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동차역사 세계
기원전 6000년
(우르 유적)
인간이 자동차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멀게는 에덴동산 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에덴동산 가까이에서 한때 번영한 바빌론의 중요한 도시의 하나인 우르 유적에서 약 6000년전에 만들어진 초기의 2륜차의 그림이 발굴 되었다.
--------------------------------------------------------------------------------
기원전 3000년
(바퀴의 역사)
타고 다니는 것으로 응용되기전에 수평으로 붙여 놓은 바퀴를 도공들이 작업에 사용하고 있었다.
이것을 수직으로 세워 물레방아가 되었다.
무겁고,튼튼한 바퀴가 사람이나 짐승이 끌고 다니던 썰매에 붙여졌다.
이들 바퀴는 차축에 고정되어서 차축과 바퀴가 함께 돌고 있었다. 원시적이긴 하지만 이것은 기원전 3000년경의 일이다.
--------------------------------------------------------------------------------
기원전 1세기
(벌칸의 3륜차)
기원전 1세기경 이집트에서 헤론은 수증기의 힘을 이용한 증기 바람개비를 만들었다고 전하며, 그 무렵 그리스의 한 문헌인 호모의 일리어드 중에 Vucan's tricycle라는 낱말이 나오는데 이것은 당시 학자 "로저 벌칸"이 만든 3륜차로 증기에 의해 움직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
기원전 1700년경
(힉소스의 마차)
고대 이집트에서는 기원전 1700년경 힉소스 또는 목동의 왕이라고 불리워진 샘어족이 대 연합군으로부터 침략을 받아 점령 되었다.
침략자는 나일강의 땅에 슬픔을 가져 왔으나,말이 끄는 전차도 가져왔다.
이 전차는 자주차는 아니였으나 그 역사적 사건으로 바퀴라는 것을 생각하지 않았었다면 자동차는 생겨나지 않았을것이므로 중요 한것이다.
--------------------------------------------------------------------------------
1480
1480년경 르네상스시대의 대표적인 인물인 레오나르드 다빈치는 어느날, 벽시계에 태엽을 감아주다가 실수로 태엽을 감는 열쇠가 튕겨져 나와서 이마을 다치게 되었는데, 이때 그는 태엽이 풀리는 힘을 이용해 태엽자동차를 만들었다.
--------------------------------------------------------------------------------
1600
1600년경 폴란드의 수학자 시몬 스테빈은 직경이 1.5미터나 되는 큰 나무바퀴가 4개 달린 돛단수레를 만들어 28명을 태우고 바닷가에서 14km/h로 68km나 달렸다고 한다.
--------------------------------------------------------------------------------
1630
이탈리아의 죠반니브랑카에 의해 터빈 원리 발견
이탈리아의 죠반니브랑카는 보일러에서 노즐을 통해 분출되는 증기를 이용 바퀴의 구멍 뚫린 틀을 붙인 바퀴를 돌리는 작동에 대한 메카니즘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것이 말하자면 증기터빈인 것이다.
--------------------------------------------------------------------------------
1680
벨피스트의 증기차(Verbies's stream cart)
포르투갈의 선교자이자 천문학자인 프래들린 펠피스트 신부는 네 개의 바퀴를 가진 총길이 60cm의 증기 자동차와 같은 이상한 고안품을 만들었다.
벨피스트의 증기차는 고정된 다섯 번째의 뒷바퀴에 의해 방향타를 잡고 빙글빙글 돌았으며, 이 에어리필라에 한번 급수 한 것으로 약 한 시간을 달렸다.
펠피스트 신부의 증기차 실험이 이루어진 정확한 날짜는 모르지만 이것이 1665년에서 1680년 사이에 이루어 졌다는 것은 틀림이 없다.
--------------------------------------------------------------------------------
1690
수증기에 의한 피스톤운동
프랑스의 물리학자 도나빠빵에 의해 수증기를 이용해서 수직 실린더 내부의 피스톤을 움직이는 기계가 설계 되었다.
외부로부터 열을 가열하면 물이 팽창하여 증기가 되어 피스톤을 밀어 올리고, 냉각하면 증기가 위축되어 내부의 기압이 낮아지고, 여기에 중력이 가해져서 피스톤을 내리는 구조로 되어 있었다.
1710
저압 증기기관
개량가이며 솜씨가 좋은 대장장이로 침례교 목사인 영국인 토마스 뉴코멘(Newcomen)이 물을 가열하여 증기를 발생시켜 2톤반의 물을 100피트의 깊이에서 퍼올리는데 석탄 28kg 정도만 소비하면 되는 저압 증기기관을 만들었다.
--------------------------------------------------------------------------------
1740
달리는 마차
프랑스의 잭도보콘슨은 강철 용수철로 달리는 마차를 만들었다.
주행거리는 짧고 성능도 대단치 않은 것이었으나, 이 탈것은 시중에 새로운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
1760
1765년 스코틀랜드의 기계기사인 제임스 와트(James Watt)는 기계적인 고안을 통하여 증기기관의 왕복운동을 회전운동으로 전환 시키는데 성공 하였으며, 복동식 피스톤에 크랭크를 설치하여 회전력을 발생 시키는 증기기관을 완성 하였다.
