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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일기 읽기(3)-도강록2渡江錄
6월25일 일정요약
간밤 비에 젖은 옷과 이불을 내다 말리고 낚시를 했다. 방물이 도착하지 않아 구련 성에서 또 노숙했다.
6월26일 일정요약
구련 성을 출발하여 금석산에서 점심을 먹고 30 리를 더 가 총수에서 노숙했다.
상관 마두 득룡이가 강세작 이야기를 한참 했다.
강세작은 명,청 교체시 우리나라로 도피해 은거한 중국인이다.
-득룡은 가산 사람이다. 열네 살 때부터 북경을 출입하기 시작하여 지금까지 삼십여 차례 중국을
드나든 사람으로 중국말을 제일 잘했다.
여행을 하는 동안에 크고 작은 일이 생기면 으레 그가 아니면 감당할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중략)
품계는 가선(종2품 문무관의 품계)에 이르렀다.
매번 사행이 있을 때면 미리 가산 군에 공문을 보내 그 가족들을 감금시켜 그가 달아나지 못하도록
방비했으니, 그 위인의 재간을 알 수 있겠다.
일개 마두인 득룡의 품계가 종 2품인 가선이라는 부분은 이해하기 어렵다.
한편 당시 인재 풀의 협소함과 인재 운용의 옹졸함은 어떠한가?
사대해야만 하는 종주국의 언어와 물정에 밝은 말몰이꾼(득룡)의 월경을 방지하기 위해
연행 때 마다 가족을 인질로 삼는 미개성은 국제 정세에 대한 무지로 이어져 한말 망국의
전조를 나타낸다.
역관 등 기술 관료의 적극적인 육성과 출입국 관리를 완화해 해외유학내지는
상업을 위한 체류 등을 통해 국제 정세를 능동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제도를
주창할 만한 경륜을 지닌 선각자의 부재가 아쉽지 아니한가?
6월27일 일정요약
날이 새기 전에 길을 떠나 30 리를 더 가 책문에 이르렀다.
장복이가 부담 주머니의 왼쪽 자물쇠를 잃어버렸다.
중국 동쪽 끝 벽지인 책문의 문물들을 보고, 선진 문물에 대한 질투심에 몸이 후끈해졌다.
악가 성 가진 사람 집에서 묵었다.
압록강에서 책문까지 모두 120 리였다.
-예로부터 말하기를 삼각산 도봉이 금강산 보다 낫다고들 한다.(44쪽)
-나는 언젠가 한양의 도봉산과 삼각산이 금강산 보다 낫다고 말한 적이 있다.
왜냐하면 금강산은 동쪽 골이 소위 일만 이천 봉우리라고 불리어,
기이하고 높고 웅장하고 깊지 않음이 없어서 마치 짐승이 발로 붙잡고 있는 듯,
날짐승이 날아오르는 듯, 신선이 하늘로 솟는 듯, 부처님이 가부좌를 틀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그러나 그윽하고 침침하며 아득하고 컴컴하여, 마치 귀신소굴로 들어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중략)
지금 여기 봉황산의 기이하게 깎아 세우고 뽑아 올린 것 같은 모습이 비록 도봉산과 삼각산보다
뛰어나기는 하지만, 빛나는 왕기를 공중에 풍기는 것은 한양의 여러 산에 크게 미치지 못한다.(57P)
삼각산 도봉은 서울 산세에 밝지 못한 리상호의 오역이다.
이가원의 번역도 김혈조와 같다.
