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china 북경 Beijing 편
인생이란 무엇인가?
근년 들어 점차 삶에 대한 허무감을 떨처 버릴수 없슴에 잠시 일상의 굴레를 벗고 자유인이 되고싶은 충동을 여러번 느껴 중국여행을 결심 했다.
불과 삼십여년 후면 이세상 사람이 아닐것 같음에 ...내가 평상시 동경하던
경치와 문화를 찿아 다니며 가끔은 내마음 한켠에 비워 두었던 정서의 빈자리를 채워 가고싶은 마음이다.
중국!
그곳은 내가 그동안 수십권 고전을 통하여 읽어온 책속의 세계요 시공(時空)을 초월한 상상의 나라이다.
고조선 이래 고구려 백제,발해가 망한 원수의 나라요,고려와 조선이 수없이 침탈당한 불구대천의 나라건만 .....나는 가보아야만 했다.
진(秦)나라 당(唐)나라가 도읍했던 함양(서안)도 가보고싶고 양귀비의 무덤을 찿고싶으며 함곡관이 어드멘지 가보고싶다.
양자강,동정호,파양호,삼협의 아름다움을 확인하고 싶은것이며 계림과 곤명을 찿고싶다.
마나먼 씰크로드 ...천산의 험난한 서역길을 따라 신장위그루 역사의 현장을 직접 밟아보고싶은 마음은 어디 나만의 충동이랴!
허나,욕심인가?
나는 천상 북경과 장가계를 선택해서 떠나야만 했다.
북경이야 작년에 답사를 했지만 장가계를 가기 위해서 만부득 취한 결심이다.
* 5월 15일 북경 공항에 내렸다.
한국보다 약 5도정도가 높고 유난히도 버드나무 꽃가루가 날렸다.
북경시내 모식당에 들려 중식을 마친후에 천안문 광장으로 갔다.
드넓은 광장 정중앙 정면에는 천안문이 있고 그 중앙에 모택동의 초상이 걸려 있다.
광장 왼편저멀리 있는 건물은 인민대표 의사당이 있고 정면 앞쪽에는 모택동 기념관이 그 오른쪽으로는 박물관이 우람하게 서있다.
펄럭대는 오성홍기는 작렬하는 태양아래 불꽃이 일렁이는것만 같았다.
천안문 양옆으로 대형의 현수막이 가로로 걸려 있는데
좌측에는 世界人民大團結萬歲 우측에는 中華人民公和國萬歲라 하였다.
천안문을 지하통로로 지나 곧이어 자금성으로 갔다
자금성(紫金城) !
옛 춘추전국국 시절 연(燕)나라가 도읍했고 명(明)과 청(靑)이 도읍했던 유서 깊은 삼천년 도읍지다.
고색창연한 성의 첫문은 오문(午門)인데 어마어마한 석벽과 누대는 보는이로 하여금 기가 질리게 한다.
그 옛날 변방의 조선이나 남서역의 안남,태국,인도,기타 사양 여러나라의 사신들이 왔다가 여기서 부터 기가 질려 자국의 주장을 제대로 펴보지도 못하고 돌아간 사례가 많다 한다.
오문을 지나면 태화문(太和門),태화전(太和殿)이 그림 같이 나타나는데
태화전은 자금성의 정궁으로 요즘 수리에 들어가 한창 공사중이다.
곧이어 건청문(乾淸門),교태전(交泰殿),곤영궁(坤寧宮)이 있는데 교태전은 황후가 거처하는 곳이었다.
그 후원과 별채는 좌우로 하나의 고을 처럼 수백채가 지어져 늘어서 있는데 황색,청색,붉은색으로 단청이 칠해진 황궁 전체의 모습은 그야말로 말과 글로서 옮기기에는 너무나도 역부족임을 느끼지 않을수 없다.
북문에 해당하는 신무문(神武門) 밖으로는 외성(外城)이 철벽처럼 높다랗게 둘러처져 있으며 그 성밖으로는 수십길이 넘는 해자가 파여 있어 외적을 막기에 알맞게 설계되어 있었다.
다시 하나투어 버스에 올라 북경 교외에 있는 실크 매점을 들렸다.
누애고치를 실로 뽑는 과정과 비단천을 짜는 과정 모두를 보여주고 매장에서는 옷감과 이불등을 판매 하는곳이였다.
이름하여 동호사주관(東昊絲綢館)이란 간판이 커다랗게 걸려 있었다.
실크로드( Silk Road )는 일찌기 한(漢) 나라 시절 장건에 의해 개척되었다.
