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25년 동안 뮤지션으로 산다는 것. 보통 사람으로선, 아니 웬만한 연예인이라도 쉽지 않은 일이다. 한창 시절 그대로의 외모에, 농익은 실력, 그리고 단란한 가정까지 3박자를 두루 갖춘 이승철은 오늘도 뮤지션이다. 어떻게 뭐 하나 부족한 게 없느냐고 물으니, 부인과 사랑스러운 두 딸 진이, 원이에게 그 공을 돌린다. 잘 준비된 시상식 멘트처럼 전형적으로. 하지만 까칠한 뮤지션의 가면을 벗은 그의 말은 진심이다.
#1 철없던 남자 휴지통에 버리다
아내 박현정과의 결혼, 그리고 두 딸이 생략된 인생이라면 45세 이승철은 어떤 모습일까. 아니다, 과거의 그가 어떤 형상이었는지 현재에 묻혀 가물거린다. 마치 롤러코스터에서 방금 내린 사람 같은, 음악의 클라이맥스 같은 인생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다 알아버린 그는 지금 사람 냄새 나는 생활에 집중하고 있다.
한밤을 꼬박 지난 유흥, 남자 간의 과장된 우정, 일탈이란 표현이 무색할 만큼 그의 24시간은 바른생활로 채워진다. ‘가족’이란 테두리 안에서 느낄 수 있는 나른한 풍요로움을 남들보다 늦게 맛봐서일까, 아니면 젊을 때 놀아본 사람이 결혼하고 나면 더 안정적으로 잘 산다는 속설이 맞는 것일까. 속담도 명언도 아닌 말이 구전되는 걸 보면 맞는 구석이 있다 싶은데, 그 공식이 이승철에게도 통용되는 듯하다. 음악 작업과 공연 이외의 시간은 가족과 붙어 있고, 일 년에 두 번 이상 가족 여행을 계획하며, 몇 번 해보면 잔손치레에 귀찮을 법도 한 요리도 가족을 위해서라면 마다하지 않는다.
영화에나 등장하는 모범 아빠의 전형이다. 본인 스스로도 놀 만큼 놀아봤다는 그의 인생은 어린 시절부터 음악에 취해 지냈다고 말하는 여느 뮤지션들과 다르지 않다. 한때의 호기 어린 방황으로 5년간 방송 정지를 당하는 등 영영 나락으로 추락할 뻔한 뼈 아픈 경험, 여기에 세월이 주는 노련함이 더해져 이승철이라는 땅은 더욱 단단하게 굳어졌다. 방송이건 인터뷰 자리건 상관없이 두 딸 진이와 원이, 부인 자랑에 입에 침이 마를 새가 없는데, 이 모습 또한 견고해진 이승철의 본질에 가깝다. 마치 녹음테이프를 틀어놓은 것처럼, ‘내게 가족은 100%다, 결혼 후 음악적 감성이 더욱 짙어졌다, 아내는 인생의 매니저다, 그저 지금만 같으라고 기도한다, 셋째도 빨리 낳겠다, 그것도 쌍둥이로’ 등 자칫 손발이 오그라들 멘트를 카메라와 기자 앞에서 서슴없이 툭툭 던지는 그는 세월이 주는 ‘노련함’과 ‘유연함’을 선물 받은 럭키 가이라는 생각이 든다. 매스컴에 비쳐지는 연예인 모습이 100%라 생각하는 순진한 시선을 지닌 사람들이 사라져서 하는 말인데, 실제 지인들도 이런 그의 변화를 그야말로 ‘개.과.천.선’이라 칭한다. 심지어 10년 지기인 그의 매니저도 ‘이건 인간 승리다’라며 혀를 내두를 정도니 그의 인생 패턴과 성향이 180도 달라진 것은 가히 리얼리티 프로그램보다 드라마틱해 보인다. 남자, 아니 이승철에게 나이가 든다는 것은 긍정적인 힘으로 작용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2 라이브 황제 나니까 한다
과묵한 성격도 아닌데 그동안 참 많이 참고 지낸 것 같다. 그룹 부활 해체 후 느낀 심경을 최근에야 고백한 것은 말을 아끼는 그의 A형 성향에 기인한다. 하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한 세월을 공유한 사람들에 대한 마지막 배려이다.
