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촌언니
이 향 숙
넝쿨장미가 지나는 이들을 유혹하고 있다. 벤치에 앉아 향기를 깊이 들이킨다. 긴 옷을 입고 한낮의 따뜻함을 즐기는 나와는 달리 사람들은 어느새 여름옷이다.
창문을 활짝 열고 먼지를 털어낸다. 아이들의 옷장은 겨울옷과 여름옷이 마구잡이로 꺼내 입어 산처럼 쌓여있다. 검소하게 키운다 했으면서도 눈에 들어오는 대로 사 입힌 것과 사촌형들에게 물려받은 것이 많다. 겨울옷은 거실 한쪽의 수납공간에, 봄 가을 옷은 그나마 부피가 작으니 서랍장에 그리고 여름옷은 꺼내 입기 편하게 정리한다. 작은 아이의 옷장은 이제 재활용 바구니에 담아야 할 것들이 산더미다. 물려줄 동생도 없을뿐더러 작아져서 도저히 입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사내아이들만 키우다보니 바느질 할 일이 자주 생겼었다. 어느 날은 새 바지를 입고 운동장 몇 바퀴 뛰고 무릎이 헤져서 들어오기도 했다. 버리기엔 아까워서 아이가 좋아하는 문양을 사두었다가 덧대어 입히고는 했었다. 어느 정도 자라고 나니 헤져서 못 입는 일도 바느질 할 일도 줄어들었다.
내친김에 내 옷장도 열어본다. 일이 있어 나갈라치면 변변하게 차려 입을 옷이 없으면서도 옷장은 숨 쉴 틈이 없다. 유행 지난 옷 몇 벌을 망설임 없이 바구니에 담는다. 작은 아이가 태어나고 언젠가는 딸을 낳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으로 버리지 못했던 임신복도 미련 없이 넣었다. 겨울 옷 쪽에 유난히 긴 가죽 코트가 눈에 들어온다. 먼저 가신 큰언니가 내 나이 스무 살 즈음 장만해준 옷이다. 20년도 더 된 옷이다. 이제 그만 보내줄 때도 됐는데 몸에 대어 거울을 들여다보고는 다시금 한쪽에 잘 걸어 둔다.
나는 중학교 1학년 때 한해만 교복을 입었었다. 2학년부터는 교복 자율화가 되어 사복을 입어야 했다. 30여 년 전의 시골에서 사복을 입는다는 것은 부모님들의 부담이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어서 생각처럼 즐겁지만은 않았다. 형편이 어려워 단벌신사들도 많았다. 나도 별 수 없었다. 고만고만한 자매가 많은 친구들이 부러웠다. 아침이면 일찍 일어나 예쁜 옷을 먼저 입는 사람이 임자라는데 나는 바로 위의 언니와 아홉 살이나 차이가 나고 그나마 이미 결혼을 했으니 말이다. 다행이 시집간 언니들이 가끔 옷을 보내 주고는 했었다.
고등학교 때였다. 나는 간이 안 좋아서 일주일에 한 번씩 의료원에 들러 약을 타왔었다. 병원에 다녀오던 어느 날 나는 옷가게 앞에서 발을 멈추었다. 마네킹이 입은 옷은 눈이 부시어 숨이 멎을 것 같았다. 어머니와 들리던 시장 에서는 볼 수 없었던 고급스러움이었다. 그 옷은 마치 나를 위해 준비라도 해 놓고 기다리고 있다는 착각을 일으켰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가게 안으로 들어가 점원에게 가격을 물었다. 생각보다 비싼 옷이었고 점원은 돈이 없을 것 같은 나를 귀찮다는 듯이 응대했다. 순간 내 입에서는 어이없는 말이 튀어 나왔다. “제가 사러 올 거니까 팔지 말고 기다려 주세요.” 돌아오는 길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병원에 가는 날이면 홀로 되신 어머니의 얼굴은 늘 어두웠기 때문이다. 터벅터벅 시내의 작은 아버지 댁으로 들어갔다. 동생과 순정 만화를 보는 내 눈에는 주인공 위로 점찍어 두었던 옷이 춤을 추었다. 주뼛 대며 길 건너 사촌 언니에게 갔다. 고등학교를 막 졸업하고 취업한 언니에게 다짜고짜 떼를 쓰기 시작했다. 언니는 어이없어 하면서도 다음 주면 월급을 타니 사 주마 했다. 얼마나 시간이 더디 가는지 병원에 가는 날을 그렇게 기다려 보기는 처음이었다. 그날 언니는 근무 중이었다. 나는 조바심이나 도저히 기다릴 수가 없어 돈을 달라고 했다. 한 달음에 달려 옷가게에 도착해 보니 마네킹은 다른 옷으로 갈아입고 있었다. 옷은 이미 팔려 나갔다고 한다. 처음으로 내가 사고 싶었던 옷이었기에 실망도 컸지만 마음을 고쳐먹고 다른 옷을 골랐다. 새 옷을 입은 채로 언니에게 갔다. 언니는 “ 어이그 그래 그 옷이 그렇게 이쁘더냐.”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기분이 좋아진 나는 신이 나서 잠도 오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철없는 아이였다. 사회 초년생의 벌이가 얼마나 된다고 언니에게 떼를 써서 옷을 얻어 냈으니 말이다.
입을 거리가 넘쳐나는 세상을 살면서도 버릴 수 없는 것들, 내게는 그런 것 들이 있다. 일 년에 한 번도 입어보지 못하더라도 몇 년에 한 번씩 세상 구경 시켜주면서도 끝내 버리지 못하는 것들 말이다. 아이들의 베넷 저고리, 이름이 새겨진 태권도 띠, 그리고 추억이 묻어난 것들이다.
사춘기의 나를 따뜻하게 보듬어 주었던 사촌언니, 좋은 날 고운 옷 한 벌 해드려야겠다.
첫댓글 사촌언니...이 향 송님께 이 글을 바칩니다.
친구야???잘 읽었다.밖엔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다.오늘도 수고하셔..좋은글 올려주셔요 읽고 하루보내게..
고마워...창문 닫고 출근 해야겠네.. 비가 오신다니
몇 일을 바쁘게 지내다보니 이제야소식 전하네 친구! 이 글 읽다보니 학창시절이 새롭다. 그래두 자넨 용돈 줄 사촌이라도있지 난 사촌들 중에도 내가제일위라....난 언니 있는 친구가 제일 부러웠다. 아! 나 허 경숙이야 기억하나 모르겠네.....
당근이지. 방가워.ㅎㅎ 네 소식 들었어. 총무일을 본다며...애쓴다.
향송이 이모랑 이름 비슷해서 친자매인줄 알겠다 ㅋㅋㅋ 근데 향송이 이모 얼굴이 기억 안난다 ㅜㅜ;;
그냥 나보다 좀 덜 이쁜 이모.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