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미친짓이다>와 <판타스틱 소녀백서>에 이어, 내 친구 공갈님과 <오아시스>를 봤습니다. 글쎄, 노량진을 가기만 하면 뒷목이 뻐근해지고 영화를 보고 싶어 지는 지 모르겠습니다.
영화를 보고나서 아주 마음이 우린 마음이 꽤 유쾌해졌죠. 공갈님과 <어른이 뭔지 알아?>라는 대사를 되새김질 하고, 공갈님도 슈퍼에 가서 인상찡그리고 생두부 하나 달라고 한후 우걱우걱 입안으로 쳐 넣으면 슈퍼주인이 분명 영화처럼 돈을 받지 않고, 딸기 우유도 공짜로 주리라는 농담을 했으며, 바로 옆 한강에 가서 낮술을 먹는 일탈, 짜릿한 일탈, 과감한 결정을 해 볼까 생각도 했습니다.
영화관을 나오며 홍상수 감독을 생각했습니다. 준학이형 말대로 삶을 zoggachi 적나라게 보여주는 홍상수의 영화들 - <돼우물>, <오수정>, <생활의 발견> 등과 다른 이창동의 매력! 휴머니즘(^^;) 이라 할 수 있을까, 암튼 홍상수와는 다른 이창동의 매력을 한층 실감했습니다.
홍상수는 염뭐시기 작가처럼 적나라고 무미건조하게 우리의 일상을 우리에게 드러냄으로써 심기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사랑하는 연인의 간사한 심리를 드러낸 <오수정>이나, 우리 쪽팔린 과거를 드러낸 <생활의 발견>은 참으로 대단하면서도 외면하고 싶은 우리네 모습들인 셈이죠.
<오아시스>에 나오는 장군과 공주, 그리고 주변인물의 캐릭터는 실제 우리삶에 흔하지 않죠. 우리 모둔 적당히 인자하고, 적당히 사악하니까요. "어떠한 감정을 개입시키지 않고 철저히 객관적으로 우리네 일상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이창동 감독의 말은 영화적으로는 성공했을지 모르겠지만, 그 기저에 놓여있는 플롯, 내지는 스토리에 존재하는 따스함은 간과한 듯 싶네요.
오아시스의 큰 줄거리는 장군과 공주의 애뜻한 사랑이죠. 참 행복하겠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그들의 사랑은, 우리 모두가 한번쯤은 꿈꿔 봤을 연인과 밤늦게 전화통화하기, 지하철 막차 놓치기, 연인의 머리 감겨주기, 연인과 노래부르기 등으로 나를 부럽게 만들었습니다.
장군이 억울하게 전과 3범인 것, 공주가 지체부자유인 것, 공주의 오빠, 장군의 가족, 식당에서 점심시간 끝났다고 말하는 사람, 얼빵한 장군이 째려보면 아무말 못하는 사람들, 이 모두가 장군과 공주의 사랑을 더욱 아름답게 만드는 교묘한 문학적 장치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이감독님은 중간중간 공주가 어여쁜 정상인으로 애인 장군과 데이트를 하는 환상적 장면을 삽입함으로써, 우리 보는 이들의 기대를 져버리지 않죠. 끝내는 장군이 나뭇가지를 자르고, 공주는 안간힘을 써 라디오 소리를 크게 트는 감동을 우리들에게 선사하죠. 이창동감독의 영화는 이렇게 플롯이 교묘하고 탄탄해서 좋습니다.
이렇게 생각을 해보니, 장군이 왜 처음에 공주를 강간하려 했을까하는 의문의 해답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 이후 장군은 공주가 까먹고 용서를 해주지 않아 발을 저려하면서도 편히 앉지 않고, 공주와 그토록 단둘이 있는 시간이 많으면서도 덮치지 않고, 결국 공주가 허락을 했을때 사랑을 나눴을까 하는 의문. 인물의 일관성 없음. 홍상수 식대로라면, 장군이 공주 머리를 감기다가 잠시 장군의 얼굴이 클로즈업 되면서 잠시 둘 사이에 침묵이 진행된 후, 바로 작업이 들어가는게 정상인데 말이죠.
장군 형이 빠따질, 교회에 매달리면서도 사랑을 실천하지 않는 형수(이창동은 아마 기독교에 무언가 상처를 받은 것 같아요. 박하사탕때도 그렇게 희화화시키더니... 천벌받을려고^^
공주가 보는 앞에서 정을 통하는 옆집 아줌마와 남편, 공주의 오빠와 그 아내. 이 평면적 인물군들, 악한들. 쉽게 말해 공주와 장군을 뺀 나머지 모두들. 이들은 장군과 공주의 사랑을 아름답게 만드는 장치, 내지는 기능적 인물군들인 셈이죠.
이창동은 이 악한 인물군들에 시청자를 포함시키는 불순한 의도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초반부 병신과 전과자의 썸씽직전을 통해 시청자들을 불쾌하게 만든 후, 봐라. 너네가 이렇게 불쾌하게 여겼던 이 두사람이 얼마나 아름다운 사람들이냐. 너희도 저들과 똑같다. 이렇게 불연속적으로 시청자에게 무언가 무거운 짐을 언져 버리려는 것 같았습니다.
쓰고 나니 꽤 길군요...
이창동은 낭만주의자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상은 불순하다고 생각하고, 아름다운 사랑을 상상하는...
전 장군과 공주의 애뜻한 사랑만들기만을 중심으로 보며 부러워 했습니다. 과연 그런 사랑이 세상에 있을까 싶고, 그런 점에선 홍상수가 솔직적나라지만, 그러면 세상이 너무 x같잖아요. 그런 점에서 이창동을 좋아합니다. 박하사탕도 지금 생각하면, 뭔가 아련함의 영화로만 기억되네요...
사실, 세상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리고 우리들은 악한이라기보다는
무기력한 소시민일 뿐이죠. 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