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추적 여름 장마가 시작되고 있었다.
바다의 여기저기에 흩어져 살던 웅어 가족들은 각자 고향 찾아 갈
준비에 바빴다. 작년에 태어난 새끼 웅어들은 이번 고향 길에 어른이
되어 결혼과 새끼를 갖게 되므로 누구보다도 기대와 설레임으로 가슴
이 부풀어 있었다.
낙동강 웅어 가족도 예외는 아니었다.
"엄마 빨리 출발해 그래야 우리가 좋은 자리를 차지하지."
낙동강물이 찰랑거리는 갈대밭과 모래톱 사이에 그림 같은 우리집을
지어야지 하는 생각에 어린 웅어는 한시가 급했다.
"그래 서두르자. 그러나 출발하기 전에 명심해야 할 것은 우리 조상
들은 임금을 섬기며 지조를 지킨 웅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엄마는 또 그 이야기야."
"그래, 백제 때 의자왕은 우리 웅어가 없으면 진지를 드시지 않을 실
만큼 우리를 사랑했단다. 그래서 우리 웅어들은 소정방이 백제를 점령
하고 부여에서 최고로 맛있는, 백제왕들이 사랑했다는 우리 웅어를 찾
았으나 우리는 지조를 지켜 한 마리도 나가지 않고 꼭꼭 숨어버렸지."
"엄마. 이제 그 이야기는 그만해 귀가 아플 정도야."
"그래, 그러니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참고 견디며 지조를 지키라는
것이다."
낙동강 웅어 가족은 모든 준비를 마치고 지느러미를 꼿꼿이 세우며
힘차게 고향 낙동강을 향하여 출발하였다.
엄마 웅어는 이제 곧 어른이 될 새끼 웅어를 처다 본다. 정말 대견
해 보인다. 그 많은 새끼 중에 이 애 하나만 겨우 건졌다. 인간들이 처
놓은 그물에 걸려 죽고, 낚시에 걸려 죽고, 무엇보다 더 무서운 것은
인간들이 버린 쓰레기와 하수도에서 쏟아져 나오는 탁한 물에 떼죽음
을 당한 것이다.
엄마 웅어는 새끼 웅어를 쓰다듬어 준다.
새끼 웅어은 더욱 신이 나서 벌써부터 이웃 새끼 웅어들을 힐끔힐끔
처다 본다.
"엄마, 저 웅어 정말 멋지다. 지느러미도 크고 몸도 날씬해."
새끼 웅어는 건너편에 힘차게 헤엄쳐 가고 있는 총각 웅어를 가리치
고 있었다.
"그래, 너와 인연을 맺었으면 좋겠구나."
"염려 마, 고향에 가면 내가 꼬실거니까."
"글쎄다, 너를 좋아하게 될 런지 모르겠구나."
"엄마는 나를 물로 보는가봐."
"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웅어로 본다."
새끼 웅어는 즐겁고 신이 나서 엄마 웅어보다 앞서 헤엄쳐 나갔다.
그런 새끼 웅어를 보고 엄마는 나무랐다.
"먼 길을 가야하는데 그렇게 까불고 앞에 나서면 금방 지치고 만다.
내 뒤에 따라오도록 해라 그래야 힘이 적게 든다."
"엄마가 너무 느리니까 그렇잖아요."
"그래도 지쳐서 중도에서 포기하는 것 보다야 낫지 않겠니."
"알았어요, 엄마."
새끼 웅어와 엄마 웅어는 이렇게 다정하게 이야기를 하면서 부지런
히 고향 낙동강을 향해 헤엄쳐 갔다.
"엄마, 고향이 아직 멀었어?"
"글쎄다, 다 된 것 같기도 한데 "
엄마 웅어는 이렇게 말하고 아가미를 벌름거리며 물 냄새를 맡아본
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그걸 어떻게 알아?"
"물 냄새를 맡아보면 안단다."
새끼 웅어는 엄마 따라 아가미를 벌름거리며 물 냄새를 맡아본다.
그러나 물이 조금 싱겁다는 것 말고는 알 수가 없었다.
"나는 모르겠는데."
"이번 고향을 갖다오면 확실히 알게 될게다. 물 속에는 고향의 모래
와 뻘 그리고 갈대의 냄새가 숨어 있단다. 좀더 고향이 가까워지면 너
도 알게 될게다."
과연 엄마 웅어의 말대로 고향이 가까워지자 어린 웅어는 물 속에서
고향 냄새를 맡고는 잠시 어릴 때를 생각했다. 야트막한 모래톱과 우
거진 갈대밭 그 사이로 속살거리는 듯 흘러내리던 낙동강 물! 그곳에
서 숭어랑 꼬시래기랑 게랑, 모두 같이 뛰놀던 추억들이 잠시 머리를
스쳐갔다.
"그래, 나의 신혼 보금자리는 갈대가 우거져 있는 야트막한 모래톱이
다."
어린 웅어는 이렇게 마음을 정하고 아까부터 곁눈질로 지켜보던 이
웃의 멋진 웅어를 살폈다. 멋진 웅어도 새끼 웅어를 훔쳐보고 있었다.
그러다 눈이 딱 마주쳤다. 멋진 웅어가 싱긋 웃었다. 새끼 웅어도 수줍
은 듯 웃었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설레었다. 마음이 급해졌다.
"엄마 빨리 가 왜 이렇게 느려!"
"이 애가 갑자기 왜 이러지. 지금까지 지느러미가 아프다고 게으름을
피우더니."
"고향이 가까워지니까 그렇지."
