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답사는 4월 첫 토요일인 4월 6일에 실시하기로 되어 있으나, 안동독립운동기념관에서 개설한 [독립운동유적해설사] 양성교육에 안문답의 등불 핵심 5인방이 출정(?)해서 일정 관계상 3월 30날로 옮겨서 또한 봉화 기차여행에서 풍천으로 답사 장소도 바꿔서 시행하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3개월 정도는 일정 변경이 있을 듯.
휴~ 답사 일정과 장소 변경을 고(告)하는데 왜 땀이 나지?
실은 늘 가던 분들은 자세한 정보를 알고 있으나, 달을 걸러 참여하거나 신비주의로 오신 분들은 궁금타 할까봐 자초지종을 말합니다.
회장은 제사, 건진님과 구름체꽃님도 제사, 총무님은 구미 출장 등으로 참여 인원이 줄 것이 예상되었으나 강신화, 김명환, 김미옥, 김정란, 김정일, 이성수, 이철숙, 최미숙 이렇게 8명이서 post우먼, 민해님의 승용차에 4명씩 분승하여 남안동 방향으로 출발합니다.
어담리의 선돌과 고인돌을 보고, 인금리의 월오헌 고택, 금계리의 전탑, 의성 중률리의 왜가리 도래지, 그리고 시간이 된다면 하회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인다는 마늘봉을 오를까 합니다.
출발할 때 봄 햇살 따스하고 기분 또한 봄날입니다.
일직면 국곡리를 지나 작은 재를 넘으면 풍천면 어담리입니다.
먼저 노거수인 느티나무 서너 그루가 서 있는 곳에 선돌이 있어 멈추었습니다.

이성수님의 말마따나 참 관리가 안 됩니다. 유심히 보지 않으면 선돌인지 뭔지 그냥 지나칠지도 모릅니다. 표지석이나 안내판 하나 없고 밭 가장자리에 1m 20cm정도의 선돌이 서 있는데, 농사에 쓰인 폐비닐이 선돌 아래 쪽을 감고 있고 주변은 이름 모를 관목이 점령했습니다. 좀 시간이 지나 풀까지 올라오면 정말 찾기 힘들 것 같네요.
선돌은 서 있는 돌이지요. 근데 돌이 왜 서 있을까요? 누워 있으면 편할텐데...
누군가가 인공적으로 세웠기 때문이겠지요.
백과사전에 선돌을 검색해보니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에 길쭉한 자연석이나 그 일부를 가공한 큰 돌을 어떤 믿음의 대상물이나 특수목적을 가지고 세운 돌기둥 유적”이라고 되어 있네요.
‘문명’의 문(文)은 인간의 지혜를 모아 이룩한 안전하게 살아가는 정립된 무늬(방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명(明)은 밝은 세계로 밝다는 것은 안전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벼락이 쳐서 불이 나고 사람이 죽거나 가뭄이 들어 굶어 죽거나 천재지변으로 인간의 삶이 죽음의 공포를 직면할 때 석기시대의 사람들은 어떻게 대처했을까요? 돌에게 안전하게 해달라고 비는 그 때 사람들의 행동이 어리석게 보일지 몰라도 그들보다 앞서 살다간 사람보다는 아마 지혜로운 방법이었을 것입니다. 거석문화가 대부분 주술의 대상이거나 권력의 상징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느 서양의 학자는 문명과 문화가 같은 것이라 했습니다.
그런데, 동양과 서양의 관점 차이가 있어요. 서양에서는 문명 반대 개념은 원시 또는 미개라고 합니다. 동양은 어떨까요. 문명의 반대는 자연이라고 생각한답니다. 그냥 지나칠 수 있는데, 이 내용이 왜 지금까지 가슴에 남아있는지 모르겠네요. 나는 자연을 사랑하나?
각설하고,
민해님의 숲해설 한 자락이 있었습니다.