甞謂我京道峯三角。勝於金剛。何則。金剛卽其洞府所謂萬二千峯。非不奇峻雄深。獸挐禽翔。仙騰佛跌。而陰森渺冥。如入鬼窟。余甞與申元發登斷髮嶺。望見金剛山。時方秋天深碧。夕陽斜映。無干霄秀色。出身潤態。未甞不爲金剛一歎。及自上流舟下。出頭尾江口。西望漢陽。三角諸山。摩霄出靑。微嵐淡靄。明媚婀娜。又甞坐南漢南門。北望漢陽。如水花鏡月。或曰。光風浮空。乃旺氣也。旺氣者。王氣也。爲我京億萬載龍盤虎踞之勢。其靈明之氣。宜異乎他山也。今此山勢之奇峭峻拔。雖過道峯三角。而其浮空光氣。大不及漢陽諸山矣
책문에 들어가기 앞서 봉황산을 바라보고 그 풍기는 기가 서울의 도봉과 삼각산에 미치지는 못한다고 평한다. 그러나 금강산에 대한 그의 평은 불교에 대한 선입견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는 것 같다.
중국 변경의 국경도시 책문에서 입국 수속을 마친 연암은 자물쇠를 잃어버린 다소 모자라 보이는
종복 장복과의 에피소드로 독자에게 웃음을 안긴다.
-“네가 행장에 마음을 두지 않고 항시 한 눈을 팔더니만 이제 겨우 책문에 왔는데
벌써 물건을 잃어버렸구나. 속담에 ‘사흘 갈 길 하루도 못간다’더니, 앞으로 이천리를 가서
황성에 거의 도착할 때쯤 되면 네놈의 오장육부까지 잃어버릴까 겁난다.
듣자하니 구 요동과 동악묘엔 본래 좀도적이 자주 출몰한다고 하던데,
네가 다시 한눈을 판다면 또 무슨 물건을 잃어버릴지 모르겠구나.”
하니 장복이 민망하여 머리를 긁적거리며,
“소인도 이젠 알겠습니다. 그 두 곳에 가서 구경할 때는 소인이 두 눈알을 의당 감쌀 터이니
어느 놈이 눈을 뽑아갈 수 있겠습니까?”
라고 말한다. 나는 나도 모르게 한심한 생각이 들어서,
“자~알 하는구나.”
하고 대꾸해 주었다.(60P)
그러나 연암은 변방 조그만 중국 도시 책문의 문물에 기가 죽는다.
-친구 덕보 홍대용이 언젠가 “그 규모는 크고, 기술은 세밀하다”라고 말한 적이 있었는데,
책문은 중국 동쪽의 가장 끝인데도 오히려 이와 같다.
길을 나아가며 유람하려니 홀연히 기가 꺾여, 문득 여기서 바로 되돌아갈까 하는 생각이 들어
온몸이 부글부글 끓어 오른 것 같았다. 나는 깊이 반성하며, ‘이게 질투하는 마음이로다’(하략)
그러나 곧 기운을 차려서 술집, 점포, 우물, 물 운반방식 등을 두루 살펴보며 감탄한다.
6월28일 일정요약
봉황성까지 가서 강영태 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벽돌 쌓는 법, 기와 이는 법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봉황성 새로 쌓는 것을 보면서, 평양과 패수의 자리를 놓고 설명한 뒤,
세간에서 이 성을 안시성이라 하는 것에 동의 할 수 없다고 했다.
정 진사와 성 쌓는 법을 두고 얘기하다가 벽돌이 나으니, 돌이 나으니 논쟁을 하다 보니
정 진사는 말 탄 채 졸고 있었다.
모두 70 리를 가서 송점에서 묵었다.
중국집의 규모와 집짓는 방법, 벽돌의 활용과 기와 이는 법등을 세밀히 관찰하고 위가 무겁고
아래가 허한 우리 기와집의 문제점을 적시한다.
-기와를 이는 법은 더더욱 본받을 만하다.(중략)
우리나라의 기와 이는 법은 이와는 완전히 다르다. 지붕에 진흙을 두텁게 깔아 위가 무겁고,
담벼락은 벽돌을 쌓지 않아서 네 기둥이 의지할 수 없기 때문에 아래가 허하다.(중략)
여컨대, 집을 짓는 데는 벽돌을 쓰는 것이 가장 훌륭하다.
비단 담을 높이 쌓을 수 잇을뿐 아니라 실내외를 모두 벽돌을 깔고 넓은 뜰을 모두 벽돌로 깔아서,
(중략)
집이 벽에 기대어 위는 가볍고 아래는 완전하며, 기둥은 벽 속에 들어 있어 풍우를 겪지 않는다.