“부활이 15주년 됐으니까 기념 앨범 하나 냅시다 해서 낸 게 ‘네버 엔딩 스토리’였다. 그리고 그 이후 부활이란 명칭은 일절 쓰지 않기로 하고 헤어졌다. 그런데 내가 외국에 간 사이 자기들끼리 부활이란 이름으로 대형 음반사와 계약을 했더라. 그렇게 해놓고 이제 와서 ‘승철아 그립다’고 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지금까지 입 다물고 있던 이유는 상대해봤자 손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몇 달 전 한 인터뷰에서 부활 해체 이유를 거론한 후, 지금까지 불편한 관계로 지내고 있는 김태원씨와 연락이 닿았는지 궁금했다. “연락은 물론 안 왔지. 연락해봤자 한마디로 자기가 쪽 팔린 거지 뭐.” 이렇게 거친 화법으로 한 마디를 툭 내뱉는데, 그들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해석되는 건 무슨 경우일까. 일희일비하지 않는 그의 아우라는 무림지존 고수의 그것처럼 느껴진다.
그는 크다면 크게 생각할 수 있는 일을 묻어두고, 자신의 음악에 집중했다. 그 결과 ‘25주년’이란 간판을 달았다.
“전국을 돌면서 공연한 것이 벌써 10년째이다.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꿈꾸는 음악 인생이 전국 투어인 것은 분명하지. 하지만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 넓은 공연장을 내 음악 들으러 온 사람들로 채워야 하고, 그래야 경제적으로도 손해가 나지 않고, 그 경제력이 바탕이 되어야 다시 수많은 사람이 모여 공연을 준비할 수 있고. 이런 연결 고리를 만들 수 있는 뮤지션이 대한민국에 몇이나 될 것 같나. 그게 가능한 사람이 바로 나다. 라이브 공연을 이 정도 스케일로 장기간 유지하는 건 뮤지션이라도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절대 아니다.” 음악적인 자신감이 허풍처럼 들리지 않는다.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할 수 있는 건 그간 보여준 그의 음악에 대한 신뢰 때문이리라.
#3 팔로윙과 팔로워 모두 능숙하다
액면가로 그는 전형적인 옛날 사람이다. 옛날 뮤지션이다. 하지만 감이 떨어졌거나 한물간 연예인은 아닌 듯하다. 그가 하는 한 마디 한 마디에 소녀시대나 2PM 못지않은 시대적인 키치함이 묻어나니 말이다. “기자들 사이에 내가 까칠한 연예인 중 하나라고? 금시초문인데. 난 종종 기자들과 친구 먹는다. 지금도 전화하면 바로 나와줄 기자들이 60명은 된다. 연예인 중에는 기자를 적대시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나는 그런 타입이 아니다. 인터뷰할 때도 항상 밥이나 술을 먹는다. 밥을 같이 먹는다는 것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 보이지 않는 끈을 만드는 중요한 의식이라 믿는다. 안 좋은 일이 있을 때 이를 보도한 기자에게 앙심을 품지도 않는다. 나를 대중에게 잊히지 않는 뮤지션으로 만드는 고마운 메신저이기도 하니까. 개중에 어린 신입 기자들이 이상한 말을 많이 써놓기도 하는데, 그럴 때 난 적극적으로 대처한다. 직접 신문사에 전화해서 그 기자를 바꿔달라 하고, 그러곤 나오라 해서 일단 밥부터 같이 먹는다. 그러면 그들도 결국 친구가 되고 만다. 난 그렇게 기자들도 내 인생에 팔로윙을 해.”
