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신학 작업을 하면서 학문의 특성상 빠져들기 쉬운 위험요소들이 적지 않다. 그것[환원주의와 신조주의]은 조직신학의 한계를 인식하지 못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조직신학의 역할 가운데 하나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더욱 돈독히 만들고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하나님에게 헌신하도록 하는 데 있다. 그런데 기독교신앙을 지나치게 단순화하거나 객관화해서 신앙의 헌신을 교리로 대체하는 것은 일종의 ‘환원주의’(reductionism)의 함정에 빠지는 것이다. 기독교신앙을 단순히 학문의 대상으로 삼거나 생명 현상을 지나치게 과학적 방법으로 접근하려는 것도 마찬가지다. 과학주의나 지성주의도 큰 틀에서 보면 환원주의에 속한다. 이런 환원주의는 기독교교리의 부작용으로도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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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신학체계는 ‘일의적’(univocal)이지 않고 특성상 다양한 관점을 반영한다. 그런데도 실제 상황에서 보면 하나의 특정한 조직신학체계를 지나치게 절대화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것은 “하나의 신학 체계를 진리 자체와 혼동”하기 때문이다. 이는 신앙고백이 ‘신조주의’ (creedalism)가 될 때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여기서 신조주의란 특정의 신앙고백이 획일적이 되거나 다른 사람의 신앙을 통제하는 강제성을 띠면서 절대화되는 것을 의미한다. 조직신학의 권위가 필요 이상으로 높아지면 신앙고백 차원을 넘어서서 신조주의로 빠지게 될 가능성이 높다. 신조주의는 다른 말로 ‘교의주의’(dogmatism)와도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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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신학이 신조주의에 빠지면 그것은 특정 교파나 교리를 옹호하는 수단으로 전락한다. 그렇게 마련된 특정 신학체계는 난공불락의 성스러운 전통이 되어 선험적 진리의 잣대로 남용되기 마련이다. 신학의 목적은 오로지 순수하게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어야 한다.
([회중주체적 조직신학], 53-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