당연 불이 번질 것을 겁낼 것 없고, 좀도둑을 겁낼 필요도 없다.
더군다나 참새, 취, 뱀, 고양이의 염려가 근절된다.
나는 우리 궁궐이나 한옥 기와집을 볼 때마다 날렵한 처마선 보다는 가분수 같이 지붕에 짓눌려
있는 듯한 형태에 항상 불만이었는데 연암의 지적은 적실하다.
기와지붕의 과다한 하중 때문에 기둥이 뒤틀려 수명이 오래가지 못하고 또한 기둥을 촘촘히 배치할 수밖에 없어 실내 활용 공간이 좁아진다.
벽돌이 활용되지 않아 화재에 취약하며, 고층 건물은 고사하고 이층집도 찿아 볼 수가 없다.
벽돌 활용의 이점에 대한 연암의 주장은 이후 다산이 화성 건축에서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그러나 다산이 1762년생이니 37년생인 연암과 불과 25년 밖에 연배의 차가 없는데 두 천재가
서로 교류한 흔적을 전혀 찿아 볼 수 없으니 이도 붕당정치를 탓해야만 하는 것인가?
연암은 노론계열이고 다산은 남인계열이다.
퇴계(1501~1570) 와 율곡(1536~1584)은 35년의 연령차가 있지만 청년 율곡이 퇴계를 찿아가 평소에 가졌던 학문적 의문에 대하여 하룻밤 지도를 받았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영남학파와 기호학파로 갈리면서 후학들에 의해 남인과 노론의 시조로 추존되고
이는 임란을 기점으로한 조선 후기 역사에 부정적으로 작용한다.
6월29일 일정요약
배를 타고 삼가를 건넜다. 말은 모두 헤엄 쳐 건넜다. 또다시 배로 유가하를 건너 황하장에서
점심을 먹었다. 전당포에서 차 한 잔을 마셨다. 이날 50리를 가 통원보에서 묵었다.
7월1일 일정요약
비가 많이 와서 또 통원보에서 묵었다. 정 진사, 주 주부, 변군, 내원, 조학동 들이 술내기 투전을
하는데 판에 끼지 못하고 있다가 우연히 만족 여자를 살펴볼 기회를 얻었다.
-나는 일부러 오랫동안 재를 뒤적거리면서 부인을 곁눈으로 훌깃흘깃 훔쳐보았다.
연암의 호기심은 여자도 놓치지 않는다. 벽 사이로 들리는 간드러지고 애교있는 소리에 이끌려
담뱃대에 불붙이러 간다고 핑계를 대고 부엌에 갔으나 오십 이상 된 못생긴 부인이라 다소 실망
그러나 관찰의 시선은 거두지 않는다.
7월2일 일정요약
냇물이 불어서 건너지 못하고 또 머물렀다. 뗏목 얽을 이야기로 이러쿵저러쿵하다 낮에는
벽돌 가마를 구경했다. 저녁에는 투전에 끼어들어 백여 닢을 따서 술을 사 먹었다.
7월3일 일정요약
비가 많이 내려 또 머물렀다. 결혼 행렬을 구경하고, 서당에서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부 선생에게
보잘것없는 책 목록을 빌려 베끼고 청심환을 주었다.
7월4일 일정요약
역시 비 때문에 발이 묶였다. <양승암집>을 읽거나 투전을 하면서 소일했다.
7월5일 일정요약
날은 개었으나 물이 불어서 여전히 건너지 못했다. 중국의 ‘캉’ 제도를 유심히 살펴보고
변계함과 우리나라 온돌의 여섯 가지 단점을 이야기했다. 캉은 중국식 난방 시스템이다.
7월6일 일정요약
냇물이 줄어서 정사의 가마를 같이 타고 건넜다. 초하구에서 점심을 먹고 분수령, 고가령, 유가령을
넘어 연산관에 와서 잤다. 꿈에 형님 댁까지 다녀왔다.