대통령부터 정몽준, 김홍신, 패티김, 소녀시대까지 예상치 못한 인맥의 소유자로 사는 데는 그만한 노력과 이유가 존재한다. 하지만 영향력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관리하기 위해 머리를 굴리는 여우 스타일은 못 된다. 더욱이 뭇사람들에게 두루두루 친화력을 발휘할 만큼 수더분한 타입도 분명 아니다. 하지만 사람 귀하고 고마운 줄 아는 인격의 소유자다. 그는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란 유행어처럼 조금 잘했다고 기억해주고, 조금 잘못했다고 내치는 성향을 싫어한다. 그래서인지 그를 지지하는 조력자가 많다. 대한민국에 몇 안 되는 롱런 뮤지션의 명함을 지닐 수 있는 이유 중 이런 팔로윙과 팔로워 능력도 한몫 했으리라. 그의 인간적인 매력은 음악적 재능에 버금가는 가치를 지니고 있으므로.
Q 대한민국 여성지 최초의 남자 표지모델이다 A 어느 분야든지 고정된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무언가를 시도한다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딸에게 아빠와 함께한 멋진 한 편의 기록을 선물하고 싶어 어렵게 결정했다. <우먼센스> 역시 40대 중년남인 나와 19개월 된 딸 원이를 표지모델로 결정하기까지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남들이 하지 않은 새로운 일을 한다는 건 그것이 무엇이든 언제나 즐겁고 흥분된다.
Q 원이와 함께하는 공식적인 첫 촬영은 어땠나 A 특별했다. 딸에게 특별한 선물을 주고 싶었다. 인생에 있어 멋진 한 편의 기록이랄까, 그런 걸 남겨주고 싶었다. 평소에도 원이는 아빠 노래만 나오면 따라 부르고 춤춘다. 공연장에서는 ‘이승철 파이팅!’도 외친다. 노래가 끝나면 허리를 깊이 숙여 인사도 한다. 특히 ‘손톱이 빠져서’의 열혈 팬이다. 촬영 내내 이 노래를 리와인드했는데, 원이도 자연스레 긴장과 경계를 풀고 놀이하듯 촬영을 했다. 촬영장 분위기도 좋았고 결과물도 만족스럽다. 나보다 원이가 귀엽게 잘 나와서 더 기분이 좋다.
Q 25주년 기념으로 전국 투어 콘서트와 스페셜 앨범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기획 중이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25주년인가. 20주년도 있고, 30주년도 있는데 A 지금이 내 인생의 정점이다. 이전의 삶과 비교해보았을 때, 안정되고 편안하다. 그래서인지 무슨 일을 해도 잘된다. 인생의 터닝 포인트라 생각되는 시점과 데뷔 25주년이 딱 맞물렸고, 그래서 일을 벌였다. 터닝 포인트의 계기는 지금 아내와의 결혼, 그리고 아이의 탄생이다.
Q 기념비적인 계획이라도 있나 A 내 공연을 보러 온 모든 사람이 ‘파티’에 온 것처럼 즐길 수 있도록 해줄 계획이다. 요즘 콘서트들이 좀 딱딱하지 않나. 그런 형식에서 벗어나 새롭게 음악을 즐기길 권한다. 와인도 한 잔 마시면서 음악에 나를 맡기고, 그런 걸 사람들이 원하지 않나. 음료수 한 병도 반입이 안 되는 공연장의 통상적인 규정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종전에 국내에서 보지 못한 자유로운 형식의 공연이 뭔지 보여주겠다.
Q 25주년 스페셜 앨범은 마무리돼가나. 후배 가수의 헌정곡도 많다고 들었다 A 일단 나의 신곡 2곡 정도가 들어갈 것이고, 음악적인 색깔이 다른 후배들이 각기 나의 예전 노래들을 새롭게 해석해 한 곡씩 불렀다. 김태우가 ‘희야’, 소녀시대가 ‘소녀시대’, 김범수가 ‘떠나지마’, 박진영이 ‘인연’, 아이비가 ‘긴 하루’를 선곡했다, 피아니스트 김정원도 ‘안녕이라고 말하지마’를 피아노 연주곡으로 싣는다.