와트의 증기기관은 작용을 끝낸 증기를 실린더 밖으로 끌어내 응축시킴으로서 열효율을 4배 향상시켰으며, 피스톤의 양쪽에 교대로 증기를 보내어 출력 행정이 일정하고도 적극적으로 이루어 지게 했다. 아울러 그때까지 왕복운동이었던 것을 회전운동으로 전환 커넥팅 로드와 크랭크의 회전력을 통해 출력시키는데 성공하였다.
--------------------------------------------------------------------------------
1770
세계 최초의 증기 자동차
1770년 프랑스의 공병 대위였던,군사 기술자 니콜라스 죠셉 퀴뇨(Nicholas Joseph Cugnot)는 포차 (砲車)를 견인할 목적으로 증기기관을 동력으로 한 세계 최초의 3륜 증기 자동차(시속5km) 2종(대형,소형)을 제작 했다.
당시 육군사령관 이었던 스와솔공작은 참모들에게 이차를 시험토록 지시했는데,무거운 보일러와 2개의 실린더가 앞바퀴에 얹혀져 구동되어 조향하기 어려웠고, 보일러도 15분마다 물을 보충해야 했으며,브레이크 장치도 갖추지 않아 결국 대형의 것은 파리 교외의 언덕길에서 세우지 못하고 벽에 부딕혀 화재를 일으키므로서 제1호 교통사고를 내고 말았다.
퀴뇨의 시도는 프랑스 혁명에 의해 중지 되었으나, 전륜구동의 이 차가 오늘날 자동차의 시조인 셈이다.
--------------------------------------------------------------------------------
1780
증기차의 제작
1784년 증기기관을 만들어낸 제임스 와트(James Watt)회사의 기술자중 한사람인 영국의 윌리암 머독은 구리로 만든 증기엔진을 달고, 길이가 48cm인 3륜 소형 증기차를 성공적으로 제작 하였다.
1785년 존 휫치(John Fitch)가 뉴저지에서 증기추진 보트를 발명하고 (1791년 특허 획득), 다음해인 1786년 스팀엔진을 만드는 공장을 세워 도로를 달 리는 자동차의 엔진도 함께 생산하려 개발에 착수했지만 자살했다.
1787년 올리브 에반스(Oliver Evans)는 메릴랜드(Maryland)에서 육로에 사용되는 증기 엔진에 대한 특허를 얻었다.
1788년 또 다른 영국인 로버트 포니스는 3륜 증기트랙터를 만들었다
--------------------------------------------------------------------------------
1790
1790년 미국의 하트리는 압축공기의 힘으로 나아가는 차를 이론적으로 발표하였다.
1791년 나탄 리드(Nathan Read)는 고압력 보일러와 개량된 실린더에 대한 특허를 얻고 이들을 자동차에 적용하려는 시도를 시작했다.
1800
세계 최초의 승용차
1803년 광산 기술자인 영국의 리처드 트레비딕(Richard Trevithick)은 제임스 와트의 증기엔진과 머독이 만든 증기 자동차를 본후 사람들이 타고 다닐 수 있는 승용자동차를 만들기로 결심하고,4년간의 연구끝에 지름 3.3m의 거대한 구동바퀴를 갖춘 3륜차를 완성하여 런던 시내에서 8명의 장정을 태우고 13km/h의 속도로 주행 하는데 성공 하였다.
그는 그해 크리스마스 전날 본격적인 로드테스트를 하기 위해 친구3명을 태우고 가던중 작은 시냇물에서 높은 차체로 인한 롤링을 감당하지 못하고 작은 바위를 들이받고 핸들이 부르지며 전복되고 말았다. 사람들을 불러 차를 일으켜 세우는데는 성공 했으나, 그가 선술집에서 잠깐 위스키로 몸을 녹이는 사이 보일러에 남아 있던 불씨가 나무로 만든 차체에 옮겨 붙어 타 버리고 말았다.
1805년 올리버 에반스(Oliver Evans)는 미국에서 파워보트와 육로 수송수단에 얹혀지는 스팀엔진에 대한 특허를 받고 대대적인 판매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 다음해인 1805년 20톤 무게의 스팀엔진을 얹은 육로수송 자동차(Oruktor Amphibolis)로 필라델피아에서 시운전을 하였다.
1807년 스위스에서 아이삭 리바츠(Issac Rivaz)는 원시적인 가스엔진으로 움직이는 손수레를 만들어 특허를 얻었다.
이 엔진은 수소와 산소의 혼합기를 사용한 최초의 내연기관 이었다. 그러나 배기밸브를 수동으로 조작해야 했기 때문에 운전이 어려웠다.
-------------------------------------------------------------------------------
1820
1824년 영국의 사무엘 브라운(Samuel Brown)은 석탄가스를 매개체로 하는 2기통 4마력의 가스기관을 완성해 차에 설치 하였으나 열효율이 낮아 상업적으로는 실패하고 말았다.
