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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최인호 연보
*작가 최인호*
1945년 - 10월 17일, 서울에서 변호사였던 아버지 최태원과 어머니 손복녀의 3남 3녀 중 차남으로 출생.
1951년 - 1월 6.25 동란으로 인해 부산으로 피난.
1952년 - 3월 국민학교 입학. 2학기 때 2학년으로 월반.
1953년 - 서울로 돌아와 영희국민학교로 전학.
1954년 - 덕수국민학교 전학.
1955년 - 아버지 별세.
1958년 - 서울중학교 입학.
1961년 - 서울고등학교 입학.
1963년 - 고등학교 2학년 때 소년의 도벽을 그린 단편 [벽구멍으로]가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입선. 그러나 고등학생인 것을 몰랐던 한국일보 주최측에서상금만 주었고 게재하진 않았음. [벽구멍으로]의 원고는 당시 한국일보 화제사건으로 원고가 소멸됨.
1964년 - 연세대학교 문리대 영문과 입학.
1966년 - 11월 공군 사병으로 군 입대.
1967년 - 군복무 시절 단편 [견습환자]가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 11월에는 단편 [2와 1/2]로 <사상계> 신인문학상 수상.
1969년 - 단편 [순례자](현대문학) 발표.
1970년 - 단편 [술꾼](현대문학), [모범동화](월간문학), [사행](현대문학) 발표. 공군을 제대하고 11월 황정숙과 결혼.
1971년 - 단편 [예행연습](월간문학). [뭘 잃으신 게 없으십니까?](신동아), [타인의 방](문학과 지성사), [침묵의 소리](월간중앙),[미개인](문학과 지성사), [처세술 개론](현대문학) 발표.
1972년 - 단편 [황진이1](현대문학), [전람회의 그림1](월간문학) 발표. 장편 [별들의 고향]을 조선일보에 연재. [타인의 방],[처세술 개론]으로 현대문학상 신인상을 수상. 연세대 영문과 졸업. 딸 다혜 출생. 단편 [전람회의 그림2](문학과 지성사), [영가](세대), [황진이2](문학사상), [병정놀이](신동아) 발표. 중편[잠자는 신화](문학사상), [무서운 복수](세대) 발표. 장편 [내 마음의 풍차]를 중앙일보에 연재하고 또 [바보들의 행진]을 일간스포츠에 연재. 작품집 [별들의 고향]상,하 권 및 [타인의 방]을 간행.
1974년 - 단편 [기묘한 직업](문학사상), [더러운 손](서울평론)발표. 희곡 [가위 바위 보]를 산울림 극단에서 공연. 작품집 [바보들의 행진][맨발의 세계 일주][영가]간행. 세계 13개국을 순방. 아들 성재(도단) 출생.
1975년 - 단편 [죽은 사람들](문하고가 지성사) 발표. [가족](샘터) 연재. 작품집 [구르는 돌][우리들의 시대]1,2권, [내 마음의 풍차]간행. 영화 [걷지 말고 뛰어라]로 감독데뷔.(영화감독 데뷔작이자 마지막 작품. 흥행에는 본전치기 정도. 망하진 않았음)
1976년 - 단편 [즐거운 우리들의 천국](현대문학) 발표. 장면 [도시의 사냥꾼]을 중앙일보에 연재.
1977년 - [개미의 탑](문학사상), 중편 [두레박을 올려라], 희곡 [향기로운 잠](문학사상), [다시 만날 때까지](문학과 지성사), [하늘의 뿌리](문예중앙) 발표. 장편 [파란 꽃]을 서울신문에 연재. 작품집 [도시의 사냥꾼]1,2권 [개미의 탑], [청춘의 왕]간행.
1978년 - 중편 [돌의 초상](문예중앙) 발표. 장편 [천국의 계단]을 국제신보에, [지구인](문학사상), [사랑의 조건](주부생활) 에 연재. 작품집 [사랑의 조선][천국의 계단]1,2권 간행. 미국을 여행(3개월간 체류).
1980년 - 작품집 [지구인]1,2권, [불새]간행.
1981년 - 단편 [아버지의 죽음](세계의 문학), [이상한 사람들1,2,3](문학사상), [방생](소설문학) 발표. 장편 [적도의 꽃]을 중앙일보에 연재. 작품집 [안녕하세요 하나님] 간행.
1982년 - 장편 [고래사냥](엘레강스), [물위의 사막](여성중앙)에 연재. 단편 [위대한 유산](소설문학),[천상의 계곡](소설문학),[깊고 푸른 밤](문예중앙) 발표. [깊고 푸른 밤]으로 제6회 이상문학상 수상. 작품집 [적도의 꽃][위대한 유산]간행.
1983년 - 작품집 [물위의 사막][가면무도회] 간행. 장편 [밤의 침묵]을 부산일보에 연재.
1984년 - 장편 [겨울 나그네] 동아일보에 연재. 샘터에 연재한 '소설로 쓴 자서전이라 할 수 있는' [가족1]간행.
1985년 장편 [잃어버린 왕국] 조선일보에 연재. 작품집 [밤의 침묵]간행.
1986년 - 장편 [잃어버린 왕국], 수필집 [모르는 사람에게 보내는 편지]간행. 영화 [깊고 푸른 밤]으로 아시아 태평양 영화제,대종상 각본상 수상.(영화 [깊고 푸른 밤]은 단편 [깊고 푸른 밤]과 [물위의 사막]을 합쳐 새롭게 구상한 시나리오로 동명의 단편인 [깊고 푸른 밤]과는 구조적으로 많이 다름)
1987년 - 작품집 [저 혼자 깊어가는 강], 소설로 쓴 자서전 [가족2]간행. 카톨릭에 귀의(영세명 베드로), 어머니 별세. [잃어버린 왕국] kbs 다큐멘터리 촬영차 장기간 일본에 체류.
1988년 - 다큐멘터리 [잃어버린 왕국]이 5부작으로 kbs에 방영. [어머니가 가르쳐 준 노래](생활성서) 연재 시작.
1989년 - 수필집[잠들기 전에 가야 할 먼 길]간행. 장편 [깊 없는 길]을 중앙일보에 연재.
1990년 - 장편 [구멍](현대문학) 연재.
1991년 - 장편 [왕도의 비밀] 조선일보 연재 시작. 수필집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간행.
1992년 - 동화집 [발명왕 도단이]간행. 중편 [산문](민족과 문학)발표. <샘터>에 연재중인 [가족]을 200회 기념으로 [신혼일기](가족1),[견습부부](가족2),[보통가족](가족3),[좋은이웃](가족4) 간행. 영화 [천국의 계단]시나리오 집필. 시나리오 선집 3권 발간.
1993년 - [길 없는 길](전4권)간행. 카톨릭 서울 주보에 칼럼 연재시작. <일본 속 한민족 고대사 탐방>으로 일본 여행.
1994년 - 교통사고로 16주 입원 치료. 장편소설 [허수아비]간행. 동남아,유럽,백두산 여행. 중국을 1개월간 답사여행. 출세작인 [별들의 고향]을 출간 20년만에 재간행.
1995년 [왕도의 비밀](전3권) 간행. 광복 50주년 기념 sbs다큐멘터리 6부작 [왕도의 비밀] 촬영. 중국을 3개월간 여행. 한국일보에 [사랑의 기쁨] 연재 시작. 동아일보 칼럼 집필.
1996년 - sbs 다큐멘터리 6부작 [왕도의 비밀] 방영. [고래사냥]뮤지컬 공연. 글과 그림이 있는 책 [몽유도원도]출간. 수필집 [사랑아 나는 통곡한다]간행.
1997년 - [겨울나그네] 뮤지컬 공연. [사랑의 기쁨] 출간.