Q 각기 다른 음악적 뉘앙스를 지닌 가수들의 대동이라니. 앨범이 재미있고 화려할 것 같다 A 그치. 그게 포인트다. 정말 환상적인 조합이지 않나.
Q 후배들을 끌어들인 것이 자칫 상업적으로 보일 수 있겠다 A 글쎄. 이번 프로젝트는 그야말로 후배들의 ‘헌정’이다. 소문을 듣고 먼저 연락한 후배도 있고, 부르고 싶은 곡도 본인들이 직접 골랐다. 그래도 짜고 치는 고스톱 같나? 상업성은 분명 있겠지만 상업성을 미리 염두에 두고 전략적으로 시작한 작업은 아니다.
Q 대한민국에서 뮤지션으로 산다는 건 힘든 일 아닌가. 그것도 25년 동안 A 올림픽에서 우리나라 선수들이 금메달을 많이 따는 것도 모두 열악한 환경에서 나온 결과물이 아닌가. 사실 그렇게 우리나라가 음악을 하기 힘든 악조건이라 생각하지도 않는다. 음악보다 예능을 먼저 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긴 하지만. 뭐 이런 것도 다 나쁜 건 아니지 않나. 불경기다 뭐다 얘기들 하지만 걸그룹 문화도 형성되고, 음악도 계속 만들어지고. 다 그렇게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살아가는 거지. 난 요즘 이런 음악 트렌드에 대해 긍정적이다.
Q 그러고 보니 한 번도 쉬지 않고 활동했다. 그 에너지가 부럽다 A 겉으로 보기엔 한 번도 쉬지 않았다. 그건 다 주변 사람들 덕분이다. 난 모든 일 중에 ‘사람’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 곁에 있는 오래된 사람들을 아낀다. 지금 스태프들은 다 10년 이상 된 사람이다. 그들의 서포트가 있기에 내가 한 번도 쉬지 않고 음악을 할 수 있었던 거지. 손발이 잘 맞는 사람들이라 얘기가 잘 통하고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캐치한다. 그래서 컨셉트 잡아놓고, 스태프들에게 일 시켜놓고 나는 재충전하면서 쉴 시간을 얻는다. 그러니 표면적으로는 쉬지 않고 계속 활동하는 것으로 보일 수밖에.
Q 현재 이승철씨는 부족할 것 없는 1백 점짜리 성공남으로 보인다 A 90점. 사람이 원하는 것을 다 가질 수는 없는데, 나는 운이 좋은 편이다. 사랑하는 아내와 딸, 그리고 음악이 있기 때문이다.
Q 그런 생각이 정리된 건 결혼하고 나서인가 A 기타 튜닝은 잘했지만 사람 간의 상호작용이나 조율 같은 것은 할 줄 몰랐다. 아니, 그런 것이 필요하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가 세상의 중심이었고, 최고였으며 내 기분대로 살았다. 하지만 결혼 후, 원이를 낳은 후 처음으로 누군가를 기다리고, 바라보고, 맞춰주는 것을 경험했다. 그리고 그 방법을 서서히 터득했다. 또 나를 기다리고 바라보는 상대의 마음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한마디로 가족이 천상천하유아독존 이승철을 철들게 했다.
Q 늦둥이 원이가 생긴 후 많이 달라졌다고 하던데 A 그런가. 그래야 할 나이 아닌가. 젊을 땐 나도 놀 만큼 놀았지만. 사람이 나이가 들면 변하는 것이 있어야지. 나이 들어서 철이 들지 않고, 바뀌는 것이 없다면 그게 사람인가.