[벼룩이자리]
로제트 식물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먼저 로제트는 장미모양으로 깎아놓은 24각의 다이아몬드라 합니다. 로제트 식물은 줄기가 뻗어 올라오지 않고 지표(地表)면에 딱 붙어서 잎을 옆으로 펼치고 춥고 건조한 겨울을 나는 식물이라 하겠습니다.
요즈음 벌판에 지천으로 널려있는 냉이, 지칭개, 망초, 달맞이꽃, 꽃마리, 꽃다지, 벼룩이자리, 질경이 등 모두가 로제트 식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 녀석들은 여건이 좋아지면 줄기가 자라 키가 쑥쑥 큰답니다.
키가 작을 때 장점이 있겠지요. 짐승에게 뜯어 먹히지 않는다거나 밟혀도 줄기가 꺾이지 않고 바람을 피하기 좋고 햇볕을 잘 받을 수 있으며 땅의 열기도 잘 받을 수 있는 등.
선돌 옆에서 냉이, 지칭개, 망초, 달맞이꽃, 꽃마리, 벼룩이자리 등을 볼 수 있었습니다. 민해님의 해설이 우리의 답사를 더욱 풍성하게 합니다. 저는 30년전 지식으로 지표(地表)식물과 지표(指標)식물을 착각하는 우(愚)를 범했습니다.
참고로 지표(指標)식물은 기후나 토양 등의 자연환경을 나타내는 표지가 되는 식물 또는 식물 군락을 말한답니다. 이를테면 이끼 같은 선태식물은 대기오염도를 측정하는 지표(指標)식물이라 하네요.
답사 때마다 민해님은 한 가지씩 숲해설 아이템으로 우리의 안목을 넓혀 주기로 약속하였습니다.
긴 이야기를 뒤로 하고 인금리 월오헌을 찾아갑니다. 저는 십수년전에 이 마을(월애)에 처음 가보았는데 아마 감꽃이 막 떨어지고난 유월이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안동은 작고 아담한 소도시로 자연이 살아 숨쉬는 곳이지만, 마치 봉화나 영양의 두메산골에 온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별천지 같았지요.
산중문답(山中問答)
李白
問余何事棲碧山(문여하사서벽산) : 묻노니 그대는 왜 푸른산에 묻혀 사는가
笑而不答心自閑(소이부답심자한) : 빙그래 웃을뿐 대답하지 않으니 마음이 한가롭다
桃花流水杳然去(도화유수묘연거) : 복사꽃 띄워 물따라 아득히 흘러가니
別有天地非人間(별유천지비인간) : 별천지일세, 인간세상이 아니네.
그 때는 이런 싯구가 떠올랐었습니다.
이 시는 서로 묻고 답하는 대화 형식의 시이지만 실제는 이태백이 자문자답하는 시랍니다.
지난 2월에도 그 때 기억을 떠올려 다녀갔습니다. 유정(有情)타!

월오헌에 도착하였습니다.
대문은 굳게 닫혀있고, 옆구리 쪽문으로 들어갔다가 관리하시는 아주머니가 오셔서 역정을 내는 바람에 기분이 꿀꿀했으나 뭐 그분 입장이 이해가 됩니다. 문화재라면 안내판만 세울게 아니라 관심 가진 사람이 찾아줄 때 반길 수 있는 풍토 조성이 더욱 우리 문화를 지키고 가꾸는 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우물 위로 담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담을 경계로 큰집과 작은 집인데요. 아우집이 분가해서도 함께 쓰기 위해 이렇게 했다네요. 70년대 우리가 모두 가난하던 시절에 형광등 하나로 두 방을 밝히던 그 때가 생각납니다. 이 우물은 그런 가난과는 상관이 없지만 자원을 나누어쓰는 개념입니다.
이곳에서 독립운동을 위해 회합을 가졌다 하니 다시금 우리 고장에 대한 자부심이 생겨납니다.

오랜만에 정갈한 댓돌을 봅니다.


작은집입니다. 와가(瓦家)만 찾아 다니다가 초가를 보니 새롭군요.