- <청아출판사의 [이 지상에서 가장 큰 집] 에서 발췌한 것임>
작가 최인호 탐구
한국 문단에서 이색 기록을 가장 많이 보유한 작가다. 최연소 신춘문예 당선, 최연소 신문연재 소설가, 작품이 가장 많이 영화화된 작가, 책표지에 작가사진이 실린 최초의 작가 등이 그가 갖고 있는 타이틀이다. 최인호는 서울고 2학년 재학중이던 열여덟살 때(1963)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벽구멍으로」로 당선작 없는 가작입선을 했다. 수상식장에 나타난 교복 차림의 최인호를 보고서야 그가 고등학생임을 알게 된 신문사 측은 그의 이름만 내고 작품은 게재하지 않았다. 그나마 한국일보 화재 때 작품이 소실되어 사라지고 말았다.
196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 후 주요 문예지에 글을 게재하던 최인호는 스물 일곱 되던 1972년 『별들의 고향』을 조선일보에 연재함으로써 최연소 신문연재 소설가로 기록되었다. 원래 제목은 `별들의 무덤`이었으나 신문사측에서 `조간신문에 아침부터 무슨 무덤이냐`며 일방적으로 `고향'으로 바꿔 버렸다고 한다. 이 글이 나오자 당시 전국의 술집 아가씨들이 너도 나도 가명을 `경아'로 고쳤을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1973년 예문관에서 상하권으로 나온 『별들의 고향』은 출판되자마자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100만부가 팔려 나갔으며, 작가에 대한 독자들의 궁금증을 풀어주기 위해 책 뒤표지 전체를 최인호의 얼굴사진으로 채웠다. 책 표지에 작가 사진이 게재된 최초의 사례였다. 최인호는 영화화된 작품을 가장 많이 보유한 작가이기도 하다.
『적도의 꽃』 『고래사냥』 『별들의 고향』 『깊고 푸른 밤』 『겨울여자』 등 흥행에 성공한 작품만도 20여편이나 된다. 한국 최초의 본격 대중작가로 기록된 최인호는 한 달이면 천여장씩 쓰는 다작을 기록하다가, 때로는 쉼표 삼아 몇 년씩 쉬기도 하면서 숱한 베스트셀러를 양산해 왔다. 최인호의 문학은 『별들의 고향』 『겨울 나그네』 『사랑의 기쁨』으로 이어지는 로망, 『깊고 푸른밤』 『적도의 꽃』 등 도시적 감수성이 짙은 현대소설, 그리고 『잃어버린 왕국』 『길 없는 길』 『왕도의 비밀』로 이어지는 역사소설 등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된다.
소설이라는 숭고한 문학양식을 상업거리로 삼는다는 악평을 받기도 했지만, 그의 작품세계는 깊고 넓은 편이다. 무엇에 미치기를 잘 하는 타고난 `재능` 덕분에 다양한 소재의 글들을 잘 소화해 냈다. 80년대 말엔 법륭사 벽화를 보고 충격을 받아 백제에 푹 빠져 『왕도의 비밀』을 창작했고, 조선시대 실존인물인 한국 불교 선맥의 거봉 경허를 주인공으로 『길 없는 길』을 써냈다. 90년대 중반엔 고구려에 미쳐 광개토대왕을 주인공으로 한 5부작 『잃어버린 왕국』을 발간하기도 했다. 열애 끝에 결혼한 부인과 딸 다혜, 아들 도단이 사랑하는 그의 가족이다. 『겨울 나그네』에서는 딸과 같은 이름의 여 주인공을 등장시키기도 했다. 1987년 가톨릭에 귀의했으며, 1994년 교통사고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1971년「처세술개론」「타인의 방」으로 <제17회 현대문학상>, 1982년「깊고 푸른 밤」으로 <제6회 이상문학상>, 1999년 <제1회 카톨릭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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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최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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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최인호 씨는 세상에서 가장 성스러운 곳은 집이라고 믿는다. 유교 역사를 소재로 한 6권짜리 장편소설 <유림>(열림원)을 쓴 여백미디어 사무실에 있는 작업실에서 이야기를 짓다 오후 6시면 귀가한다. 지금은 친구들이 섭섭해할 정도로 친구들도 만나지 않는다. 부인 황정숙 씨가 최고의 친구이므로. 귀가한 그는 하루 종일 집에 머물며 남편을 기다린 아내와 수다를 떤다. 그래서 자칭 ‘젖은 낙엽이 아니라 본드로 붙인 낙엽’인 그는 6시간 동안 쇼핑하는 아내를 지켜보는 즐거움에도 눈을 떴다. 이제부터는 그를 ‘아내에게 복종함으로써 행복해진 남자’라고 불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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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미국서 할머니가 뽀뽀한다 최인호 씨가 일간지 <서울신문>에 <유림>을 연재하기 시작한 것은 2004년 1월이었다. 3년간 1천 회를 써야 하는 대하장편소설의 길이만큼이나 고고한 작업. 고도의 몸 관리와 컨디션 관리가 필요하다. 그는 이 3년 동안 이틀간의 결석을 제외하고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성실하게 출석했다. ‘집사람이 받는 스트레스가 심해’ 출판사 사무실에 작업실을 마련하고 출근을 시작했다. 한남동의 주택을 개조한 그의 작업실에는 유교 관련서들이 꽂혀 있는 책상과 두 개의 작은 서가가 있다. 작업실과 소담한 정원 사이에는 운동기구가 놓여 있다. 간소한 작업실에서 눈에 띄는 것은 벽에 걸려 있는 액자다. 원고지에 씌어 있는 것이 육필 원고인가 싶어 살펴보니 그의 어머니가 미국에 체류하던 때 아들 가족에게 보내온 오래된 편지다. 1974년 6월 3일에 씌어진 것으로 되어 있으니 편지의 나이도 33년이나 되었다. 안부를 전하고 묻는 내간체 편지를 읽다 보니 끝인사를 주목하게 된다. “우리 다해, 경재, 멀리 미국서 할머니가 뽀뽀한다.” 손자와 손녀를 향한 가없는 사랑이 담긴 현재형의 인사가 오늘 받은 편지처럼 생생하다. 가족을 삶과 세상의 중심으로 여기는 그의 얼굴에서 정직하게 사랑을 표현하는 그의 어머니를 그려본다.
“선생님께서는 가족에 대해 축복의 성소라고 말씀하시곤 합니다.” “가족은 모든 사람이 시작되는 곳이며 모든 인격이 완성되는 곳이에요. 공자님이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를 얘기했는데, ‘수신제가’라는 게 사실 어려운 일이에요. 밖에서 존경받기는 쉬워도 자식들에게 마음으로부터 존경받는 아버지가 되는 건 하늘의 별 따기예요. 밖에서는 이름난 대통령일지 몰라도 아내에게 경멸받지 않고 존경받는 남편은 드물어요. 공자님 말씀은 21세기에도 필요한 덕목이에요.” “가족의 행복을 위한 선생님만의 가정관리법이 있으신지요?” “지금은 안 그렇지만 예전엔 부부싸움을 무지하게 많이 했어요. 과장이 아니에요. 그래서 우리 딸이 상처를 많이 입었어요. 우리 부부가 싸우는 문 앞에서 그만 싸우게 해달라고 기도했대요. 저는 집사람에게 칭찬을 많이 해요. 자꾸 칭찬하다 보면 칭찬할 거리를 또 발견하게 되죠. 요즘 섹스리스 부부가 많다고 하는데, 그건 굉장히 안 좋은 것 같아요. 그것도 부부간 커뮤니케이션 중의 하나거든요.” “부부싸움의 이유는 매우 사소한 걸로 시작된다고들 말씀하시는데….” ![]() “부인 쇼핑하는 데도 동행하신다고요?” “집사람하고 같이 다니는 게 재밌어요.” “남자들이 제일 싫어하는 것 중 하나가 여자들 쇼핑 따라다니는 것이라는 통계도 있지요?” “생각하기 나름이죠. ‘재밌어’ 라고 생각하니까 재밌어지더라고요. 전 집사람이 쇼핑할 때 어떤 방법을 쓰냐면, 집사람이 가게 안으로 들어가면 밖에서 기다리면서 시가를 피우거나 커피를 마셔요.” 그는 부인 황정숙 씨를 대학시절 만나 군복무를 마치던 스물여섯에 결혼했다. 20대의 그에게 ‘이탈리아 수도원의 원장’처럼 느껴졌던 황정숙 씨는 조용한 성격의 소유자. 예순이 넘은 지금도 스타일은 그대로여서 집에서 조용하게 남편의 귀가를 기다리는 편이라고 한다. 드러나는 것을 반기지 않는지, 그가 여성지 인터뷰를 하는 날이면 아내는 현관문까지 따라 나와 ‘나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한다. 하지만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가족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
1 작업실 서재 벽에 걸려 있는 유일한 액자는 그의 어머니가 오래 전에 보내주신 편지다.
