), 동곡(東谷), 어치(於峙), 금천(錦川))을 만들어 놓고 있다.
⑥ 살아있는 식물의 보고(寶庫)
한라산 다음으로 가장 다양한 식물의 종류를 보유하고 있는 백운산은 온대에서 한대에 이르기까지 900여종의 식물이 천혜의 기후여건 속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또한 백운산에는 이른 봄이면 신비의 약수인 백운산 고로쇠가 흘러 내리고 백년묵은 산삼이 종종 그 모습을 드러내기도 하며, 백운란, 백운배, 백운쇠물푸레, 백운기름나무, 나도승마, 털노박덩굴, 허어리 등 희귀식물을 품고 있다.
⑦ 매화단지와 섬진강의 멋진 조화
광양시 다압면 도사리에 위치한 매화마을(본명 : 섬진마을)은 이른 봄이면 매화꽃으로 뒤덥히고, 마을 주변 밭과 산 능선등 10만 그루에 달하는 매화나무가 꽃을 터트리기 시작 하는 3월초부터 3월말까지 매화마을은 봄맞이 관광객으로 붐비게 된다. 특히 매화꽃 사이로 내려다보는 섬진강 풍경은 꽃과 산과 강이 한데 어우러져 멋진 조화를 이룬다. 해마다 3월 중순이면 매화축제가 열린다.
⑧ 청매실농원 전통옹기와 재첩잡이 풍경도 일품
매화나무 집단재배를 전국에서 가장 먼저 시작한 청매실농원에는 1930년경 율산 김오천선생이 심은 70년생 고목 수백 그루를 포함하여 매화나무단지가 잘 조성되어 있으며, 매실식품을 만드는데 쓰이는 전통옹기 2000여기가 농원 뒷편 왕대숲과 함께 분위기를 돋운다, 또한 농원에서 내려다보는 섬진강 재첩잡이 풍경도 일품이다.
⑨ 섬진강 지명유래가 된 두꺼비 전설 간직
마을 앞 섬진나루터에는 섬진강유래비, 돌두꺼비, 수월정, 수월정 유허비 등 유적이 자리잡고 있다.
이곳 섬진나루터는 섬진강의 지명유래가 되고 있는 두꺼비 전설을 간직한 곳이다.
⑪ 동백나무 숲속에 간직된 천년의 불교 성지
옥룡사지는 옥룡면 추산리에 위치하고 있는데 "옥룡"이라는 지명은 도선의 도호인 "옥룡자"에서 유래되었다고 전해온다. 옥룡사지를 싸안고 있는 백계산(505.8M)은 주산인 백운산(1,218M)에서 뻗어 내린 지맥으로 형성된 아담한 산으로 백운산의 중앙부에 위치한다.
옥룡사는 신라 말에 조그만 암자였던 것을 도선국사가 864년에 중수하여 거처하였으며, 수백명의 사문들이 그의 법문을 듣고자 몰려들어 "옥룡사파"란 지파가 형성되자 몰려드는 인원을 수용하기 위해 인근에 운암사라는 사찰을 추가로 건립한 것으로 전해진다.
옥룡사는 몇차례의 화재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사세를 이어 오다가 1878년 화재로 소실된 후 폐찰 되었으며 현재 서 있는 대웅전은 1969년에 건립되었다. 옥룡사지에는 도선국사와 수제자인 통진대사의 비와 탑이 세워져 있었으나 1920년경에 모두 없어져 버리고 비문만이 탁본되어 "동문선"등에 전해온다.
⑫ 울창한 동백림
옥룡사지 주변에는 도선국사가 땅의 기운을 보강하기 위해 심었다는 것으로 전해 오는 동백나무 7천여본이 7ha에 거쳐 울창한 동백 숲을 이루고 있는데 험난한 역사에 휘말려 절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이 동백들만이 그 뿌리를 견고히 내려 천년의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⑬ 사적제407호(국가지정문화재)
우리시에서는 옥룡사지 발굴. 복원을 위하여 옥룡사지 정밀 지표조사와 세 차례의 사지발굴을 통해 도선국사와 통진대사의 부도탑과 비석자리를 확인하였고 옥룡사의 규모 일부를 확인하였다. 이를 토대로 지방기념물인 옥룡사지를 1998년 동백림을 포함 사적 제 407호로 지정받게 되었다.
(7) 광양의 특산품
① 은장도로 잘 알려진 장도
고려시대부터 선비들과 부녀자들이 주로 사용하여 왔는데, 광양장도는 세종대왕이 차고 다닐 정도로 명품으로 알려졌다.
특히, 칼날부분을 특수공법과 담금질로 제작하여 실용성이 높고 장식과 칼자루, 칼집, 칼날등이 전체적인 균형미를 갖추고 있어 예술성과 내구성이 뛰어나다.