이날 모두 60 리를 왔다.
7월7일 일정요약
말을 탄 채로 물을 건너는데, 물살이 급해서 떨어질 뻔했다.
마운령을 넘어 천수장에 와 점심을 먹고 청석령을 넘었다. 우대령을 넘어 전부 80 리를 갔다.
낭자산에서 잤다.
7월8일 일정요약
정사와 한 가마를 타고 삼류 하를 건너 냉정에서 아침을 먹고, 요동벌에 이르러
‘한바탕 울 만한 자리’라고 감탄하였다. 고려총, 아미장을 지나 구요양에 들었다.
구요양을 보고 감탄한 내용은 ‘구요동 견문기’에 자세히 썼다.
태자하를 지나 신요양 영수사에서 묵었다.
이날 전부 70 리를 왔다.
열하일기 중 가장 명문으로 꼽을 만한 부분으로 이 날의 호곡장(好哭場) 부분을 들 만하다.
서두의 ‘好哭場。可以哭矣’를
김혈조는 “한바탕 통곡하기 좋은 곳이로구나.”로 역하고,
리상호는 “한바탕 울만한 자리로구나”로 풀었으며,
이가원은 “아, 참 좋은 울음 터로다. 가히 한 번 울 만하구나.”로 옮겼다.
산자루를 돌아나오자 끝없이 펼쳐진 요동 벌판이 나타나고, 연암은 好哭場。可以哭矣’로
존재의 떨림을 토해낸다.
칸트적 숭고미의 절절한 표현이다.
나는 리상호의 “한바탕 울만한 자리로구나”를 가장 적실한 역으로 평가한다.
김혈조의 ‘마치 악기에서 나오는 소리와 같다’는 (若出金石) 다른 판본이거나, 오역이다.
한편 연암이 자신만만하게 주장한 ‘갓난아기 고고성’에 대한 해석에 산부인과 의사들은 대부분
찬성하지 않을 것이나, 우리는 이 비유에서 연암의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인간관을 읽는다.
세 역자의 번역과 원문을 모두 옮긴다.
-“한바탕 통곡하기 좋은 곳이로구나.”
했더니 정 진사가
“천지간에 이렇게 시야가 툭 터진 곳을 만나서는 별안간 통곡할 것을 생각하시니, 무슨 까닭입니까?”
하고 묻기에 나는,
“그렇긴 하나, 글쎄. 천고의 영웅들이 잘 울고, 미인들이 눈물을 많이 흘렸다고 하나. 기껏 소리 없는 눈물이 두어 줄기 옷깃에 굴러 떨어진 정도에 불과하였지. 그 울음소리가 천지 사이에 울려 퍼지고 가득 차서 마치 악기에서 나오는 소리와 같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네.
사람들은 단지 인간의 칠정 중에서 슬픔만이 울음을 유발한다고 알고 있지. 칠정이 모두 울음을 자아내는 줄은 모르고 있네. 기쁨이 극에 달하면 울음이 날 만하고, 분노가 극에 달하면 울음이 날 만하며, 즐거움이 극에 이르면 울음이 날 만하고, 사랑이 극에 달하면 울음이 날 만하며, 미움이 극에 달하면 울음이 날 만하고, 욕심이 극에 달해도 울음이 날 만한 걸세. 막히고 억눌린 마음을 시원하게 풀어 버리는 데에는 소리를 지르는 것 보다 더 빠른 방법이 없네.
통곡 소리는 천지간에 우레와 같아 지극한 감정에서 터져 나오고, 터져 나온 소리는 사리에 절실할 것이니 웃음소리와 뭐가 다르겠는가? 사람들이 태어나서 사정이나 형편이 이런 지극한 경우를 겪어보지 못하고 칠정을 교묘하게 배치하여 슬픔에서 울음이 나온다고 짝을 맞추어 놓았다네. 그리하여 초상이 나서야 비로소 억지로 ‘아이고’ 하는 등의 소리를 질러대지.
