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정기훈 기자 |
“건설노동자들을 위한 최소한의 복지, 복마전인 건설현장의 투명화, 국가 차원의 건설산업 발전을 위해 전자카드제를 도입해야 한다.”
건설노동자들의 사회보장 강화와 경력관리를 통한 인적인프라 육성을 위해 퇴직공제부금과 연계한 전자카드제 도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임운택 계명대 교수(사회학)는 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제3소회의실에서 열린 ‘건설현장 퇴직공제부금 전자카드제 도입 필요성과 정착방안’ 토론회에서 이같이 밝혔다.
이날 토론회는 민주당 을지로위원회와 <매일노동뉴스>가 주최하고,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한정애 민주당 의원과 같은 당 국토교통위원회 윤후덕 의원 주관으로 열렸다.
'어디론가 새는' 건설노동자 퇴직금
통계청이 발간한 건설업조사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 기준 전국의 건설업 종사자수는 162만5천313명이다. 이 중 생산직·임시직(일용직)은 92만2천728명(56.8%)이다.
절반을 넘는 일용직 건설노동자들은 일감이 언제 끊길 지 모른 채 공사현장을 떠돈다. 그래서 도입된 것이 건설근로자공제회가 운영하는 퇴직공제부금이다. 가입대상은 10억원 이상 하도급공사 현장에서 1년 미만 근로계약을 체결한 건설노동자들이다. 하루 일하면 4천원이 적립된다.
그런데 공제회가 2011년 11월 조사한 ‘건설일용직 의식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2.9%가 퇴직공제부금에 가입했다고 밝혔다. 26.1%는 제도 자체를 모른다고 답했다.
임운택 교수는 퇴직공제제도의 적용이 저조한 배경으로 △잦은 직장이동 △낙찰률 하락 등으로 인한 적정공사비 부족 △기능인력의 복지제도에 대한 불신 △불법취업자 과다로 인한 사업주의 사회보험 가입기피를 꼽았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평균 공제일이다. 임 교수가 공제회 자료를 분석했더니 2003년부터 2012년까지 피공제자의 평균 가입일수가 월 평균 5일에도 못 미쳤다. 단기 아르바이트 인력을 포함한 수치이긴 하지만 건설업을 생업으로 하는 신고일수 200일 이상 피공제자의 비율이 2012년 기준 전체 납부자의 6.2%에 불과했다.
임 교수는 신고일수 누락의 원인으로 사업주들의 EDI(전자문서교환)를 통한 퇴직공제부금 통보방식을 꼽았다. 그는 "일용근로자 다수에게 퇴직공제부금이 제대로 부과되지 않고 있다는 것은 서면과 EDI를 이용한 근로내역신고가 한계를 지니고 있다는 점을 방증한다"며 "공사 발주자가 부담하는 만큼 건설사업주에게 실질적인 부담액이 없음에도 제도가 제대로 시행되지 못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 | | ▲ 정기훈 기자 |
"전자카드제로 누락일수 바로잡아야"
임 교수는 건설업체가 임의로 퇴직공제부금 산정을 누락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전자카드제를 통한 통보방식을 제안했다. 다시 말해 건설노동자가 출근해 카드태그를 통해 근로신고를 하면 이 같은 정보가 내부통신망을 통해 공제회에 직접 전달되는 방식이다.
임 교수는 “전자카드제를 도입할 경우 건설근로자를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고, 퇴직공제부금의 누수도 차단할 수 있다”며 “전반적인 복지재원 마련으로 건설근로자가 사회안전망에서 배제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전자카드제 정착방안을 적극적으로 연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자카드제가 도입될 경우 건설산업의 투명성이 확보되고 건설노동자들의 경력관리가 가능해져 산업전반의 경쟁력 강화에도 기여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임 교수는 “국민권익위원회가 2012년 하반기에 실시한 부패인식도 조사를 보면 건설산업은 10개 행정 분야 중 가장 부패한 것으로 조사됐다”며 “전자카드제 도입으로 건설현장의 인건비 정보를 드러내면 건설산업이 복마전에서 벗어나 산업발전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전자카드제 도입의 전제조건으로 △건설노동자 경력정보를 포함시켜 숙련 노동자 육성 및 보상 △건설기계 노동자 퇴직공제부금 적용 △노동조합과 공제회 협력시스템 구축 △정부 차원의 관리와 규제강화를 제시했다.
