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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5주일; 2016. 4. 24
사도 14,2ㄴ1-27; 묵시 21,1-5ㄴ; 요한 13,31-33ㄱ.34-35
중앙 보훈 성당; 이기우 신부
부활 제5주일인 오늘은 “서로 사랑하여라.” 하고 당부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주제로 해서, 믿음이 전파되는 경로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모세가 하느님께로부터 받아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해준 십계명 석판에는 제일 처음에 기록되어 있기를, 하느님을 흠숭하되 그분의 상을 만들지 말라는 금지령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나는 너를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 낸 주 너의 하느님이다. 너에게는 나 말고 다른 신이 있어서는 안 된다. 너는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든, 아래로 땅 위에 있는 것이든, 땅 아래로 물속에 있는 것이든 그 모습을 본딴 어떤 신상도 만들어서는 안 된다.”(탈출 20,2-4)
실제로 그 당시 이집트와 바빌로니아에서는 하늘을 나는 새의 모양을 새긴 거대한 석상을 새기기도 했고, 땅 위를 기어다니는 뱀의 모양을 새긴 거대한 목상을 새기기도 했으며, 땅 아래로 물속을 헤엄쳐 다니는 물고기의 모양을 새긴 거대한 석상을 새기기도 했습니다. 심지어는 상상 속의 동물인 스핑크스까지 거대하게 만들어 파라오들의 무덤인 피라미드를 지키게 하기도 했습니다. 스핑크스는 사람의 얼굴을 한 사자를 말합니다.
이렇게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 놓은 신상 앞에서 이집트와 바빌로니아의 우상숭배자들은 절을 하고 제사를 바치면서 백성들 위에 군림하는 이데올로기를 내세웠습니다. 신상을 잘 섬기면 복을 받고, 그렇지 않으면 벌을 받는다, 우리는 신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고귀한 신분이니 노동을 할 수 없고, 너희가 우리 대신에 노동을 해서 곡식을 세금으로 바쳐라.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거짓 신의 상을 만들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사실 하느님은 상이 없습니다.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피조물에게나 상이 있고 이름이 있는 것이지 창조주 하느님께는 새길 만한 이미지가 따로 없습니다. 있다면 그것은 우리 사람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을 닮도록 사람을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이토록 지엄하게 명령을 내리셨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지도자들과 백성들은 줄곧 우상숭배의 유혹에 시달렸습니다. 이스라엘 주변의 이방 민족들은 여전히 우상을 숭배했고, 그 제사 의식은 화려하고 멋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무런 장식도 없고 아무런 이미지도 그릴 수 없는 유다교에 비해서 우상숭배의 종교예식은 예술적이고 입체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이 솔로몬 왕의 치세 이후에 남 유다 왕국과 북 이스라엘 왕국으로 갈라지고나서도 경쟁적으로 우상숭배에 물들고 결과적으로 타락한 길을 걸어갔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십계명을 완성하러 오셨습니다. 사랑의 새 계명으로 십계명을 완성하러 오신 것입니다. 열 가지 계명을 단 한 가지 계명으로 줄여 주셨습니다. “서로 사랑하여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즉 하느님을 믿는 이들이 서로 사랑하는 삶을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어야만 세상 사람들이 하느님을 보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느님이 사랑이심을 비로소 알게 될 것이라고 당부하신 말씀이었습니다. 이것이 우상숭배를 멀리 하고 하느님을 흠숭하는 길이며, 또 세상 사람들에게 선교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서로 사랑하기.
사도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이 계명을 그 당시까지 우상숭배에 물들어 있던 다른 민족들에게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느님이 누구이신지를 몰랐을 때 우상을 하느님인 줄 알고 숭배하던 이방인들이 사도들이 가르쳐준 대로 예수님의 새 계명, 즉 서로 사랑하는 삶을 하느님을 섬기는 방식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것은 새 하늘과 새 땅이었습니다. 하느님처럼 되라고 유혹하는 사탄이 살던 첫 번째 하늘과 땅은 사라지고 죄로 말미암아 고통스럽게 지내야 하던 바다도 더 이상 없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거처는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 가운데에 자리잡았습니다. 하느님께서 사람들과 함께 거처하시고,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은 하느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이 백성의 삶을 지켜보시는 하느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든다.”
이제 성령 강림 대축일이 삼 주간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성령은 사랑으로써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드시는 하느님이십니다. 첫 번째 창조를 이룩하신 하느님이 성부 하느님이시라면, 이제 사랑으로 모든 것을 새롭게 창조하시는 하느님은 성령 하느님이십니다. 그래서 성령께서도 창조주가 되십니다. 고귀하신 은총으로 모든 피조물을 돌보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더욱이 사랑을 실천하면서 생겨난 온갖 고통을 위로해 주시는 분이시며, 모든 생명의 근원으로서 불타는 사랑을 우리에게 주시는 분이십니다.
특히 성령께서는 우리가 서로 사랑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은사를 베풀어 주십니다. 그 중 주요한 은사는 모두 일곱 가지입니다. 이 은사들은 세상에서 구할 수도 없고, 돈 주고 살 수도 없어서 오직 성령 하느님께서만 주실 수 있는 귀한 은사입니다. 이 은사를 받을 수 있는 수신 장치가 우리 몸에 있는데 이를 明悟라고 합니다. 이 명오를 성령께서 비추시고 우리 마음에 사랑까지 부어주시면 우리가 겪는 질병 고통도 즐겨 참아 받을 수 있게 됩니다. 이렇듯 성령의 이끄심은 참으로 오묘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우리는 세례와 견진 때에 이 성령을 옷입듯이 입었습니다. 그런데 아직 인격적으로 충분히 체험하지 못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그래서 다가오는 성령 강림 대축일에 우리들 각자가 인격적인 성령 강림을 맞이하도록 하기 위하여 기도하면서 준비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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