1825년 토마스 브랜차드(Thomas Blanchard)는 미국 메사추세츠에서 증기자동차를 만들었다. 이 차는 후진도 가능했다.
1826~1836년 W.핸목이 만든 10대의 증기자동차(버스)가 런던시내와 첼트넘간에서 정기 운행하여 사상 최초의 실용화된 자동차가 되었다.
이 정기버스는 22인승에 평균 속도는 16~22km/h였다.
1827년 프랑스의 O.페쿠르는 차동기어장치를 개발하였다.
1829년 영국인 W.H.제임스는 마차에 보일러를 실은 증기자동차를 만들어 도심을 활보 했다.
1829년 골드워시 거네이(Goldworthy Gurney)는 증기자동차로 런던에서 베스(Bath)까지 여행했다. 여행기간동안 이 자동차는 몇 번의 고장을 일으켰으나, 최초로 가장 먼 거리를 달린 자동차로 기록 되었다.
--------------------------------------------------------------------------------
1830
1832년 영국인 W.H.제임스는 속력에 있어 중요한 3단 변속기어도 고안해 냈다.
1837년 토마스 다벤포트(Thomas Davenport)가 전기모터에 대한 특허를 받았다.
--------------------------------------------------------------------------------
1840
미국의 찰스 굿이어는 1839년 유황처리법의 특허권을 매입하여 그 연구를 추진한 결과, 장기간을 사용해도 탄력성을 잃지 않는 딱딱한 고무를 만드는데 성공 하였다.
1843년 미국의 자동차 산업을 조직화하여 자동차 생산으로 전환시킨 앨버트 A.포드가 탄생 하였다.
1844년 미국 뉴욕의 스튜어트 페리(Stuart Perry)가 테레빈유를 연료로 사용하는 내연기관을 만들어 1844년과 1846년에 특허를 얻었다. 이것은 2행정 방식이었다.
1845년 R.W.톰프스는 공기타이어를 발명하였다.
--------------------------------------------------------------------------------
1850
1851년 미국에서 증기자동차회사가 뉴욕에 세워졌지만 사업은 얼마가지 못했다.
1853년 이탈리아의 에우제니오 발산티(Eugenio Barsanti)와 펠리체 마테우치(Felice Matteucci)가 최초로 가스엔진에 대한 특허를 받았다. 그러나 실제적인 설계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1859년 벨기에의 에치엔느 르노와르(Lenoir)는 석탄 가스와 공기의 혼합 기체가 수평 실린더의 양끝에서 교대로 공급되어 밧데리의 전기 불꽃이 그 연료를 점화한, 그 결과로 발생하는 폭발이 피스톤을 좌우로 움직여 스퍼크가 붙은 큰 플라이휠을 수직으로 회전시키는 2행정 엔진을 제작 하였다. 이 엔진은 18리터에 2마력의 출력을 내었다.
--------------------------------------------------------------------------------
1860
1862년 프랑스의 A.B.로사가 사이클 기관의 원리를 발견 하였다.
최초의 자동차 법규
1865년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은 최초의 자동차 법규인 "적기조례(붉은 깃발법,Red Flag Act)"를 선포 하였다.
이의 내용으로는
① 1대의 자동차에 3인의 운전수를 태운다. 그중 한명은 낮에는 붉은 깃발,밤에는 붉은등을 가지고 55m 앞을 달리면서 자동차가 온다는 것을 알려야 한다
② 최고속도를 6.4km/h 이하로 하고,시가지에서는 3.2km/h로 한다
③ 2톤 단위로 세금을 물고 시경계나 주경계를 넘을 때는 도로세를 내도록 한다
④ 밤에는 촛불이나 가스불을 달고 운행해야 한다.
등으로 되어 있었으며. 이 칙령은 1896년까지 존속하였다.
당시 최고 시속 40km로 달리던 자동차를 6.4km/h의 속도로 제한하므로서 영국의 자동차 산업을 얼어 붙게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1986년 이 법이 폐지되기는 했으나. 이 때는 이미 프랑스등 다른 국가들의 자동차 산업이 본 궤도에 오른 후였다.
1866년 독일의 니콜라스 어거스트 오토(Nikolaus August Otto)가 피스톤 엔진에 대한 특허를 얻었다.
1868년 조셉 라벨(Joseph Ravel)이 페트로늄(석유,가솔린)을 이용해서 보일러를 가열시키는 최초의 증기자동차를 만들었다.
--------------------------------------------------------------------------------
1870
1972년 니콜라스 어거스트 오토(Nikolaus August Otto)는 엔지니어 에우겐 랑겐(Eugen Langen)과 함께 독일가스 엔진공장을 세우고 피스톤 엔진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당시 공장 매니저는 다임러를 세운 고트리브 다임러(Gottlieb Daimler)였다.
최초의 전기자동차
1873년 영국의 로버트 데이비스 존은 납과 아연을 이용한 축전지의 사용하여 전기 4륜 트럭을 개발하였다.