2 1972년 신문에 연재한 뒤 발간된 <별들의 고향> 책 뒤표지에 실린 사진. 미소가 해맑다.
3 최인호 씨와 부인 황정숙 씨는 캠퍼스 커플로 만나 스물여섯 살에 결혼했다. 사진은 1970년 연애할 때의 모습.
유교는 21세기에 지켜야 할 소중한 유산 작품을 구상하고 집필하고 쓰는 과정을 출산에 비교하곤 하는 그가 <유림>을 배태한 것은 1990년이었다. 1989년 <중앙일보>에 불교소설 <길 없는 길> 연재를 시작한 그는 소설을 위한 취재활동을 통해 우리 민족의 핏속에는 불교뿐만 아니라 유교도 있음을 자각하게 된다. 그리고 17년 만에 순산을 하게 되었다. 중장년층은 물론 청소년들에게도 높은 호응을 받고 있는 <유림>을 통해 그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과거의 유산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현재를 살고 있다는 것. 3년 동안 3백여 권의 책을 읽으며 자료를 조사한 그는 조광조, 공자, 노자, 이황, 맹자, 이율곡의 삶을 복원한다. 그의 몽블랑 만년필과 원고지 위에서 되살아난 과거는 지난 인물들이 멀리 있는 사람이 아니라 우리와 같은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일 수 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유교에 대해 따분하게 여기는 사람이 많습니다.”
“유교는 낡은 유산이 아닙니다. 김수한 추기경께서 유교에 대해 우리가 지금이야말로 지켜야 할 소중한 유산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저도 동의해요. 우리나라는 해방 이후부터 서구적 자본주의를 쫓아왔거든요. 서구적 자본주의가 뭐냐면 닥치는 대로 가서 먹어 삼키고, 이익이 있는 곳에 가면 하이에나처럼 물어뜯는 건데, 그 효율성이 지금은 떨어졌어요. 유교적 자본주의는 가족주의라고 할 수 있는데요, 우리나라가 작년에 3천억 달러 수출을 달성해서 세계 11대 경제대국이 된 것도 유교적 자본주의 덕분에 가능했던 것이죠. 우리 형도 대우에서 오래 근무하셨지만 샐러리맨들이 24시간 일을 했거든요. 유교적 전통이 없으면 그렇게 될 수가 없어요.”
“3년 동안이나 연재를 하셨으니, 작품을 끌고 가는 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겠지요?”
“제가 성질이 급한데도 글을 쓸 때에는 참 이상하게도 참을성이 많아요. <유림>을 쓰는 동안 제일 어려운 게 뭐였냐면 처음의 초심과 열정, 긴장감을 끝까지 일관되게 유지하는 것이었어요. 마찬가지로 부부관계도 그래야 될 거라고 생각해요.”
“사랑의 감정이 지속되는 기간은 18개월이라는 발표도 있었습니다만….”
“개똥 같은 얘기예요. 제가 아내와 결혼한 지 40년 가까이 되는데, 지금도 집사람을 다 알지 못해요. 멋지게 보이려고 하는 얘기가 아니에요. 제가 어떻게 우리 집사람의 광맥을 다 알겠어요? 그 사람이 갖고 있는 수만 가지 매력을 하루에 하나씩 발견한다 해도 평생을 못 보고 죽을 텐데요. 그래서 <가족>이라는 소설도 30년 이상 쓸 수 있었던 것이고요.”
그가 부인 황정숙 씨에게서 새로운 면모를 발견한다는 이야기에는 여러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기본적으로는 황정숙 씨가 매일 매일 새로워지고 있는 것일 테고, 아내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기 위해 그의 안목이 매일 매일 거듭나고 있다는 이야기도 된다. 거듭남은 철저한 반성과 성찰이 동반되지 않으면 이를 수 없는 산봉우리. 스스로 변화하겠다는 의지가 없다면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용서라는 개념은 기독교의 핵심 사상이고 핵심 교리일 뿐 아니라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도리인 것 같습니다. 저도 실제로 아이들을 키울 때 상처를 참 많이 줬지요. 모든 상처가 가정과 학교에서 나온다고 하는데요, 부모건 교사건 남에게 잘못했다고 느낄 때는 용서를 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 아들에게 정식으로 ‘그때 그런 일이 있었는데 내가 정말 잘못한 일이었다’ 라고 용서를 구한 적이 있지요. 사소한 일인 것 같지만 그렇게 용서를 구하니 엄청난 화해를 이루게 되더군요.”
- <대화> 중에서
예수님의 ‘사랑’ 그리고 싶다 그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소설을 쓰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톰 소여의 모험>을 읽은 것이 계기였다. 이모의 괄시를 받던 톰 소여가 ‘내가 죽으면 이모가 슬피 울겠지?’라고 상상하는 장면에서 감정이입이 되어버렸다. 어쩌면 당시 그가 어머니에게 혼난 뒤 읽은 것은 아니었을까? 그러면서 ‘소설은 내 감정을 그대로 묘사해내는 존재’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다음 작품으로 예수님 이야기를 쓸 거라고 공표하셨지요?”
“그 전에 연애소설을 한 편 쓰고 싶어요. 정말 쓰고 싶어요. 옛날에 <별들의 고향> 쓸 때에는 제가 여성의 심리를 다 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전혀 몰랐음을 나중에야 알았어요. 그런데 요즘은 좀 알 것 같아요. 쓰고 싶은 연애소설은 이런 이야기예요. 한 예순쯤 된 남자가 어느 날 아내 앞에서 ‘엉엉’ 울어요. 남자들은 보통 ‘엉엉’ 하고 잘 안 울거든요. 그러면서 자기가 어떤 여자한테 반했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거예요. 그 이야기를 들은 아내는 질투를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남편 몰래 그 여자에게 찾아가서 우리 남편을 만나달라고 이야기하는 그런 소설이에요.”
지금까지 쓴 모든 작품들이 예수님을 이야기하기 위한 준비 과정이었다고 말하는 그가 다음 작품에서 ‘사랑’을 그리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인 듯 보인다. 예수님을 이야기하려면 예수님이 보여주었던 사랑을 몸과 마음으로 이해해야 가능하니 말이다.
“정신이나 내면에 관심을 갖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는지요?”
“가톨릭에 귀의하고 난 뒤부터예요. 저에게는 그 시간이 완벽한 전환점이 되었어요. 젊었을 때에는 제 소설에 살이 많고 화려했는데 요즘에는 문장 표현이 무지하게 단순해진 것 같아요. 제가 생각해도 희한한 일인데, 더 단순해지고 싶어요.”
“선생님께서는 늘 다음 작품에 대해 여쭙지 않아도 먼저 말씀하시곤 합니다.”
“제가 권투선수 ‘알리’ 같은 체질이거든요. 알리는 권투할 때 두려워지면 ‘나는 나비처럼 날아올라서 벌처럼 쏜다’고 말해요. 그게 뭐냐면, 자기 두려움과 불안을 지우고 더 치열하게 몰두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하는 것이지요. 그렇게 이해해주시기를 바랍니다.”
“효과가 있나요?”
“효과가 좋아요. 어려운 일을 할 때일수록 자기 최면과 자기 확신이 필요하죠.”
“저는 가장 큰 스승으로 성경에 나타난 예수를 꼽고 싶습니다. 저는 예수를 신적인 존재나 성인이 아니라 우리와 같은 인간으로 보고 싶은데, 그런 의미에서 예수는 내가 아는 가장 매력적인 사람입니다. 그는 인간에 대한 뜨거운 사랑으로 불타는, 그런 이였지요. 그 외에도 불경 속의 부처나 선승들, 가톨릭의 성인 성녀들이 저를 감동케 합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읽으면 눈에서 비늘이 떨어지는 것 같고 어느 순간 숨이 막히곤 하지요.”