엄마 웅어는 이런 어린 웅어의 마음을 안다. 그래서 이렇게 핀잔을
주면서도 흐뭇하게 바라본다. 이제 어린 웅어는 어린 웅어가 아니다.
고향에서 결혼을 하고 바로 알을 낳아 수많은 새끼를 탄생시킬 것이
다.
엄마 웅어는 새끼 웅어의 손을 꼭 잡았다 이제 헤어질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어린 웅어는 엄마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런 엄마 손을 빼내고는 엄마를 앞질러 멋진 웅어 쪽으로 다가갔다.
엄마 웅어는 섭섭했다. 그러나 자연의 섭리인 것을
얼마 가지 않아 어린 웅어는 얼굴을 찌뿌드드하게 하고는 다시 엄마
쪽으로 왔다.
"엄마, 이상해."
"뭐가 말이냐?"
"냄새 말이에요. 고향이 가까울수록 향긋하고 달콤한 고향냄새는 사
라지고 맵싸한 냄새가 나."
엄마 웅어는 눈알을 굴리며 아가미로 냄새를 맡아봤다.
"그렇구나. 그러나 곧 없어질 거다."
이때 숭어 한 마리가 숨을 헐떡거리며 내려오고 있었다.
"숭어야 왜 이렇게 숨을 헐떡거리며 내려오고 있느냐?"
"웅어구나, 고향 찾아오는구나. 그러나 틀렸어."
"틀렸다니?"
"너희들도 알다시피 우리들은 항상 고향을 떠날 수 없어 고향근처에
서 뱅글뱅글 돌았지 않니."
"그랬지."
"그런데 고향은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고 있어. 우리들의 보금자리인
갈대밭도 없어져 가고, 인간들이 쏟아 붇는 나쁜 물들은 정말 못 참겠
어. 오늘도 인간들이 비가 오는 것을 핑계로 나쁜 물들을 막 쏟아 붇
고 있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이렇게 도망을 치고 있는 거란다. 그러
니 너희들도 고향에 올라갈 생각을 말아."
숭어는 이렇게 말을 하고는 바다로 내려가 버렸다.
웅어는 숭어의 말이 아무래도 마음에 걸렸지만 고향의 턱밑까지 와
서 그냥 돌아갈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웅어 가족은 설마 하면
서 계속 낙동강을 타고 올라갔다. 맵싸한 냄새는 올라 갈수록 더 심했
지만 참고 견디었다.
얼마를 더 올라가자 이번에는 등허리가 굽은 꼬시래기가 비틀거리며
모래바닥을 구르듯 내려오고 있었다.
"아니 꼬시래기야 왜 그렇게 비틀거리며 내려오니?"
"웅어구나, 너희들이 올 줄 알고 기다렸는데 인간들이 독한 나쁜 물
을 마구 버려 더 이상 고향을 지키고 있을 수가 없었어. 그래서 이렇
게 나쁜 물에 취해 도망을 오는 중이야. 그러니 너희들도 올라가지 말
고 바다로 내려가."
"그런데 등허리는 왜 그렇게 굽었니?"
"응, 고향을 지키려다 보니 자연 인간들이 버린 나쁜 물을 먹게 되어
이렇게 되었단다."
엄마 웅어는 꼬시래기를 측은하게 처다 봤다. 인간들이 정말 잔인하
다고 생각했다. 그와 동시에 엄마 웅어는 바로 눈앞에 있는 고향을 가
야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여야 했다. 만약 가지 못한다면 결혼도 못해
웅어들의 금년도 새끼들은 한 마리도 태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고
독한 나쁜 물이 쏟아져 들어오는 고향에 갔다가는 새끼를 치기도 전에
생명을 잃을 수도 있을 것이다.
새끼 웅어는 엄마의 망설이는 마음도 모르고 멋진 총각 웅어가 헤엄
처가는 곳만 바라보면서 빨리 가자고 재촉이었다.
"엄마 빨리 가. 항상 참고 견디고 지조를 지키라고 말했지 않아."
"괜찮겠니."
"다들 가는데 뭐!"
"그래 가는데 까지 가 보자."
웅어 가족은 맵싸한 냄새가 코를 찔렀지만 참고 견디며 고향인 낙동
강을 거슬려 올라갔다.
얼마를 가지 않아 앞에 가던 웅어들이 살려달라고 아우성을 치고 있
었다. 더러는 물 위에 허연 배를 드려내 놓고 죽어가고 있었다. 새끼
웅어와 엄마 웅어도 가슴이 답답해 오고 눈알이 뛰어 나오는 것 같이
쓰렸다. 이때 시꺼먼 나쁜 물이 새끼 웅어와 엄마 웅어를 덮쳐왔다.
"엄마, 빨리 돌아가."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 엄마 웅어와 새끼 웅어는 시꺼먼 나쁜 물
을 뒤집어쓰고는 정신을 잃고 말았다. 엄마 웅어가 간신히 정신을 차
리고 새끼 웅어를 찾았을 때는 이미 새끼 웅어는 죽어서 물 위에 둥둥
떠 있었다. 엄마 웅어는 우리가 왜 이렇게 죽어야 되는지 인간에게 물
어보고 싶었다.
다시 나쁜 물이 엄마 웅어를 덮쳤다. 엄마 웅어는 결국 허연 배를
내 놓고 숨을 헐떡거리다 죽고 말았다.
웅어가 죽고 결국 인간들도 서서히 죽어갈 것이다.
약력
한국수필 신인상
부산일보 신춘문예 동화당선
한국수산경영기술 연구원 상임이사
남해선박 대표
저서; 수필집 '가을의 창가에서' '자갈치'
어촌 전설집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