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교는 30년의 역사를 가진 신흥 명문사학으로서 새로운 21세기의 환경 변화에 대응하는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 점진적이며 자발적인 교육 개선과 책임 있고 내실 있는 교육경영으로 「잘 사는 인간육성」을 교육목표로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저희 강호항공고등학교가 짧은 기간에 현재와 같은 위상을 정립하기까지 학생들의 부단한 노력과 학부모님들의 애정 어린 관심에 힘입은 바 크기에 전 교직원을 대표하여 깊이 감사드립니다.
본교는 긍정적인 사고와 실력 있는 학생을 양성하기 위하여 전국 최고의 쾌적한 교육환경과 불철주야 노력하시는 선생님, 성근스런 학생들의 노력으로 전원 취업, 우수대학 진학이라는 쾌거를 이루었으며, 전국 최초의 인성교육 프로그램을 실시하여 효자ㆍ효녀를 기르는 산실로서 그 위상을 더욱 높이고 있습니다.
이에 우리 강호항공고등학교는 모든 학생들이 발상의 전환으로 창의적 아이디어를 축적하여 무한한 재능을 발휘하고, 미래세계로 공상의 나래를 맘껏 펼 수 있도록 조력할 것입니다.
교문
문(門)은 큰 건물의 드나드는 곳을 말한다. 민속학에서는 출입을 주관하는 궁중의 신을 이른다. 문문(門門)은 여러 가지 가르침, 여러 가지 능력과 소질을 말하고, 도리문전(桃李門前), 만문도리(滿門桃李)는 재지(才智)나 풍모(風貌)가 뛰어난 제자(弟子)가 문하(門下)에 가득함을 뜻한다. 나는 우리 강호항공고등학교 정문을 디자인하여 세울 때 이의 모든 뜻을 염두에 두고 건학 이념, 교명(校名), 교육의 모든 과정과 가치 등을 아름답게 반영하고자 하였다.
먼저 문의 모양은 우리 학교 이름인 강호의 첫소리「ㄱㅎ」를 본떴다. 본시 우리말은 영어와 달리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표기하니 이를 따라 배치(ㅎㄱ)하여 전통을 살렸다. 왼쪽의 ‘’의 형태는 「입신양명(立身揚名), 뜻을 펴서 크게 영달(榮達)함」이라는 등용문(登龍門)의 뜻을 내포하고 있고, 오른쪽 ‘ㄱ’은 처마 밑에 날개 지붕을 배치함으로써 비행기의 날개를 형상화하여 「우주 항공 교육의 요람, 웅비의 날개」를 뜻하였다. 기둥의 모양과 무늬는 책(冊)을 본떴으니 이곳이 강학(講學;江學)골, 학문의 전당임을 드러내었다. 기둥을 직선(直線)과 직각(直角)으로 표현한 것은 ‘강인(强靭)’과 ‘성근(誠勤)’의 올곧음을, 삼중문(三重門)을 사선(斜線)으로 배치한 것은 ‘심미(審美)’와 ‘창조(創造)’의 변혁(變革)을 의미하게 하였다. 교문 구조물은 획일화된 단일 형태가 아닌 동일 형상의 삼중 배치 조형물인데 이는 문(門)과 문문(門門)을 의미한다. 큰 건물의 드나드는 곳, 출입을 주관하는 신을 통과하면 그곳엔 많은 가르침이 있고 능력과 소질이 풍부한 학생들의 배움의 터전이 있으니 이는 전인 교육을 의미함이요, 또한 교정에 벚꽃이 만발하니 이는 도리문전(桃李門前), 만문도리(滿門桃李)이다.
이처럼 수많은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 두 개의 구조물을 조화롭게 배치하였음은 구태의연한 획일적 사고에서 벗어나 창조적 가치 창출의 절대성과, 본교의 교육 이념인「지행일치(知行一致)의 잘 사는 인간 육성」이라는, 우리가 지향하고자 하는 모든 의의를 총 망라하여 기호(記號)와 상징(象徵)으로 드러냈음을 밝힌다.
신재효 고택
1850년경 동리신재효(申在孝)[1812~1884]가 거주했던 초가집으로 1979년 1월 23일 중요민속자료 제39호로 지정되었다. 신재효는 원래 소리꾼이 아니라 재산이 넉넉한 중인 출신이었다. 신재효는 스무 살 무렵 고창 관아의 이방이었는데, 당시 광대라 불리던 소리꾼을 동원해 관청의 행사를 치르면서 판소리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신재효는 선대에서 축적된 부를 바탕으로 소리꾼들을 물심양면으로 후원했으며 집 안에 노래청을 두어 제자를 길렀다. 신재효는 오랫동안 구전되던 판소리 여섯 마당을 정리하여 책으로 엮었으며, 동편제와 서편제의 장점을 취해 판소리 이론을 정립했다. 1979년 1월 23일에 중요민속자료 제39호로 지정되었다.
고창 고인돌 박물관
우리나라에는 약 30,000여 기의 고인돌이 분포되어 있고, 그 중에서 고창에는 약 2,000여 기가 있으며, 고창고인돌유적은 세계적으로도 가장 밀집도가 높고, 다양한 형식의 고인돌이 산재해 있는 특색이 있습니다.
고창고인돌유적은 1965년 문화재 지표조사를 시작으로 수차례의 발굴 및 지표조사, 국제학술 심포지움 등을 개최하여 역사적 고증에 심혈을 기울인 결과, 1994년 12월 문화재로 지정(사적 391호)되었고, 2000년 12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는 영광을 안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역사․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은 고창고인돌유적을 더욱 체계적으로 보존 전승시켜 후세의 산 교육장의 계기를 마련하고자 우리군에서는 2004년 12월에 고창고인돌박물관의 시작을 알리는 첫 삽을 들어, 2008년 9월 25일 개관하게 되었습니다.
고창고인돌박물관은 청동기시대의 각종 유물 및 생활상과 세계의 고인돌문화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기에 여러분들에게 최고의 감동과 만족을 드릴 것이며, 우리 역사의 바탕이 되었던 선사인들이 남긴 삶의 흔적을 찾아 수년간 심혈을 기울여 탄생한 국내 유일의 고창고인돌박물관이 여러분에게 아득한 시절의 옛 이야기를 들려 드릴 것입니다.
모로모로열차
모로모로 열차를 타고 고인돌 군락지를 돌아볼 수 있어서 참 편하다.
1코스에서 6코스까지 돌아보는데 대략 20여분정도 소요되고 중간에 5분쯤 내려서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한다.
푸릇푸릇 새생명이 탄생하기 시작한 고창의 봄
고인돌 군락지를 돌아보며 고창에 왜 이렇게 많은 고인돌이 있을까 생각을 해 보았는데
고창은 지역적으로 농사가 잘 되는 평야지대이고 청동기시대의 유물은 고인돌은 고창지역에 많은 족장들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것이란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