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가면(Homme au masque de fer, The Man in the Iron Mask)은 루이 14세(재위 1643~1715)가 왕위에 오른지 60년째 되는 해인 1703년 바스티유 감옥에서 검은색 벨벳(velvet) 가면을 쓰고 죽은 사람을 가리킨다. 34년간 옥살이를 한 그는 죽을 때도 가면을 쓰고 있었다. 많은 사학자와 소설가들은 이 수수께끼의 사나이가 누구인지 밝히려 애썼다. 알렉상드르 뒤마를 비롯한 여러 소설가가 그를 소재로 한 작품을 짓기도 했다. 그가 '철가면'으로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낭만주의 소설가 알렉상드르 뒤마(Alexandre Dumas)가 그의 소설 철가면에서 가면의 재료를 벨벳에서 철로 바꾸었기 때문이다. 이 사나이에 대해서는 바스티유 소장이었던 생 마르스가 기록을 남겼고 프랑스의 어느 공주는 영국 왕실의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아래와 같이 쓰고 있다.
가면을 쓴 한 사나이가 여러 해 동안 바스티유 감옥에서 옥살이를 하다가 가면을 쓴 채 죽었어요. 두 명의 근위병이 언제나 그의 곁에 붙어서 그 사나이가 가면을 벗기만 하면 죽일 태세였답니다. 틀림없이 어떤 까닭이 있었겠지요. 이 사나이에게는 대접을 잘 해주었고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게,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들어 주었다고 합니다. 이 사나이가 누구였을까? 아무도 알아낼 수 없었답니다.
뒤마는 그의 소설에서 이 정체불명의 죄수가 루이 14세이거나 루이 14세의 쌍동이 동생일 것이라는 추측을 했다. 철가면이 누구냐에 대해서는 좀더 기이한 추리가 있다.
1669년 프랑스의 항구 도시 덩케르크에서 체포되는 그 순간부터 이 죄수에 대한 철저한 보안조치가 취해졌다. 당시 프랑스 영토였던 토리노(현재는 이탈리아 영토) 부근의 삐녜롤로 감옥으로 호송되어 왔을 때, 그 지방의 지사 생 마르스에게 아래와 같은 지시가 내려왔다.
일상 필수품 이외의 문제에 관해 이 죄수가 귀관에게 입을 열려고 하면, 귀관은 죽이겠다는 위협으로 그의 입을 봉할 것.
생 마르스는 다른 감옥으로 옮길 때마다 이 죄수를 수송해야 했다. 죄수는 호기심에 가득 찬 외부인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파라핀 종이로 봉한 가마에 태워서 호송되었다. 1698년 이 죄수는 바스티유 감옥으로 이감되었고 생 마르스는 바스티유 감옥의 소장이 되었다. 체포된지 거의 30년이나 되었어도 생 마르스는 이 죄수의 정체가 드러나지 않게 가능한 모든 경계조치를 취하라는 명령을 받고 있었다. 가면은 경계의 수단이지 처벌의 수단은 아니었던 듯 하다. 이 기나긴 세월 동안 일반의 눈에 띄지 않았는데도 왜 이런 엄중한 보안 조치가 필요했을까? 그의 얼굴을 못 보게 한데서 이 인물은 아주 중요한 어느 인물과 놀라울 정도로 닮았을 가능성이 크고 그것이 체포 이유였던 것으로 추리할 수 있다. 용모가 아주 닮았다는 것이 그 중요 인물의 입장을 매우 난처하게 했을 수 있다. 학자이며 정치가인 퀵스우드 경은 이 죄수가 루이 14세의 친아버지로 추리했다. 이 추론은 여러가지 사실과 부합되는 면이 많다.
◆ 루이 13세의 불행한 결혼생활 ◆
루이 14세는 루이 13세(재위 1610~1643)의 아들이다. 루이 13세는 앙리 4세의 아들로 어머니는 마리 드 메디치(Marie de Medici)였다. 마리 드 메디치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그녀는 메디치 가 출신이었다. 앙리 4세가 1610년 암살되어 루이 13세는 9세의 어린 나이로 왕이 되었다. 모후인 마리 드 메디치가 섭정을 하였고 그녀의 뜻에 따라 14세가 되던 1615년 스페인 국왕 펠리페 3세의 딸인 안도트리시(Anne d'Autriche)와 결혼하였다. 루이 13세와 왕비 사이에는 자식이 없었다. 정략 결혼한 두 사람은 서로 진심으로 미워하고 있었으며 다년간 별거하고 있었다. 당시 실권을 쥐고 있던 재상이자 추기경인 리슐리외(Richelieu)의 주선으로 두 사람은 정식으로 화해했다. 그리고 1638년에 왕비는 루이 14세를 출산했다. 루이 13세와 왕비의 첫 자식이었으며 프랑스 전체가 놀란 일이었다.
리셜리외가 국왕 부부의 동의를 얻어 왕족 중의 하나를 왕비와 동침시켜 루이 14세를 낳았다는 것이 이 추론의 핵심이다. 1643년 루이 13세가 사망하자 루이 14세는 만 5세의 나이로 국왕이 되었다. 처음에는 왕이 어리므로 리셜리외의 뒤를 이은 추기경 마자랭(Mazarin)이 국정을 담당했다. 소년 시절의 루이 14세는 힘이 세고 활동적이며 루이 13세와는 조금도 닮은 데가 없다는 말을 들었다. 친아버지는 프랑스의 해외식민지로 보내졌을지도 모른다. 루이 14세가 장성하여 친정하게 되자 귀국하였고 그래서 1669년 덩케르크 항구에서 체포된 것은 아닐까. 친아버지가 아들인 루이 14세와 너무도 닮았으므로 왕의 출생의 비밀이 폭로될 가능성이 있어 체포된 것은 아닐까. 손쉬운 해결책은 암살이지만 차마 친아버지를 죽일 수 없어 가면을 씌워 평생 감옥에 있게 했다는 것이다. 철가면의 정체는 무덤으로 들어간 뒤에도 밝혀지지 않았다. 바스티유에서 생애를 마친 모든 죄수들은 가명으로 매장되었다. 루이 14세의 친아버지였을지도 모르는 이 사나이는 '외스타슈 도제, 하인'으로 기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