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한 40대의 서막 - 서울 국제 마라톤 대회 출전기 - |
2006-03-13 18:57:47, 조회 : 174, 추천 : 3 |
출발 8시 27분 49초 - 20키로 지점 10시 14분 30초 -도착 12시 26분 44초 기록 3시간 58분 55초. 페이스 계산을 해 보면 하프 지점까지 1시간 58분. 하프부터 풀까지 2시간 총 3시간 58분이다.
운동은 정말 정직하다고 밖엔 할 말이 없다.
어젠 정민이랑 뛰었는데 정민이는 준모와 달라서 빨리 달리라고 다그치지 않는다. 나이가 그렇게 많이 차이 나는 형수한테 어떻게 채근하겠는가? 그냥 옆에서 달릴 뿐이다. 급수대에선 물을 주고, 화장실 가면 기다려주고, 시간 되면 파워젤 주고.
날씨가 춥고 바람이 불었으나 그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본다. 내가 운동을 하면서 우리 클럽 회원들한테 감동 받는 말들이 있다.
"오빠, 종아리가 아파요."
" 그래? 그건 운동을 덜 해서 그래. 근육을 단련해. 그럼 안 아플거야."
처음엔 뭐 장난하나 했다. 그런데 운동을 하면서 그 말이 장난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종아리가 아프면 종아리 근육이 약하니까 운동해서 단련시키면 된다. 발목이 아프면 발목 근처의 근육을 강화시키면 발목이 안 아프다. 그러니까 아픈 건 운동을 덜 해서 아픈 거 맞다.
살아가는데도 마찬가지다. 약한 부분이 있다면 내 놓고 단련을 시켜야 그 부분이 강해진다. 숨기려고 애쓴다면 단련될 기회를 잃게 된다.
겨울에 시즌 대비 근력 운동을 했었다. 중간에 앙코르와 다른 여러 곳을 다니면서 한 달을 쉬었다가 다시 2월에 근력 운동을 했는데 학교란 곳이 2월과 3월이 원체 바쁘니 운동의 맥을 잇는 건 모든 인간 관계를 포기하라는 말과 같다. 여기서도 클럽 오빠들의 말은 유효하다.
" 너무 바빠서 운동 못 했어요. 그냥 완주만 할래요."
" 기록을 내야지. 무슨 완주만이야? 진정한 철인은 일상 생활 충분히 하며 할 거 다 하는 거야. 식이요법 하고, 술 딱 끊고 서브 - 3 하면 뭐해? 그건 반칙이야. 평소에 먹는대로 먹고, 사람 만나서 술도 마시고 그러면서 서브 - 3 해야 진정한 철인이지."
그렇다. 우린 선수가 아니다. 생활인이다. 생활인이 생활의 맥을 끊고 운동에만 미친다면 그건 진정한 마스터즈가 아니다.
지난 주 일 주일 내내 회식과 모임이 있었다. 그래서 달리기는 고사하고 잠도 푹 못 잤다. 토요일 역시 회식과 모임으로 밀린 집안일을 하느라 휴식도 못 하고 일요일 시합에 출전했다. 그렇지만 후회는 없다. 내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다. 그 많은 회식 자리 마다 하지 않고 가서 회식이 끝날 때까지 자리 지키고 분위기 맞추며 앉아 있었다. 시합을 위해 술은 맥주 한 잔을 넘기지 않았다.
시합에 출전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크게 힘들이지 않고 완주를 했고, 전반부와 후반부가 2분 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 스타디움에선 막판 스퍼트로 50명도 넘는 사람들을 제끼며 골인을 했다. 그리고 내 목표인 서브-4를 했다.
정민이는 같이 뛰면서 내 호흡이 몹시 나쁘고, 게임 운영이 서툴러서 페이스가 들쭉 날쭉해서 효율적으로 체력을 쓰지 못 하고 있으며, 막판 스퍼트 후 멀쩡하게 돌아다닐 수 있는 걸로 봐선 내가 내 자신의 운동 능력을 잘 알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조금 손 보면 3시간 40분대까지 낼 수 있는 체력과 파워라고 말했다. 그리고 나중에 시간을 내서 도움을 준다고 했다.
삼년 뛰었는데도 배운 게 없으니 모자랄 밖에. 그렇지만 나는 찬란한 40대를 즐기고 있다. 마라톤 풀 코스 4시간 안에 들어올 수 있는 여자 나오라고 해 봐라. 아마 전국에서 만 명도 안 될 것이다. 크하하... 열심히 노력해서 이룰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건 정말로 살맛나는 삶이다. 아차차!!! 중간에 화장실을 간 시간 5분을 뺀다면 기록이 더 좋았을 테지만 크게 탓하지 않는다. 그것도 실력이니까. 그리고 정민이가 도와준다고 했으니 앞으로 기록은 더 더 더 나아질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나보다 더 행복하게 살고 있는 사람 나와바바바!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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