그러나 정말 칠정에 느껴서 나오는 지극하고 진실한 통곡 소리는 천지 사이에 억누르고 참고 억제하여 감히 아무 장소에서나 터져 나오지 못하는 법이네“(중략)
정 진사는,
“지금 여기 울기 좋은 장소가 저토록 넓으니, 나 또한 그대를 좇아 한바탕 울어야 마땅하겠는데, 칠정 가운데 어느 정에 감동받아 울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하기에 나는,
“그건 갓난아이에게 물어보시게. 갓난아이가 처음 태어나 칠정 중 어느 정에 감동하여 우는지? 갓난아이는 태어나 처음으로 해와 달을 보고, 그 다음에 부모와 앞에 꽉 찬 친척들을 보고 즐거워하고 기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네.(중략)
갓난아이는 자신이 태어난 것을 후회하여 먼저 울어서 자신을 위로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이는 갓난아이의 본마음을 참으로 이해하지 못해서 하는 말이네.
갓난아이가 어머니 태중에 있을 때 캄캄하고 막히고 좁은 곳에서 웅크리고 부대끼다가 갑자기 넓은 곳으로 빠져나와 손과 발을 펴서 기지개를 켜고 마음과 생각이 확 트이게 되니, 어찌 참소리를 질러 억눌렸던 정을 크게 씻어 내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갓난아이의 거짓과 조작이 없는 참소리를 응당 본받는다면, 금강산 비로봉에 올라 동해를 바라봄에 한바탕 울 적당한 장소가 될 것이고, 황해도 장연의 금모래사장에 가도 한바탕 울 장소가 될 것이네. 지금 요동 들판에 임해서 여기부터 산해관까지 일천이백 리가 도무지 사방에 한 점의 산이라고는 없이, 하늘 끝과 땅 끝이 마치 아교로 붙인 듯, 실로 꿰맨 듯하고 고금의 비와 구름만이 창창하니, 여기가 바로 한바탕 울어 볼 장소가 아니겠는가?“(129~132p)
-“한바탕 울 만한 자리로구나!”
정진사가 “천지간에 이런 넓은 시야가 펼쳐지는데 별안간 새삼스레 울 생각을 하다니요?”
하기에 나는 말했다.
“참 그렇겠네, 그러나 아니거든! 옛날에는 영웅은 잘 울고 미인은 눈물이 많다 지마는 불과 두어줄기 소리 없는 눈물이 옷깃을 적실뿐이요, 아직까지 그 울음소리가 쇠나 돌에서 짜나온 듯하고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 할 만한 소리를 들어 보지 못했거든!(중략)
비로봉 꼭대기에서 동해바다를 굽어보는 곳에 한바탕 통곡할 자리를 잡을 수 있을 것이요, 장연의 금모래톱에 가서 한자리를 잡을 수 있을 것이요, 오늘 요동 벌에 다다라 이로부터 산해관까지 일천이백 리 어간은 사면에 한 점 산도 불 수 없고 하늘가와 땅 끝은 폴로 붙인 듯, 한 줄로 기운 듯 비바람 천만 년이 이 속에서 창망할 뿐이니, 또 한자리를 잡을 수 있을 것이야“(109~112쪽)
“아, 참 좋은 울음 터로다. 가히 한 번 울 만하구나.”
하였다. 정 진사가,
“이렇게 천지간의 큰 안계(眼界)를 만나서 별안간 울고 싶다니, 웬 말씀이오.”
