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인문화칼럼>
지역사립미술관의 역할과 분투
‘미술관에서 길을 묻다’ 연속기획 화제
국화분을 키운다. 아침마다 물을 수묵하니 뿌려준다. 열두살 소녀의 젖가슴처럼 봉오리가 돋아오른다.
미술관 전시가 연일 화제가 된다. 고미술가격은 천정부지다. 백제의 조각과 고려의 불화는 사오지도 못한다. 그림은 물고기다. 살아 펄떡이며 쉬임없이 헤엄을 치며 비늘을 씻고 대강을 꿈꾸는 지느라미와 부레의 수평을 조율해주는 역할은 미술관이다. 지금은 누구나 어항에서 물고기를 기르지 않는다. 미술관은 호수다. 염기가 잘 통하는 바다다. 모든 관람객에게 미네랄이, 자의식을 한것 피워내는 피톤치트가 속속 스며들어야 한다.
진도는 그런 바다가 있다, 미술관장들은 노련한 뱃사공이다. 모두가 도원의 뱃길을 아는 어부이다. 도연명이 그렇게 찾았던, 안평대군이 꿈 속에서까지 그리워했던 무릉의 몽유도원으로 가는 물길을 제대로 익힌 노련한 뱃사공은 장가계의 풍경이나 하롱베이 바다의 오아시스를 오히려 여처럼 경계한다.
누군가는 “진도에는 미술관이 바다속에 있다”며 해저유물과 인양 보물들의 진도반환문제를 제기하기도 한다. 새들의 섬 조도는 황공망의 부춘산거도가 펼쳐진 듯해 보인다. 여기서 더 다를 수는 없다.
진도에는 운림산방을 비롯해 소전미술관 등 유수한 미술관이 자리하고 있다. 진도군이 직접 관할거나 위탁 운영중이다. 장전미술관은 유능하고 열정적인 뱃사공을 잃고 반파되어 흘수선이 기울어져 안타까움을 준다. 전남도의 소홀한 운영, 방임하는 자세는 무릉도원을 더 이상 찾지 않으며 화천대유 물벼락 돈폭포가 쏟아지는 꿈에 쩌어있는 것일까. 그들은 작품을 생물로 여기자 않는다. 단지 색깔있는 도형물로 배열양식에만 골몰한다. 이에 비해 광엥시에 들어선 도립미술관은 초기부터 의욕적이다. 서울 성북동으로 남농선생이 쌍벽의 동행을 떠나셨다. 월전이라는 가을달밭에서 소나무 그늘 아래 그림농사를 짓는 모습이 저절로 떠오른다.
도립미술관에는 소전의 진보(珍寶)가 전시되고 있다.
그리고 진도에는 ‘미술관에서 길을 묻다’라는 화두를 들고 수년 째 초대전을 갖고 있다. 이건 놀라움이다. 가장 엄혹한 시대의 미술계 신흥무관학교 독립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초대받은 화가들은 우주인을 꿈꾼다. 아를르의 밤 고흐의 별들이 내려오고 또 다른 행성을 찾는 혜안으로 번뜩이며 획일적인 자본주의 시각과 배긎디배와 결연히 맞서 벽파진 솟소승자총통같은 화첩통을 짊어지고 떠나는 기행(紀行)으로 명량대첩, 봉오동전투 승리를 꿈꾼다.
추사의 작품 몇 개, 단원의 사능(士能)에 기대이는 수도권의 유슈한 미술관의 진부한 구태를 거부한다.
참가 미술관은 진도현대미술관(관장 박주생), 나절로미술관(이상은), 솔마루미술관(박용선) 등이다. “자연은 생성과 소멸 속에 반복되지만 작가가 만들어낸 작품들은 지구별이 멸망하지 않는 한 영원히 살아 움직이는 생명”이라고 분명하게 밝힌다. 오래된 화장과 두려움을 싯어내고 옷과 거추장스런 형식을 벗어내 가슴에 박힌 화살과 핏물을 당당히 드러내는 ‘에꼴드 남도’ 또는 아틀란티스 진도를 운항하고자 한다.
