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에 복음을 전하는 마음으로
지난 호 「중국을 주께로」의 이 “발행인 통신”에서 ‘서울아시안게임(1986)에의 추억’을 더듬어 보았는데, 역시 아시안게임 이야기로 이번 호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오는 4일(토)에는 지난 9월 19일에 시작된 제17회 인천아시안게임이 막을 내리게 됩니다.
이번 아시안게임의 1위는 중국으로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아시안게임을 ‘45억 아시아인의 잔치’라고 하는데 실제로는 ‘중국을 위한 잔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역대 아시안게임을 살펴보면, 1951년 제1회 뉴델리아시안게임부터 1978년 제8회 방콕아시안게임까지는 일본이 도맡아 놓고 1위를 차지했습니다.
1982년 제9회 뉴델리아시안게임부터 올해의 제17회 아시안게임까지는 1위를 중국이 늘 차지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제1회 대회부터 제12회 대회까지는 2위에서 5위 사이를 오르락내리락하다가(3위를 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1998년 제13회 방콕아시안게임부터 2위를 고수하고 있습니다.
역대 아시안게임 순위의 변화는 곧 국력 순위의 변화이기도한데 중국은 앞으로도 ‘부동의 1위’를 계속 유지할 것으로 보입니다.
중국은 이제는 올림픽(하계)에서도 선두 그룹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바울 당시 로마는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세계의 중심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에 가기를 그렇게 원했고, 로마서는 ‘세계의 심장에 꽂은 복음의 화살’이라는 별명을 갖게 된 것입니다.
우리도 그런 심정으로 그런 마음으로 중국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더 힘써야 할 것이 아닌가, 이제 종반전에 접어든 아시안게임을 보면서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됩니다.
중국교회에 대한 보도들을 대하며
최근 중국교회에 대한 보도들은 두 가지 서로 모순되는 것 같은 일을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는 중국의 교회가 놀랍게 성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난 8월, 중국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는 중국의 기독교인은 2,300만 내지 4000만 명으로서 이는 전체 인구의 1.7% 내지 2.9%에 이르는 숫자라고 보도했습니다.
이 숫자는 물론 5만6천 개 안팎인 것으로 알려진 공인교회에 등록된 교인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등록되지 않은 교인들은 그 몇 배에 이른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일입니다.
중국 교인의 숫자 문제에 대해서는 이번 호에 실린 우심화 교수의 논문 “기독교인수 수치로 본 중국교회의 현황과 과제”가 많은 것을 가르쳐 줄 것입니다.
젊은 계층 가운데 기독교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고, 기독교 인구 증가율이 매년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중국교회 성장은 언덕을 굴러내리는 눈사람 같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을까 여겨지기도 합니다.
또 하나는 중국당국의 교회 박해가 날로 심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장성 원저우시의 싼장교회당 강제철거(이 교회는 올해 초에 준공된 교회였습니다)와 수백 개 교회의 십자가 끌어내리기, 광둥성 포산 지역의 가정교회 교인들 집단연행, 이와 비슷한 내용의 소식들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범위를 좀 넓혀보면 최근 한국교회의 중국선교에 큰 어려움을 주고 있는 선교사들의 ‘비자발적 귀국’도 여기에 속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지난 여름에 청년들과 함께 중국동북지역 비전트립을 다녀왔는데 동북지역에서도 선교기관에서 설립한 기술학교 폐교 등 여러 어려움이 발생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청년들에게 이와 같은 사정을 소개하고 특별히 조심할 것을 신신당부했습니다.
이 두 가지를 통해 우리는 중국 당국이 기독교의 영향력이 확장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고, 그 때문에 억제의 끈을 강하게 조이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됩니다.
저는 중국교회는 가로 막대는 녹색, 세로 막대는 보라색으로 된 십자가를 지고 있는 교회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녹색은 잘 아시는 것과 같이 생명, 성장, 번영을 의미하는 예전색(禮典色)입니다.
중국교회는 놀라운 생명력을 가지고 성장하고 있습니다.
진한 녹색이 어울린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보라색은 준비와 참회와 수난의 색입니다.
교회에서는 예수님의 고난을 기억하며 경건하게 지내는 사순절에 보라색을 사용합니다.
부활절이 되면 흰색을 사용합니다.
그리고 성령강림절에서 대림절까지, 교회의 성장과 발전을 강조하는 계절에 녹색을 사용합니다.
이어 주님을 영접할 준비를 하며 보내는 대림절에 다시 보라색을 사용하다가 성탄절이 되면 흰색을 사용합니다.
부활절과 성탄절의 예전색인 흰색은 완전, 영광, 즐거움, 신성을 의미하는 색입니다.
녹색과 보라색의 십자가를 지고 앞으로 나가고 있는 중국교회가 흰색의 십자가로 기쁨을 노래할 날을 그려봅니다.
시련을 거쳐 이뤄진 위대한 전환
이 「중국을 주께로」10월호(통권 제146호, 웹진으로는 두 번째)가 발간되는 10월 1일은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65주년 기념일입니다.
저는 중국교회 역사의 시기를 구분 할 때 1949년부터를 전환기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신 중국’이라고 불리는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후 중국교회는 사회주의 체제하의 교회로 전환을 합니다. 그 뒤 얼마의 시간이 흘러 더 크고 놀라운 전환이 이뤄지는데 그것은 ‘중국선교’에서 ‘선교중국’으로의 전환입니다.
사회주의 체제하의 중국교회는 많은 제약과 시련을 겪었습니다.
특히 문화대혁명 시기의 고난은 혹독한 것이었습니다.
그 시기를 지나 피선교국에서 선교대국으로의 전환을 이룬 것입니다.
고난은 성장을 위한 자양분이었습니다.
그런 경험을 통해 현재의 보라색과 교차되는 녹색이 더 아름답고, 그 뒤에 약속된 흰빛이 더욱 선명할 것이라는 기대를 갖습니다.
중국어문선교회가 자리잡고 있는 명륜동 일대의 은행잎이 노랗게 물들고, 설악산이나 내장산의 단풍이 붉게 물들고 있다는 소식이 이어지는 계절에 발행되는 이번 호에, 웹진의 뿌리가 잘 내려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함께 담아 이렇게 보내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