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좌 스님이 말하는 보성 큰 스님
절집에서 어른의 의미
“성스럽게 사는 모습을 보이는 건 쉽습니다. 수행 과정에서 얼마든지 ‘성스럽게’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완完’은 다릅니다. 어렵습니다. ‘성聖’은 윤회의 과정입니다.
‘성’이 ‘성’으로만 지속되는 건 미완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송광사 화엄전. 보성 큰 스님의 상좌인 영진스님께 은사 스님에 대해 여쭙자 돌아온 말이다.
성동격서다. 눈치로 헤아릴 일은 아니나,
풍문처럼 혹은 신화처럼 부풀려 유통되는 절집안의 얘기를 적이 탐탁찮아 하는 것 정도는 알겠다. “종교계라고 해서 어른을 빛나는 모습으로만 그리는 것은 모양새가 우습지요.
특히 제자가 스승을 미화하는 건 아주 어색하고 민망한 일입니다.
필요하다면 오히려 밑바닥까지 다 드러낼 수 있어야 합니다.
수행자의 삶은 죽고 나면 오래잖아 드러나는 법입니다.”
이것이 소위 송광사의 가풍이라는 것인가.
한없이 온화한 가운데서 느껴지는 서늘함. 목구멍을 타 넘고서야
자신을 그러내는 녹차 맛 같은 존재감. 귀동냥 몇 번으로 ‘평생을 절집에서 사는 의미’를
헤아려 보려 한 어설픈 수작이 먹혀들 데라고는 바늘 틈만큼도 없다.
이런저런 생각들이 감꽃처럼 떨어져 내린다.
영진 스님은 은사이신 보성 큰 스님의 삶에 대해 말하기를 아주 조심스러워 했다.
그 이유는 앞에서 간단히 쓴 대로이고, 이후의 얘기는 차를 마시면서
자연스럽게 나눈 대화를 정리한 것이다.
영진 스님은 대화의 무게 중심을 보성 큰 스님의 삶 자체보다는
저변에 흐르는 수행자로서 삶의 보편적 가치에 두었다. 하나,
수행의 ‘보편적 가치’라는 것도 개별적으로 구체화되지 않으면
뜬구름 같은 얘기가 될 것이니, 이 짧은 기록이 뜬 구름을 비 되어 내리게 하는
한 줄기 바람 정도는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아니 그럴 수 있기를 희망한다.
“수행자에게 꼭 필요한 세 가지가 ‘스승과 발심發心 그리고 자작自作’입니다.
우선 노장님(보성 큰 스님)은 스승을 잘 만났어요.
구산 스님 상좌지만 사실 뿌리는 효봉 스님이에요. 좋은 스승을 만났지요.
노장님은 성격이 아주 급해요. 아주 동적動的이지요.
그렇지만 정靜을 버리는 법이 없어요. 계율에 투철합니다.
총림을 이끄는 원동력이 바로 그거에요.” 계율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보성 큰 스님은 오늘날 조계종단의 계단 체계를 갖추는 데 핵심역할을 했다.
1980년 10·27법난 때 비상대책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수계授戒만이라도 단일화하자고 제안하여 81년 가을 해인사에서
단일계단單一戒壇으로 구족계와 사미계를 주면서부터 수계 과정이 엄격해졌다.
지금은 상식처럼 되었지만 사실 조계종의 단일계단 역사는 30년이 채 되지 않는다.
“계단戒壇 재건에 중추적 역할을 하셨지요. 계율의 핵심과, 확실한 줄기를 세웠습니다.
출가 사문에게 계율은 생명이에요. 당신이 그런 삶을 살아오셨지요.
노장님이 수행자로서 견지해온 사상의 핵심이 계율이에요.
‘중’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확실히 아는 분입니다.
언젠가 도견스님께서 어른 스님에 대해 얘기하시기를 ‘자다가 만져 봐도 중’이라고 하시더군요.”
송광사와 조금이라도 인연이 있는 사람은 다 아는 얘기지만,
보성 큰 스님은 절의 크고 작은 살림을 손수 챙기는 것으로 유명하다.
출타 중에도 밭일 끝내고 호미 잘 챙겼는지까지 확인할 정도다. 소
임 사는 스님들 입장에서는 까다로운 시어머니처럼 보일 수도 있을 듯하다.
“대중생활에 철저합니다. 바깥에 다니실 때도 대중생활의 원칙에 철저하시지요.
이것도 효봉 스님의 영향일 겁니다.
노장스님께서 효봉 스님의 시봉을 오래하셨는데, 외출을 했다가
늦어 밤 12시에 와서 인사를 드려도 싫어하신 적이 없었다고 해요.
대중생활에 철저한 만큼 대중을 대단히 공경합니다.
워낙 성격이 급하고 직선적이어서 누구라도 실수를 하면 즉석에서 호통하시고
대중 참회를 시키시는데, 효봉 스님 밑에서 철저히 배우면서 몸에 밴 거지요.
사실 이것도 대중을 공경하기 때문에 가능한 겁니다.”
요즘도 송광사 스님들은 다른 절에서 살더라도 전체 모임이나 잠시 들렀다
갈 일이 있으면 절집안의 어른들에게 두루 돌며 인사를 한다.