이건 디딜방아입니다. 수건을 머리에 두르고 추석을 맞아 송편을 빚으려고 쌀을 빻던 할머니 모습이 떠오릅니다.
다음은 고인돌 5기가 있다는 신성중학교 옆 20m입니다. 신성중학교는 폐교된 지 10년도 훨씬 더 되었고, 도로를 내면서 고인돌이 제대로 보전되지 않아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이번에는 금계리에 있는 선돌입니다. 역시 관리가 잘 되지 않아 지나칠 뻔했으나, 1번 차량이 매의 눈으로 금방 찾았습니다.
이럴 땐 동네 어르신이라도 만나면 뭔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금계리 끝자락에 있는 전탑을 찾았습니다. 다 무너져가고 있는데, 뒤를 보니 부처님을 모셨군요. 길안 대사리의 탑보다는 보전 상태가 나아 보이나 아쉽고, 혹시 옮겨왔나 해서 마을 할머니께 물으니 오래 전부터 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합니다.
여기서 간식 시간을 가졌습니다. 빵과 딸기와 커피...연두님께서 지명타자로 나서서 준비하였습니다. 감사^^


이곳은 의성군 신평면 중률리입니다. 왜가리 도래지로 근래엔 축제가 열리는 곳입니다.
왜가리와 백로가 섞여 있습니다. 왜가리와 백로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여, myth님께서 검색하여 회원들께 알려주었습니다.
제가 어릴 땐 백로는 흔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 대부분 논에서 미꾸라지나 논고둥(논골부리)를 잡아먹기 위해 긴 다리로 논바닥을 헤집고 있었습니다. 배경색으로 깔린 녹색의 논에 흰 배적삼을 입고 피사리하는 농부의 땀과 하얀 백로와 이렇게 모이면 한 폭의 그림이 완성되었지요. 그러나 화학 비료, 농약 등을 사용하는 농법이 자연 생태계를 파괴하여 개구리도 미꾸리도 사라지고 백로도 찾지 않는 세월을 한참 살았습니다.
맹독성 농약이 규제되고 근래에 유기농법으로 농사를 짓는 농가가 늘어나면서 생태 환경이 복원되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지난해에는 우리 학교 운동장에서 흔히 꽃뱀이라 불리는 유혈목이를 만난 적도 있습니다. 새나 짐승이나 물고기가 살지 못하는 환경에서는 인간도 살 수 없습니다. 환경을 잘 보전하고 가꾸어야 합니다.

도로에서 왜가리 서식지를 보고 뒤로 돌아서면 50m 정도 거리에 중률리 석불좌상이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길은 열렸으나 문이 닫혀 부처님께 인사를 올리지 못합니다.
정일님의 힘을 실어 마늘봉을 오르기로 했습니다.
마늘봉에 오르면 하회의 산태극 수태극이 확실하게 보인답니다. 연두님은 지난해 삐었던 발목으로 열심히 올랐습니다. 들꽃님도 예상외로 잘 오르십니다.
한 20여분 올라 마늘봉 정상에 올랐습니다. 하회를 보니 정말 멋집니다. 올라온 보람이 있습니다. 강풍이 불고 하늘이 흐려 하회의 풍경은 카메라에 잘 잡히지 않았습니다. 언제 또 올 수 있을지 모르는데 하늘이 돕지 않네요.



마늘봉 인증샷입니다.
거물억(어담2리)의 선돌 하나 빼고 계획대로 다 보았습니다. 광덕 쪽으로 내려가 출발지로 돌아왔습니다.
더욱더 알찬 5월 답사를 기대하며 오늘은 이만 안녕.
모두 건강한 모습으로 5월에 봅시데이.
그래서 강변에는 벚꽃 축제한다고 준비가 한창이더군요 ^^
이제 50 개 다 되어 가는데, 민해님 어떻게 다나 하고 다른 님들은 그냥 숨만 죽이고 계시나 보다. 하하
다른님들이 숨만 죽이고 계실게 아니라 한마디 해 주시면 댓글은 금방 늘어나는데요 ㅎㅎ
정말 50개 넘으면 다음 장으로 넘어 가려나? 기대가 됩니다. ^^
그럼 낼이 바로 넘어가는 날이네요.. 낼 축포를 터트려야하나요 ??ㅎ ㅎㅎ
넘어갔네요, 50개 넘으니까 댓글이. 많은 사람이 참여해야 더 재미있는데... ㅠㅠ
아이고나 전 댓글보니 눈이 아리까리 정신이 하나도 없네요.. 넘어가지 않는게 더 좋을듯 ㅎ
일단 류시대 선생님이 오셔야 깜짝 놀라실텐데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