세계 최초의 내연기관
1874년 가을, 오스트리아에서 유대인인 지그프리드 말커스 (Siegfried Marcus)가 4년간의 연구끝에 벤젠을 연료로한 엔진 출력 0.75마력의 자동차를 개발 하였다. 이차는 평균 시속이 6.4km였으며, 스프링,클러치,브레이크까지 장착 했지만 불행히도 배기파이프와 소음기를 발명하지 못해 소음이 심했다.
1876년 니콜라스 어거스트 오토(Nikolaus August Otto)는 4행정 사이클 내연기관을 완성 하였다.
1876년 프랑스의 기술자 마르크스는 처음으로 젯트 캬브레타를 개발하여 가솔린을 연료로 하는 4행정 가솔린 엔진을 개발 하였다.
--------------------------------------------------------------------------------
1880
1885년 오토내연기관연구소의 연구원이었던 독일의 고트리브 다임러(Gottlieb Daimler)는 가솔린을 연료로 하는 가볍고 강력한 기관을 완성하고, 이것을 목제의 2륜차에 탑재하여 사상 최초의 2륜차를 제작하여 각각 특허를 얻었다.
세계 최초의 휘발유 자동차
1885년 독일의 칼.벤츠(Karl Benz)는 가솔린 3륜 자동차를 발명하고 만하임에서 시운전을 하였으며, 그 다음해인 1886년 특허를 획득하였다(특허번로 37,435호). 이 차는 무게 250kg의 자전거타입 삼륜차로 200prm에서 0.85마력의 힘을 내는 1기통 4엔진을 얹고 최고 시속 16km를 냈다. 첫해에 만든 두 대중 한 대는 뮌헨의 도이치 박물관에 아직도 달릴 수 있는 상태로 보관되어 있다.
칼 벤츠는 다임러와 거의 동시에 가솔린 자동차를 발명하였으나 가솔린 엔진 제작에 있어 다임러 보다 앞선 1879년에 이미 제작한 바 있기 때문에 칼 벤츠의 자동차를 최초의 휘발유 자동차로 보는 견해들이 지배적이다.
1886년 고트리브 다임러(Gottlieb Daimler)는 1기통 배기량
250cc 0.8마력의 가솔린엔진을 마차에 장착한 4륜 자동차를 발명하여,아내 엠마의 43번째 생일인 4월26일에 이를 선물 하였는데,앞쪽에는 핸들이 달린 차축을 뒤쪽에는 엔진과 벨트로 연결된 구동축을, 그리고 의자밑에는 작은 자동차 엔진을 장착 했다.
이때 이 자동차의 최고속도는 시속 16km였다.
1886년 니콜라스 오토는 4사이클 엔진에 대한 특허권을 박탈당하게 되고 이것은 프랑스 엔지니어에게 넘어 갔다. 프랑스 엔지니어는 4사이클엔진에 대한 특허를 1862년에 받았다.
최초의 로드 테스트
1888년 8월 칼 벤츠가 독일 뮌헨에서 열렸던 산업박람회을 구경하기 위해 집을 비운 사이, 부인 베르타 링게(자동차의 어머니라 불리움)는 그의 두아들의 간청에 못이겨 자동차를 몰고 100km나 떨어진 외가로 향했다.
험한 시골길을 달리는 동안 자동차는 여기저기 부서져 나갔고, 베르타 링게는 이를 고쳐가며 하루종일 차를 몰아 기름과 먼지투성이가 된채 외가에 도착 했다.
이튿날, 전보로 이 소식을 전해들은 칼 벤츠는 자동차가 다 망가졌으리라는 생각에 화가 머리 끝까지 나서 처가로 달려 갔다. 그러나 생각과는 달리 자동차는 크게 부서지지는 않았으며. 감히 생각지도 못했던 장거리 로드 테스트를 연약한 여자와 아이들이 해냈다는 사실, 그리고 자동차가 치명적인 고장 없이 그 먼거리를 끝까지 달려 주었다는 사실에 용기를 얻었다.
최초의 자동차 메이커
프랑스 변호사이자 사업가였던 에드워드 사라쟁의 미망인인 루이스 사라쟁 부인은 고트리브 다임러에게서 다임러의 엔진을 얹은 자동차를 파리 및 벨기에에서 만들어서 팔 수 있도록 제조판매권을 취득하고, 신형차 한 대를 선물로 받아 600km나 되는 거리를 직접 운전해 파리로 돌아왔다.
그녀는 남편의 친구이자 사업가였던 에밀 르바소(Emile Levassor)와 합작하여 1889년 세계 최초의 자동차 메이커인 파나르 르바소(Panhard Levassor)社를 설립 하고, 에밀과 재혼 하였다.
1903년경 1,500명의 종업원을 거느리며 연간 1,000대 이상의 자동차를 생산하는 세계최대의 회사로 성장 했으나, 2차대전후 경영 악화로 프랑스 시트로엥에 흡수 되었다.
