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용마루 없으면 이음매가 곡선으로 넘어갈 수 밖에 없으니
지붕 밑 도리가 쌍으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
그런데 현재 희정당 (熙政堂)은 용마루가 있다.

사진: 희정당
구조는 용마루 없어도 되게끔 되어 있는데 왜 용마루가 있을까?
일제 강점기인 1917년 창덕궁에 큰 불이 나 전각들 대부분이 불탄다.
그러자 일제(日帝)는 경복궁 전각들을 뜯어 옮겨 지어 버렸다.
1920년 경복궁의 국왕 침전인 강녕전(康寧殿)을 뜯어다 만든 것이
현재 희정각이다. 경복궁 강녕전일 때는 용마루가 없었으니
위의 구조였지만, 창덕궁으로 옮겨 오면서 용마루를 올려 버린 것이다.
참고로 창덕궁 침전(寢殿) 대조전(大造殿)은 경복궁 교태전을 뜯어 온 것이다.
지금 경복궁 강녕전과 교태전은 최근 복원한 것이다.
그런데 필자가 3년전 상해 예원(豫園)을 갔을 때 보니 용마루가 있던데…

사진: 상해 예원(豫園)의 어느 지붕
아래 오른 쪽 관우상(關羽像)에 초점을 두어 지붕 전체를 볼 수 없으나
분명히 용마루가 있다. 청나라 양식이 아니라서 그런가?
이제 궁궐의 나머지 침전 사진들을 본다.

사진: 경복궁 교태전.
강녕전은 국왕의 침전, 교태전은 왕비의 침전이다.
대원군 때 지은 것은 위 설명대로 1920년 창덕궁으로 뜯어가 버렸고
지금 건물은 최근 복원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