- <대화> 중에서
“작품을 잘 써야겠다 하는 마음은 없나요?”
“그 마음이 제일 무서워요. 작품을 쓸 때요, 평상심을 가져야 해요. ‘요거 잘 써야지’ 그러면 초쳐요. 여자들도 연애할 때 ‘이 남자한테 잘 보여야지’ 그러면 뭐가 잘 안 되잖아요? 일도 마찬가지예요. 자연스러운 것이 제일 좋아요.”
“그 마음이 제일 무서워요. 작품을 쓸 때요, 평상심을 가져야 해요. ‘요거 잘 써야지’ 그러면 초쳐요. 여자들도 연애할 때 ‘이 남자한테 잘 보여야지’ 그러면 뭐가 잘 안 되잖아요? 일도 마찬가지예요. 자연스러운 것이 제일 좋아요.”
예수님 이야기를 완성하면, 불교·유교·기독교에 관한 소설을 통해 한민족의 역사를 두루두루 살피게 되는 셈입니다.”
“저는 해방둥이인데, 그게 저한테는 단순한 의미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해방둥이로 태어난 것이 운명이지요. 그래서 제게는 우리 민족의 정체성에 대해 뭔가 써야 한다는 사명감 같은 것이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한글 세대 선두주자로서 소설뿐 아니라 국민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작업을 해야겠다는 개인적 염원도 있어요.”
“1963년 데뷔한 이래 지금까지 50권 이상의 작품을 발표하셨어요. <유림>처럼 여러 권짜리 작품을 낱권으로 세면 훨씬 많아지겠지요.”
“피임을 안 하니까요. 산아 제한도 하지 않아요. 제가 원하는 대로 다 씁니다.”
“열정이 대단하십니다.”
“작가에게서 열여덟 살의 열정이 사라질 때에는 거의 죽은 것일 거예요. 작가는 수도자이기는 하지만 성직자는 아닙니다. 글 쓴다는 것 자체가 도 닦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게 최근의 일이에요.”
“그 열정과 사명감을 지속하게 하는 힘의 원천은 무엇인가요?”
“가장 뾰족하게 깎은 연필이 가장 가는 선을 그을 수 있잖아요. 그렇듯 우리도 살다 보면 마치 연필처럼 무뎌질 때가 있어요. 정신을 깎아서 끊임없이 뾰족하게 만들어야 하는 자기 절제와 엄격성이 필요할 때가 많아요. 자기의 가장 큰 적은 자기 자신이라고, 선을 가늘게 긋기 위해서는 정신을 깎아내야죠. 제 자신을 속이고 싶지 않아요.”
“소설가란 그가 보고 느꼈던 것들을 무의식이라는 창고 속에 들여놓는 사람들이겠지요. 그 양은 물론 엄청나지요. 생각을 시작하면 그 신비한 창고 어딘가에 가서 기억을 끄집어 내오는 것 같습니다. 도를 이루거나 성인이 되면 윤회가 끝나니 다시 태어나지 않아도 되잖아요. 그러니 가장 좋은 일은 다시 태어나지 않는 것이겠죠. 전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만약 다시 태어난다면 지금처럼 글을 쓰며 살고 싶고, 지금의 아내와 결혼하고 싶어요. 저로서는 글을 쓰는 일이 정말 행복하고, 한 사람을 진정으로 아는 데 한 평생만으로는 부족하거든요.”
- <대화> 중에서
예순넷의 나이에도 열여덟 살의 열정으로 원고를 집필하고 창작하는 그를 보면 용문산 은행나무가 생각난다. 천 년이 넘은 지금도 매해 가을이면 튼실한 열매를 맺는다는 그 나무 말이다. 은행나무는 은행을 만들고 그는 이야기를 만든다. 은행은 한 번 먹고 나면 그만이지만 그의 행복한 에너지가 영글어 있는 소설들은 지구가 지속되는 한 남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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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에디터 : 김선래 / 사진 : 김문성 장소 협조 밀레니엄 서울 힐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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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밥먹듯, 숨을 쉬듯 펜을 드는가? - 소설가 최인호
- "문학은 세상의 고통에 감응하는 하소연의 눈물"
가야史로 역사소설 마침표 찍은 최인호의 새로운 계획 최인호는 얼마 전 20여 년간 생각해오던 가야史에 관한 작품을 끝내며 역사소설에 마침표를 찍었다. 그리고 영화와 드라마로 만들어질 소설도 6~7편이 될 예정이다. 돈과 명예를 모두 품에 안은 ‘우리 시대 청년 작가’ 최인호. 그는 다음 작품을 위해 9월 중 순례여행을 떠날 예정이라고 한다.
“2% 부족하던 마음, 이번 책으로 훌훌 털어버렸습니다. 이제는 예수에 대해 써볼 예정입니다”
담배를 문 모습이 여유로워 보인다. 마음속에 항상 ‘빚’처럼 남아 있던 일을 끝냈기 때문일까? 그의 모습은 편안해 보였다. 역사책의 조그마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던 ‘가야’를 세상 사람들에게 화려하게 선보인 뒤 요즘 그는 ‘해냈다’는 자부심으로 행복한 시간을 맛보고 있다. 가야사에 대한 3권짜리 장편소설 「제4의 제국」을 펴낸 소설가 최인호(60)는 요즘 오랜만의 여유를 만끽 중이다.
“가야사에 대한 작품을 구상한 것은 20여 년 전부터였어요. 백제와 일본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잃어버린 왕국」을 쓸 때부터 가야사에 대한 소설을 쓰겠다고 마음먹었으니까요. 그런데 그게 생각처럼 쉽나요? 역사 자료도 부족하고…. 항상 마음속에 2%가 부족한 무엇인가가 있었는데, 이번에 다 털어냈어요. 기분 좋습니다.(웃음)”
최인호는 지금까지 백제 역사에 관한 소설 「잃어버린 왕국」,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영광을 다룬 「제왕의 문」, 통일신라 해상왕 장보고의 생애를 다룬 「해신」까지 역사 3부작을 완성했다. 그리고 이번에 펴낸 「제4의 제국」을 완성하면서 역사 4부작을 완성한 것이다. 다작으로 소문난 최인호지만 이번 작품 집필은 그에게도 어려운 작업이었다.
가야사를 소설로 만드는 작업은 ‘악전고투’였다. 턱없이 부족한 문헌과 자료를 찾아 인도와 일본을 오가는 대장정의 여행을 수차례 해야만 했다. 수많은 사람을 만나야 했고, 자료를 찾기 위해서 이곳저곳을 떠돌았다. 급기야 그의 책상은 수많은 역사책으로 뒤덮였고 신화로만 여겨지던 가야를 현실로 끌어내기 위해서 철저한 고증을 거쳐야 했다.
그의 그러한 노력으로 역사학자도 밝혀내지 못한 사실을 양지로 끌어냈다. 대성동의 제13호 고분에서 출토된 파형동기의 원형이 인도의 비슈누 여신에서 파생된 것을 밝혀낸 것이다. 또 설화로만 알고 있던 허와후가 인도에서 온 여인이라는 것을 사실로 입증했다.
“가야에 대한 역사를 저의 시각으로 풀어냈습니다. 작품의 완성도는 100% 자부하고 있어요. 이 작품은 ‘부산일보’에 1년 4개월 연재했는데, 소설로 만들면서 5백 매를 새롭게 썼어요. 특히 무령대왕을 추적한 것에 대해 자부심을 느낍니다.”
책을 펴낸 지 얼마 안 돼 일본의 ‘독도 망언’이 시작됐다. IMF 때 「상도」가 잘 팔린 것에 비춰보면, 일본의 독도 망언이 「제 4의 제국」의 인기를 높여줄 것 같다며 웃는다. ‘쓰는 내내 죽는 줄 알았다’고 말하는 그에게 ‘겹경사’가 기다리고 있다. 이미 출간한 세 작품이 영화로 만들어질 예정이고, 그 외 3~4작품이 TV 드라마로 만들어질 예정이기 때문이다. 드라마로 만들어진 「해신」은 다큐멘터리로 만들자는 제의도 들어왔다. 이렇게 따져볼 때 ‘요즘 최인호만큼 행복한 작가가 또 있을까?’ 싶다.
