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로스 클라이버(Carlos Kleiber,1930. 7~ 2004. 7) 명 지휘자 에리히 클라이버의 아들로 베를린 태생 에리히는 1935년 나치의 압력에 항의하여 베를린 국립 가극장의 음악 총 감독직을 사임하고 전쟁중에는 중남미로 본거지를 옮겨 아르헨티나 국적을 취득했다 1950년 20세가 된 카를로스는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음악공부를 시작 했으나 아버지의 맹렬한 반대에 부딪쳐 일시 중단하고 취리히의 스위스연방 공업대학에 입학했다 그러나 1925년에는 뮌헨의 게르트나프라츠 극장에서 견습 지휘자가 되고 1954년에 포츠담의 오페레타 가극장의 지휘자가 되었다 1964년에 취리히 가극장의 지휘자로 옮겼으며 여기에서 주목할 만한 오페라 공연을 거듭했다. 어느곳에도 매어 있기를 거부하는 클라이버는 상임 지휘자라는 직책을 맡으면서도 주로 베를린, 바이로이트,비인, 코벤트가든, 스칼라등에서 지휘를 하는 눈부신 활동을 펼치고있다 그의 연주에서 들을 수 있는 명석함과 리듬의 뛰어남, 그리고 표현의 다채로움과 섬세함은 현대의 호흡과 잘 어울리고 있습니다 비엔나 시민공원의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동상 요한 스트라우스 1세 (Johann Strauss, 1804-1849) 라데츠키 행진곡은 아버지 요한 슈트라우스의 대표작으로서 1848년 3월에 작곡되었다. 그때 보수적인 정부에 대해 학생과 노동자 등이 중심이 되어 무력 공세를 취하여 독재자를 영국으로 추방하고 황제를 물러나게 했는데, 슈트라우스는 이러한 혁명에 가담하지 않고 오히려 정부측에서 그 사기를 고무하기 위하여 일찌기 이탈리아를 정복한 용장 라데츠키의 이름을 따서 이 행진곡을 작곡하였다. Upper & Lower Belvedere Palace(벨베데레 궁전)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왈츠의 황제는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이며 그의 아버지 1세 역시도 왈츠로 유명한 음악가였다 가장 대표적인 곡으로는 아주 경쾌한 곡"라데츠키 행진곡"있으며 비올리스트,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지휘자 겸 작곡가로 다재다능했던 요한 슈트라우스 1세는 비올라 주자로 음악 경력을 시작했습니다. 라너 4중주단과 라너 악단을 거쳐 1825년에 자신의 악단을 만들고 이듬해부터 유럽 연주여행을 다녔다. 1846년엔 빈 궁정 무도회장의 음악감독이 되어 쇤부른궁에서 펼쳐지는 오스트리아 궁정 무용 음악 일체를 담당하게 되었다. Church of St. Peter, St. Stephen's Cathedral(성 슈테판 성당) 그는 250여개의 작품을 썼는데 그 중의 150개가 왈츠였다. 그 외에 <라데츠키 행진곡>같은 행진곡, 폴카, 갤럽 등을 남겨놓았다. 그의 성과는 그보다 실력이 좋았던 장남에 의해 오히려 가려져버렸다 요한 슈트라우스 2세는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음악을 공부한 끝에 결국 1844년에 자신의 악단을 만들어 아버지의 악단과 대립하게 되었다. 1849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두 악단을 통합하여 유럽 각지를 순회했다. "왈츠의 황제"라는 별명에 어울리게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를 비롯한 400여곡의 왈츠를 작곡했고, 또한 60여개의 콰드리유, 130여개의 폴카를 작곡했으며, 그의 아버지가 이루지 못했던 오페레타에도 진출하여 집시 바론 박쥐와 같은 걸작을 남겼습니다 Conservatory at Schoenbrunn, Imperial Palace Gardens(쉔부른 궁전의 정원) 사랑하는 대합가족 여러분! 을유년 새해 새날이 밝았습니다 밝아오는 새해에는 풍성한 기쁨속에 뜻하신 바 모든 일들이 성취되시길 기원합니다
출처: 대전시립합창단 원문보기 글쓴이: 잼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