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지도에서 본 웅천읍성의 모습입니다. 여지도를 기준으로 본다면 웅천읍성의 경우 사대문이 있으며 객사가 동측 동헌이 서측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해동지도에서 본 웅천읍성의 모습입니다. 여지도와 같이 4대문이 있으며 남문과 동문을 중심으로 도로가 발달했음을 보여줍니다.
웅천읍성의 평면도로 길다랗게 된 사각형의 읍성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치성이 6개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웅천읍성의 경우 평지에 조성된 평지읍성으로 4대문의 경우 도로를 중심으로 발달되었는데 +자 도로임을 알 수 있는데 보통 읍성의 경우 대문과 도로는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는데 성문이 4개일 경우 도로의 경우 +자로 되어있고 성문이 3개일 경우 도로는 T자형으로 발달이 됩니다. 따라서 웅천읍성의 경우 성문이 4개로 봐서 도로의 경우 +자로 발달했을 것으로 보이며 현재 웅천읍성내에 존재하는 도로가 예전의 도로일 것으로 보입니다.
2007년 3월에 찾아간 웅천읍성에서 본 동측성곽입니다. 당시에도 웅천읍성의 동측성곽의 경우 잘남아있었으며 체성을 보면 전형적인 조선초기 연안읍성의 방식을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2009년 8월의 웅천읍성으로 위 사진의 동측성곽과 같은 곳인데 웅천읍성 발굴 복원을 하면서 나타난 부분으로 하부를 발굴하고 나니 성벽의 높이가 더 높아져 보입니다.
성벽하단에 있는 면석의 경우 상당히 큰 것을 알 수 있으며 하부에는 수구도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동문지에서 발견된 기초석을 보면 성문을 단 흔적이 보입니다.
해자 부분과 동측 성곽입니다. 해자발굴 당시 목익이 출토되었습니다. 목익의 경우 해자안에 놓아둔 나무로 만든 뽀족한 것으로 적이 해자를 건널시 방해를 위한 방어도구입니다.
웅천읍성의 복원 CG로 동헌과 내아의 모습이 보이고 동측에는 객사의 모습이 보입니다. 이런식으로 처음에는 계획을 하였지만 지금은 동측성곽의 복원만 계획중이라고 합니다.
웅천초등학교 교사로 사용한 웅천읍성 객사의 모습입니다.
진해예술촌앞에 있는 보호수로 수령은 250년이상이라고 하는데 정확한 년도는 잘 모르겠네요. 아무튼 보호수 위에 있는 운동장에 동헌이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웅천읍성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웅천현 공적비의 모습으로 잘 찾아보지 않으면 지나치기 쉬운곳에 있습니다.
웅천읍성은 태종7년(1407년)에 일본과 선린 정책으로 제포를 개항하자. [여기서 제포의 개항이란 삼포{부산포,염포(현재 울산시 현대자동차공장자리),제포(진해시 제덕동 포구)}를 이야기합니다.] 삼포의 개항으로 일본인들의 무역 거류가 허가되고, 해마다 그 수가 늘어나게 됩니다. 조정에서는 이곳에 왜관을 두어 그들의 교역 접대 장소로 사용한 것이 웅천읍성입니다. 왜인들이 조정을 가기 위해 제일 먼저 웅천읍성을 들러 인사를 하고 조정을 향해 갔습니다.
제포에 일본인들의 거주자가 많아지자 읍민을 보호하기 위해 세종19년(1437년)에 이 웅천읍성을 쌓았다. 기록에 의하면 성의둘레는 약1km, 높이4.5m 이며 6개의 우물과 4개의 성문이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총길이 936m 폭은 2~4m, 높이 3~4m의 성벽이 동,서,남쪽에 남아 있습니다.
웅천읍성은 삼포왜란때 웅천읍성이 함락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조정에서는 황영과 유담년을 삼포로 보내어 제압하였습니다. 삼포왜란으로 군민272명이 피살되고 민가 796호가 불탔으며 왜선5척이 격침되고 295명이 참획되었다고 합니다.
삼포왜란이 끝나고 부산포와 염포는 폐쇄하였지만 제포만 개항되었습니다.
그후 1592년 임진왜란때 일본군에 의해 또 웅천왜성은 함락당하고 맙니다. 그후 정유재란때 고니시 유키나가군은 웅천에 상륙하여 또 웅천읍성이 함락당하기도 합니다.
당시 웅천읍성의 규모는 [동국여지승람] '성곽조'에 의하면 "석축으로 둘레가 3,514척이고 높이는 15척이며, 성 안에는 2개의 우물이 있다." 라고 적혀있습니다. 웅천읍성은 삼포왜란과 임진왜란으로 한때 함몰되기도 하였으며 현성으로서의 행정적인 기능은 문종 2년(1452년) 웅신현과 완포현, 그리고 천읍부곡을 합하여 웅천현으로 승격된 이후부터입니다. 읍성안에는 동헌, 객사, 장적고, 향사당, 인리청, 군관청, 장관청, 훈도청, 지인방 등이 있으며 문루는 동문의 견륭루, 서문의 수호루, 남문의 진남루, 객사문루인 정해루등이 있었으나 지금은 흔적조차 없습니다.
현재는 경남발전연구원 역사문화센터에서 동측성곽을 발굴했으며 복원공사가 진행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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