“얼마 전 영화 세 편을 계약했는데, 돈이 많이 들어왔어요.(웃음) 「몽유도원도」 「겨울나그네」 「지구인」이 영화로 만들어질 예정인데, 드라마로 만들자는 작품 이야기도 오가는 중입니다. 젊을 때보다 나이가 드니까 더 바빠지네요. 영화 작업은 정말 기대됩니다. 한국 영화가 발전한 만큼 작업 환경도 많이 좋아졌잖아요. 제가 시나리오를 쓰지는 않지만, 영화 작업에 깊숙이 관여할 생각입니다.”
3년 예상으로 ‘예수의 삶’ 소설화 예정
나이가 들수록 바빠지는 최인호. 역사소설 4부작을 끝낸 뒤에도 쉬지 않을 예정이다. 오래전부터 생각해오던 ‘예수’에 관한 작품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는 9월,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순례여행을 떠날 예정이다.
“2~3년 전에는 막연했는데, 지난 가을부터 구체화되기 시작했어요. 제가 가진 노하우를 총동원해서 작품을 쓸 예정입니다. 김수환 전 추기경이 도움을 주신다고 하셨어요. 순례여행은 약 3년 정도 예상하고 있습니다. 2천 년 전의 성인인 예수를 우리 시대에 살고 있는 동시대인으로 그릴 예정입니다. 역사는 현재 진행형이거든요.”
나는 왜 밥먹듯, 숨을 쉬듯 펜을 드는가? - 소설가 최인호
- "문학은 세상의 고통에 감응하는 하소연의 눈물"
딸과 함께 본 제주도 상공에서의 무지개, 약속
<출처: 책 읽어주는 나뭇잎숨결 / 나뭇잎숨결> |
최인호의 대하 장편소설 ‘유림’(열림원)이 6권 출간으로 대장정의 막을 내렸다. 서울의 한 호텔 중식당에서 만난 작가는 공자에서 퇴계에 이르기까지 당대의 대사상가들과 만나 즐거웠다고 했다. ‘유림’과 작별을 고하며 이제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애틋한 연애소설을 쓸 거라는 작가 최인호. ‘유림’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가르침과 ‘최인호식 가정관리법’을 소개한다. |
글_ 신규섭 기자 사진_ 양우영 기자 |
“책을 너무 자주 내는 거 아니냐고 하는데, 전 피임을 안 해요. 산아제한을 안 하거든요.(웃음) ‘유림’은 제가 낸 것 중 가장 긴 책입니다. 교만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나이 든 사람으로, 이 땅에 태어난 작가로 분별력 있는 책을 낸 것 같습니다.”
‘유림’ 완간을 맞아 점심을 같이하는 자리에서 최인호는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유림’ 완간 후 출판사 사장의 강요(?)에 못 이겨 연일 인터뷰로 바빴다는 그는 이번이 진짜 마지막 인터뷰라며 홀가분해했다. 이어 그는 매 인터뷰마다 몇 번을 되풀이했을 ‘유림’ 발간의 배경과 소회 등을 밝혔다. 정견을 발표하고 추가 질문을 받는 게 효율적일 거라고 했다.
퇴계를 더 매력적이게 만든 기생 두향이와의 애틋한 사랑
‘유림’ 구상은 1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불교를 소재로 한 ‘길 없는 길’을 쓰며 작가는 불교와 함께 우리 몸의 원형질을 이루는 유교에 주목했다. 유교에 대한 이야기를 쓰겠다는 막연한 생각은 17년이 지나 구체화되었다.
작가가 작품을 머릿속으로 구상하는 건 어머니가 아이를 뱃속에 품는 것과 같다. 어머니가 10개월간 뱃속에서 아이를 키우듯 작가는 머릿속에서 작품을 배양한다. ‘유림’은 최인호가 17년 동안 머릿속에서 키워낸 자식인 셈이다. 오랜 기간 작가가 키워온 ‘유림’에는 퇴계를 비롯해 조광조를 시작으로 공자, 맹자, 주자 등 많은 사상가들이 등장한다. 그 중 맹자나 조광조도 매력적이지만 특히 ‘해동의 공자’라 불리는 퇴계 이황의 삶과 사상에 매료됐다.
퇴계는 ‘해동의 공자’라 칭송 받을 만큼 조선조 선비의 전형이었다. 그러나 퇴계가 앉아서 공자왈 맹자왈만 외는 선비였다면 별로 탐탁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대사상가의 이면에 평생을 두고 두향이라는 기생과 멋진 연애를 했다는 사실이 퇴계에 대한 호감을 증폭시켰다.
“말년에 퇴계는 좋아하던 매화 화분을 곁에 두고 두향이 보듯 했어요. 평소에 깔끔하고 단정하던 그도 병을 얻어 침상에서 설사를 하게 되었어요. 그때 제자를 불러서 매화에게 추한 모습을 보여 미안하다며 매화 화분을 치워달라고 했답니다. 죽을 때까지 두향이를 마음에 품은 거죠. 이처럼 낮퇴계와 밤퇴계가 달랐어요. 낮과 밤이 다른 이런 모습이 퇴계를 더욱 멋지게 만든 거죠.”
이황을 주인공으로 ‘유림’ 집필을 시작하며 작가는 ‘왜 하필 지금에 와서 이걸 쓰느냐?’고 자문했다. 모든 작가라면 이 질문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작가 스스로 내적 필연성이 결여된 작품을 쓸 수는 없다. 작가는 “시절 인연이 닿아서”라고 답한다.
작가는 지금 이 시대야말로 유교정신이 필요한 때라고 말한다. 양육강식의 무질서가 지배하는 ‘서구 자본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을 작가는 유교정신에서 찾는다.
저명한 미래학자인 허만 칸은 일찍이 서구자본주의의 폐해를 지적한 바 있다.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서구자본주의 체제에서는 ‘더불어 사는 삶’을 꿈꿀 수 없다. 작가는 ‘유교적 자본주의’를 그 대안으로 제시한다.
“우리나라의 급격한 경제 성장 뒤에는 유교적 전통이 있다는 것을 그동안 간과해 왔어요. 우리 형도 대우에서 일했지만, 그 때는 밤새 일할 때가 많았어요. 그게 돈만 많이 준다고 가능했겠느냐고?”
‘난 사람을 위한 교육’보다 ‘된 사람을 위한 교육’이 중요
유교사상이 필요한 곳은 경제 분야뿐이 아니다. ‘붕우유신’, ‘부부유별’ 등 오륜은 고리타분한 옛 정신이 아니라 혼탁한 지금에 더 필요한 정신이다. 퇴계와 율곡의 선비정신이 부활하여 종국에는 동방예의지국이라는 명예로운 이름을 되찾아야 한다고 작가는 말한다.
“천원 화폐에 이퇴계 초상이 있고, 5천원 화폐에 이율곡의 초상이 있습니다. 화폐에 새겨진다는 건 그 나라를 대표한다는 의미잖아요. 우리 아들이 삼성에 다니는데, ‘이퇴계 아느냐?’고 물으니까 안대요. 퇴계가 말한 이기이원론도 알아요. 그런데 그 뜻을 몰라요. 우리나라 유학의 기본이 퇴계인데도 말이에요.”
유교를 이야기로 풀어내기 위해 작가는 3백 권이 넘는 책을 독파했다. 고등학교 때 그렇게 공부했다면 서울대학교에 1등으로 들어갔을 거라고 작가는 말했다. 그렇게 공부하면서도 즐거웠다고 말한다.
깊디깊은 유교의 숲을 거닐던 작가를 매료시킨 단어가 ‘선비’다. ‘선비정신’이라는 말은 중국이나 일본의 유교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한국만의 특별한 사상이다. 옛 선비들은 청렴하게 생활하고 물러날 때는 깨끗하게 물러났다.