하고 묻는다. 나는,
“그래 그래, 아니 아니. 천고의 영웅(英雄)이 잘 울었고, 미인(美人)은 눈물 많다지. 그러나 그들은 몇 줄기 소리 없는 눈물을 흘렸기에, 소리가 천지에 가득 차서 금(金)ㆍ석(石)으로부터 나오는 듯한 울음은 듣지 못하였소. 사람이 다만 칠정(七情) 중에서 슬플 때만 우는 줄로 알고, 칠정 모두가 울 수 있음을 모르는 모양이오. 기쁨이 사무치면 울게 되고, 노여움이 사무치면 울게 되고, 즐거움이 사무치면 울게 되고, 사랑이 사무치면 울게 되고, 욕심[欲]이 사무치면 울게 되는 것이오. 불평과 억울함을 풀어 버림에는 소리보다 더 빠름이 없고, 울음이란 천지간에 있어서 우레와도 같은 것이오. 지극한 정(情)이 우러나오는 곳에, 이것이 저절로 이치에 맞는다면 울음이 웃음과 무엇이 다르리오. 인생의 보통 감정은 오히려 이러한 극치를 겪지 못하고, 교묘히 칠정을 늘어놓고 슬픔에다 울음을 배치했으니, 이로 인하여 상고를 당했을 때 억지로 ‘애고’, ‘어이’ 따위의 소리를 부르짖지. 그러나 참된 칠정에서 우러나온 지극하고도 참된 소리란 참고 눌러서 저 천지 사이에 서리고 엉기어 감히 나타내지 못한다오. 그러므로, 저 가생(賈生)은 일찍이 그 울 곳을 얻지 못하고, 참다 못해서 별안간 선실(宣室)을 향하여 한 마디 길게 울부짖었으니, 이 어찌 듣는 사람들이 놀라고 해괴히 여기지 않으리오.”
한즉, 정은,
“이제 이 울음 터가 저토록 넓으니, 나도 의당 당신과 함께 한 번 슬피 울어야 할 것이나, 우는 까닭을 칠정 중에서 고른다면 어느 것에 해당될까요.”
한다. 나는,
“저 갓난아기에게 물어 보시오. 그가 처음 날 때 느낀 것이 무슨 정인가. 그는 먼저 해와 달을 보고, 다음에는 앞에 가득한 부모와 친척들을 보니 기쁘지 않을 리 없지. 이러한 기쁨이 늙도록 변함이 없다면, 본래 슬퍼하고 노여워할 리 없으며 의당 즐겁고 웃어야 할 정만 있어야 하련만, 도리어 분한(忿恨)이 가슴에 사무친 것같이 자주 울부짖기만 하니, 이는 곧 인생이란 신성(神聖)한 이나 어리석은 이나를 막론하고 모두 한결같이 마침내는 죽어야만 하고 또 그 사이에는 모든 근심 걱정을 골고루 겪어야 하기에, 이 아기가 태어난 것을 후회하여 저절로 울음보를 터뜨려서 스스로를 조상함인가. 그러나 갓난아기의 본정이란 결코 그런 것은 아닐 거요. 무릇 그가 어머니의 태중에 있을 때 캄캄하고 막혀서 갑갑하게 지나다가, 갑자기 넓고 훤한 곳에 터져 나와 손을 펴고 발을 펴매 그 마음이 시원할 것이니, 어찌 한마디 참된 소리를 내어 제멋대로 외치지 않으리오. 그러므로, 우리는 의당 저 갓난아기의 꾸밈없는 소리를 본받아서 저 비로봉(毗盧峯) 산마루에 올라가 동해를 바라보면서 한바탕 울어볼 만하고, 장연(長淵황해도의 고을) 바닷가 금모래밭을 거닐면서 한바탕 울어볼 만하며, 이제 요동 벌판에 와서 여기서부터 산해관(山海關)까지 1천 2백 리 사방에 도무지 한 점의 산도 없이 하늘 끝과 땅 변두리가 맞닿은 곳이 아교풀[膠]로 붙인 듯, 실로 꿰맨 듯, 고금에 오가는 비구름만 창창할 뿐이니, 이 역시 한바탕 울어볼 만한 곳이 아니겠소.”(이가원역)