장도의 장인들이 천대시 되어 오던 사회제도 탓으로 장도제작은 도제들에 의해 전승되어 왔으며, 자세한 인물사는 전해져 오지 않는다.
다만 근세 조선말엽에 '장익성(광양읍 칠성리)'씨가 계승하였고 현재는 그의 문하생인 박용기(중요무형문화재 제 60호)와 그의 아들이 그 맥을 이어 오고 있다.
총 23단계의 공정을 거쳐 만들어지는 칼날과 칼집, 칼손잡이로 연결되는 끝에 꽃무늬장식을 하고 있으며, 칼날은 주로 강철을, 칼자루나 칼집은 먹감나무, 대추나무, 매나무, 서각, 상아 등을 사용한다.
광양장도는 최근 초등학교 교과서에 소개되는 등 널리 알려져 관광문화상품으로 날로 인기가 높아가고 있다.
② 활
선사시대부터 생활수단으로 개발되었는데 전쟁, 수렵, 궁중연사, 향음주례 등에 쓰였다. 현재는 스포츠화 되어 대중 스포츠로 자리잡았고, 장식용 또는 돌상에 놓아 아기가 건강하고 씩씩하게 성장하기를 바라며 가정을 지키는 행운의 상징으로도 쓰인다.
광양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해전 전승지 인근으로 예로부터 국궁이 성행하였는데 여기에 쓰이는 화살은 정교하고 섬세하며 성능이 우수하여 명중률이 높은 것으로 유명하다.
시누대, 꿩깃, 화살촉, 복숭아나무로 만드는 오늬, 등을 소재로 하여 만들어지는 광양궁시는 그 만드는 과정이 정교하여 자그마치 120회 이상의 손길이 가는 작업 끝에 완성되는 전통공예품이다. 무형문화재 제 12호인 궁시장 김기씨가 전통화살 제작의 맥을 잇고 있다. 최근에는 저렴한 가격대의 민예품도 생산하고 있다.
특히 김기 선생은 궁도 3단의 궁도인으로서 제작한 화살을 직접 쏘아 실험하는 등 명중률과 탄력성을 세심하게 시험해 보는 과정을 거쳐 명품을 생산하고 있다.
[7] 새재.
○ 성불사쪽 하산길이 있음(형제봉에서 9분)
[8] 삼거리봉 / 890.
○ 성불사쪽 하산길 삼거리
○ 이정표 : "형제봉 1km, 도솔봉 2km"
[9] 공터봉(1060m)
[10] 도솔봉(1123.4m)
(1) 위치 : 전남 광양시 봉강면, 옥룡면/ 구례군 간전면 소재
(2) 도솔봉 정상 : 삼각점, 이정표
(3) 특징
전남 광양에 있는 도솔봉은 한재를 사이에 두고 백운산과 마주보고 있는 산으로 성불사 상류쪽으로 자영밀생하는 고로쇠나무의 수액을 먹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든다. 남쪽으로 길게 패인 성불계곡에 성불사가 자리잡고 있으며 성불사로 들어가는 성불계곡의 화려함은 한번 들어가면 나오고 싶지않도록 자연미에 취한다. 도솔봉에서 남쪽능선 812봉을 타고 오르거나 내림길로 택하면 양쪽 계곡미를 한번에 만끽할 수 있는 길이지만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으므로 길을 헤치고 나가기가 힘든곳이 있다. 봄철에 이 길을 택하면 연분홍 산벚꽃과 진달래꽃, 그리고 산자락 과수원에 핀 하얀 배꽃, 백운산 자연휴양림 근방의 매화꽃은 백운산과 도솔봉의 가을 운치와 비교할 바가 아니다. 가을철 고로쇄 채취시기에는 고로쇄 채취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도솔봉은 백운산과 동서로 나란히 능선상으로 이웃하고 있는데, 동쪽 봉우리가 백운산, 서쪽 봉우리가 도솔봉으로 둘다 1,100미터가 넘는 고산이다. 고로쇠물맛을 보려면 봉강면 하조마을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큰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성불사가 나오고, 절 뒤로 나있는 오솔길로 접어들어 20분쯤 올라가면 계곡이 갈리는 갈림길이 나온다. 오른쪽 계곡으로 올라가면 억새와 싸리나무, 진달래가 무성한 능성길로 형제봉에 이르고 헬기장을 지나 조금더 오르면 도솔봉 정상이다.
