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면회
2010년 9월 11일 토요일 새벽 5시, 아파트 광장 어둑한 공간엔 빗발만 무성하다. 어제부터 시작된 비가 끈질기게도 이어진다. 밤늦도록 집사람이 정성껏 꾸려놓은 짐을 차량 트렁크에 옮겨 싣고 집을 나선다. 신병교육을 마치고 자대 배치된 지 일주일이 갓 지난 아들을 보기위해서다. 신천램프로 진입 제2경인고속도를 경유해서 서울외곽순환도로로 오른다. 이어서 강일교차로에서 경춘고속도로로 갈아타고 빗발과 어둠을 헤쳐 나간다. 퍼붓는 비로 시야가 형편없고 곳곳의 물웅덩이는 간담을 다 서늘하게 한다. 설상가상으로 졸음까지 가세하니 그저 사면초가 곤란지경이다. 엊저녁 처가식구들 모임으로 잠이 모자랐기에 눈꺼풀이 천근만근 막무가내로 내려앉는다. 잠시 도로 옆 공간에 차를 세우고 눈을 붙인다.
9시부터 면회가 시작되고, 아들 보기 한시가 급한 집사람의 성화가 있고 보니 마음이 조급하다. 다시 출발하여 가평휴게소에 들렀고 황태해장국 한 그릇으로 허기를 때우고 커피로 졸음을 쫒는다. 도중에 아들한테 전화가 왔고, 도로 사정이 안 좋아 2시간 정도 늦는다 하니 천천히 조심해서 오시라 한다. 계속되는 빗속에 평소보다 낮은 속도로 몰아나간다. 급한 마음에 서두르다 사고라도 나면 그만한 불상사가 없기 때문이다. 동홍천램프에서 내려 국도로 들어선다. 인제를 지나 용대교차로에서 진부령으로 방향을 잡아 나간다. 10시 30분쯤 고성에 도착하여 부대를 수소문 한다. 우선 주유소에서 주유를 하고 53연대의 위치를 물었다. 한 7~8분 속초 방향으로 나아가 부대를 찾아 들어가 위병소에서 확인하니 찾는 부대가 아니다. 다시 한 곳을 더 찾아가 보았으나 마찬가지다. 아들이 핸드폰을 빌려 통화한 번호로 부대위치를 물으니 마을 이름을 대어준다. 다시 인근 주유소로 찾아들어가 동네 위치를 묻고 방향을 잡아나가니 11시가 넘었다.
위병소에서 아들 이름을 대고 기다리길 5~6분이 지나자 선임병과 소대장 사이에 끼어 걸어 내려오는 아들이 시야에 든다. 집사람이 먼발치에서 확인하고 마주 걸어 나가 포옹한다. 소대장으로부터 내일 오후 7시 30분까지는 부대로 돌려보내달라는 부탁을 받았고, 위병소에 내 인적사항과 주민등록증을 맡기고 아들을 데리고 나왔다. 집사람은 아들과 뒷좌석에 나란히 앉아 그간의 궁금했던 질의응답을 속사포처럼 쏘아댄다. 어디로 갈 것인가? 고성보다는 규모가 크고 번화한 속초로 방향을 잡았다. 30여 분 속초 시내에 들어섰고 우선 방부터 잡고 일정을 논의하기로 했다. 교동에 이르러 모텔(아리비안나이트 뒤편 위너스)이 보이자 망설임 없이 들어갔다. 가족이며 군인이 있다고 했더니 반드시 인터넷이 깔린 방이 필요하다며 골라 준다. 거기까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는데 세심한 배려가 고맙기 그지없다.
트렁크에서 짐을 꺼내 7층 방으로 옮겨놓고는 바로 식사를 하러 나갔다. 속초엔 전에 한두 번 와보긴 했지만 방향감각이 완전하진 못하다. 모텔 카운터에서 가져온 관광지도를 더듬어 찾아나간다. 우선 청초호를 끼고 우측으로 돌아가니 이마트 건물이 보인다. 아들에게 필요한 물건이 많은지라 우선 물건부터 구입하기로 한다. 3층의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매장으로 걸어 내려왔다. 초콜릿이 많이 함유되어 달디 단 과자류와 문구류, 샴푸와 악취 중화제, 피부연고, 전자손목시계 등 10여 가지의 필요 물품을 체크하며 챙긴다. 이마트 주변 상가건물(조양동 제일프라자) 2층에 위치한 초원갈비에 들어 돼지갈비를 시켰다. 우리가 들어서고 얼마 뒤 7~8명의 외출 군인들이 들어 음식을 시킨다. 길거리에서도 군인의 행보가 눈에 자주 띄는 걸보니 군부대가 많은 지역인가 보다. 집사람은 고기를 구워 연신 아들 앞에 놓아주며, 달게 먹는 입을 즐거운 듯 지켜본다. 사회 못지않게 음식이 다양하게 잘 나오겠지만 군이라는 특수성 때문인지 단것과 고기를 먹고 싶어 한다. 소화만 잘 시킨다면 돼지갈비 아니라 소갈비 코끼리 갈빈 못 사주겠냐는 맘으로 아들이 더 먹기를 재촉한다.