好哭場。可以哭矣。鄭進士曰。遇此天地間大眼界。忽復思哭何也。余曰。唯唯否否。千古英雄善泣。美人多淚。然不過數行。無聲眼水。轉落襟前。未聞聲滿天地。若出金石。人但知七情之中。惟哀發哭。不知七情都可以哭。喜極則可以哭矣。怒極則可以哭矣。樂極則可以哭矣。愛極則可以哭矣。惡極則可以哭矣。欲極則可以哭矣。宣暢壹鬱。莫疾於聲。哭在天地。可比雷霆。至情所發。發能中理。與笑何異。人生情會。未甞經此極至之處。而巧排七情。配哀以哭。由是死喪之際。始乃勉强叫喚喉苦等字。而眞個七情所感至聲眞音。按住忍抑。蘊鬱於天地之間。而莫之敢宣也。彼賈生者。未得其塲。忍住不耐。忽向宣室一聲長號。安得無致人驚恠哉。鄭曰。今此哭塲。如彼其廣。吾亦當從君一慟。未知所哭求之七情。所感何居。余曰。問之赤子。赤子初生。所感何情。初見日月。次見父母。親戚滿前。莫不歡悅。如此喜樂。至老無雙。理無哀怒。情應樂笑。乃反無限啼叫。忿恨弸中。將謂人生神聖愚凡。一例崩殂。中間尤咎。患憂百端。兒悔其生。先自哭吊。此大非赤子本情。兒胞居胎。處蒙冥沌塞。纏糾逼窄。一朝逬出寥廓。展手伸脚。心意空闊。如何不發出眞聲盡情一洩哉。故當法嬰兒聲無假做。登毗盧絶頂。望見東海。可作一場。行長淵金沙。可作一塲。今臨遼野。自此至山海關一千二百里。四面都無一點山。乾端坤倪。如黏膠線縫。古雨今雲。只是蒼蒼。可作一塲。
7월9일 일정요약
새벽같이 길을 떠났다. 장가대, 삼도파를 지나 난니보에서 점심을 먹었다.
처음으로 한족 여자들을 보았다. 만보교, 연대하, 산요포를 지나 십리하에서 묵었다.
이날 50 리를 왔다.
구요동기에서 명나라 멸망에 대하여 간신들에 의해 처형된 명장들 사례를 열거하고
다음과 같은 소감을 적는다.
-아! 슬프다. 명나라 말기의 운세는 인재를 쓰고 버림이 거꾸로 되고,
공과 죄가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았으니, 온정필과 원숭환같은 명장의 죽음을 보면
명나라는 자기 스스로 만리장성을 허물어 버린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어찌 후대의 꾸짖음과 비웃음을 면할 수 있겠는가.(143p)
이상으로 ‘도하기’를 끝내고 심양의 이모저모를 살펴보는 ‘성경잡지’편으로 넘어간다.
첫댓글 120년 전에 위스키 양조법을 배울려고 스코틀란드로 갔던
이웃나라 한 양조기술자가 생각난다.
재피니즈위스키는 스카치,아이리쉬,버번,캐나디언에 이어
사상 다섯번 째 위스키로 반열에 올랐는 바 산토리 위스키가 그 중심인데
순전히 그 기술자의 선각자적 노력 때문이고 그게 가능했던 저변엔
그 사회의 분위기가 뒷받침됐기 때문 아니긋는가.
고작 술 하나에 이럴진데 나머지는 일러 무삼하리요...
명말이나 선말이나 지도층의 짓거리들을 보노라면
개인의 영달과 그 현상 유지가 국가나 역사의 명운을 지배한다고 밖에 달리 생각이 안든다.
오피니언 리더들의 철학이나 사고방식이 나우 앤 댄...살고, 죽고의 요체리라.
여튼, 난 박가인데 그게 뭐라고 그래도 그나마 다소 자랑스런 기분이 드는 건
오롯이 연암 덕이다.같은 박가라서 그런 게 아니라 참으로 멋쟁이 아니겠는가~! ㅎㅎㅎ
여담인데, 어째 마케아벨리랑 좀 닮은 사람 아닌가 싶으이.
문장가로서나,개혁 아이디어나,유머러스하고, 노마드스럽단 점에서나...
일각거사 덕에 기분 업이다. 고맙다.
읽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해도 과분한데, 이런 격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