그 이후 험난하고 머나먼 서역의 상인들과 중국의 상인들이 오가며 문물이 교류되니 이것이 저 유명한 2천년이 넘은 비단길,씰크로드다.
중국의 비단은 서양에 인기높은 값진 물건이 되었고 서역의 각종 물자들은 중국에 크나큰 영향을 끼첬다.
남들은 이것저것 사서 싸들고 나오건만 내게는 그것 모두가 눈에 안찬다.
나오는 길에 점원이 건네 주는 명함이 있어 받아들고 나와 혼자 담배를 붙이고 자세히 보니 전화번호와 한편의 한시가 인쇄되어 있었다
대충 해석을 해보니 이러 했다.
春蠶(춘잠) 봄누애
相見時難別亦難 만나기도 어렵고 혜어지기 또한 어렵나니
東風無力白花殘 동풍을 만나 백화는 힘없이 지는도다
春蠶到死絲方盡 봄누애는 죽어 실집을 지어 다하고
蠟炬成炭류始幹 밀랍 촛불은 숱이 되어 눈물줄기 이루네
그렇다 누애야말로 죽음을 다한 후에야 비단을 내고 그 살로는 뻔데기가 되어 하나도 버릴게 없는 귀한 역할을 하는것이다.
어디 촛불만이 제몸을 태워 역할을 다한다 할것인가?
그렇게 혼자 독백 하자니 일행들 여럿이 나와 내곁으로 와서는 왜 혼자 흥얼대며 웃느냐기에 그걸 보여 주었더니 그게 무어냐고 물었지만 나는 그냥 웃었다, 자 보시지요 ....????
그들은 모르는게 분명했다. 60 ~70대인데도.....
다시 버스에 오르니 무덥고 피곤하다
어느 식당에 들려 북경 오리구이와 이과두주로 맘껏 마시니 취하고 또 취했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이렇게 도토리 키재듯 저잘난척 한세상 살다가 가는건가?
그래! 그런거야 !
이제 더이상 사람들을 향하여,세상을 향하여 잘난체 할것도 없고 더이상
이제 더이상은 비굴하지 않으리라!
부탁 할것도 애원할것도 없다....그렇게 살아 가리라.....
숙소로 오는길에 귀가(鬼街)를 거처왔다
鬼란 귀신을 뜻함이 아니고 2천여년전에에 술잔이름을 말함인데 그때의 술잔은 다리가 셋이였던것을 다리를 넷으로 만들고 이름을 鬼라 하였다는데 그것이 漢나라 초기이니 2천년이 되고도 남는다.
저녘에 동성도서관 1층에 있는 극장에서 중국의 잡기(雜技:써커스등)을 관람 하고 구화산장(九華山庄)에 투숙했다.
5월 16일 아침 6시에 기상하여 세면후 조식을 마첬다.
전용버스에 올라 만리장성 팔달령에 이르러 케이블로 고성에 올랐다.
유사이래 인간최대 최고의 석조건축물,만리장성 !
그것은 하나의 거대한 무덤이라 했다!
이 장성을 쌓는데 2천년동안 죽어간 사람이 수백만이 넘는다.
허면 그 자체가 무덤이 아니고 무었이랴 ....
더욱이 내가 이미 작년에 쓴 글에서도 밝혔다싶이 만리장성의 동쪽, 즉 북경일대의 대부분은 우리민족들이 고구려가 망하고 백제와 발해가 망할적마다 잡혀와 쌓은 성이니 어찌 마음이 편할리 있겠는가?
다만 지나간 역사는 말이 없고 산등성이를 용이 굼틀대듯 오르고 내리닿는 성곽만이 내게 그걸 말하는듯 하였다.
몇장의 디카를 담은후에 다시 버스에 올라 명십삼릉(明十三陵)을 찿았다.
이곳은 명나라 열세분의 황제와 황후들을 장사지낸 지하 황궁이라 할수 있는곳이다.
명태조 주원장이 원나라를 멸망시키고(고려말기) 국호를 명이라 하여 천하를 호령할적에 태조 주원장이 죽음에 이르러 황위를 큰손주에게 전했다.
그 이유는 큰태자와 둘째태자가 일찍 죽자 만부득 적자계승의 원칙을 따라
어리지만 19살의 손자에게 나라를 맡긴것이다.
문제는 여기서 출발한다.
어린 황제가 등극하고 보니 병권은 모조리 범강장달 같은 삼촌들이 쥐고 있어 말로만 황제이지 군사를 쓸수 없는 황제는 종이황제에 불과했다.
