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정효의《가짜 영어 사전》을 읽었다. 낄낄거리며 재미있어 하기도 했지만, 읽고 나니 씁쓸하고 서글픈 느낌을 어쩌지 못한다. 어쩌다가 우리의 말글살이가 이 지경이 되었는지, 민족적 열등감과 개인적 허영심이 끝을 모르는 듯하다.
나는 문화방송〈TV 특강〉에서, "누구나 다 영어를 잘 해야 한다고 강요하는 것은 사대주의이고 불필요하다, 소수의 영어 '선수'들을 양성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2월 27일 오전 11시, 문화방송 텔레비전 방영).
그러나 이런 주장은 망망대해 위에 던지는 한 조각 돌맹이에 불과하게 된 것이 현실이다. 모든 사람들이 무엇을 위함인지도 모르는 채 영어의 뜀박질에 휩쓸려 가고 있다. 뛰면서 옆 사람에게 묻는다. "왜 뛰는 거죠?" 대답한다. "몰라요, 앞 사람이 뛰잖아요. 뒤처지면 안 되죠."
영어를 어찌나 사랑하는지 엉터리 가짜 영어들을 남발하여 국민들의 언어 생활이 식민지처럼 되고 있다. 영어를 정말 잘 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영어를 섞어 쓰지 않고, 써야 할 때 정확하게 쓴다. 빈 깡통이 요란하다는 말이 우리들의 언어 습관에 꼭 맞다.
뒤틀린 영어로 한국어를 죽이는 사람들이 날로 늘어나고, 여론을 주도하는 지식인이나 정책을 만드는 관료, 대중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연예인들이 앞다투어 가짜 영어로 한국어를 죽이고 있다. 방송과 신문, 특히 텔레비전의 악영향은 정말로 심각하다.
이런 가짜 영어의 남발은 비단 한국어를 죽일 뿐 아니라, 올바른 영어 교육도 가로막는 독버섯이다. 우리끼리 엉터리 영어를 남발하다 외국인을 만났을 때 그 엉터리 영어가 튀어나오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 있을까? 오히려 진짜 영어를 제치고 가짜 영어가 먼저 튀어나올 가능성이 많다. 진짜 영어는 모르고 가짜 영어만 아는 경우도 많을 것이니.
결국 우리말 사랑이 참된 외국어 습득에도 도움이 된다는 말이 이런 점에서도 옳다. "우리말 사랑이 영어 사랑이다." 너무 튀는 말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