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의 마지막 날은 유흥으로 시작해 암살로 끝을 맺었고
히틀러의 마지막 날은 휘몰아치는 폭탄 세례로 시작해 자살로 끝을 맺었으며,
미테랑의 마지막 날은 정적으로 시작해 자연사로 끝이 난다.
그때 그 사람들,
몰락,
말년의 미테랑
한 달 간 세 명의 대통령의 최후의 시간에 관한 영화를 보았다.
각각의 영화는 한국에서 독일에서 프랑스에서 만들어진 영화 제목들이다.
베를린에서 본 가장 흡인력 있는 영화 중 하나가 바로 몰락이었다. 히틀러의 생애 며칠간을 다루는 이 영화는, 히틀러를 인간적으로 그렸다 해서 개봉 시부터 화제가 되었고 금번 아카데미에 독일 영화가 내던진 도전장이었던 작품이었다.
히틀러를 포함하는 괴벨스와 제 삼제국의 최후의 날을 다룬 이 영화에서, 히틀러는 아이들의 볼을 꼬집고 부하들의 항복에는 분노하는 인간으로 등장한다. 더 이상의 괴물이 아니라.
(우습게도 위의 세 영화는 모두다 대통령이 아니라 인간을 그려냈다는 주장을 한다. )
당초 생각한 것보다 몰락은 히틀러를 옹호한다기 보다 히틀러의 양면성을 보여주는 데 더 주력하고 있었다. 그녀의 정부였던 에바 브라운은 이렇게 말한다. '15년간 알았으나 도저히 알 수 없는 분'이라고. '자기 앞에서는 개와 채식 이야기를 좋아하는 남자라고. 그러자 이 영화의 화자이자 당시 히틀러를 사모했던 20살의 여 비서는 그말에 이렇게 응답한다. ' 무척이나 사려 깊지만 잔인한 말들을 토해낼 때면 바로 그 예의 지도자가 된다고'
히틀러는 독일의 앞날도 걱정하지만 그 못지 않게 어떻게 하면 안전하고 고통없이 자살 할 수 있을까 끊임없이 고민한다.
제 삼 제국의 몰락은 히틀러의 자살을 축으로 전염병처럼 돌림병처럼 번진 자살과 파멸을 두 시간 가까이 광시곡 풍으로 연주하는 것이다.
제 2차 대전은 거대한 전쟁의 신이 끊임없이 죽음의 낫을 휘두르는 광기의 망나니의 춤사위과 같아 보인다. 특히 괴벨스와 그의 부인이 자신의 아이들을 수면제로 잠들게 한 후, 하나하나 죽이는 장면은 죽음의 춤 사위가 그 어느 낫알도 비켜가지 않음을 여실히 절감하게 했다.
영화는 그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제 삼 제국에 절대 충성하던 자들이 자신의 본능과 앞날에 대한 두려움앞에서 어떤 선택을 했는지 낱낱이 밝혀준다. 강자가 약자를 누르는 것이 자연의 섭리라고 믿은 아무런 죄의식도 없이 제 삼 제국을 위해 충성했던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러나 바로 몰락에 뒤 이어 상영한 영화가 바로 소피 숄이었다.
소피 숄은 일종의 독일의 유관순 같은 인물로, 백장미 단을 만들어 오빠인 한스 숄과 함께 반나치 운동을 한 뮌헨의 여대생이었다. 반나찌 유인물을 뿌리다 잡혀 정확히 일 주일만에 사형당한, 사형 판결이 내려진 날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22살의 여자. 오빠와 동생이 한 날 한시에 죽었다.
소피숄- 최후의 날은 히틀러의 서슬퍼런 공포 정치가 더욱더 기승을 부렸던 1943년 2월 그날의 소피 숄의 마지막 날들을 묵묵히 다룬다.
몰락이 전쟁의 한 가운데서 베를린 시민의 고통과 히틀러의 광기와 함께 한다면 소피 숄은 철저히 그녀의 용기와 신념, 그리고 ss 의 심문에도 불구하고 동료들을 지켜내려는 그녀의 개인적인 노력에 맞추어져 있다. 그만큼 객관적인 시선이 분명한 영화였다.
소피는 정신박약인 아이들을 살해한 히틀러 정권의 비 인간성에 대해 이야기하며, 사형선고의 그 순간에도 재판장을 쏘아 보며 언젠가 당신이 바로 내가 섰던 자리에 서 있게 될 것이라고 외친다. 그녀의 패기는 베를린 영화제가 선택한 모범답안이었으리라.
사람들은 박수를 쳤고, 감동은 묵직했다.
그러니까 이 영화제에 환타지는 없는 것이다. 웃음도.. 그러기에는 아직 이 독일이란 땅의 역사는 현재 진행형의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살아서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역사의 수레바퀴에 질질 끌려 다니고 있었다.
그러니 이 말에 귀를 귀울여 보자.
몰락의 마지막, 히틀러의 전직 여비서가 살아 남은 그녀가 이제는 할머니가 되어 이렇게 이야기 한다.
'소피 숄과 나는 같은 해에 태어났다. 내가 히틀러 밑에서 일하던 바로 그 해에 그녀는 학생운동을 하다 처형당했다. 후에 이 사실을 알았을 때, 나는 젊다는 것이 변명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
그녀의 고백은 당신에게 내게 역시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역사 앞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가?
히틀러와 소피 숄은 이제 나란히 베를린 영화제를 장식한다.
그리고 대한민국에도 그때 그 사람들이 나왔으니 언젠가는 그 때 죽어간 나의 친구들 이야기도 스크린에 등장할 것이다. 분신하고.. 고문당하고.. 학교에서 쫓겨났던.
첫댓글 좀더 나은 미래를 위해 젊음을 써야겠네요
날짜: 2005/02/15 08: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