작가는 교육은 옳은 선비를 키우듯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작금의 교육은 그렇지 않다. 어려서부터 영어 학원, 피아노 학원, 태권도 도장 등을 전전하느라 정신이 없다. 한창 놀 나이에 시간에 쫓기는 아이들을 보면 작가는 “눈물이 난다”고 했다.
‘난 사람을 위한 교육’은 몇몇 ‘난 사람’에 국한된다. 경쟁에서 뒤진 아이들은 결국 도태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난 사람치고 인류에 이바지한 사람이 몇이나 되느냐?”고 작가는 되묻는다. 그러나 ‘된 사람을 위한 교육’은 다르다. 희생이 없이도 누구나 된 사람이 될 수 있다. ‘된 사람’들은 신의를 지키고 갈수록 행복하다. ‘선비정신’은 이런 교육을 내포한다.
물론 작가는 사색당파와 허례허식 등 유교의 병폐를 인정한다. 유교하면 상하관계가 엄격한 신분제도와 아래위가 엄격한 가족관계를 먼저 떠올리게 된다. 그 모두가 유교의 본질을 간과한 오해에서 비롯된 소산이다.
집 밖보다 집 안에서 존경받는 남자가 진짜 된 사람
“유림을 쓴다니까 미국에 있는 딸이 전화를 해서는 ‘유교는 가부장적이고 그런 거 아니냐’고 해요. 여성지니까 하는 말인데 저는 ‘로맨티스트’에 ‘여성 지상주의자’입니다. 여성은 21세기를 변화시킬 수 있는 원천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여성의 역할이 지금처럼 커진 게 여러모로 좋은 겁니다. 여성은 본능적으로 깨끗이 치유하는 속성이 있잖아요. 여성이 집권하면 부정부패가 없어질 걸요, 아마.”
유교가 ‘가부장적’이라는 오해를 풀기 위해 퇴계 이황을 예로 든다. 퇴계는 첫 번째 부인 허씨와 사별한 뒤 3년 후에 권씨 부인과 재혼하였다. 권씨 부인은 실성기가 있어 정신이 맑지 않았다. 이 때문에 권씨 부인은 퇴계에게 많은 고통을 주었다.
하루는 제사상을 차리고 있는데 권씨 부인이 얼른 배를 치마 속에 숨겼다. 이를 본 큰형수가 권씨 부인을 엄중히 꾸짖었다. 사태의 전말을 전해들은 퇴계는 부인의 잘못을 대신하여 큰 형수에게 정중하게 사과하였다. 퇴계는 남몰래 권씨 부인을 불러 배를 숨긴 이유를 물었다. 권씨가 먹고 싶어서 배를 훔쳤다고 하자 배를 꺼내게 한 후 손수 배의 껍질을 깎아 아내에게 먹으라고 잘라주었다고 전해온다.
퇴계는 아내를 하늘이 내려준 극기의 시험 또는 자기 자신과 싸워 이기는 성덕의 체인으로 간주하였다. 평소 ‘아내를 손님처럼 공경하라’던 퇴계의 마음은 이함평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잘 나타난다. 이함평은 퇴계의 제자로 부부간에 화합하지 못해 고민하고 있었다.
옛날 후한 때의 사람 질운이 ‘아내와 부부의 도리를 어기어 자식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자는 실로 진리를 어지럽히는 사특한 자이다’라고 말한 바가 있는데, 내가 이 말을 빌려 자네에게 충고하노니, 자네는 마땅히 거듭 깊이 생각하여 고치도록 힘쓰게. 이 점에 있어서 끝내 고치는 바가 없으면 굳이 학문을 해서 무엇을 할 것이며, 무엇을 실천한단 말인가.
이런 일화를 보면 유교는 ‘여성 비하’나 ‘가부장제’와는 무관하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고 하지 않던가. 자신을 닦고 집안을 잘 다스리는 일이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얻는 일에 앞선다.
가정은 사랑의 시작이고 모든 것의 시작이다. 밖에서 존경받는 사람은 많아도 집 안에서 아내와 자식에게 존경받는 사람은 많지 않다. “가족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작가는 수신제가는 21세기에도 여전히 필요한 덕목이라고 강조한다.
다음 작품은 첫사랑을 떠올리게 하는 애틋한 연애소설
퀸 : 실제로 집에서 ‘가족 사랑’을 실천하고 계신가요?
요즘은 6시면 집에 가서 마누라랑 TV 보면서 등장인물 욕하며 노는 게 제일 재밌어요. 친구를 안 만나니까. ‘그럼 나이 들어 외로워진다’고 그러는데 인생은 어차피 외로운 거잖아요.
퀸 : ‘최인호식 가정 관리법’이 있다면 소개해주십시오.
아내와 저, 둘 다 닭띠예요. 그래서인지 젊어서는 무지하게 싸웠어요. 그것 때문에 아이들이 상처를 많이 받았어요. 얼마 전에 딸아이가 와서 도단이(아들)한테 ‘언제부터 우리 집이 이렇게 조용해졌느냐?’고 묻더래요. 도단이가 ‘우리 집에 평화가 온 지는 오래됐다’고 그랬대요.
부부싸움이란 게 보이지 않는 심리싸움이에요. 예전에는 그게 결론이 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결론이 날 수 없다는 사실을 안 건 나중 일이에요. 둘이 동시에 그걸 알게 된 거죠. 싸우다가도 서로가 불쌍해서 그만두고 말아요.(웃음)
퀸 : 문제는, 그런 깨달음이 항상 늦게 찾아온다는 거 아니겠습니까?
봄에 단풍 드는 것 봤어요? 단풍은 가을에 들어야 제격인 거죠. 손자가 있는데 너무 예뻐요. 그건 아버지 때랑은 다른 거죠. 아버지가 할아버지 같은 맹목적인 사랑으로 자식을 키운다는 건 난센스죠.
결혼한 남자분들 위해서 좋은 팁 하나 줄게. 마누라한테 ‘나 죽고 난 다음에 죽으라’고 해봐요. 그럼 좋아해요. 예전에는 ‘나 죽고 1년 후에 죽으라’고 했는데 그럼 줄초상에 아이들이 슬퍼할 거 같아요. 그래 바꿨어요. 3년 후에 죽으라고.(웃음)
머릿속에 항상 몇 명의 아이들이 크고 있다는 작가는 ‘유림’을 끝내고 ‘지저스 크라이스트’의 삶을 소재로 한 작품을 쓸 계획이다. ‘지저스 크라이스트(가제)’는 ‘길 없는 길’, ‘유림’에 이은 종교 3부작의 마지막 편. 작가는 그 전에 연애소설 한 편을 쓸 계획도 갖고 있다.
“‘별들의 고향’을 쓸 때 저는 여자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했어요. 그랬는데 아내가 ‘당신은 여자에 대해 아는 척하지만 정말 모른다’고 그래요. 지금 보니까 여자에 대해 잘 몰랐던 것 같아요. 지금은 여자에 대해 좀 알 것 같아요. 심포니가 아니라 세레나데 같은 사랑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이미 대략적인 구도도 잡혔다. 자식도 있고 아주 평범하고 가정적인 중년의 남자가 어느 날 갑자기 아내를 앞에 두고 펑펑 울기 시작한다. 한참을 울고 난 후 남자는 사랑하는 여자가 있음을 고백한다. 고백을 들은 아내는 질투 대신 그 여자를 찾아가 남편을 만나달라고 부탁한다는 내용. 작가는 ‘중년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를 긴 꾸밈이나 설명 없이 단문으로 쓰고 싶다. 예전과 달리 표현도 문장도 단순한 게 좋다는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첫사랑을 추억할 수 있었으면 한다.
환갑을 넘긴 나이에도 작가는 여전히 쓰고 싶은 작품이 많다. 작가는 ‘정신의 비아그라’를 먹었는지 앞으로 더 많은 작품을 쓸 거 같다며 호방하게 웃었다. 마지막으로 이런 말도 했다. “진짜로 앉아서 원고 쓰다 죽고 싶다”고. 그 말에서 진정성이 느껴졌다.