임 교수는 “건설노동자들의 경력을 전자카드제로 관리하고 기능에 준하는 보상을 하는 선순환 구조가 짜여져야 건설산업이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며 “건설기계 노동자들의 경우 평균 나이가 50세가 넘고 갈수록 공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고 있는 만큼 전자카드제 도입 대상으로 포섭해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을 제공해야 한다”고 밝혔다.
사용자도 고용정보 관리비용 절감 효과
임 교수의 발제에 이어 박성국 매일노동뉴스 대표의 사회로 진행된 지정토론에서 노동계는 "전자카드제가 도입되면 건설현장이 투명해질 것"이라고 기대감을 내비쳤다. 오희택 건설산업연맹 사무처장은 “2000년 이후 건설수주 물량이 반토막이 났는데도 수주액은 40조원에서 110조원으로 두 배 이상 증가하는 아이러니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며 “전자카드제를 도입해 건설현장을 투명하게 만드는 것은 건설산업 발전의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전자카드제가 불법적인 외부인력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내다봤다. 오 처장은 “현재 수도권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건설노동자의 100%가 외국인인 반면 국내 노동자들은 일이 없다고 아우성”이라며 “전자카드제 도입은 불법 외국인노동자를 가려내고 합법적인 외국인노동자의 고용조건을 개선할 수 있는 합리적인 출구전략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전자카드제가 다양한 고용정보와 통합돼 운영되면 사용자 입장에서도 환영할 만한 제도라는 의견을 나타냈다. 심규범 건설산업연구원 실장은 “건설현장에서 사용자들은 출퇴근 관리·임금 지급·4대 사회보험·퇴직공제부금 등 수많은 고용정보를 관리하는 업무를 하고 있다”며 “전자카드제가 다양한 고용정보 통합운영을 전제로 도입되면 관리비용이 절감되기 때문에 사용자들도 환영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정정열 공제회 기획조정본부장은 이날 토론회에서 쟁점으로 등장한 근로일수 누락과 관련해 "건설업체가 4대 보험 및 세금신고와 연계될 것을 우려해 근로일수를 월 19일 이하로 축소해 신고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국토부 "현행 제도 보완이 우선"
정부는 유보적인 입장을 보였다. 조태영 국토교통부 건설인력기재과 사무관은 "건설노동계와 사업주를 비롯해 정부 부처별로 의견이 갈리고 있는 만큼 현행 제도를 보완한 단계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조 사무관은 “주택공사에 한정돼 있기는 하지만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발주한 공사에서는 현장 근로자들을 위해 전자인력 관리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며 “이동식 체크기를 확대·보급하고, 관리인력을 확충하는 방식으로 적용범위를 확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건설기계 노동자들에게도 퇴직공제부금을 적용하고, 전자카드제를 도입하면 불법인력 단속에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주장에 의문을 제기했다. 조 사무관은 “레미콘이나 덤프의 경우 현장에서 1번 왕복하면 금액을 매기는 땅뛰기로 운영되는데 하루에도 여러 현장을 오가는 이들에게 출퇴근을 기반으로 한 전자카드제를 도입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사업주가 임의로 1장의 전자카드를 발급하고, 2명의 불법인력을 고용할 경우 불법인력을 감추는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권오형 고용노동부 인력수급정책과 사무관은 “피공제자의 요청이 있었는데도 사업자가 이를 고의로 누락할 경우 건설근로자가 공제회에 직접 퇴직공제부금을 청구할 수 있고, 미이행 업체에 대해 과태료를 올리는 등 법적인 보완책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권 사무관은 또 “노동부 차원에서 전자카드제 도입에 공감하고 지난해 연구용역도 진행한 상황”이라며 “올해 6월부터 모바일 앱을 기반으로 하는 피보험자인 건설근로자 관리 시범사업을 운영하는 등 여러 방식을 고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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