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나리에게.
안녕, 이렇게 오랜만에 쓰는 편지인데, 그 주제가 다소 무거운지라 미안.
하지만 이해하겠지? 그만큼 내 인생에 전환점을 가져다 주었던 사건이니까.
나는 이들에 대해 자세히 다루지 않을 수 없어. 어떤 보상을, 해답을 바라는 것이 아냐.
다만 미치도록 마이너스 감정을 자아내게 하는 그 '이름'에 대해 초연함을 가지고 싶을 뿐이야.
언제부터 나는 이런 인간이 되었을까 싶어. 내게 이런 면도 있었나 놀라울 때도 있어.
그들을 용서하기 힘들었고, 그들과 무관계가 되는 것이 괴로웠어.
하지만 무엇보다 힘들었던 것은 이 모든 일을 털어놓을 대상이 없었다는 것이었어.
내심 그들이 물어봐주길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몰라.
'어째서 네비게이토를 나왔니? 무슨 일이 있었던 거니?'
물론 난 그 모든 질문에 답변할 준비가 되어 있어. 슬프게도 말야.
이런 내 성향은 고등학생일 때부터 짙게 드러나 있었다고 생각해.
뭐든 잊기 힘들어하고, 상대방의 대응을 마음에 담고,
내 자신의 잘못을 부인함으로써 편해지려고 하는 성향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정도는 아니었기에 나로써도 당황스러워. 어째서 이렇게 되버렸을까!
난 무조건적인 피해자로 살고 싶지 않아.
나도 잘못했다는 점을 인식하면서, 그들을 향한 책임전가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하지만 일이 그렇게 간단한 것일까?
내 신세에 대한 넋두리를 하기 이전, 조직의 이념으로써 개인의 정신에 심각한 상처를 준다는 점.
그것 하나만으로 그 조직이 비판받고 비난받을 이유는 충분한 것이 아닐까?
난 요새 말씀을 읽지 않아. 기도도 하지 않아. 물론 교회도 가지 않지.
그 모든 것이 귀찮아졌어. 어떻게 생각해?
네비게이토라는 조직 때문에 내 자신을 이런 수렁에 내던지는 것은 분명 어리석은 일이겠지.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의욕이 없어. 네비게이토를 떠난 다음부터 난 길 잃은 거지가 된 것 같아.
물론 네비게이토가 옳다고 생각하지 않아! 분명 그 곳은 잘못되었어.
자신의 조직에서가 아니면 진정한 예수님의 제자로 살 수 없다는 것처럼,
하나님에게로 향한 한 개인의 순수한 믿음을 일그러뜨리고, 전체에 순응시키고, 세뇌시키는걸.
그런 곳이 잘못되지 않았다면 무엇을 잘못됐다 말할까.
내가 길을 잃었다, 라고 생각한 것은...
그간 그들의 조직 안에서 쌓아왔던 잘못된 사고방식을 정리하고,
나라는 개인이 가질 수 있는 특징적이며 본질적인 믿음으로 삶의 방향을 정리하는 것이
너무나 힘들고 막막한 일임을 지각하기 때문이야.
네비게이토에 대한 반작용으로 일반 지역교회에 대한 호감이 높아졌지만,
역시 그것이 내 신앙에 중심으로 작용할 순 없는 노릇이겠지.
솔직히 말해볼까? 난 네비게이토가 해체되었으면 좋겠어.
많은 탈퇴자들을 소위 '병신'으로 만드는 못된 가르침이 와해되었으면 좋겠어.
리더라는 이름으로 하위자들을 교묘히 조종하고, 그 사고의 유연성을 잃게 만드는...
일종의 심리적 범죄를 저지르는 자들에게 마땅한 단죄가 이루어졌으면 좋겠어.
하지만 이것은 예수님의 가르침과 어긋나는 일일지도 몰라.
개인의 힘으로 단죄니 어쩌니 하는 소리는,
내 죄에 대한 간과가 있을 무렵부터 당당해지기 마련이니까.
현재 내 삶에 말씀도, 기도도, 교회 활동도 없다고 해서 내가 무신론자가 되었다고는 생각지 말아줘!
무신론자가 아니기 때문에 난 괴로워하고 있는 거야.
이대로라면 난 세상이 좋아 그 곳을 떠난 꼴이 될텐데.
맹세코 그것이 아냐. 난 네비게이토를 떠나야겠다는 생각조차 한 일이 없어.
(결과적으론 떠난 것이 잘되었다고 생각되지만 말야.)
횡설수설, 주제가 뭔지 알 수 없는 글이 되었지만... 난 그냥 네가 알아주었으면 해.
내 네비게이토에 대한 분노를. 하지만 그 분노에서 누구보다 벗어나고 싶은 자가 나라는 것을.
그들이 나쁘다고 외쳐서 공감받으면 응어리가 풀릴 거라 생각했어.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지.
이 개운치 못한 마음은 하나님이라는 존재가 내게 보내는 신호인 걸까?
이번 일을 겪으면서, 사람은 어쩌면 아주 간단히 살인을 할 수 있는 존재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
난 실제... 내 리더였던 사람을 죽여버리고 싶다는 생각까지 품었었어.
그런 사악한 존재는 세상에 더 살아봤자 해만 끼칠 거라는 생각이 다분했어.
사영리로 복음을 들었을 때, 나는 마음으로 짓는 죄가 하나님 앞에 죄가 되리라고는 생각지 않았어.
실제 행동으로 옮기지만 않으면 무슨 생각을 하든, 그것은 죄가 아니라고 생각했어.
그러나 인간이라는 존재는 너무나 연약해. 절제력을 잃는 것은 한순간이야.
울컥하면 그 순간 사람을 살해할 수도 있고, 잠깐의 욕심으로 끔찍한 일을 저지를 수도 있지!
마음과 행동을 가르는 울타리가 그토록 허술한 존재이기 때문에,
신이 말씀하신 그 '마음의 죄'에 대해서는 가슴이 사무치도록 공감해.
내가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이유는,
그 뒤에 따라올 대가를 감당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지 내가 착해서 그런 게 아니라는 거야.
나도 죄인, 그들도 죄인. 때문에 난 그들에게 돌을 던져선 안되는 게 아닐까?
그래... 이것이 내 안에 계신(계신지 어쩐지 확신할 수 없지만...) 성령님의 신호라면,
나는 그 신호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거겠지.
앞으로 1년 후, 난 이 문제에 대해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이 답답함과 괴로움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을까?
쇼생크 탈출이라는 영화를 봤니?
주인공이 그 감옥을 탈출하는데 성공한 후, 빗속에서 환희로 울부짖었던 장면을 기억해.
네비게이토라는 내 일생의 블루로 남을 커다란 웅덩이를 탈출하고 나면,
나 역시 환희로 울부짖을지 몰라. 내가 드디어 그 감옥을 빠져나왔노라고. 자유해졌노라고.
답장을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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