<출처: Queen / 희라>
왕도의 비밀 / 최인호
책제목 : 왕도의 비밀 1 (비밀의 문)
0. # 문양을 찾아서. 이 책은 전 3권으로 이루어진
이 책은 지은이가 고구려 유적을 찾아 도착한 중국의 풍경으로 시작된다.
광개토대왕은 사후 이름붙여진 이름이고,
1986년 한양대 고대유적 발굴팀은
462년 당시 백제의 수도는 한성이었다.
<출처: 독서일기 / insmile>
꽃밭 / 최인호
내 가슴에서 책장을 덮고 이 세가지 마음이 일었다.
1.농부의 마음 2.군인의 마음 3.학생의 마음
새벽부터 부지런히 일어나 열심히 일하는 농부의 마음. 자연과 하나가 되어 해가뜨고 달이 밝아져서야 돌아오는 힘든일에도 불평불만을 가지지 않는 마음. 비가 와야 할 때가 있고 오지말아야 할 때가 있어도 그저 그렇게 받아들이는 순수한 열정의 마음... 끝없이 배우고 학생의 자세를 가지고 책상에 앉겠다는 학생의 마음. 삶을 학생의 신분으로 돌아가서 정진하겠다는 마음이 일었다. 절제된 몸과 마음, 정신력을 가지는 군인의 마음. 새볔 몇 시에 깨워도 관등성명을 대고 일어나 눈보라가 몰아치는 새볔근무를 말없이 하는 군인의 마음... 이 세가지 마음이 든 것은 왜일까...
최인호 작가님은 내가 한국작가들 중 가장 좋아하는 작가이다. 만화계에는 허영만 화백님이 계시 듯 소설계에 최인호 작가님이 계셔서 정말 감사함을 느낀다. 삶은 하나하나가 모여 만든어 낸 소설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분명 주인공은 나 자신이지만 곁에 조연들이 있기에 더불어 자신이 커보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최인호 작가님의 눈빛이 참으로 좋다. 수수하게 빗질도 하지 않은 것 같은 헤어스타일도 좋고 결코 비싸 보이지 않는 순수한 옷차림이 더욱 좋다. 글이란 그 사람과 동일하다고 느껴왔다.
꽃밭... 저자는 일상에서 일어나는 아주 평범한 일들과 생각들의 이야기이다. 가족, 아내, 친구, 사람과 사람사이의 일들, 술과 음식의 이야기, 책을 쓰는 마음과 생각의 원천에 대한 이야기들을 꾸밈없이 글로 표현한 작품이다. 여기에 김점선이라는 화가의 부드러운 꽃 그림이 너무도 잘 어울리는 분위기를 표현하였다. 몸의 고통과 투병이라는 힘겨움이 있는 분이신데도 그림으로 마음을 표현한 부분에서는 숭고함마저 느껴진다.
꽃밭은 저자가 신문이나 칼럼, 시론 같은 것을 쓰지 않기로 스스로 맹세했는 데 낳은 작품이다. 10년전 " 사랑아! 나는 통곡한다." 이후 정말 오랜 만에 나온 저자의 수필이자 에세이집이다. 원래 역사나 장편소설 쓰는 것 외에는 집필을 잘하지 않는 분이시다. 아무리 신문, 칼럼,시론으로 사회를 꼬집고 비틀어 정의를 부르짖어도 망망대해 돌팔매질 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에 정신차리고 쓰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생각이 다르다. 이런 분이 시론이나 칼럼을 많이 써야 많은 사람들이 생각의 크기를 더욱 커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용은 간단하다. 어렵고 딱딱한 부분도 없다. 그저 펜 가는 대로 쓴 흔적이 역력하다.그래서 범인들이 생각만 가지고 글로 적지 못하는 기억과 마음의 정리를 쉽게 써가는 것이다.그래서 우리는 이런 분들을 프로라 부르는 것이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남들처럼 초등학교, 대학교도 나오고 연해도 하고 결혼도 하고 군대도 다녀왔다. 남들이 하는 것 이상으로 경험도 하고 수많은 친구도 사귀고 술도 마셨다. 외국여행은 안 다녀본 곳이 없을 정도이다. 신문에서는 이름이 많이 알려져 있고 항상 뉴스의 초점이다. 우리나라 작가중 나만큼 글을 많이 쓴 사람이 없고 책도 많이 팔리고 시쳇말로 돈도 많이 벌었다한다. 하지만 하지만 말이다. 어느날 아침 눈뜨면 어리둥정 해지고 당황하기도 할때가 있다고 한다.
솔직한 이런표현 방식이 글을 읽는 묘한 흥분과 동감이 된다. 자랑이 아닌 솔직한 저자의 내면을 볼 수가 있다. 겸손과 자만의 경계를 스스로 느끼게한다. 나는 이런 글이 좋다. 꼭 무언가를 가르치려 하는 것보다 내가 그 어떤 한문장에서 스스로 느껴지는 그런 느낌말이다. 한 여름 더운날 무더위에 갈증을 느낄 때 시원한 생수로 다가오는 것은 책이었다.
어린 시절 외딴집에 살았을 때 참으로 심심하기도 했고 항시 무언가 자극적인 것들이 필요했다. 소 풀을 뜯길 때도 무료하고, 비가 와서 가족이 같이 다 있어도 심심하고, 저녁에 짐승들 먹이를 쑬때도 시간이 아니가고, 밤에 호롱불 밑에서 잠이 오지않아 뒤척일 때도 무언가가 참으로 필요했다. 그러던 중 책을 접하게 되었다. 내 일생에서 가장 위대한 발견을 한 것이다. 아니 황금을 발견하고 그 황금 금광 속으로 가는 길을 알아낸 것이다. 책이라면 부류를 가리지 않고 읽은듯하다. 소설, 위인전, 만화, 소년 잡지,여러가지들... 그 중에서도 어린시절은 만화를 많이도 보았다. 읽고 모으는 것이 취미가 되어 가히 몇 백권은 되지 않았나 싶다. 어머니에게 어린 놈이 공부는 하지 않고 매일 만화책에 빠져 산다고 하셨다.나의 어린시절 만화책들은 소죽을 끓이는 땔감 속으로 수십권, 간혹 몇 십권씩 찟겨져서 불 속으로 들어갔다. 그런 날은 나의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얼마나 흘러 내렸는지 모른다. 하지만 금새 어디서 났는지 모를 만큼 많이도 모아서 어머니 모르시도록 숨겨서 보고 모으기도 했다. 그러다가 어머니에게 또 들켜서 혼나기가 일수... 그것도 모자라서 만화책을 아예 내가 그려서 만들었다. " 저놈이 커서 대체 뭐 댈려고 그런다냐... "
추운 겨울 날 외딴집을 걸어 동네 친구 집에 가서 책을 빌려오는 그 순간은 얼마나 행복한지 돌아오는 발걸음은 매서운 겨울 바람도 비켜서 간 듯하다. 내 등뒤로 있는 무게의 책을 지고 가는 그 순간은 미소가 가득 드리우고 행복감이 젖은 듯 콧노래가 나온다. 이녀석들이 있으니 올 겨울 방학은 문제가 없겠구나... 행복하다... 눈앞의 겨울 매서운 바람도 이겨내게금 거대한 힘이다.
독서는 나에게 숨쉬고 내쉬는 공기와도 같은 것이다. " 상도" " 길없는 길" "겨울 나그네" 나는 저자의 전작주의자이고 거의 모든 저서를 가지고 있지만 이세소설이 정말 좋다. 꽃밭... 나에게 삶의 무게를 덜어준 책이다. 지치고 힘들 때가 있다. 술과 담배, 세상의 유혹에 빠지고 싶을 때 붙잡아 주는 이런 고마운 책은 나에게 또다른 친구이다.
