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의 사자성어(60)>
운우지정(雲雨之情)
구름 운(雲), 비 우(雨), 운우라 함은 ‘구름과 비’를 뜻하고, 어조사 지(之), 뜻 정(情), 지정이라 함은 ‘~의 정’을 의미한다. 따라서 ‘운우지정’이라 함은
“구름과 비의 정”을 말하는데 ‘남녀간의 사랑’을 뜻한다. 흔히 운우지정을 나눈 사이라고 하면 남녀간에 정(情)을 통한 사이를 말한다.
어느덧 입춘(立春)이 지나니 봄의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새 봄이 오니 일기가 화창하고 온갖 꽃이 피어
봄 산이 마치 웃고 있는 것 같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에는
온갖 생물들의 짝짓기가 분주하기도 하다
신춘도래(新春到來)하니 일기화창(日氣和暢)하도다.
만화방초(萬花芳草)속에 춘산여소(春山如笑)로구나.
만물소생(萬物蘇生)하니 음양화락(陰陽和樂)하도다.
운우지정에 있어서 남녀 중 누가 구름(雲)이고, 누가 비(雨)인가?
구름처럼 훌쩍 나타났다가 또 구름처럼 훌쩍 떠나는 것이 사내들의 버릇이다, 그렇다면 구름이 사내를 뜻하는 것인가?
다른 한편 생각하면, 남자가 비를 흠뻑 내려야 논. 밭의 곡식이 잘 자라는 것이 아닌가, 기회만 있으면 꽃밭에서 놀고 싶어 하는 것이 사내들의 속성이 아닌가, 이로 미루어보면 비(雨)가 남자인 것 같기도 하다. 도무지 알쏭달쏭하기만 하다.
그러나 조운모우(朝雲暮雨)이라는 단어의 유래를 살펴보면, 운우지정도 그 본래의 의미를 알 수 있게 된다.
먼 옛날, 태양의 신 염제(炎帝)의 딸인 요희(瑤姬)는 너무나 아름다워서
사람들이 눈이 부셔 바로 쳐다보지를 못했다.
그러나 가인박명(佳人薄命)이라고 요희는 젊은 나이에 죽었다. 염제는 비통에 젖어 요희를 땅으로 내려 보냈다.
요희는 무산(巫山)땅에서 구름과 비를 다스리는 신녀(神女)가 되었다.
새벽이면 아름다운 구름이 되어 날아다니다가 저녁이면 비가 되어 마음속의 슬픔을 뿌리곤 했다. 여기서 아침 조(朝), 구름 운(雲), 조운(朝雲)과 저녁 모 (暮), 비 우(雨), 모우(暮雨)가 합쳐져 조운모우(朝雲暮雨)라는 말이 이루어졌다.
어느날 초나라 회왕(懷王)이 무산에 놀러와서 고당(高唐)이라는 큰 다락에 머물게 되었다. 그 곳에서 회왕은 어여쁜 여인과 열정적인 사랑을 나누다가 깨어보니 그녀는 사라지고 없었다.
회왕이 오매불망(寤寐不忘), 그 여인을 그리워하자 꿈에 그녀가 나타나 자신은 무산의 신녀(神女)라고 하면서, 아침에는 구름이 되고 저녁에는 비가 되어 내린다고 알려주었다.
회왕은 그녀를 위해 조운(朝雲)이라는 사당을 지어 위로해 주었다.
이렇듯 회왕과 무산신녀(巫山神女)사이의 즐거운 행위에서 유래되어
남녀가 사랑을 나누는 것을 운우지정(雲雨之情), 운우지락(雲雨之樂), 무산지락(巫山之樂), 무산지운(巫山之雲),무산지몽(巫山之夢)이라고 한다.
구름과 비는 맺히고 풀어지는 행위를 뜻한다. 여기에는 사랑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고여서 맺혔다가 쏟아지는 비처럼 풀어진다는 의미가 깃들어 있다.
이 이야기는 초(楚)나라 사람 송옥(宋玉)의 고당부(高唐賦)에 나오는 것이다.
무릇 천지만물은 짝을 이루어 번성해 나간다. 인간세상에 남녀가 서로 그리워하고 사랑함으로써 인류가 존재해 나간다. 서로 미워하고 외면한다면 이는 핵폭탄 보다도 더 무서운 인류의 절멸(絶滅)이라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남녀간의 사랑은 지고지순(至高至純)할수록 우리에게 감동을 준다.
신라시대 박제상의 아내가 그러하다. 박제상은 왜에 들어가 볼모로 잡혀간 왕자들을 귀국시키고, 자신은 왜국(倭國)에서 죽임을 당한다. 박제상의 아내는 바다를 바라보며 남편을 기다리다 망부석(望夫石)옆에서 숨을 거둔다. 삼국유사에 니오는 이야기이다.
와호장룡(臥虎藏龍)이라는 중국영화에도 애절한 사랑얘기가 나온다. 무당파라는 무림에서 어릴 때부터 같이 무예를 익히던 리무바이(주윤발 분)와 유수련(양자경 분)은 서로 마음속으로 사모하면서도 입으로는 표현을 못하고 지냈다. 그러다가 리무바이가 무당파 스승을 독살한 마녀와 대적하여 마녀를 꺽었으나, 마녀의 독침(毒針)에 맞아 독이 온 몸에 퍼져 죽어간다. 리무바이는 죽어가면서 유수련에게 처음으로 사랑을 고백한다. 이 말을 들은 여주인공이 따라 자결한다. 이루지 못한 애절한 사랑을 저 세상에서 맺어지기를 희원(希願)한다. 죽음을 마다 하지 않는 진실한 사랑을 시현(示顯)한 것이다.
서양에서도 마찬가지이다. 1912년 타이타닉호가 빙하에 부딧쳐 침몰 했을 때, 사랑하는 여인을 구명보트에 앉혀 놓고 자기는 차거운 바닷물 속에서 얼어 죽는 젊은 청년의 사랑은 감동적인 장면이었다.
동서양을 불문하고 남녀간의 사랑은 고귀하면서도 영원한 화두이기도 하다. 모든 문학작품과 예술 분야가 남녀간의 사랑을 주제로 하고 있음이 이를 반증하는 것이다.
운우지정(雲雨之情)이라는 말은 남녀간의 사랑 표현에 적정한 것 같다. 구름(雲)도 시적(詩的)인 낱말이고, 비(雨)도 감성적(感性的)인 낱말이다. 그래서 두 글자가 합쳐진 운우(雲雨)라는 말은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느낌을 준다. 거기에 정(情)까지 곁들어 있으니 사랑표현으로는 금상첨화(錦上添花)의 사자성어라고 생각되기도 한다. (2023.0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