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9일자, 조선일보는 “F-X 오로지 손익계산만을”이라는 사설을 썼다. 제목 자체가 곧 결론이었다. 다른 요소는 보지 말고 오로지 냉철한 손익계산만으로 기종을 선택하라는 것이다. 필자는 조선일보 사설을 쓴 분과 시각을 달리한다.
계산에는 폭이 있다. 유능한 분석가의 손익계산 내용과 그렇지 못한 분석가의 계산 애용에는 엄청난 격차가 있다. 많은 이들은 계산을 숫자로만 생각한다. 하지만 유능한 사람은 보이지 않는 실체를 계산한다. 기업의 구내 식당이 이윤을 추구하면 식당관리자는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수만 명의 사원의 마음이 토라진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비용은 장부에 잡히지는 않지만 기업의 운명을 허문다.
40억 달러가 넘는 전투기를 놓고 프랑스제가 좋으냐, 미국제가 좋으냐를 따지고 경쟁을 붙이는 것은 앞으로 조금 남고 뒤로 왕창 믿지는 소탐대실이다. 조선일보는 냉철한 손익계산에 의해 정하라고 했지만 필자의 생각은 정반대다. 정치적 고려, 합동작전에 대한 고려를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
차기 한국전은 공군전력이 좌우한다. 공군전력은 한국만의 전력이 아니라 한미연합 전력이다. 필자는 미국과 한국의 공군 전력비를 90 대 10 정도로 본다. 물론 전문가적 직관에서 나온 수치다. 북한에는 전투기로 공격해야 할 수많은 목표물이 있다. 그 목표에 대한 정보는 미국이 가지고 있다. 미국이 목표물에 대한 정보를 주지 않으면 우리에게 수천 대의 전투기가 있다 해도 별 의미가 없다.
목표에 대한 위치도 중요하지만 목표물의 생김새도 매우 중요하다. 북한 공군이 한강교 등을 공격하기 위해서는 간첩이 교량 하나하나에 대해 사진을 찍고 구조물의 생김새와 강도를 묘사해 주어야 한다. 북한 조종사들은 이 정보를 가지고 어느 방향으로 몇 대의 전투기가 접근해야 하며 어떤 종류의 무기를 얼마나 사용해야 하는지에 대해 열띤 토론을 전개한다. 그들은 자고 깨면 이런 토론을 벌인다.
하지만 우리는 북한 목표물에 대한 정보는 이런 식으로 얻을 수 없다. 미국 위성이 두 가지 종류의 사진을 찍는다. 하나는 고도사진이고 다른 하나는 일반사진이다.
이 두 개의 사진을 특수 컴퓨터에 넣으면 목표물이 보는 각도에 따라 3차원으로 떠오른다. 어느 방향으로 어떻게 공격해야 하는지에 대한 임무분석이 비로소 가능해진다. 하지만 우리에겐 그런 능력이 전혀 없다.
1970년대, 김신조 사건, 푸에블로호 사건, 도끼만행 사건 등이 자행됐을 때, 미국은 괌도에 있는 B-52기를 북한 상공에 날렸다. 대공포를 쏘아 올리면 북한에 핵무기가 쏟아지는 것이었다. 단추만 누르면 북한은 잿더미로 변한다. 이 B-52기의 위력을 어떻게 계산할 것인가? 수백 대의 전투기를 가지고 해낼 수 있는 위력이 아니다.
이처럼 전쟁이 나면 그 승패는 전적으로 미국이 좌우한다. 그런데 한국이 40억 달러라는 돈을 프랑스에 주면서 “미국의 F-15기는 프랑스제보다 못하다”고 했을 때, 미국인들은 한국에 대해 어떤 감정을 가질까? 의리도 모르고 친구도 모르는 상종 못할 사람들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한국군은 늘 사기를 먹고산다고 주장해 왔다. 지금이라도 전쟁이 터지면 F-15, F-16기들이 미국으로부터 날아올 것이다. 그런데 한국군은 프랑스 라팔을 날리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이 때의 미국 조종사들의 마음을 헤아려 보자. “한국군은 우리 F-16, F-15기를 형편없는 전투기로 생각하고 있다며?”, “우리가 왜 저런 사람들을 위해 목숨을 잃어야 하지?”
미국인들의 사기가 어떠할 것인가? 설사 프랑스제가 몇 푼의 돈을 절약시켜 준다고 하자. 그 돈을 절약하기 위해 잃는 것은 무엇인가? 미국인들의 마음이다.
더구나 F-15기를 사용하는 나라는 많아도 프랑스 라팔을 사용하는 나라는 프랑스 말고는 없다. 라팔의 크기는 F-15와 F-16기의 중간치다. 라팔에 비해 가격이 비쌀 수밖에 없다.
이웃 일본과 대만을 보자. 그들은 미국과 선린관계를 유지하면서 친구라는 대접을 받는다. 특히 일본은 미국무기만 사 쓴다. 미국 무기는 유럽 무기에 비해 판매량이 많아 단가가 싸고 성능이 우수하다. 미국은 그들의 무기를 가지고 모든 전쟁을 치렀고, 세계를 제패했다. 설사 분석하는 사람들의 시각에 따라 프랑스제 무기가 일부 우수하게 여겨질지는 몰라도 ‘라팔’이 미국제 전투기보다 월등히 우수할 수는 없다. 프랑스제는 수출물량이 적어 단가가 필요 이상으로 비쌀 뿐이다.
