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찬도 아니고 아부도 아닙니다만, 당신이 출연하지 않았더라면 <괴물>은 50점짜리 영화가 될 뻔했습니다. 아유, 별말씀을. 말도 안 돼요. 잘못 본 거예요. 그럴 리가 없죠.
<괴물>에서 동메달을 ‘똥메달’로 발음한 것과 오징어 다리 아홉 개를 ‘9개’라고 발음한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오랫동안 조,단역을 하시면서 터득한 연기라고 생각했습니다. 극에서 튀어나오지 않으면서 역에 변화와 재미를 부여하는 것 말이죠. 즉흥적으로 하신 거죠? 으흐, 네. ‘똥메달’이죠. 사람이 급박해지면 뭔가 말을 제대로 하기 쉽지 않다는 것을 표현해봤어요. 실제로 손녀가 죽었다고 생각하고 한참을 울었다면, ‘똥메달’이 가능합니다. 오징어 다리 9개는, 으허허. ‘오징어 다리 아홉 개’라고 대사에 한 줄 있었어요. 그 장면을 찍을 때 봉 감독이 “오징어에 대한 재미있는 표현이 없을까요”라고 살짝 얘기하고 가요. 어느맨대로(어느 의미대로는) 애드리브가 있어도 된다는 얘기로 받아들였어요. 오징어 맛이라는 게 몸통 맛 꼬리 맛 다르고 특히 가장 긴 다리 맛 다른데 너 왜 그걸 먹었냐, 라고 송강호 씨에게 말하는 애드리브를 쳤죠.
그건 배우 40년이 아니라 인생 60년이 가르쳐준 연기인 것 같습니다. <국화꽃 향기>의 무좀 양말 장면과 <선생 김봉두>에서 손에 침 발라가며 공부하는 장면 등이 그랬습니다. 40년 동안 한 가지 일을 한다는 건 어떤 건가요. 배우도, 노련함과 여유라는 말과 동의어가 되나요? 으허, 양말은…. 내가 평소에 손발에 땀이 많이 나요. 그걸 방지하기 위해서 그런 걸 신습니다. 모르겠습니다. 가면 갈수록 어려운 게 이 직업입니다. 그래서 항상 만족이 없는 겁니다. 불평, 불만만 더 오히려 쌓이고 말입니다.
어떤 불평, 불만이 있으세요? 감독이 건져주지 못하면 배우는 길이 없어요. 배우는 저밖에 모르는 겁니다. 배우는 참 생각이 단순해요. 성격도 지랄 같고. 뭔 말인고 하니, 저건 내가 맨날 하던 거야, 똑같아. 그게 불만족스럽고 짜증이 난다는 거죠. 좀 무식한 얘기일런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연기자는 감정을 먹고 사는 동물입니다. 순간 순간 변해요. 그런데 감독이 지적해서 끌고 가면 또 가지는 게 배우입니다.
일전에 백일섭이 이만희 감독의 유작 <삼포가는 길>에 출연했을 당시를 떠올리면서 이만희 감독이 돌아가시지 않았더라면 나의 배우 인생도 조금은 바뀌었을 것이라고 하셨어요. 봉준호 감독을 예뻐하시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가 갑니다. 우리 봉 감독 같은 경우는 이렇게 저렇게 해주세요, 라고 말한 적이 없어요. 그냥 웃는 얼굴로 와가지고 “어떠세요? 마음에 드세요?” 그럽니다. 그럼 저는 “다시 한번 할까?”. 거기서 내가 그걸 이래 갈 것이냐 저래 갈 것이냐 생각하죠. 그게 호흡이에요.
당신은 40년의 배우 경험보다 젊은 감독을 더 믿는 편이신가 봅니다. 사실은 마음 속으로 나처럼 달리 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냐 싶을 정도로 달리 한다고 합니다. 감독 붙잡고 말 좀 해달라고 하고. 감독에게 백 번이고 천 번이고 다시 찍겠다고 합니다. 전 모니터 잘 안 봐요. 감독 마음에 들었으면 된 거지, 모니터는 뭐하러 봐요.