Q 기분 나쁠지 모르겠지만 이승철씨는 ‘잘 늙었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사람이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A 삶을, 그리고 그것의 소중함을 알아가는 것. 그리고 하나하나 뭔가를 이루어 나가면서 내가 괜찮은 사람이 되어간다는 느낌을 받는 것. 죽을 때까지 노력이 필요한 거지. 인생 방향을 모색해놓고 끊임없이 노력해야 잘 늙어갈 수 있지 않을까.
Q 촬영할 때 보니 원이가 참 똑똑하더라 A 원이는 정말 천재다. 벌써 1부터 10까지 다 센다(두 달 전 인터뷰할 때와 똑같은 자랑. 원이를 자랑할 때마다 하는 고정 레퍼토리인 듯하다). 내 아이폰 안에 원이 사진이 수천 장 있다. (아이폰 속 사진을 보여주며) 발레 동작을 하고 있는 것 봐라. 정말 못하는 것 없이 다 잘하지. 사진만 봐도 너무 귀여워.
Q 촬영장에서 아빠를 보고 처음엔 낯설어하던데. 진정 원이와 친한 것 맞나 A 요즘 유치원을 간 지 며칠 되었는데, 벌써 사춘기가 온 것 같다. 상황이 변하면 조금 수줍어지는 것이지. 낯설어하긴. 집에서 내게 얼마나 애교 만점인데.AA
Q 술, 가정, 음악 사이에서 겪는 딜레마는 없나. 부인은 술을 조금 줄이면 좋겠다고 하던데 A 술? 와인이 무슨 술인가, 음료수지.(웃음) 하지만 예전보다 횟수는 많이 줄였다. 요즘 가장 관심 있는 것은 바로 일과 가족 사이의 수평감을 유지하는 것이니까.
Q 부인의 외모도 출중하더라. 이번 가족 화보 촬영을 같이 했으면 좋았을 텐데 A 사실 일반인이 얼굴 팔려서 좋은 것은 없더라. 사는 데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너무 알려져서 아내가 불편하게 하기 싫었다. 아이는 커가면서 얼굴이 바뀌니까 심하게 불편하지 않겠지.(웃음)
Q 가족을 위한 특별한 이벤트를 계획하는 편인가 A 늦게 만난 만큼 함께하는 시공간을 늘리려고 노력한다. 작년 말에는 그리스 ‘니스’로 한 달 동안 가족 여행을 다녀왔다. 진이, 원이 모두 데리고. 일 년에 한두 번은 어디든지 함께 떠날 것이다. 내 가족에 대한 스스로의 맹세.
Q ‘니스’로 한 달 여행, 재력이 겸비되지 않으면 절대 할 수 없는 일이지 않은가 A 만약에 돈이 없었더라도 그에 맞는 가족 여행을 계획했을 것이고, 그곳에서 가족들을 위해 요리를 했을 것이다. 지난 여행에서도 그랬다. 가족들을 위해 요리하는 일은 정말 즐겁다. 내가 예전에 요리책을 냈을 만큼 실력자 아닌가.
Q 자상한 취미와 뮤지션은 언밸런스다 A 내가 좀 그런 면이 없지 않지. 하지만 음악 하는 사람이라고 다 괴짜이거나 나쁜 남자는 아니다. 그건 편견일 뿐이지. 규칙적으로 운동도 하는 꽤 바람직한 남자다. 등산, 스키, 골프 등 종목도 가리지 않는다.
Q 등산복을 입은 이승철 모습? 상상이 안 간다. 어디 가면 볼 수 있나 A 청계산.
Q 뮤지션으로서 욕심, 한 가정의 남자로서 욕심은 A 요즘은 음악인과 남편, 아버지로서의 중용의 삶에 대해 연구 중이다. 이것 이상의 관심사는 없다. 몸이 세 개라서 모두 완벽하게 하면 좋겠지만, 그건 욕심이고, 어느 정도 포기하고 어느 정도 맞추는 것이 인생이지 않나. 현재가 내 인생 최고의 순간인데 오랫동안 누리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