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8일(쇠)에 만나는 <고래가그랬어> 누리집과 인터뷰 자료예요.
만나기 전에 한번 살펴보고 오시면 좋을 듯해서 공유합니다. ^^
______
어린이 교양지 <고래가그랬어>
▶누리집: goraeya.co.kr
<고래가그랬어>는 아이들이 품고 있는 소중한 인간적 자질들을 재미와 즐거움 속에서 드러내도록 돕습니다.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건 무엇인지, 동무와 어울려 살아가며 연대하는 일이 얼마나 귀한 일인지,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사는 일은 왜 필요한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어린이는 어른에게 질문하며, 어른은 어린이의 말을 경청하게 합니다.
고그는 어린이와 어른이 함께 행복해지는 책입니다.
발행인 인터뷰
▶ lady.khan.co.kr/khlady.html?mode=view&code=4&artid=201205041750461&pt=nv
(더 많은 이야기를 보실 수 있어요.)
어린이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어른의 한 사람으로서 여러 역할을 할 수 있는 일이 여러 가지가 있을 텐데,
그중에서도 잡지로 이야기를 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현실적으로 가장 실현 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죠. 저는 쭉 글을 써왔고, 책이나 잡지 쪽에 가까운 사람이었으니 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을 것 같았어요. 돕겠다는 후원자들도 있었고요. 그리고 어린이들이 주인인 진정한 ‘어린이 책’을 만들어보고도 싶었어요. 우리나라에서는 어린이 추천 도서라고 하면 다 어른들이 좋은 책이라고 꼽는 것들이잖아요. 그런데 어른들이 사서 권하는 책은 아이들이 재미없어 하는 경우가 많고, 아이들이 선호하는 책은 어른들이 질색하죠. 저는 무엇보다 어린이들이 재미있어하고 좋아하는 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제호를 들었을 때부터 ‘우리 편이다’라고 느낄 수 있을 만한 그런 잡지를 만들자는 게 원칙이었죠.
그래서인지 제호가 무척 독특하네요. 「고래가 그랬어」란 무슨 뜻이고, 어떻게 짓게 된 건가요?
회의를 하다가 우연히 ‘툭’ 나온 거예요. 지금은 다들 재미있고 좋다고 말하지만 처음에 이 제호를 찬성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어요. 아무 의미도 없고 이상하다는 거예요. 어른들이 생각하는 아이들의 대상화된 이미지가 있죠. 맑고 깨끗하고 희망차고 순수한 것들, 예를 들면 별, 구름, 꽃, 봄, 이슬, 하늘, 꿈과 같은 것들이요. 이런 단어들은 일부러 처음부터 배제했어요. ‘고래가 그랬어’라는 말을 아이들에게 들려주니 다들 친근감을 느끼고 재미있어 했어요. 그래서 제목으로 밀어붙였죠. 지금도 어른들은 제호의 의미가 뭐냐고 꼭 물어요. 제목은 잡지의 전체 내용을 함축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요. 하지만 꼭 그래야 할 필요가 있을까요? 그리고 어린이 잡지는 제호부터 밝고 예쁘고 차분해야 하는 걸까요? 그건 사실 어린이들을 위한 게 아니라 어른들 자신을 위한 생각이라고 봐요.
책의 내용에서도 그런 부분이 눈에 띄어요. 실질적으로 어린이들이 관심 갖고 재미있어 하는 이야기들,
당면한 문제들, 자신들만의 목소리들이 담겨 있잖아요.
오늘의 「고래가 그랬어」가 있기까지는 어른이 아닌 어린이들의 자발적인 지지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창간호 전에 만들었던 ‘준비호’를 보고 어른들은 대부분 좋다고 했는데 아이들은 반응이 시큰둥하더라고요. 어른들은 어린이 교양지답게 정갈한 텍스트에 깔끔한 일러스트를 선호했지만, 정작 아이들은 재미없어 했어요. 정신이 번쩍 들더군요. 뛰어놀 시간도 없이 하루 종일 공부에 얽매여 있느라 괴로운 아이들에게 괜히 우리가 ‘교양지’랍시고 잡지까지 만들어서 괴로움을 더 안겨주는 건 아닐까 뜨끔했습니다. 그래서 내용, 구성, 편집까지 모두 바꿨어요. 일단 어린이들이 읽고 싶은, 그리고 좋아하는 책을 만들자라고 생각했죠. 선생님들이나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현란하다, 어수선하다, 효율적이지 않다, 비교육적이다 등 저희를 좌절시키는 평가가 많았지만 그래도 아이들이 좋아한다는 믿음이 있어 계속 원칙을 지켜올 수 있었어요.
지금까지도 제가 발행인으로서 가장 염두에 두는 것은 아이를 대상화하는 관점을 멀리 하는 겁니다. ‘위한다’라는 말처럼 무서운 것도 없죠. 우리는 아이들에게 ‘너를 위해서, 네 미래를 위해서’라는 말을 자주 해요. 하지만 이러한 관점은 대단히 위험하고 무서운 거라고 생각해요. 생각해보면 어른들 스스로의 만족감 때문에 아이들을 위할 때가 많지 않나요? 아이들을 사랑하고 위한다는 말로 억압하거나 구속하지 말고, 아이들이 주체적으로 느끼고 생각하고 또 제대로 알 수 있도록 어른들이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른들의 시각에서 아이들을 재단하고 일방적으로 이끌어온 결과,
앞에서도 언급했듯 오늘날 어린이들의 생활이 무척 갑갑하고 힘들어진 게 사실이죠.
교육은 아이들을 ‘좋은 상품’으로 길러내는 데만 초점이 맞춰져 있고,
아이들은 끊임없이 경쟁하고 상처받고 소외되고 있어요.
이건 단순히 일부 계층의 문제만은 아닌 듯해요.
지금의 한국 사회는 기본적인 가치관이랄까 인간으로서의 정신적 품격이 상실된 상태가 아닐까 생각해요. 옳다고 생각하는 것과 현실에서 실천하는 것 사이의 분리가 뚜렷해졌고요. 굉장히 이상한 상황이죠. 진보든 보수든 다르지 않죠. 그보다는 지역이나 부모의 사회적 지위에 따른 계급의 차이에 의해 달라지는 것 같아요. 한번은 소위 말하는 ‘잘사는 동네’ 아이들과 ‘공부하느라 놀 시간이 부족하다’를 주제로 ‘고래토론’을 했는데 대부분이 “무슨 유약한 소리냐, 놀지 말고 공부에 매진해서 경쟁에서 이겨야 하고 그래야만 좋은 삶을 살 수 있다”라는 주장을 강력히 펴더라고요. 그렇게 생각하는 초등학생들이 어른이 된 사회는 과연 어떻게 될까를 생각하니 걱정스럽기도 하고 겁도 나더군요. 이러한 사례들이 결국 제게 심각한 문제의식을 심어줬죠. 한국의 교육 문제는 상하로 나눠져 고착화되고 있고, 이 거대한 경쟁에서 대부분의 아이들은 뼈 빠지게 고생을 해가며 들러리를 서고 있어요. 이 현실을 외면한다면 근본적인 개선이 이루어질 수 없겠죠. 삶을 바꾸는, 사회를 바꾸는, 교육운동이 필요한 이유예요.
첫댓글 만나뵐 안현선 편집장 인터뷰 기사 올려봅니다.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65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