도솔봉 기슭에서 발원한 성불계곡은 기암괴석 사이로 맑은 물이 굽이치면서 곳곳에 아담한 폭포수와 깊은 못을 빚는다. 여름철 광양 시민들의 피서지로 애용되는 이곳은 가을 단풍도 화려하다. 계곡 위로 드리운 활엽수들이 늦가을을 맞아 형형색색의 옷으로 장식되어 정취를 돋우는 것이다. 10월 하순부터 물드는 성불계곡의 단풍은 11월초에 절정으로 치닫는다
<성불사>
성불사는 1천 년 전에 도선국사가 창건하여 40여개의 암자를 간직했던 거대사찰로 전해오고 있다. 당시에는 이곳에서 수행을 닦던 스님만 해도 40명이 넘게 있었고 사대부중(스님과 남여신도)의 수가 1천여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렇게 많은 사대부중의 공양을 위해 성불계곡에는 12개의 물레방아가 설치되어 쉴 새 없이 방아를 찧었다고 한다.
지금은 거의 없어지고 말았지만 아직도 당시에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절구통이 4개 정도가 성불사 앞 계곡에 현존하고 있어 당시의 상황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그러나 성불사 주변에는 터만이 자리하고 있을 뿐 이러한 거찰이 어느 시기에 존재했으며 어떠한 연유로 소실되었는지에 대한 문헌적 보존 자료가 없어 아쉬움을 주고 있다. 다만 30여 년 전 무현스님이 토굴 같은 초가삼간만이 남아 있는 이곳에서 불사를 시작할 때 발굴된 성불사라는 절의 이름이 음각된 기왓장만이 보존되고 있을 뿐이다.
성불사는 현재 큰 법당인 대자보전을 중심으로 좌우에 극락전과 관음전이 있고 양 옆에서 요사체가 자리하고 있다. 또한 사찰입구에는 사대천왕이 수호하고 있는 범종각이 세워져 있고 범조각을 지나면 오층 불사리탑이 웅장하게 치솟아 있다. 뒤지지 않는 웅장함을 자랑하는 한편 신도수도 1천여 호에 이르고 있으며 주지스님인 무현스님과 법단스님, 법광스님이 수행하고 있다.
<옥룡사지>
옥룡사지는 옥룡면 추산리에 위치하고 있는데 "옥룡"이라는 지명은 도선의 도호인 "옥룡자"에서 유래되었다고 전해온다. 옥룡사지를 싸안고 있는 백계산(505.8m)은 주산인 백운산(1,218M)에서 뻗어 내린 지맥으로 형성된 아담한 산으로 백운산의 중앙부에 위치한다.
옥룡사는 신라 말에 조그만 암자였던 것을 도선국사가 864년에 중수하여 거쳐하였으며, 수백 명의 사문들이 그의 법문을 듣고자 몰려들어 "옥룡사파"란 지파가 형성되자 몰려드는 인원을 수용하기 위해 인근에 운암사라는 사찰을 추가로 건립한 것으로 전해진다. 옥룡사는 몇 차례의 화재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사세를 이어 오다가 1878년 화재로 소실된 후 폐찰 되었으며 현재 서 있는 대웅전은 1969년에 건립되었다.
옥룡사지에는 도선국사와 수제자인 통진대사의 비와 탑이 세워져 있었으나 1920년경에 모두 없어져 버리고 비문만이 탁본되어 "동문선"등에 전해온다. 옥룡사지 주변에는 도선국사가 땅의 기운을 보강하기 위해 심었다는 것으로 전해 오는 동백 나무 7천여본이 7ha에 거쳐 울창한 동백 숲을 이루고 있다. 험난한 역사에 휘말려 절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이 동백들만이 그 뿌리를 견고히 내려 천 년의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이 동백림은 도지정 문화재 제 12호로 지정되어 있다. 해발 403m의 산 남쪽 천연림으로 그 분포 면적은 약 7ha에 달하고 있다. 동백나무의 간주는 1.8m에 이르는 고령수가 있고 평균 수고는 5~6m이며 6,342 그루의 동백나무가 있다.
(4) 등산코스 : 하조마을 -> 형제봉 -> 새재 -> 도솔봉 -> 성불계곡 -> 성불사 -> 하조마을
(5) 문화재(명승고적)
① 백운사 : 고려 명종때 보조국사 지눌이 창건하였는데 임진왜란때 전소된것을 뒤에 중건하였다.
② 성불사 : 도솔봉 남쪽 계곡에 위치한 이 절은 창건연대가 확실치 않고 다만 고려때라고만 추정한다.
(6) 교통
① 남해고속도로 과양IC -> 봉강명 -> 조형리
② 대중교통 : 광양시에서 봉강 경유 조형리가는 버스이용.
[11] 참샘이재.
○ 논실마을 쪽에서 올라오는 안부3거리
○ 이정표 : ←도솔봉 1.2km, →따리봉 0.8km
[12] 따리봉(또아리봉, 1127.1m)
(1) 위치 : 전남 광양시 옥룡면/ 구례군 간전면 소재
(2) 정상 : 일명 따리봉 / 백운산등산로 안내판 / 이정표(한재 1.4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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