화살이 박힌 가슴을 드러내라!
진도군은 전국 최초 민속문화예술특구답게 진도군에 관광국(국장 박수길)과 관광과(조기주), 문화예술과(허승목)를 배치하였다. 물론 더 전문성있는 예향질잡이들이 요구된다. 그런 점에서 문제는 이 모든 것을 구상하고 조절하며 실현해 가는 ‘사람’이다.
미술관의 관람객에 대한 관계 설정과 개념의 변화도 제기된다. 무엇보다도 관람객에 대한 관계를 새롭게 하기 위해 역사박물관·미술관학이나 지역성에 대한 이해, 시민들과의 관계를 연구하고, 지역 주민의 의견을 수렴하는 등 가능한 더 많은 지역 관람객들이 방문할 수 있도록 하는 창의적인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실제로 해외 유수의 미술관은 마케팅 부서의 업무 자체를 SNS 활동과 관련한 것으로 전면 개편한지도 오래된다. 그것은 곧 관람객에 대한 소통 방식을 일방적이 아니라, 쌍방향으로 설정하고 동시에 담론을 통한 바이럴(viral)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노력으로 바뀌었음을 의미한다.
미술관은 학교다. 작가의 물음과 고뇌, 시대의식 절망까지 담은 거울과 항아리를 배우고 묻는 학당이다. 물음에 답은 없다. 인생이 그러하듯 스스로 찾아 가야 할 길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현실은 ‘소문의 벽’에 갇히기 쉽고 기획예산은 나로도 우주선 발사처럼 1회용 성공만을 요구한다. 이제 진도출신 화가들에 대한 문호가 더 열려야 할 듯하다. 교류가 이어지지 않으면 문은 닫힌다.
어제밤 늦게까지 다산의 ‘애절양(哀絶陽)’을 읽었다. 노전(蘆田)은 어디인가. 제 양물을 낫으로 잘라버린 사내와 그 부인의 애절한 심정을 금봉(금봉)은 간결하게 눈물까지 후광으로 삼아 그려 강진군에 보냈다. 시가 없는 그림은 시창(詩窓)이 막힌 파초에 불과랄 뿐이다. 석가정(한승배 시 아내에게) 부부의 새벽농사와 달빛을 보고싶다. 풍속이 없는 시대는 없다. 그림이 풍속이 되면 이발소그림이 된다. 그림이 시를 담을 때 풍속의 시대는 새로운 주류가 된다. 마술관이 쉽고 선명한 이정표로 삼아진 진도예술문화지도를 보고 싶다. 진도의 특별한 예능으로 다져진 문화해설사 스토리텔러들에 귀를 기울이자. 진도의 역사를 알아야 진도의 바람이 어떻게 부는 지, 아리랑이 왜 미치도록 놀다나 가자 하는지 진정한 화첩기행을 펼칠 수 있다.
기증과 수장이라는 귀거래사형 미술관 운영은 오히려 물고기들을 상하게 한다. 은어떼처럼 찾아온 작품들이 귀머거리가 되어 지하 수장고로 유배당하는 현실은 수십년 물길이 다 막혀진 진도의 갯펄을 연상시킨다.
그림작품도 셰례를 주고 받는다. ‘시대와의 화해나 불화’는 자기정화가 아닌 ㅅ어전을 빙자한 거래소의 달런트 금화에 불과한 수사에 불과하다. 이제 눈이 있는 많은 관람객들은 ‘보이는 만큼’ 그 이상을 갈망한다. 나는 많은 작품들로부터 세례를 받았다. 오주석처럼 침식을 잃고 무릎꿇기까지로 다가서지 못했지만 놀랍고 경이로운 감로수 세례로 다시 태어나는 축복을 마음껏 누렸다.
나는 반 귀머거리, 반 절름거리, 반 농아가 되어 버렸다. 이 달에는 나도 동행을 찾아야겠다.(박종호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