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반석
글/리 태 근
60년대 조선에서 돌에서 비단을 짠다고 소문이 짜했다. 두메산골에도 어딘가 뭍혀있을 금돌을 발견하리라 강변을 헤매고 다니였다. 개울가에서 목욕하다가 해빛에 반짝이는 차돌만 보면 보석이나 주은듯 정중하게 교장선생님에게 바쳤다. 우리들이 신기한돌을 주어서 바치는게 기발한 착상을 불러왔던가 돌과는 아무런 인연없는 교장선생님이 연변의 산과들을 넘나들며 맥반석을 발견하였단다.맥반석은 중국 명(明)나라 때의 본초학자(本草學者) 이시진(李時珍:1518∼1593)이 혼신의 힘을 기울여 평생동안 엮은 약학서(藥學書) “본초강목(本草綱目)” 약용수록 외에도 허준의 “동의보감” 에 감(甘), 온(溫)하고 무독하여 피부병과 외상치료에 특효가 있다고 하여 약석으로 사용되었다. 자연석으로서 미네랄 원소를 함유하고 있어 각종 미네랄 용출 pH조정, 용존산소 증가등 수질개선의 효과가 뛰어날 뿐만 아니라 92%가 넘는 고효율 원적외선을 방사하여 생물성장촉진과 활력을 공급하는 "약석"이다. 맥반석의 종류에는 천차만별 다양하고 그중 녹색류의 색상을 띤 녹색맥반석이 약석으로 맥반석의 기원인 중국에서부터 인정되였다. 돌도 몇년 동안 품에 안고 있으면 보석이 되는가? 숨쉬는 맥반석을 발견해서 연변의 돌문화력사에 찬란한 한페지를 장식해 놓았다.
항상 누굴 보나 가식없이 웃는게 특징이다. 삼척동자를 보고도 예 예 하고 인사하는 자애로운 교장선생님이다. 전문 지질을 연구하는 <돌박사>도 아닌데 늙으막에 대박이 터졌단다. 한평생 분필가루와 씨름해온 고지식한 <고린내 나는 아홉째>가 부자가 된다는게 금시초문이다. 정성운이라면 와룡향은 물론 연변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여북했으면 <8.27>와 <홍색> 반란파들 지간에 쟁탈 대상이되여 반란파들의 등쌀에 못이겨 도망치다가 <황디수레>(황디이란 상여를 말한다. 상여 앞머리에 승천하는 룡대가리를 그려놓고 룡의몸속에 관을넣고 량쪽날개에는 멜대를 만들어서 시신을 운반 하는 기구를 가리킴) 에 숨겨놓았겠는가? 전례없는 대혁명 때 당권파로 몰리우며 목에다 깡통을 메고 투쟁맞던 <당권파>가 백년 채굴해도 끝이없는 <맥반석광산>을 발견 하였단다.
선생님은 <맥반석 정수기>를 개발하느라고 숱한 대부금을 맡아서 투자했다. 한국사장이 도와준다는 거짖말에 속아서 엄뚱한돈도 많이 떼웠다. 교당선생님의 고지식한 성격은 남들에게 리용당하고도 남음이 있을 분이였다. 선생님을 사기친 사람은 한국사장뿐이 아니였다. 국내에도 숱한 기업인들이 찾아왔다. 누구든지 화룡현 로과향 야산에 묻혀있는 맥반석산을 보면 감탄을 금치못한다. 얼떡궁이 사람죽인다고 투자하겠다는 말에 상다리가 불러지게 차려놓고 <구세주>로 모셨다. 얼마나 많은얼뜨기들이 교장선생님의 어께를 딛고 넘어갔는지 모른다. 툭하면 백만원 투자한단다. 백만원을 뇌집강아지 이름처럼 부르며 호통치건만 왜서 우뢰는 우는데 비가 오지않는지? 선생님은 늘쌍 빈주먹을 쥐고 나를 찿아왔다. 빈털털이로 된바하고는 아예 광산을 팔아버리잔다.
나는 어떻게하던지 성사시키려고 텔레비죤방송국 기자들을 동원하여 인터부도 조직하고 <맥반석매주일가>노래까지 창작해서 대대적으로 홍보하였다. 열심히 밀어주지만 갈수록 심산이란다. 그때나 이때나 운이 따르지 않아서인가? 선생님을 구해줄 <신선>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오히려 약한다리에 침질이라고 선생님이 갑자기 간암진단을 받을줄이야 하느님도 무정하지 천하없는 보배산을 안겨주고 손도쓰기 전에 하늘나라로 모셔가면 어떡합니까? 돌부자가 치료비가 없어서 현성의 스산한 병원에서 마지막 숨을 톱는단다. 나는 맥반석을 손에 꼭쥐고 눈물만 흘리시는 선생님을 그대로 보고 있을수 없었다.
생명의 최후경각을 다투는 선생님이 자식들을 두고도 나를 후계자로 찾았다. 그런데 누구도 나에게 알려주지 않았던 것이다. 선생님이 마지막숨을 거두시면서 맥반석소유권을 나에게 넘긴다고 똑똑히 밝혔단다. 내가 찾았을 때는 이미 숨을 거둔 후였다. 가족에서는 대부금 대신 정당잡힌 가옥문서와 빚문서를 나에게 넘기였다. 빚문서에는 함께 동고동락했던 동반자들에게 응당 돌려주어야 할 경제컬레와 개인빈문서가 또박또박 밝혀져 있었다. 선생님은 나에게 맥반석을 끝까지 개발하라고 간곡히 당부하고 운명하셨단다.
나는 장레식을 마치고 맥반석산 소유권과 가옥소유권은 당연히 자식들에게 넘겨주고 빗문서를 가지고 나앉았다. 선생님이 남기신 빚문서를 갖고 빗임자들을 몽땅 모여놓고 사실을 설명하였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돌아가신 선생님의 형편을 그대로 설명하였다. 자식들에게 아름찬 빚을 남겨준것만 해도 가슴아픈 일이 아닌가? 서발몽둥이를 휘둘러 봤대야 전세집에 사람밖에 없는 현실을 감안해서라도 모든것을 잊어달라고 비난사정을 하였다. 고마운사람들은 나의 말뜻을 리해하고 모든빚을 묵과하기로 합의를 보았다. 어찌보면 선생님은 목숨으로 빚을 에때운 셈이다.
차거운 맥반석을 않고 저 세상으로 가신 교장선생님은 너무나도 성실하고 고지식한게 흠이였던가? 나는 오늘도 선생님이 이 세상에 남겨두고 간 맥반석을 보면서 갈피없는 생각에 잠기군한다. 한평생 돌과함께 숨쉬던 선생님이 오늘도 구천에서 인간세상을 굽어보며 무슨생각을 하고 있을가?...
2008년 4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