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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양수리)의 스산한 갈대밭 너머로 운길산을 비롯해 예봉산, 적갑산이 펼쳐져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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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름이 지나다 여유를 즐기려 잠깐 산에 붙어 쉰다고 해 붙여진 `운길산`(雲吉山ㆍ해발 610.2m). 경기도 남양주시 운길산으로 향하는 길은 그래서 늘 여유롭다. 오죽하면 다산 정약용 선생이 운길산에서 유유자적 살고 싶었노라고 했을까. 마침 기자가 찾은 날은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 더없이 포근한 느낌이다. 다산이 지목한 운길산의 여유를 보다 생생하게 느끼고 싶었을까. 기자 역시 자가용을 버리고 양수리에서 백월리행 62번 버스를 타고 진중리로 향했다. 처음 향한 곳은 운길산의 포인트나 다름없는 수종사. 입구에서 수종사까지 올라가는 2㎞ 남짓한 길은 포장되어 있지만 경사가 결코 만만치 않다. 경차들이 뿜어내는 엔진소리가 영락없이 숨이 차 헐떡이는 모습이다. 숨이 턱까지 차 오를 즈음 바람을 타고 은은한 목탁 소리가 가까워진다. 수종사다. 설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이곳 풍경이 아직 하얀 옷으로 갈아입지는 않았지만 늦가을 정취가 남아 아쉬움을 달래준다. 넓게 팔을 벌리며 나란히 서 있는 500년과 300년 된 은행나무는 산과 사찰의 기품을 한껏 더한다. 내려다보이는 양수리 물길이 시원함까지 전해주니 수종사 경치를 동방 사찰 중 제일로 꼽았다는 서거정(1420~1488) 말이 떠오른다. 수종사는 세조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1458년 세조가 금강산을 다녀오던 길에 양수리에서 하룻밤을 묵었는데, 잠결에 종소리를 듣고 따라가자 바위 굴 속에 십팔나한이 있고 그 속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가 마치 종소리처럼 울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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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종사 아래 시원하게 펼쳐진 한강 조망은 도심 속 스트레스를 녹여주기에 충분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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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찰 입구에 `묵언(默言)`이라고 적힌 작은 표지가 있다. 숨이 가쁜 데도 무의식적으로 입을 막고 다시금 숨을 멈추게 된다. 묵언 글귀 아래가 한국에서 으뜸이라는 석간수가 흐르는 곳이다. 물맛만큼은 대한민국 최고라는 곳. 다산이 즐겨 찾아 차를 음미했다고 전해지는 곳이다. 과연 물맛은 어떨까. 한 모금 들이켜자 세속의 때가 훌훌 날아가는 느낌이다. 석간수 위에는 삼정헌이라는 다실이 있다. 최고의 물로 우려낸 최고의 차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잔득 기대를 했는데 운도 없지. 하필이면 찾아간 때가 염불 시간이란다. "언덕과 골짜기 서로 합해져…/너무도 즐거워 혼자서는 묵어 지내며 돌아가고 싶지 않네(숙수종사)." 수종사를 떠나는 아쉬움을 다산은 이렇게 노래했다. 다산처럼 쉬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것도 묘한 느낌이다. 수종사에서 운길산 정상으로 향하는 거리는 0.8㎞ 남짓. 짧은 거리라고 가벼이 생각하며 올랐는데 굽이굽이 이어진 돌길이 꽤 길게 이어져 있다. 한 사람이 겨우 지날 법한 좁은 길. 정상으로 향하는 길 구석구석에는 며칠 전 내린 첫눈 흔적이 남아 있어 다가올 설산(雪山) 모습을 짐작케 한다. 1시간 정도 지났을까. 운길산이 마침내 그 머리를 허락한다. 한자로 운길산 이름이 선명하게 새겨진 비석. 이곳이 땅에서부터 610.2m 솟아 있는 운길산 정상이다. 안개와 어우러져 있는 예봉산과 적갑산이 구름 속에 서로 키 자랑을 하듯 고개를 바짝 들고 있다. 하얗게 퍼져 있는 운무와 절묘하게 어울리는 산 이름을 누가 지었을까.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정상에 앉아 주변을 둘러보며 망중한을 보낼 즈음 반대쪽 길에서 한 무리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막 정상으로 올라선다. 예봉산과 적갑산을 거쳐 이곳에 올랐으리라. 아니나 다를까. 팔당역에서 시작된 그들의 등산은 6시간이나 걸려 운길산에 방점을 찍었다고 한다. 진중리~수종사~운길산 산행이 초보 코스라면 예봉산을 거치는 코스는 고급이라 할 만하다. 전자가 2시간 정도 걸린다면 예봉산을 거치는 길은 고되면서도 또 다른 운길산의 매운 맛을 볼 수 있는 명코스다. 쉽게 어둠을 맞이하는 겨울산 습성을 핑계 삼아 수종사로 몸을 돌려 하산하는 길. 운길산 산행 내내 떠나지 않았던 `녹차 미련`이 다시 한 번 수종사로 나를 끌어들인다. 전화위복. 다시 찾은 수종사 삼정헌 녹차가 이번에는 따뜻한 김을 뿜으며 반기고 있다. 이 순간 다산이라면 이런 시를 읊지 않았을까. "너무도 따뜻한 녹차 한 잔 제대로 얻어 마셨으니 이제는 하산해 두 발 뻗고 쉬어나 볼까."
▶운길산 가는 길
자가용
팔당호~6번 국도~양수대교 앞~15번 국도 삼거리 좌회전~진중 삼거릴 좌회전~수종사 입구
대중교통
청량링격 167번.2228번 버스(양수리 하차)~62번 마을 버스(수종사 입구 하차), 중앙선 운길산 역 29일 개통예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