가장 인상깊었던 글 귀는 저자처럼 나도 인사에 가끔 목숨을 걸 때이다. 사람으로써 가장 기본이면서 중요한 것이 인사라고 나도 생각한다. 인사는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해야한다고 나도 생각해왔다. 평등한 것이고 어린아이라고 인사를 생략해서도 안되고 내가 먼저 인사를 나누는 것은 무엇을 바라서가 아니라 우선 내가 기분이 좋아지기 위함이다. 반가운 사람을 만나 악수를 나눌대도 서로가 서로의 눈을 좀처럼 마주치지 않는 한국사회이다. 외국인들은 꼭 눈을 마주치면서 서로의 안부를 묻는 것이 기본이다. 즐겁게 여행을 했으면서도 공항에서 헤어질 때는 눈도 마주치지 않는 냉정한 얼굴을 볼때 슬픔을 느꼈다고 했다. 상대방이 끈히기를 기다렸다가 전화를 끊는 사소한 친절, 악수를 할 때는 악수를 하는 사람의 눈을 마주보는 예의, 엘리베이터 문이 닫힐 때까지는 기다려주어 잔영을 남기는 태도, 집을 방문한 손님은 최소한 안 보일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가 어쩌다 돌아보는 손님의 시선과 마주쳤을 때 다정한 미소를 보여줄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져달라고 당부를 한다. 지극히 당연하고 초등학교 바른생활에 나오는 말이다. 기본에 충실하자는 말이 헛된 말이 아님을 느끼게 한다. 사소한 작은 것도 못하면서 어찌 큰 일을 이룰 수가 있는 가를 곰곰히 생각해주게 하는 대목이다...
" 휴일 내무반에 앉아서 급식을 타오라는 내무반장에게 덤벼들어 코가 삐뚤어지도록 얹어맞은 적도 있었다. 불친절하다고 느낀 은행직원에게 건물이 떠나갈 정도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던 적도 있었다. 운전을 하다가도 추월을 하던 사람과 싸우기 일쑤였으며 표를 사기 위하여 줄을 섰다가 새치기하는 사람들과도 싸우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부당함을 곶잘 따지면서도 왕궁은 커녕 근위병의 부당함에 대해서는 비겁하고 옹졸하게 침묵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용기가 있어서가 아니라 만만한 사람들에 대한 일종의 화풀이에 지나지 않았다."
이 얼마나 솔직하고 동감하는 내용들인가.. 고고한 척 하는 것이 아닌 솔직한 표현과 그것에 대한 반성말이다. 책은 누군가를 위하여 써야 하는 것이 아닌 자기자신을 위한,떳떳함이 첫째라 생각해본다. 자신에게 떳떳치 못한 글은 죽은 글이다. 죽은 글은 자기 자신 뿐 아니라 주위사람과 많은 이들을 같이죽자고 하는 물귀신작전인 것이다.
나도 저자의 말처럼 물처럼 살아야겠다. 물은 서로 경쟁하지 않고 싸우지도 않는다, 물은 잠시 가둘 수는 있지만 소유할 수는 없다. 물은 그릇에 담으면 그릇의 형태를 담고 병속에 넣으면 병의 형태를 닮는다.주정을 넣으면 술이 된다. 물은 침묵한다. 하지만 하지만 처마에 떨어지는 낙숫물이 바위를 뚫는다. 솔직히 물 한방울이 무슨 힘이 있어서 저 거대하고 단단한 바위에다 흠을 낼 수 있겠냐 마는 몇년, 수십년을 두고 반복하여 부딛치다 보니 구멍이 뚫리는 것처럼 나도 항상 책을 가까이 몸의 일부처럼 동행하리라... 힘들고 외롭다는 삶에서 항상 용기와 힘을 얻으리라...
사람과 사람사이의 정과 배려, 나눔을 배웠다. 진정 강함은 물리적인 힘이 아닌 부드러움과 그 부드러움이 교차하는 마음의 따뜻한 가슴이라는 것을 제대로 배웠다... 나도 저자만큼 아내를 사랑한다. 아내와 손을 맞잡고 등산을 하다가 멀리서 저자부부를 만났으면 좋겠다. 오래 만난 사이처럼 인사를 하고 등산을 마치고 산밑 선술집에서 동동주에 파전을 대접하고 싶다. 어서 그날이 왔으면 좋겠다. 나도 이제는 관악산이 아닌 청계산으로 가야겠다... |
<출처: 만권의독서이야기>
실패한 개혁가 조광조의 발자취를 따라(최인호의 유림 제1권)
소설가 최인호가 최근 완성한 유림(전6권)을 구입하여 그 중 제1권을 읽었다. 1권은 조선시대의 개혁가였던 조광조의 일생을 풀이한 책이다.
조광조는 "고려시대 때부터 내려오는 조선시대의 낡은 풍습과 사상을 유교식으로 바꾸어 놓으려는 개혁정치를 펼치다가 훈구파의 강력한 반발로 새로운 정치질서를 이루려던 개혁은 실패하고 탄핵을 받아 유배되었다가 죽임을 당했던 인물이다(p.296).
작가는 이 소설의 서두를 조광조가 유배되어 사약을 받고 죽임을 당하였던 장소인 전남 화순군 능주면 남정리 소재 유허비를 찾아가는 것으로 시작하여, 묘소가 위치한 경기도 용인시 심곡면 소재 심곡서원을 찾아가 묘소에 분향하는 것으로 끝을 맺음으로서 독자들로 하여금 조광조의 발자취를 따라 시간여행을 하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든다.
작가는 조선조 4대사화 중 기묘사화의 희생자가 된 조광조의 묘소를 찾아가면서 다음과 같은 열변을 토한다.
"조광조의 영령을 찾아가는 신도(神道)에는 5백년이 지난 지금에도 오는 이와 가는 이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는가. 21세기를 살아가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신진사람파와 훈구파의 정치적 공방은 계속되고 있지 아니한가. 어차피 권력의 다툼은 힘을 가진 구세력과 그것을 빼앗으려는 신세력의 신구갈등에서 비롯되는 것. 구세력은 자신을 보수라 하고 신세력은 자신을 진보라 일컫는다. 그러나 어차피 진보를 표방해도 신세력도 언젠가는 스스로 청산해야 할 낡은 구세력으로 전락해 가는 것이니, 조광조가 살았던 16세기보다도 더 심각한 국론분열을 일으키고 있는 오늘날에도 조광조는 여전히 뒤에도 계시옵고 앞에도 계시옵는가."
이 책은 학창시절에 단편적으로 배운 조광조를 죽게 만든 기묘사화의 실체, 조광조의 개혁정치가 실패한 이유, 그리고 끝까지 조광조 편에 선 인물들을 알 수 있는 주옥같은 역사소설이다.(2007.2.6).
<참고 자료>
조광조(趙光祖, 1482년 - 1519년)는 조선의 문신이다. 1510년 진사시에 장원으로 합격하고 1515년에는 문과에 급제하여, 이후 호조, 예조, 공조의 좌랑, 홍문관 수찬, 부제학, 동부승지를 거쳐 사헌부 대사헌(종2품. 지금의 검찰총장과 감사원장을 합한 직위)에 발탁되었다.
여러 요직을 거치는 동안 중종에게 늘 간언하여 바른 정치를 펴는 데에 헌신하였다. 그리고 현량과를 시행하여 신진 사림(士林) 세력을 중용하는 데에 힘썼으며, 여씨(呂氏) 향약을 도입하였다. 그의 사상은 유학의 정통으로 돌아가 바른 정치를 실천하자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으며, 한국의 도학 및 실천유학의 시조로 추앙받고 있다. 율곡 이이를 비롯한 후대 학자들이 그를 모범으로 따랐다.
중종반정 공신들 중 대다수가 거짓 공훈으로 공신에 올랐다 하여 이들의 거짓 공훈을 박탈하고자 하였으나, 자신들의 거짓 공훈이 삭제될 것을 두려워한 훈구파 신하들이 이에 반발하여 오히려 조광조를 무고하였다. 결국 남곤, 심정 등의 무고를 받은 조광조는 전남 능주(지금의 화순)에 유배되어 1519년(기묘년)에 사약을 받고 숨졌다. 이를 기묘사화라 한다.
인종 원년에 복권되고 선조대에는 의정부 영의정에 추증되고 '문정'(文正)의 시호를 받았다. 광해군 2년(1610)에는 문묘(文廟)에 배향되었다. 김굉필, 정여창, 이언적, 이황 등과 함께 '동방5현'이라 일컫기도 한다(자료 : 위키백과사전).
<출처: 나홀로 인생 / pennpen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