기술이전을 문제 삼고 있지만 설사 미국이나 프랑스가 전투기 기술을 몽땅 한국에 준다해도 그 기술을 소화할 수 있는 인력이 우리에겐 없다. 기술은 밀가루처럼 그릇에 담기는 게 아니라 과학 기술자, 실험설비, 생산설비에 담기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는 기술을 담을 수 있는 세 개의 그릇이 모두 다 없다. 기술은 물량, 즉 수출이 따라줄 때에만 유지, 발전될 수 있다. 한국은 아무리 몸부림을 쳐도 전투기 수출을 할 수 없다. 엔진 하나, 랜딩 기어 하나 수출할 수 없다. 수출 길이 없는 기술은 무용지물이다. 이 세상에서 그런 기술을 위해 돈을 쓰는 나라는 없다.
한국의 과학기술자들이 전투기 기술을 몇 년이라는 기간 내에 소화한다는 것은 마치 초등 학생에게 대학원생 수학을 이해하라는 것과 같다. 기업에는 그만한 고급 인력을 유지할 수도 없다. 기업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외국의 제작업체가 설치해준 공장에서 외국인이 가르쳐 주는 대로 원숭이식 조립만 하고 하나의 사업을 끝내는 것이다. 이런 게 한국의 항공 산업이다.
담지도 못하는 그런 기술을 전투기 가격보다 더 비싸게 주면서 얻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기술을 모르는 군관계자는 기술도입을 명분으로 걸고, 업체들은 그런 요구에 순응하는척 하면서 마진을 추구한다. 서로 눈감고 아웅하는 식으로 국방비를 나눠가는 것이다. 일간지의 기사나 군관계자들의 발표를 보면 마치 기술이 밀가루나 하드웨어처럼 건네주기만 하면 그릇에 담을 수 있는 것으로 생각들 하는 것 같
다. 분명히 기술이전에도 많은 점수가 매겨져 있을 것이다. 이런 걸 놓고 산수를 해서 어느 기종이 좋다 나쁘다 하니 참으로 답답하다.
처음부터 이렇게 내려져야 할 결론을 놓고 군은 반미감정을 유발하고 있다. 이제 F-15는 돼도 큰 일, 안 돼도 큰 일이 돼 버렸다. F-15가 탈락하고 ‘라팔’이 선택되면 어떻게 될까? 40여억 달러의 큰 돈이 프랑스로 가면 세 가지 감당할 수 없는 문제가 야기될 것이다. 첫째, 그렇지 않아도 ‘악의 축’ 중 하나인 북한 편에 서서 부시를 공격한 현 정권에 더 많은 오해를 불러 정권이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 둘째, 무역보복 등 많은 보복을 불러오고 한미관계를 완전 감정관계로 치닫게 할 수 있다.
한미 안보협력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미국의 공군력 우산 아래 안보를 전적으로 의존하는 나라가 사소한 장비라면 몰라도 어찌 프랑스제 최고가의 전투기를 가지고 미군과 합동작전을 하겠다는 것인가?
F-15가 선택되면 어떤 문제가 있는가? 그렇지 않아도 반미감정을 부추겨 대미 증오심을 야기하려는 불순 세력은 물론 외교, 안보의 패러다임 자체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순진한 국민들까지도 반미감정을 갖게 할 것이다. 미국은 남북한 모두를 싸잡아 한 패로 취급케 하는 엄청난 불행을 자초할 수 있다. 미국이 북한과의 전쟁을 할까말까 저울질 할 경우 "남한 국민의 생명"을 귀중한 고려요소로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감정만 앞세우고 뒷감당은 국민에게 전가하는 위험한 불장난이다.
지금 공군은 두 가지 문제를 생각해야 한다. 하나는 비싼 전투기 40대를 가지려 하지 말고 10년 이내에 도태되는 300여대의 고물 전투기를 무슨 돈으로 메워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F-15기 자체의 수리부속 문제이다. 한국공군은 570대의 전투기를 가지고 있다. 북한은 900대를 가지고 있다. 전투기 성능이 아무리 우수해도 수적인 열세는 매우 곤란하다.
최소한 550대의 전투기는 유지돼야 한다. 570 중에 우리 돈으로 산 전투기는 F-5기 68대와 F-16기 추가생산 20대를 포함 한 180대 뿐이다. 나머지 300여대는 미국이 쓰다가 거저 주고 간 것이다. 그런데 미국이 거저 주고 간 전투기들이 10년 이내에 무더기로 도태한다. 매 13년 주기로 확보한 40억 달러를 가지고 40대의 비싼 전투기를 사면 나머지 300여대의 전투기는 무슨 돈으로 채울 것인가? F-15기는 미공군에서 퇴역하고 있다. 부품 업체는 이미 문을 닫았다.
2008년 40대가 모두 도입되고 나면 부품을 구하기 어려워진다. 설사 구한다 해도 보따리 부품업자로부터 구입해야 하기 때문에 부르는 게 값이다.
F-15기는 제3세대 전투기다. ‘라팔’은 제4세대 전투기다. 대만은 제5세대 전투기를 도입하고 있다. 도대체 한국 공군은 어째서 5세대 전투기에 눈을 돌리지 않는가? F-X사업은 중단돼야 한다고 본다.
2002. 3.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