--------------------------------------------------------------------------------
1890
1891년 에밀 르바소는 또 다른 동업자인 레네 파나르(Rene Panhard)와 함께 다임러 엔진을 중앙에 탑재한 모터 스포츠카 생산에 들어 갔으며, 3년후 둥근 핸들뒤에 좌석이 설치된 오늘날 자동차 구조와 유사한 차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1892년 파나르 르바소는 자동차를 대중적으로 팔기 시작했으며, 4열시트인 이 자동차의 당시 가격은 200리라였다.
1893년 뒤리에 형제에 의해 미국 최초의 자동차가 제작되었다.
디젤 엔진의 발명
1894년 독일의 엔지니어인 루돌프 디젤의 4년간의 연구끝에 압축착화기관인 디젤엔진을 발명되었다. 루돌프 디젤은 불꽃이 있어야 시동을 걸 수 있는 휘발유 자동차 엔진의 위험성에 주목하고 보다 안전한 엔진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 했다.
그는 엔진의 기통내에서 공기를 매우 강하게 압축시켜 얻은 높은 열로 기름을 태워 폭발시키는 열엔진을 발명하여 특허를 얻었고, 그의 아내의 권유에 따라 엔진이름을 디젤엔진이라고 하였다.
디젤엔진은 에너지 효율이 높은 경제형 엔진으로 알려지면서 유럽과 미국 사업가들이 몰려 광산공장,선박,기차,건설장비, 트랙터용 엔진으로 날개 돋친 듯 팔렸고, 루돌프 디젤은 백만장자가 되었다.
그러나, 그는 회사 간부들의 부정부패,증기엔진과 휘발유엔진 제조업자들의 질투와 모함등으로 인해 신경쇠약에 걸리게 되고, 1913년 영국에 세워진 디젤엔진공장 준공식에 참석하기 위해 기선을 타고 도버해엽을 건너던중 밤중에 실종되었고, 그로부터 2주후 핀란드의 작은 어선이 북해에 떠 있는 루돌프 디젤의 시체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의 죽음은 타살인지,자살인지 아직도 미스테리로 남아 있다고 한다.
디젤엔진은 자동차용으로는 벤츠가 1922년 트럭에, 1936년 승용차에 각각 처음으로 사용했다.
최초의 자동차 경주대회
1894년 7월 세계 최초의 자동차 경주대회가 프랑스의 『프티 주르날』신문사의 주최로 파리-루앙(126km)에서 개최되었다.
총 102대 신청자중 두 번의 예선에서 81대가 탈락하고 21대만이 본선에 진출 했다.
7월22일 일요일 아침 8시 정각부터 30초 간격으로 파리의 포트마이요가를 출발하여 세느강변을 따라 루앙을 향해 달리기 시작 했다.
예상 했던 것처럼 출발에서부터 해프닝이 벌어 졌는데, 어떤 프랑스의 증기차는 공원 블럭을 모조리 부수고 핸들이 고장나 잔디밭으로 들어가는가 하면, 어떤차는 인도위에 진열된 식탁들을 넘어뜨리고 레스토랑안으로, 어떤차는 바퀴가 빠져 길가던 마차를 들어 받는등 전 코스의 4분의1도 못가서 도중하차하는 차들이 속출했다.
이 경주에서는 드디옹 백작이 운전한 드디옹-부통 증기자동차가 출발한 지 10시간47분만에 평균시속 11km 속도로 1착을 하였다.
그러나 뒤에 트레일러를 달고 달렸다는 이유로 대회 규칙을 위반했다고 해서 실격되고 말았다.
결국 다임러기관을 탑재하고,2등으로 골인한 푸조와 파나르 르바소 차가 공동우승을 차지하며 5천 프랑을 나눠 가지게 되었다.
1894년 독일의 칼 벤츠(Karl Benz)는 새로운 벨로(Velo)라 명명된 4휠 드라이브 차량을 선보였다. 이 차량은 1894년 모두 67대가 생산 되었다.
최초의 자동차쇼
세계 최초의 자동차 쇼는 1894년 12월 11일 파리에서 개최 되었다.
(The Exposition International de Velocipedie et de Locomotion Automobile)
1895년 독일의 벤츠(Karl Benz)가 8인승 승합차를 만들었다.
1895년 프랑스의 파나르 르바소(Panhard Levassor)社는 엔진을 차의 앞쪽에 설치한 최초의 세단형 승용차를 만들었다.
최초의 자동차용 공기 타이어
1895년 프랑스의 앙드레 미쉐린(Andre Michelin)과 에드알드 미쉐린(Edouard Michelin) 형제는 자동차용 공기 타이어를 개발 하였다. 미쉐린은 한 영국 청년이 타고온 공기타이어를 단 자전거를 보고 당시 자동차들이 통고무 타이어를 장착해서 딱딱하고 쿠션이 나쁘다는점에 주목하게 되었다. 그는 곧 자전거 타이어를 본 떠서 공기 튜브식 자동차 타이어를 만들었다.
미쉐린은 타이어를 푸조차를 개조한 "에크레르"에 끼워서 때마침 열린 파리-보르드간 560km 자동차 경주에 출전 했으나, 무려 22번이나 타이어가 찢어져 나중에는 할 수 없이 풀잎을 채워 넣고 달렸다. 그러나 자동차의 쿠션은 그렇게 부드러울 수 없었다.
