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주의 단심가
■ 이성계의 위화도(威化島) 회군
때는 고려말. 어느 왕조건 말기에는 항상 부정부패로 사회의 불안과 국가적인 시련이 있기 마련이다. 안으로는 공민왕의 개혁이 실패한 후, 권문 세족의 횡포는 더욱 심해졌으며, 밖으로는 홍건적과 왜구의 침입이 빈번하였으며 당시 중국의 明나라는 철령 이북의 땅을 지배하겠다고 통보해 왔다. 이에 고려말 고려왕조는 어수선한 사회 분위기와 흩어진 민심을 하나로 통합하고자 요동을 정벌하는 것으로 대응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요동 정벌을 두고 고려 조정은 의견이 둘로 갈라졌다. 최영을 중심으로 하는 온건파의 주장에 따라 요동 정벌이 단행되었으나, 처음부터 요동 정벌을 반대하던 이성계는 위화도에서 군사를 돌려 개경으로 돌아와 반대파인 최영 등을 제거하고 우왕을 축출하여 정치적 실권을 장악하였다.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
"이렇게 어수선하고 민생의 안정이 전혀 도모되지 않을 때, 고려 왕조의 희생으로 개혁을 이루어서 국가와 민생의 안정을 이룰 수만 있다면 이또한 희생을 무릅쓸만한 큰 가치가 있는 것이다...." 라고 혁명을 계획하고 있던 이성계(李成桂)에겐, 나름대로 민심이 쏠려 있던 정몽주(鄭夢周)는 가장 큰 걸림돌 이었다.
그는 "아무리 부모(고려왕조)가 부모역할을 못한다고 해서 자식(신하)이 부모를 내칠 수는 없다"고 하였다.
이성계를 가장 빼어 닮았다는 이방원은 이성계의 근심을 헤아려 정몽주를 타일르는데... 정몽주는 항상 "忠 臣 은 不 事 二 君 이라 (충성스런 신하는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 하여 그 뜻을 굽히지 않았다.
■ 충성스런 마음 (丹心) 의 노래(歌) : 丹 心 歌
<해동 악부>와 <포은집>에 다음과 같이 한역되어 전한다.
此身死了死了(차신사료사료)
一百番更死了(일백번갱사료)
白骨爲塵土(백골위진토)
魂魄有也無(혼백유야무)
向主一片丹心(향주일편단심)
寧有改理與之(영유개리여지)
■ 이해와 감상 : 이 노래는 이방원이 정몽주의 마음을 돌려보려고 지어 부른 <하여가>의 화답시로 '단심가(丹心歌)'라 한다. 정몽주는 이 단심가로 굳은 절의(節義)를 보임으로써, 끝내 이방원의 무리에게 무참하게 죽음을 당하고 만다
■ 핵심정리
◁ 작자 : 정몽주
◁ 출전 : <청구영언>
◁ 종류 : 평시조, 화답시조
◁ 성격 : 단심가(丹心歌), 충의적
◁ 제재 : 절개, 지도
◁ 주제 : 고려에 대한 충절, 충성심(忠誠心)
■ 정몽주 : 호는 포은이며 고려 말의 충신이자 유학자로서 24살때 과거의 삼장에 거듭 장원급제 하였다.
개성에 오부학당과 지방에 향교를 세워 유학의 진흥을 꾀 하여 부패한 불교의 폐단을 없애고자 하였고 명나라와의 외교에 힘쓰다가 한때 유배생활도 하였다. 미가 호방하고 매서웠으며 충효로 일관하였고, 그의 시문도 일가를 이루어 '포은문집'이 전해진다. 이성계의 문병을 가야 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가기전에 노모(老母)에게 문안을 가니 노모는 이미 어떤 낌새를 채고 ... "까마귀 싸우는 골에 백로야 가지마라/ 성난 까마귀 흰빛을 새오나니/ 청강에 고이 씻은 몸을 더럽힐까 하노라" 고 하며 집을 나가지 말라고 권한다. 그러나 포은은 노모의 말을 듣지 않고 그 길로 방원 (芳遠) 을 찾아간다.
방원은 포은을 맞아...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혀져 백년같이 누리리라" 는 회유의 시를 읊는다.
만수산 (萬壽山) 은 개성 서쪽 두문봉 북방에 있는 산으로 고려 역대 왕릉이 많이 있어 고려의 북망산으로 불리는 산이다.
이에 포은은 그 유명한 단심가...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로 대답하고 돌아오는 길에 선죽교에서 살해당하고 만다.
이렇게 이방원이 부른 '하여가'에 대해 '단심가'로 답하고 돌아오는 길에 개성에 있는 선죽교에서 이방원이 보낸 자객에게 피살되었다.
■ 역사 문화 유적의 향기
돌아오는 길에 이성계의 아들, 이방원이 조영규 등을 시켜 선지교(뒤에 선죽교로 고쳐짐)에서 쇠방망이로 정몽주를 쳐서 충신 정몽주는 66살로 일생을 마쳤습니다. 뒷날, 정몽주가 피를 흘리며 쓰러졌던 자리에 대나무가 솟아났다고 합니다.
그의 충절이 얼마나 높았는가를 증명해 주는 것입니다.
때문에 대나무 죽(竹) 자를 넣어서, 선지교를 '선죽교'라 부르게 된 것입니다.
이방원의 하여가
■전문 풀이
이렇게 산들 어떻고 저렇게 산들 어떠하리오.
만수산에 마구 뻗어난 칡덩굴이 서로 얽혀진 것처럼 산들 그것이 어떠하리오.
우리도 이와 같이 어울려져 오래오래 살아가리라.
■이해와 감상
혁명 전야(前夜)에 고려의 중추적인 충신 정몽주(鄭夢周)를 회유하기 위해 지었다는 이 노래는 일명 하여가(何如歌)라고도 한다. 결국 단심가(丹心歌)로서 굳은 절개를 회답했던 정몽주는 이방원의 심복 조영규에게 선죽교에서 살해되고 만다.
■핵심정리
◁ 작자 : 이방원(1367∼1422)
◁ 출전 : <병와가곡집>, <청구영언>
◁ 종류 : 평시조, 화답시조
◁ 성격 : 하여가(何如歌), 회유가
◁ 제재 : 드렁츩
◁ 주제 : 회유(懷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