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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산서원(屛山書院)은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병산리 <사진 위에서 커서를 놓고 클릭하면 원본 사진을 볼 수 있습니다.>
임진왜란 때 영의정을 지낸 서애 류성룡(1542~1607년)과 그의 셋째 아들 류진을 배향한 사당인 병산서원은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사라지지 않고 남은 47개 서원 중 하나로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유교 건축물로 꼽힌다. 고려 말 풍산현에 있던 풍산 유씨의 사학(私學)을 류성룡이 이곳으로 옮겨와 제자들을 길러냈고 그의 사후에 제자들이 존덕사를 세우고 류성룡의 위패를 모셨다. 1863년(철종 14년) 병산이라는 사액을 받아 사액서원으로 승격되었으며 많은 학자를 배출해내었다.
서원 앞쪽의 화산이 마치 병풍을 두른 듯하여 병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복례문을 지나 서원 안으로 들어서면 높은 계단 위에 자리 잡은 만대루가 보이고 류성룡과 류진의 위패를 모신 사당인 존덕사, 서원의 중심으로 학생들이 강의를 듣던 입교당과 책을 인쇄하던 장판각이 있고 제사를 준비하는 전사청과 학생들의 기숙사로 쓰였던 동재와 서재 등이 빼어난 건축미를 자랑하며 들어서 있다.
서원의 앞쪽에 위치한 만대루는 병산서원에서 가장 유명한 건물로 대강당 역할을 하던 곳이다. 2층으로 넓게 지어진 만대루에서는 서원 앞에 펼쳐진 낙동강과 너른 백사장, 병풍과 같은 산들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서원의 규모는 크지 않으나 정갈하게 자리 잡은 각 건물들의 조형미가 빼어나 안동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여행지라 할 수 있다. 류성룡의 문집을 비롯한 각종 문헌 3,000여 점이 보관되어 있으며 해마다 봄, 가을에는 제향을 올리고 있다. <네이버백과>
병산서원을 찾아든 시각에는 음산 날씨에 바람까지 세차게 불어 몸을 의지할 곳이 없었다.
그러나 낙동강을 앞으로 두고 병풍처럼 둘러싼 산경 아래 서원의 풍광이 참으로 아름다웠다.
모지락스럽게 휘몰아 치는 바람이 낙동강변의 모래를 실어다 흩뿌리지만 않았어도 넉넉한 마음으로 둘러 보고 싶은 곳이었다.
병산서원은 하회마을에서 강변길을 따라 걸어서 한 시간 거리에 있다.
서원의 규모나 강단의 선이 굵고 시원스럽게 펼쳐지면서도 산과 강이 느직하게 둘러 싸며 아늑하고 포근한 감이 든다.
아침나절에 들렀던 도산 서원과는 풍광이 사뭇 다르다. 도산 서원은 협소한 지형에 많은 건물이 들어서 있는데다 산과 강이 가까이 감싸 안아 답답하면서도 외진 느낌이 들었다.
병산 서원을 나와 가까운 거리에 하회마을이다. 주차장에 차를 대면 바로 셔틀 버스가 마을 입구까지 태워다 준다.
들녘에는 벼들이 황금빛 카핏을 깔아 놓고...
빗방울이 한 낮 두 낮 지는 바람에 마을 길을 따라 한 바퀴 휘 돌아 나왔다.
줄에 매달린 것은 사람들이 소원을 적어 매달은 것이다.
초가집 곁에 피어 있는 칸나가 정겹다.
아주까리
겸암정사
부용대
하회마을을 벗어나면서 여행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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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늘 느끼는 거지만 멋진 사진에다 명 해설까지 곁들이니 눈으로 직접 보는 듯 합니다 그려.
아주 아주 좋습니다. 좋아.
고즈넉한 모습이 마음의 평안을
가져다 줍니다. 아~~~~~~~~
부용대앞 소나무밭 지금보니 새롭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