이후 1년뒤 공기압타이어를 단 최초의 양산차 "보아추레트"가 등장하며 미쉐린의 공기주입식 타이어는 급속히 확산되기 시작 했다. 당시의 타이어 크기는 지금의 모터 사이클 바퀴와 비슷한 정도여서 직경이 65mm에 불과 했다.
1896년 프랑스의 푸조 자동차사가 설립되어 에밀델라헤이가 최초의 차를 발표 하였다.
1897년 베를린에서 국제모터쇼(International Motor Show (IAA), 프랑크푸르트의 전신)가 개최되었다.
이어 1898년 6월 15일에는 프랑스 파리 살롱이 개최되었다.
1898년 르노형제가 최초의 차를 제작했는데 공냉 단기통 1.75마력의 디온 엔진을 부착 했다.
1899년 프랑스의 르노社,이탈리아의 피아트社가 설립 되었다.
세계 최초로 시속 100km 돌파
1899년 4월 벨기에의 자동차 매니아였던 까뮈 제나치는 로켓모양의 전기자동차(자메 콘탄트)를 완성하고, 파리 교외의 앗세루 공터에서 당시 최고시속 64km를 자랑하던 영국 귀족 사세로프 루바경의 전기자동차와 스피드 대결을 벌였다.
루바경의 기록은 69km였으며, 까뮈는 3km의 자갈길 코스에서 최고속도 103km를 기록하며 세계 최초로 100km 돌파 기록을 세웠다.
1900
1900년 다임러가 발표한 최초의 메르세데스차는 벌집모양의 라디에이터,둥근핸들,반타원형 스프링등을 사용하여 현재에 이르는 자동차의 근본적인 형태를 확립하였다.
최초의 자동차 양산제조업체
R.E.올스는 1901년 유명한 올즈모빌(커브드 대쉬,curved dash)을 425대 제작하여 세계최초의 자동차 양산제조업체가 되었다.
세계에서 처음으로 한 모델의 자동차를 많이 만들어낸 랜섬 올스는 미국 최고의 자동차 회사인 제너럴모터스의 기초를 닦아 놓은 엔지니어였다. 랜섬 올스는 20세에 자기집 창고에서 엔진을 만들었고, 이로부터 10년후인 1896년 드디어 첫 자동차를 만들어 냈다.
2마력에 최고시속 20km를 낼 수 있는 차를 만들었지만 공장을 세울 돈이 없었던 그는 다행히도 그의 차에 반한 한 사업가의 도움으로 올즈모빌 자동차 회사를 세웠다.
그러나, 첫 출고도 하기전인 1901년 공장 직원의 실수로 화재가 나서 공장은 물론 설계도면까지 모두 태워 버렸다. 회사 직원들이 합심하여 다시 공장을 세우고, 화재 당시 가까스로 구해낸 자동차 한 대를 이용해 다시 만들어 낸 차가 바로 유모차 모양으로 매우 단순하게 생긴 커브드 대쉬였다.
이 차는 파격적으로 싼 값인 650달러에 팔기로 했으나 너무 단조로와 보이는 디자인 때문에 잘 팔리지 않았다. 그래서 판매를 촉진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가 이 차로 미국 최초의 장거리 자동차 여행이라는 이벤트를 계획하였다.
디트로이트에서 뉴욕까지 장장 1,400km에 이르는 거리를 7일만에 완주함으로써 미국인들을 놀라게 했고, 이 뉴스가 신문지상에 보도되면서 일주일만에 2천여대가 팔렸다.
올스는 판매에 더욱 박차를 가하기 위하여 1905년초 미대륙 횡단에 도전하여 2대의 커브드 대쉬로 뉴욕을 출발 동부 포트랜드항까지를 44일만에 거뜬히 완주함으로서 그 인기는 절정에 이르었다.
최초의 쇼크 업소버
최초의 쇽업소버는 프랑스의 스루폴트라는 자전거광이 바퀴가 계속 위아래로 튀는 것을 막기 위해 만들어 달았던
마찰형 쇽업소버(Friction Device)였다. 그는 이 자전거를 타고 1898년에 열렸던 베르사이유 자전거 경주에서 우승했다.
이를 본 미국의 레이스광 에드워드 하트포드가 스루폴트와 손잡고 자전거용 쇼크 업소버를 개량하여 다음해 자신의 자가용 올즈모빌에 달아 큰 효과를 보았다. 이 쇼크 업소버는 한쌍의 레버와 회전축(피벗 포인트)에 위한 고무밴드로 구성되어 레버암 한쪽은 프레임에 달려있고 다른 한쪽은 판 스프링에 볼트로 죄어져 설치되었다. 이것이 최초의 자동차 쇽업소버였다. 하트포드는 미국 뉴저지주에 공장을
세우고 스루폴트-하트포드장치라고 명명된 쇽업소버를 대량으로 만들어 당시 부러시 자동차회사에 납품해 '쿠션이 엄청나게 좋은 부러시차'로 광고되며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1901년 부가티의 최초 모델인 "디트리히 모델"이 제작되었다.
