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르지오 데 키리코
Giorgio de Chirico (Italian, 1888-1974)
그리스에서 출생한 이탈리아의 화가. 형이상학적이고 몽환적인 화풍으로 초현실주의에 많은 영향을 끼쳤으며 그를 선구로 스콜라메타피지카(Schola Metaphysica:형이상파)가 형성되어 미래파 이후의 이탈리아 화단을 풍미했다.
아테네의 미술학교에 다닌 후 뮌헨에 나가, 거기서 A.뵈클린의 영향을 받아 환상적인 예술을 지향하였다. 1910년 이미 독자적인 회화정신이 형성되었으며, 사물이 순간적인 형상에서 깊은 가치를 나타내는, 일종의 형이상적 회화표현으로 나아갔다.
1911~1915년 파리에 머무르며 피카소 등과 사귀었고 입체파의 영향도 받았으나, 그의 본질적인 구상은 화면의 몽환적 구성을 향한 것이었다. 《어느 가을날 오후의 수수께끼》 《아침의 명상》 《거리의 우울과 신비》 등 1910년대 전반의 일련의 작품에서, 그리스·로마를 연상시키는 고전적인 대리석상, 음영이 짙은 투시적 건물, 기계적인 형식들이 얽히고 설킨 근대도시의 단편적 정경 등 이러한 연관성 없는 대상물을 주관적으로 끼워맞춰 몽환적인 고독의 세계를 재구성하였으며, 초현실주의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이들 일련의 작품의 영향으로 스콜라 메타피지카(Schola Metaphysica:形而上派)라는 새로운 파가 그를 선구자로 하여 형성되었으며, 미래파 이후의 이탈리아화단을 풍미하였다. 1933년부터는 고전적 작풍으로 돌아가 차차 신선미를 잃었으나, 화단의 장로로서 존경받았다. 이 밖에 산문체로 몽상적 세계를 그린 소설 《에브도메로스 Hebdomeros》(1929)와, 자서전풍의 《내 생애의 추억 Memorie della mia vita》(1945) 및 《Commedia dell’ arte moderna》(1945) 등이 있다.

[시인의 불안]The Uncertainty of the Poet,
1913, private collection, London.

[사랑의 노래]Love Song,
1914, oil on canvas, The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이 작품은 데 키리코가 초현실주의 화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음을 보여주는 또 다른 예로 르네 마그리트는 이 작품을 개작한 1925년의 작품을 보고 나서 자신의 회화 양식을 결정하게 되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후에 1929년에 <기억>이라는 제목의 작품을 통해서 이 작품에 대해 경의를 표하였다.

[예수 그리스도와 폭풍 세묘]Christ and the Storm, detail,
1914, oil on canvas, Vatican, Rome.

[철학자의 승리] The Philosopher's Conquest,
1914, oil on canvas, The Art Institute of Chicago.




The Disturbing Muses





붉은 탑
1913년, 75.5*100cm, 캔버스에 유채
이 작품을 소유하고 있던 아폴리네르는 그것을 파리의 살롱 도톤느에 전시될 수 있도록 하였다. 총탄이 박힌 탑과 기마상은 달리의 1935년 작품 <죽음의 기사>를 떠오르게 하는데 이는 데 키리코가 초현실주의 작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거리의 신비와 우수],
1914년, 캔버스에 유채, 87 * 71.4cm
굴렁쇠는 굴러간다. 아니 굴러가던 그 상태로 멈춘 듯 하다. 이탈리아의 화가 조르지오 데 키리코,
그가 한 문명의 끝자리에서 세상에 남겨놓은 그림 <거리의 우수와 신비>는 우울하게 우리의 뒷덜미를 엄습한다.
단조로운 구도, 열주로 이루어진 긴 건물과 그 사이의 노란 길,
길에서는 한 여자아이가 굴렁쇠를 굴리고 있고, 길의 저 끝으로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의 긴 그림자 하나가 드리워져 있다. 분리된 채 놓여있는 화물칸, 그 뿐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어딘지 알 수 없는 몸의 한 구석에서부터 불안과 우울이 그림자처럼 드리워져 오는가?
<거리의 신비와 우수>의 구도를 지배하는 것은 원근법이다. 그러나 이 그림의 원근법은 과장되고 어긋난 원근법이다. 왼쪽 흰 건물이 이루는 소실점과 오른쪽 그늘진 건물이 이루는 소실점이 어긋나있다. 달리의 기묘한 이미지들과는 다르게, 사실적이면서도 몽환적인 이미지의 부조리이다.
이 그림과 같은 해에 완성된 <몽파르나스 역> 또한 거의 동일한 색조와 무드 속에 불안하게 어긋나는 원근법을 보여주고 있다.
<거리의 신비와 우수>에서 그늘의 건물이 이루는 소실점은 정체불명의 그림자의 머리 부분이다. 모든 그늘과 어둠을 이 그림자가 지배하고 있다. 그리하여 이 그림자는 또 하나의 그림자로서 나타난 굴렁쇠를 굴리는 소녀를 지배한다.
소녀는 그림자에 체포된 채 움직이는 상태 그대로 홀연히 정지되었다. 소녀와 그림자 사이의 간격이 이루는 긴장과 불안의 색조는 노란 색이다. 그림자는 존재도 아니고 비존재도 아니다. 이는 카프가의 소설 <심판>에 나오는 있는지 조차도 알 수 없는 권력과 닮았다. 어쩌면 이는 키리코 자신이 굴복하고 만 파시즘의 광기일까? 영원히 풀 수 없는 삶의 부조리인가?
<거리의 신비와 우수>에는 어둠의 소실점 외에 빛의 소실점이 있다. 왼쪽 흰색 열주의 건물이 이루는 소실점이다. 어쩌면 소녀는 다시 명랑하게 굴렁쇠를 굴리며 어두운 우수의 소실점을 넘어서 저 빛의 소실점으로 갈 수 있을 지 모르겠다. 어떠한 악몽 속에서도 삶이란 기어코 빛을 찾아내고야 마는 신비가 아니던가. 이성희, <미술관에서 릴케를 만나다>

무한을 향한 노스텔지어
The Nostalgia of the Infinite [La nostalgie de l'infini].
The Profit
The Archaeologists
[비스켓이있는 형이상학적 실내]Metaphysical Interior with Biscuits
Le Cerveau de l'Enfant (The Child's Brain)
[생각하는 사람의 원통함]The Vexations of the Thinker

Andromache
Ariadne
Endless Voyage
[몽빠르나스 역]Montparnasse Station
Montparnasse Station(우울한 출발)
1914년, 140*184.5cm, 캔버스에 유채
아마도 데 키리코 작품의 형이상학적인 특성인 관람자를 혼란스럽고 당황하게 만드는 요소들은 작가가 의도적으로 약간씩 모순되게 재현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얼어붙은 듯한 기차의 움직임은 바람이 불지도 않는데 펄럭이는 깃발과 대조를 이루며, 또한 노란 비탈길이 상승하는 듯한 장면은 현실적인 원근법으로는 불가능하다. 이 시기의 다른 작품에도 자주 등장하는 바나나 다발은 유령의 도시 같은 풍경 속에 오염되지 않은 자연을 의미하는 이국적인 요소로 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