2시 20분, 식사를 마치고 일단 모텔로 들어왔다. 잠시 쉬고 오후 일정을 잇기로 했다. 피곤이 몰린 나와 집사람과 아들이 대형침대에 나란히 누웠다. 두어 시간 지나자 밖은 어둑해지고 비도 뜸하다. 우산 2개를 챙기고 거리로 나와 택시를 잡았다. 미리 갈만한 곳을 카운터에서 알아두었기에 망설일 이유가 없다. 가는 빗발이 스치는 갯배 항구엔 사람이 별로 없다. 수족관 속 쥐치가 노니는 수현횟집에 자리를 잡았다. 날씨 탓인지 또는 시간이 일러 그런지 다른 손님은 없어 호젓하기까지 하다. 쥐치 세꼬시에 물회를 시키고 각자 취향에 맞춰 음료를 주문한다. 소주, 맥주, 청하 한 병씩이다. 8시 경 자리를 물리고 시내로 걸어 들어가 택시를 타고 모텔로 돌아왔다. 아들은 인터넷으로 중계됐던 신병교육대대 수료식을 보며 즐거워한다. 음료수도 없이 과자를 우겨넣는 아들에 신경이 쓰인다. 집사람이랑 서둘러 밖으로 나왔고, 인근 편의점에서 우유 콜라 아이스크림을 사고 우리 몫의 캔 맥주 2개를 곁들였다. 집사람은 욕조에 온수를 받아 아들을 목욕시킨다. 그간 제대로 씻지 못해 쌓였을 온몸의 때를 밀어주며 뭔가 둘만의 대화를 끊임없이 이어나간다. 아들은 인터넷으로 축구경기를 보고 2시가 넘어 잠자리에 든 듯하다.
새벽 5시, 창밖으로 드러난 기후는 음침하니 빗발을 뿌리고 있다. 조용히 아침 산책이라도 나갈까 하다 그만두고 욕실에 들어 면도와 샤워를 한다. 방 공기가 찬데 이불을 덮지 않고 자는 아들에게 이불을 덮어준다. 그렇게 두어 시간이 지났고 조심스레 텔레비전을 켰다. 평소 같으면 밥 달라고 집사람을 닦달했겠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솟는 욕구를 참고 과자 두어 개로 허기를 때운다. 호랑이가 풀잎을 씹은 겪인가.(?) 11시까지는 방을 비워줘야 하기에 집사람을 깨웠고 아들이 부대로 갖고 들어갈 집을 싸기 시작했다. 집에서 가져온 책과 문구류, 목욕용 플라스틱바구니에 샴푸 등을 넣고, 과자는 상자를 뜯어 알맹이만 따로 담아 부피를 줄여 두 뭉치로 짐을 꾸렸다. 11시에 방 키를 카운터에 반납하고 나왔다. 이제 아침 겸 점심을 먹어야 한다. 아들이 좋아 하는 것, 먹을 수 있는 걸 찾아 인근의 화로구이집을 찾아들어갔다. 삼겹살을 3인분 시켰고, 하도 잘 먹어 1인분을 또 시킨다. 집사람은 부지런히 굽고 아들은 그에 못지않게 부지런히 거둬들인다. 참으로 보기 좋은 광경이다. 그런 모습을 핸드폰 동영상으로 담아 딸내미한테 전송하니 덩달아 기분이 좋은지 응답이 전광석화다. 집사람은 우리가 첫 손님이니 기분 좋게 현금으로 결제를 해준다.
이후의 시간은 어떻게 보낼까 다시 궁리를 한다. 관광지도를 더듬어 갈 곳을 물색해보니 국립공원이 그럴싸해 보인다. 나와 집사람은 두어 번 가본 곳이지만 아들은 처음이라 한다. 10여 분 차를 몰아 국립공원 주차장에 주차를 했다. 주차요금은 1일 4천원이라 한다. 간간이 흩뿌리는 이슬비에 우산을 들고 산행에 나섰다. 입장료는 어른은 2천5백 원이다. 표를 끊으며 나라 지키는 군인은 무료 아니냐고 물었더니 사병에 한해서 1천원만 받는다 한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이야기꽃을 피우며 산속 오솔길을 따라 걸었고 신발이 불편한 집사람을 생각해 30여분 만에 발길을 돌렸다. 좌측에 자리 잡은 음식점(청운정?)에 들었고 해물파전 한 접시에 막걸리 한 동이를 시켰다. 한참을 머물다 공원 주차장으로 걸어 내려온다. 비가 내려 습한 숲길은 온갖 버섯이 솟아올랐는데 집사람은 어릴 적 즐겨 채취하여 구워먹었다던 항아리버섯을 찾아 이리저리 눈길을 주기 바쁘다. 주차장으로 들어와서는 그냥 차안에서 쉬자는 집사람의 제의를 거절하고 좀 더 괜찮은 장소를 물색해 본다. 속초하면 바다 아닌가. 속초해수욕장으로 찾아들어 해변에 차를 세우곤 백사장으로 걸어 나갔다. 아들은 피곤한지 차에서 잠을 취하고 둘은 바람 센 해변을 거닐었다. 철지난 해수욕장엔 산책객과 낚시를 하는 두어 무리가 있을 뿐이다. 10여 년 전 이곳에 피서를 와서 텐트를 쳤었고, 그 보다 앞선 신혼여행을 이곳으로 오지 않았던가. 한 시간여 시간을 보내고 저녁 식사 자리를 찾아 나섰다.