최초의 4륜 구동 자동차
1902년 폴란드에서 마차를 만들던 스파이커 형제에 의해 세계최초의 4륜 구동 자동차가 만들어 졌다.
그당시 독일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산을 오르는 산악 자동차 경주가 유행하고 있었는데, 스파이커 형제는 높은산을 빠르게 오르기 위해서는 두바퀴 굴림방식의 차가 힘이 약하는 것을 알고,1년의 연구끝에 벨기에의 기술과 벤츠의 노하우가 가미된 4륜 구동의 6기통 800cc 65마력의 자동차를 발명하여 1903년 프랑스에서 열였던 경주에 출전해 우승을 했다.
1906년 이 소문을 들은 영국의 런던택시회사가 10대를 구입해 택시로 사용한 것이 결정적으로 호평을 받는 계기가 되었다.
1907년 역사상 처음으로 동서양을 달리는 16,000km의 북경-파리간 경주에서 스파이커는 4륜 구동차를 가지고 출전하여 3등을 했다.
1903년 미국의 포드社, 뷰익.캐딜락社가 창업을 하였다.
최초의 튜브레스 타이어
1903년 미국의 굿이어사는 최초의 튜브레스 타이어를 개발 하였다.
최초의 윈도우 와이퍼
윈도우 와이퍼는 1903년 평범한 가정주부인 마리 앤더슨 부인에 의해 처음 발명되었는데, 미국 엘라바마주 버밍험에 살던 마리 앤더슨 부인은 비가 퍼붓는날 전차를 탔다가 몰아치는 빗줄기에 쩔쩔매는 전차 운전수를 보고 '비를 닦아주는 장치가 있다면 얼마나 편할까'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마당을 쓸다가 손에 쥔 빗자루를 보고 아이디어를 얻어 몇 달간의 연구끝에 마침내 지금의 형태와 비슷한 최초의 '수동식 윈도우 와이퍼'를 발명, 특허를 받았다.
그러나, 앤더슨 부인이 만든 윈도우 와이퍼는 빗자루를 이용한 간단한 도구로 차 내에서 손으로 돌려 닦는 그야말로 완전 수동식이었고, 실용화 하는데에는 실패했다.
그 후,1919년에 포드자동차의 한 엔지니어가 이것을 처음으로 실용화시켰지만 운전자가 직접 와이퍼를 손으로 돌리거나 조수석에 탄 사람이 레버를 움직여 주는 방식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
1906년 미국의 자동차 생산은 승용차가 3만대, 트럭이 8백대로 제법 많은수의 자동차를 생산하게 되었다.
최초의 그랑프리 레이스
1906년 프랑스에서는 최초의 그랑프리 레이스가 6월26일과 27일 이틀에 걸쳐 개최되어, 13리터의 르노를 타고 1,255km나 되는 힘든 코스를 평균 시속 101km 이상의 속도로 달린 시츠가 우승 했다.
1908년 미국의 포드社는 T-모델의 생산을 개시 하였다.
이 차는 간결하고 신뢰성이 높은 설계와 새로운 합금강의 사용으로 견고할뿐 아니라 양산방식 때문에 그 값이 저렴하여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으며, 첫해에 6,870대, 그 다음해에는 1만대를 판매 하였다.
1908년 10월1일 첫 출고부터 27년 5월26일 생산중지일까지의 18년반 사이에 15,007,033대를 생산 하였다.
1908년 미국의 사업가 윌리엄 듀란트는 뷰익, 캐딜락, 올즈모빌, 시보레 등의 자동차 회사를 합병하여 G.M(General Motors)을 설립하였다.
1909년 프랑스의 부가티가 설립되었다.
--------------------------------------------------------------------------------
1910
최초의 자동 시동기
1911년 미국 캐딜락사의 찰스 케터링은 최초로 자동 시동기를 개발 하였다. 자동 시동기가 생기게된 일화는 다음과 같다.
1907년 겨울 한 여인이 캐딜락을 몰고 가다가 디트로이트의 어느 다리에서 엔진이 꺼져 낭패를 겪고 있었다.
시동기를 돌려 시동을 걸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 때 어떤 남자가 차를 몰고 그 옆을 자나다 여인을 돕기 위해 차에서 내렸다. 그 남자가 시동기 쇠막대를 힘차게 돌 리는 순간 엔진이 역회전하면서 쇠막대기가 튀어나와 그남자의 머리를 강타했고, 그로 인해 그 남자는 며칠후 숨을 거두었다.
그 남자가 다름아닌 캐딜락자동차회사의 사장 핸리 릴랜드의 절친한 친구 였다.
핸리 릴랜드는 자기가 만든차 때문에 친구가 죽었다는 죄책감에 빠졌으나 얼마후 엔진니어들에게 쇠막대 없이 시동을 걸 수 있는 방법을 최대한 빨리 찾아내라고 엄명을 내렸다.