고심끝에 황제는 삼촌들이 병권을 않내놓으면 제거 하기로 하고 셋째를 불러 말하니 듣지 않으므로 죽였다.
이때 넷째인 영왕이 자기도 목숨이 위태함을 느끼고 북방의 변경을 지키던
군사를 모조리 일으켜 혁명을 일으켰고 양자강변에서 황제와 크게 싸워 이긴후 개선한곳이 발해만의 천진인데 천진(天津)이란 곧 천자(황제)가 들어온 나루라는 뜻이다.
바로 이 황제를 낳은분이 고려의 여인이라 하니 이 얼마나 훌륭하지 아니한가?
명세조가 된 영왕은 폭군이라 했다.
그러나 나라의 기틀을 다지고 주변 여러나라를 제압하고 중국을 넓힌 치적은 역대 최고라 한다.
그 황제가 명십삼릉 제일 우두머리에 자리하고 그 이하의 역대 황제들이 지하30m에 궁전을 이루고 또 하나의 세상을 이루고 있었다.
그 어머어마하고 거대함은 열린 입이 닫혀지지 않을지경이였다.
또 여러장의 디카를 찍고 유서깊은 그곳을 뒤로 하고 뻐스에 올랐다.
북경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자성 장군의 동상을 보았다.
그는 명나라를 멸망시킨 장군이었고 오래지 않아 다시 오삼계에게 패망했다 하니 이것이 역사의 수레바퀴인가?
중식후 기념품 가게에 들려 몇가지를 사고...다시 北京大學 有朋館에 들려 한의학과 침술을 강의듣고 처방을 받으라는 설득에는 응하지 않았다.
가이드 팁을 4만원씩 거두어 냈다.
다시 북경에서 천진공항으로 달려 갔다.
장장 2시간 이상을 달리는 고속도로 양편으로는 가도가도 끝없는 농촌이요 광활한 평야였다.
농지가 아니면 어김없이 버드나무나 능수버들이 심겨져 있는데 그 이유는
황사에 제격인 수종이며 은행나무는 귀신이 있다해서 심지 않는다 했다.
중국은 기독교가 거의 없고 도교,유교,불교가 흔한 나라이다.
천진공항에서 장시간 기다리자니 지루하고 무료했다.
중국인 안내원을 찿아가 필담을 청하니 웃으며 응해준다.
여러명의 여성 안내원들이 재미 있어하며 웃고 좋아했다.
蹴球世界杯 開最國 大韓國人也 이라 썼다.
또 쓰기를 行道張家界라 했더니 셰셰(謝謝) 하면서 즐거워 했다.
일행들이 또 내게 다가와 이선생은 무엇이 그리 재밋냐고 묻기에 이겁니다 하며 내밀었더니 껄걸 웃으며 또 공부 하시나? 하며 웃었다.
장가계,상해,장사로 가는 중국인,한국인,일본인,기타 여러나라의 관광객들이 들끓고 있었는데 가장 시끄러운건 중국인이요 그다음이 한국인이고
가장 조용한 사람들은 일본인들이었다.
저녘 6시경에 이륙한 비행기는 약2시간정도 날았고 기내에서 서녘으로 기우는 붉게 물든 아름다운 낙조를 보았다.
장가계 공항에 내린 일행은 곧바로 버스에 올라 장가계 시내에 있는
람천대주점(藍天大酒店)에 투숙했다.
호텔 로비에서 중국인 직원에게 湖南城之 春秋戰國時 豈何國?
하며 내미니 친절하게도 내게 魏 라 써주었다.
하면 진(晋) 나라가 삼진으로 나뉘어 曺,韓,魏 로 삼국이 일어 났을때 위주의 자손들이 세운 나라인것이다.
동정호를 사이에 두고 이북을 호북성 이남을 호남성이라 한다 했다.
이곳 장가계에는 토가족(土家族),백족(白族)등 소수민족들이 많이 산다고 한다.
대충 그렇게 설명을 듣고 잠을 청했다.
첫댓글 소원 플이 하셨습니다.
그낙조 나도 보고파****
너무 장대한 내용에 그만 할말을 잃고 ....
마치 제가 같다 온 느낌을 받을 정도로... 잘 쓰셨네요.
만리장성에 가면 " 불도장성비호한(不到長城非好漢) " 이란 글이 대형으로 걸려 있지요 ...즉 장성에 가보지 않는자 대장부가 아니다라는 말로서 이는 모택동의 어록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