예전에 <수사반장>이나 <조선왕조 오백년>에 출연하셨을 때 카리스마 넘치셨어요. 팬클럽에 붙은 부제도 ‘마지막 카리스마’ 잖아요. 젊은 친구들이 주눅이 들 법도 한데요. 글쎄요. 부드럽단 얘기는 못 듣는 것 같고요(웃음). 나도 사람인데, 괴물 아니고 사람인데 그럴 여유가 없죠. 참, 이거 변명 아닌 변명 같은데 현장에 가면 오늘 할 일에 대한 생각이 많아요. 그런 걸 안허는 사람도 많죠. 막 노닥거리다가 딱 들어가서 연기하고. 전 미리 여러 가지 해보고 그래요. 감정이 어떻게 순식간에 왔다갔다 할 수 있어요.
워낙 꼼꼼하게 준비하신다는 얘기는 들었습니다. <안국동 아씨>에 점쟁이로 출연했을 때 실제로 점쟁이한테 찾아가서 주술문 적어달라고 하셨잖아요. 그럼요. 필요한 사람은 죽어도 찾아가죠. 저 같은 경우는 항상 쪽지에다 그 캐릭터에 대해 써가지고 댕기고 생각 많이 해보는 사람입니다. 그것이 잘 맞아 떨어졌을 때 자신감도 생기는 거지요.
이번 캐릭터는 이름도 박희봉입니다. 박희봉에 대해서는 쪽지에 뭐라고 쓰셨나요? 박희봉 대사 중에 ‘내가 젊어서는 정신을 못 차리고 밖으로만 나돌아서’ 이런 게 있어요. 그래서 이에 보철도 껴봤고, 배도 좀 불룩하게 나오게 해봤어요. 젊어서 밖에서 좀 놀았다는 걸 은연중에 주는 거예요. 관객은 상관없죠. 하는 사람만 상관 있으면 되죠.
나이를 먹어가면서 오히려 여유롭고 편하다는 느낌을 주는 게 아니라 여전히 욕심도 많으시고 긴장하시는 데다 예민해 보이세요. 지나가버린 건 다 소용없는 겁니다. 아무리 그때 시절이 좋았건 지금이 중요하죠. 나머지 인생이 중요하죠. 그렇게 보셨다면 나는 그 생각을 하고 있어서 그렇지 않나 싶어요. (젊은) 다른 사람보덤은 일찍 일을 그만둬야 하는 형편이라는 거죠. 점점 쇠퇴해지고 그럴텐데, (그런 모습을) 빨리 보이고 싶지 않은 거죠. 재미있어서 그냥 가는 거예요, 허허.
그렇게 연기가 재미 있으세요? 놀고 있으면 몸이 아파요. 나이가 붙잡는다고 잽히는 것도 아니고 걸리는 것도 아니고 세월은 그냥 가는데 얼마나 허겠다고 이 일을 허겠어요. 좋게 허야죠. 필요 없는 배우가 되는 그런 지경까지는 안 가야지 하는 속셈이 있으니까요.
요즘엔 오히려 시나리오가 너무 많이 들어와서 고민될 것 같은데요. 제일 어려운 지점이 그겁디다. 책을 받았는데 재미없다고 얘기할 수는 없는 거 아닙니까. 돈도 살짝 좀 만져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만. 하하. 처음에는 20회차까지 있는 책이 마지막에 결정할 때쯤에는 7,8회차로 줄어요. 그런 거 챙피스럽게 못하지. 그 사람은 단순히 돈만 깎으면 된다는 생각밖에 없는 거죠. 더럽고 화날 때가 많아요.
<공필두>에서는 회차가 얼마 안되지만 출연하셨어요. 그건 김수미하고 허잖아요. 내가 테레비 오래했는데 김수미하고 해본 일이 없었어요. 오랜만에 만나니까 반갑고 그렇지 않겠수. 난 <공필두> 아직 못 봤는데 어때요? 재미가 없었어요? 어땠습니까?
두분이 치킨 먹는 장면은 압권이었습니다. 하하하. 그렇게 봐주니 고맙지만 나는, 이런 인터뷰도 안 할 때가 편해요. 일본의 어떤 배우는 촬영 후 항상 사라져뻐린다고 해요. 나하고는 개코도 안 닿는 사람이지만 참 존경스러워요. 인터뷰하는 기자님에게 이런 얘기하면 안 좋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보니까 뭐 그렇더라는 얘기예요.