옛 종가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시대가 변했어도 송광사에는 옛날 어른의 가풍이 살아 있어요.
흔들리는 가운데서도 정을 잃지 않는 힘이에요.
노장님은 개인적으로 갖추신 게 거의 없어요.
옷 보따리가 많긴 한데 남 주지도 못할 만큼 낡았는데도 안 버려요.
옛날 어른 모습 그대로예요. 수행자로서 자기 정립은 어떤 스승을 만나느냐가 관건입니다.
절집의 인연법으로 보자면 부처님이 바로 선우善友예요.
원효 스님이, 보조 스님이 혼자 공부했습니까? 절집의 인연법을 모르고,
수행의 과정을 보지 않고 깨달음이 갑자기 솟아오르는 것처럼 말하는 건 잘못이에요.”
영진 스님은 73년에 송광사로 입산하여 보성 큰 스님을 은사로 계를 받았다.
이후 85년부터 보성 큰 스님이 삼일암(방장실)으로 거처를 옮기기까지
화엄전에서만 12년 동안 큰 스님을 모셨다.
큰 스님께서 가장 왕성했던 시기를 함께한 셈이다.
“만약 노장님이 효봉 스님을 못 만났더라면 지금과 전혀 다른 모습일지도 모르겠어요.
사실 성격이 급한 건 출가자들의 공통된 성격이기도 한데, 노장님은 급한데다
직선적이기 까지 해요. 그런데 결정적인 순간에는 정靜으로 돌아옵니다.
이십 년 넘게 효봉 스님을 모시면서 총림 방장의 기운을 축적한 것입니다.
절집에서 스승의 의미는 참 큽니다. 노장님이 서예를 잘 하십니다.
타고 난 데가 있어요. 계속 했다면 대가가 되었을 겁니다.
그런데 효봉 스님 한 마디에 딱 접었어요. ‘글을 쓸 줄 알면 된다.’는 말씀을 듣고요.
그뿐이 아니라 지금까지 차판茶板을 안 깝니다. 다구茶具갖추신 적이 없습니다.
스승의 영향이라는 게 이런 겁니다. 사실 노장님 모시기가 쉽지 않습니다.
마음에 안 들면 탁탁 쳐버립니다. 그렇지만 성격 문제는 개성일 뿐이에요.
절집에서는 ‘중’으로서의 삶이 중요하지요. ‘중’이 무언지 철저히 아는 분이에요.
겉모양보다는 ‘중’이라는 핵심이 중요합니다. 긴 세월이 흐르면 겉모양은 문제가 안 됩니다.”
세간 출세간을 막론하고 말 깨나 하는 사람이라면 다 어른의 부재를 개탄한다.
절집에서 어른의 의미는 무엇일까? “‘중 냄새’가 나야지요. 그 바탕은 계율입니다.
땡초 노릇을 해도 ‘계율’을 알아야 합니다. ‘계정혜’ 삼학의 바탕은 ‘계’입니다.
인격이나 학문이 아무리 좋아도 절집 안에 오면 다시 태어납니다.
중 냄새? 떠들어서 될 일이 아닙니다. 선禪은 이렇다, 깨달음은 이렇다 하고 떠들 일이 아닙니다.
중 냄새가 나는 사람은 눈빛이 편안합니다. 눈빛은 조작이 안 됩니다.
신부든 중이든 눈빛을 보면 보는 사람이 편안해져야 합니다.
절집에서 어른은 때를 벗은 사람이지 박식한 사람이 아닙니다.
맑은 눈빛이 그대로 대중들에게 비쳐져야 합니다.
중이 명 강의를 해도 눈빛이 왔다 갔다 하면 곤란합니다.
절집에서 어른 노릇 하려면 좀 외로워야 합니다. 인기영합은 곤란해요.
쓸쓸함은 중 본분이에요. 자신을 버팅기는 바탕입니다.
무조건 부처님과 계율을 따르는 게 중입니다.
자기 과시로 어른 값 하는 건 절집의 어른 노릇이 아닙니다.
마땅히 따라야 할 가치를 함께 바라보면서 ‘나도 저분처럼 살아야지’하는 생각을 내도록
공감을 이끌어내야겠지요.
오히려 인간적 모습에서 자연의 원리 같은 걸 느끼게 하는 것이 어른의 도리일 것입니다.
대중들도 큰 스님, 큰 스님 하면서 어른을 완성자처럼 떠받들어서도 안 됩니다.
과정보다는 마치는 것, 결과만을 강조하는 것도 폐단입니다.”
표현 수단으로서 말과 글에는 한계가 있다.
사물을 표현하는 일도 그러할진대 수행자의 평생을 짧은 글로 전한다는 건 무모한 일일 것이다.
대화를 끝내면서 영진 스님은 그 무모함의 위험성을 명토 박는다.
“수행? 보이지 않습니다. 역사적 사실? 사실 얼마 되지 않습니다.”
대담·정리 조경숙(전 성보문화재연구원 편찬실장)
나에게 가는 길
淸素
글: 범일 보성
첫댓글 나무아미타불...()()()...고맙습니다....
때를 벗은 분이 어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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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연스님께서도 수년간 송광사에서 정진하셔서 수승한 기품을 갖고계시지요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삼보사찰중에서도 그래도 수행가풍이 제일 나은것 같습니다.
스님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