캐딜락의 엔지니어들은 다방면으로 노력했으나 그 방법을 찾을 수 없자 결국 당시 전기의 대가였던 찰 수 케더링에게 부탁 하였고, 1911년 드디어 전기로 시동이 걸리는 자동 시동기를 발명하게 되었다.
1913년 미국의 닷지가 설립되었다.
1913년 포드사는 자동차 생산 방식에 일대변혁을 몰고온 컨베이어시스템을 도입, 대량생산을 개시 하였다.
1917년 링컨이 설립되었다.
--------------------------------------------------------------------------------
1920
자동차가 대통령 취임식에 쓰임
이무렵 미국에서는 9백만명의 미국인이 차를 운전하고 있었으며, 19만대의 승용차가 미국에서 생산 되었다.
1921년 3월 4일 워렌 G.하딩은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자동차로 취임식에 나섰다.
일본 마쓰다 자동차의 전신인 동양콜크공업이 창립되었다.
미국 크라이슬러가 창립되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자동차 제조회사
1926년 독일의 다임러社와 벤츠社가 합병하여 다임러-벤츠社를 설립 하였다. 이회사는 오늘날까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자동차 제조회사로 남아있다.
최초의 카 히터
1926년 미국의 도널드슨은 우연한 사건을 통해 히터를 만들어 내게 된다. 그는 고장난 엔진을 수리하다가 냉각수 호스가 터져서 뜨거운 증기가 뿜어져 나오는 바람에 손에 화상을 입었다.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어 만들어 낸 것이 바로 오늘날의 온수 히터인것이다. 1936년에는 미국 패커드사의 제임스 패커드가 소련의 스탈린이 주문한 차량에 시베리아의 매서운 추위를 막기 위해 처음으로 전기 히터를 개발 창작하었다.
최초의 자동변속기
1925년 독일 베를린의 엔지니어였던 휀팅거가 개발하여, 1936년부터 2년간 벤츠차에 시험 장착하였으나 양산에는 실패 했으며, 1937년 미국 GM 뷰익차에 탑재하기 시작하여, 1949년 GM 시보레가 실용화 하였다.
1926년 미국의 크라이슬러가 설립되었다.
1926년 일본의 닷도(DAT)가 설립되었다.
1927년 미국의 포드자동차는 포드A형을 생산하기 시작하였다.
최초의 자동 와이퍼
1929년 미국 포드 링컨에 진공 모터식으로 된 자동 와이퍼를 장착하였으나, 반자동이었고 시동이 꺼지면 압축공기를 만들지 못해 작동되지 않는 단점이 있었다.
지금의 전기모터식 와이퍼가 탄생된 것은 1936년으로 GM의 기술진이 엔진이 꺼져도 배터리 전지로 움직이는 와이퍼를 캐딜락에 처음으로 적용시켜 큰 인기를 모았으며 1950년에는 윈도 워셔가 개발되어 차량에 장착되었다.
--------------------------------------------------------------------------------
1930
1931년 미국이 자동차 생산이 5천만대를 돌파하였다.
1933년 일본의 도요타는 모델AA형을 개발,생산하였다.
1934년 프랑스 시트로엥은 세계 최초로 앞바퀴 굴림차를 본격적으로 생산하기 시작했다.
1937년 일본의 도요타 자동차공업이 설립되었다.
도요타의 실실적인 탄생은 1933년 도요타 자동직기 제작소내에 신설되었던 "도요타 자동직기제작소내 자동차부"였다.
--------------------------------------------------------------------------------
1940
1940년 육군 대위 로버트 G.하우어는 소형 경량으로 1/4톤 정도의 4륜 군용 만능차를 설계 하였고, 이것이 다듬어져 "지프"로 세계에 알려 졌다.
1948년 독일의 폴크스바겐이 비틀의 본격적인 생산을 개시하였다. 그러나, 실제로 이차는 2차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직전인 1939년에 이미 개발이 완료된 상태였다.
(1978년까지 2천만대 생산)
--------------------------------------------------------------------------------
1950
1950년 년간 세계 자동차생산이 1천만대를 돌파 하였다.
최초의 무단변속기
1959년 네델란드의 "다프(DAF)"라는 자동차회사를 설립한 반도네 형제중 형인 허버트는 발명가로서 1956년 "바이오메틱"이라는 벨트 구동식 자동변속기를 발명하여 트럭에 장착, 시험운전에 성공하였고, 1959년 2기통 750cc 30 마력의 엔진을 얹은 "다프750"에 CVT를 달아 양산을 시작 하였다.
--------------------------------------------------------------------------------
1970
1971년 영국의 롤스로이스가 파산되어 영국 정부가 이를 국유화 하였다.
크라이슬러는 일본의 미쯔비시 자동차공업과 제휴하여 크라이슬러 제작방식에 의한 콘택트의 닷지 콜트 이코노믹카를 일본에서 제작 하였다.
1974년 세계 자동차 보유대수가 3억대를 돌파 하였다.
1977년 년간 세계 자동차 생산이 4천만대를 돌파 하였다.
--------------------------------------------------------------------------------
1980
1986년 세계 자동차 보유대수가 5억대를 돌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