사라지고 싶으세요? 그럼요. 아, 나 욕먹을런지도 모르겠어요. 요즘에는 나 테레비도 안 했어요. 이런 거 또 쓰시면 그 놈 계획적으로 그랬구나 그렇게 생각할 테니까 말 못하겄네.(웃음) 근데 나를 너무 내세우는 것 같아서 싫어요. 인터뷰도 그래요.
<괴물> 기자회견 때 보니까 어떤 배우보다도 가장 영화에 대해 자랑스러워하시고 홍보도 적극적이시던데요. 내가 봉준호 감독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연기 아니면 이런 인터뷰죠. 그건 어느맨드로는, 내가 <플란다스의 개> 출연을 거절했을 때 봉 감독이 그냥 돌아섰다면은 내가 이런 자리에 있을 수가 없듯이, 나도 봉준호 감독에게 최선을 다할 수 있는 건 이런 거죠. 근데 신문마다 보면 너무 웃고 너무 즐겁고 너무 나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렇다고 서로 만나서 대화하는데 안 웃고, 뭐 그럴 수 없는 거 아닙니까?
이완용의 인력거꾼 하다가 결국 이완용 역할 했고, <수사반장>에서 범인, 교주 하시다가 <살인의 추억>으로 형사 했을 때 좋아하셨고요. 이제는 스포트라이트 즐기셔도 되잖아요. 아유, 싫어요. 그냥 조용히, 아무도 모르게 사라졌으면 제일 좋겠어. 연기가 어땠다, 얘기는 나올 수 있으면 좋지. 배우가 뭘 대단합니까. 대단할 거 하나도 없지.
그래도 어떤 배우는 어떤 시기의 어떤 사람에게는 대단한 존재로 남습니다. 내가 헐 때는 좋다는 거죠. 그 외는 소용없어요. 그 뭐 판클럽이 뭔지도 모르겠고.
‘변희봉에 미친 사람들’이라는 팬클럽이죠. 그러니까, 내 참. 나는 (컴퓨터) 키는 것도 몰라. 뭐를 앞서서 하라고 하면 절대 싫어하는 성격이에요. 평생을 그랬어요. 공부 못해서 분단장도 못해 본 놈이 지금 앞서서야 되겠소. 요즘에도 모자 하나 쓰고 대중교통 이용해요. 그러니까 내가 아무때나 사라질 수 있다는 얘기죠. 그게 연기에도 굉장한 도움을 줍니다. 아, 사람들 관찰하다가 이런 건 내가 어디서 흉내 내서 캐릭터 만들어볼 수 있겠다, 싶고. 요즘엔 너나 할 것 없이 잘 먹으니까 얼굴 번들번들하지만 불과 20년 전만 해도 그냥 수도 없습니다. 배우가 헐 게 많았어요. 그럼요.
관찰할 게 많았다는 말씀이시죠? 암, 그럼요. 많았죠. 배우는 모방해선 안 된다, 창조하는 사람이다, 그래야 예술이다, 어쩌고 하는 사람들 있는데. 난 배워본 일도 없고 공부해본 일도 없으니까. 연기는 모방이라고 생각해요. 아, 변희봉이 흉내를 내는 거지, 저 사람 데려다가 가면 만들어다 쓸 것도 아니고 말입니다.
아버지 역, 이번에 드디어 하셨어요. 근데 아버지 유형이 아주 많습니다. 이번에는 괴물한테 맞는 아버지 역할을 한 거죠. 아버지 역 끝날라면 아직 멀었어요.
이제 자녀분들에게 영화 보라고 하셔도 되겠습니다. 따님이 어렸을 때 <수사반장> 보고 ‘사기꾼’이라고 해서 TV도 없애셨잖아요. 아효, 그 얘기 쏙 들어갔어요. 왜냐면 아빠가 돈 못 벌면 지들이 한 푼씩 줘야 하는데 그럴 일이 없으니까 요즘 계속 웃어요. 하하.
말씀처럼 앞으로가 더 중요하잖아요. 배우가 뭐 있겠습니까. 그저 추하지 않을 정도까지 배우 해서 노후생활 하게 돈 좀 벌어야 하겄는데 누가 돈 좀 벌게 해줄런지, 안 해줄는지 기다려봐야겄습니다. 그래야 계획이 나오니까. 허허허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