오후 5시, 이마트 앞 제일프라자 1층에 자리한 음식점(손오공왕족발)에 들었고 돼지보쌈(大)과 내생이탕을 시켰다. 아들은 부대에서 있은 회식 때 돼지보쌈을 맛있게 먹었던 일을 말했고, 집사람은 부대복귀 전 맘껏 먹여보기로 하고 작정한 음식이다. 집사람은 아들이 한 점이라도 더 먹을 수 있도록 신경을 쏟는다. 아들은 어제 외박 나온 같은 소대 동기와 만나서 부대복귀를 함께하자는 부탁의 전화를 받는다. 내 의사를 물어 그러하기로 답했다. 동기는 현재 여자 친구와 속초에 와 있다고 했고, 난 서둘러 이곳으로 택시를 타고 오도록 했다. 귀대 시간이 그리 넉넉하지 않기 때문이다. 5시 50분, 음식점에서 나와 건너편 공터 주차장에서 동기를 기다린다. 난 집사람 핸드폰을 들고 그 아이가 찾아오기 쉬운 이마트 정문에서 기다린다. 기다리기를 한참 6시 30분이 되어서 택시를 타고 나타난다. 그 둘을 태우고 고성으로 속도를 낸다.
7시 조금 넘겨 부대에 도착했다. 복귀신고를 하고 부대에서 사람이 나올 때까지 기다린다. 집사람은 아들에게 타이른다. 어제 아들과 만났을 때를 상기하며 몸 관리 요령을 가르친다. 면회를 대비하여 선임병들이 머리를 깎아주고 옷을 다리고 신발을 닦아 주었단다. 그렇더라도 머릿속엔 비듬이 드러나고 얼굴엔 여드름이 또 잇몸에 음식물의 흔적이 그대로인 아들을 보고 마음이 몹시 아팠다 한다. 어제 목욕을 시키고 샴푸로 머리를 감기고 피부연고제를 발라 멀끔한 모습으로 변모는 했지만, 집사람 손길이 닿지 않을 부대에서의 몸 관리가 다시 걱정이 되는 것이다. “내 몸에 달렸다고 다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게을러 관리가 부실하여 상대방으로 하여금 불쾌감을 끼쳤다면 그건 오로지 내 몸 만이라고 주장할 수 없다. 말씨도 그렇지만 네 몸은 너를 드러내는 창이다. 머리 잘 감고 식사 후엔 휴지로 잇몸의 이물질을 제거하도록 습관을 들여라.” 집사람은 부대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아들이 어둠에 완전히 묻힐 때까지 시선을 떼지 못한다.
7시 30분, 집이 부산인 동기 여자친구를 고성 시외버스터미널에 내려주고 귀가 길에 오른다. 집사람은 한동안 침묵한다. 살붙이를 남겨두고 떠나는 서글픈 심정을 물어 알 일인가. 진부령을 넘어 인제로, 동홍천에서 경춘고속도로로 올랐다. 귀가 도중에 집사람이 아들의 전화를 받는다. 옆에 앉아 졸지 마시라고, 안전운전에 방해가 되니 이야기를 계속하며 가시라고 하는 모양이다. 집사람은 아들의 말을 끝까지 지켜낸다. 가평 휴게소에서 호두과자를 사고 커피를 마시며 한동안 휴식을 취했다. 면회 가던 길을 그대로 되짚어 집에 돌아오니 11시 30분이다. 서해바다에서 동해바다로, 동해바다에서 서해바다로 국토의 허리를 관통한 것이다. 샤워를 하고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 한잔 들이켜니 뒤따라 피곤이 엄습한다. 가족이란 무엇인가? 험난한 세상을 살아나가기에 하나의 생명이 뻗고 지탱하는 두 개, 세 개의 다리는 아닌가? 서서히 세상에 눈떠가는 아들, 무운장구를 빌어본다.(2010.9.14 허권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