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와 다문화스토리10-왕건의 가계
신화의 극치, 한국 최고의 다문화가정 고려 왕건의 선대조
고려의 4대왕 광종(光宗, 925~975)은 중국 후주에서 귀화한 쌍기(雙冀)를 과거(科擧)시험을 총괄하는 지공거(知貢擧)로 삼아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과거제도를 실시하게 만든 임금이다. 그는 적극적으로 외래인을 수용했는데, 내자불거(來者不拒), 곧 ‘오는 자는 막지 않는다.’고 하여 적극적으로 귀화인을 수용했다. 이는 다문화정책을 펴서 나라의 문물을 적극적으로 떨치고 싶은 광종의 멋진 생각이었다.
광종의 이런 생각은 광종이 처음으로 시작한 것은 아니다. 그의 아버지 고려 태조 왕건(王建)도 적극적으로 혼인 정책을 펼쳤음은 이미 다 아는 사실이다. 아울러 그의 선대조들은 정말 다양한 문화를 이룬 민족들과 혼인을 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고려사<고려세계(高麗世系)>에는 왕건의 조상에 대한 신이와 혼인이야기가 나온다. 먼저 스스로 성골장군(聖骨將軍)이라 칭한 호경(虎景)이라는 사람이 나온다. 호경은 <고려세계>에 나오는 최초의 왕건 조상이다. 그는 집안이 부유하고 일찍 결혼해 살았으나 아이가 없었다. 활쏘기를 잘하여 사냥을 즐겼는데, 어느 날은 같은 마을에 사는 아홉 명의 사냥꾼과 사냥을 나갔다가 호랑이가 울부짖어 굴속에 숨었다. 호랑이가 가지 않고 버티므로 머리에 쓴 관을 던졌더니 호경의 것을 호랑이가 취하였다. 호경이 나와 호랑이와 싸우려 했으나 호랑이는 보이지 않고 그 순간 굴이 무너져 호경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죽었다. 여산신이 호경을 취하여 혼인을 하고 호경은 산의 대왕이 되었다. 산신이 된 호경은 밤에 옛 부인을 찾아 교합하여 아들을 낳으니, 그가 강충(康忠)이었다.
강충은 보육(寶育)이라는 아들을 두었는데, 꿈에 삼한의 산천에 오줌이 넘치는 꿈을 꾸고, 두 딸을 낳았다. 둘째 딸이 진의(辰義)였는데 재주가 뛰어났다.
어느 날 진의의 언니가 산에 올라가 소변을 보았는데 천하가 넘치는 꿈을 꾸었다. 진의는 언니에게 비단 세 필을 주고 꿈을 사서 품에 안았다. 진의는 당나라 숙종황제가 황자(皇子)로 있을 때 만나게 된다. 뜯어진 옷을 꿰매게 했더니 언니는 코피를 흘려 나가지 못하고, 동생 진의가 대신 꿰매 준 것이 인연이 되어 혼인하여 산다. 진의가 임신함을 알고 활과 화살을 주고는 “나는 대당(大唐)의 귀성(貴姓)이라.”고 말하고, 아들을 낳거든 이것을 주라고 이르고는 떠났다. 진의가 낳은 아들이 왕건의 할아버지 작제건(作帝建)이다.
작제건은 어머니로부터 활과 화살을 받아 연습하여 신궁(神弓)이 된다. 그는 아버지를 찾고자 배를 타고 당나라로 간다. 가는 도중에 풍랑이 심하게 일어서 배가 나가지 못하자, 고려 사람을 제거해야 된다고 배에 탄 사람들이 말하자, 작제건은 스스로 바다 가운데 암초에 내린다. 그때 한 늙은이가 나타나서 자신을 서해용왕이라 하면서 자신을 괴롭히는 늙은 여우를 퇴치해 달라고 한다. 작제건은 용왕의 말을 따라 여우를 화살로 쏘아 제거한다. 그러자 용왕은 작제건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한다. 용왕은 그의 후손이 동토의 왕이 되는 것을 돕고자 비법을 알려주고, 용왕의 맏딸 저민의(翥旻義)와 혼인을 하게 한다. 그리고 보물인 양장(楊杖)과 돼지를 선물 받았다. 돼지가 일 년을 살았는데도 우리에 들어가려 하지 않으므로 작제건은 돼지에게 “만약에 이 땅이 살만한 곳이 못 된다면 나는 장차 네가 가는 곳을 따라 가겠노라.”하여 돼지를 따라 간다. 돼지가 가다가 머문 곳은 그의 할아버지 강충이 살던 옛 집이었다. 작제건은 용녀와의 사이에 네 명의 아들을 두었는데, 맏아들이 왕건의 아버지 용건(龍建)이었다. 용건은 후에 이름을 융(隆)이라고 고쳤다.
융은 꿈에 어떤 부인을 보았는데 그와 혼인하여 살고자 언약을 했다. 후에 우연히 꿈에 본 여인을 만나 혼인을 했다. 그래서 그 부인을 몽부인(夢夫人)이라 했는데, 어디서 온 여자인지 알 수 없었다. 후에 그의 성을 삼한의 어머니가 되었으므로 한(韓) 씨라 하였다. 한 씨는 나중에 위숙왕후(威肅王后)라 불렀다. 융과 위숙왕후가 고려의 태조인 왕건(王建)을 낳았다.
이 이야기가 고려 태조 왕건이 태어난 가계도이다. 정말 신이하면서도 다양한 민족과 혼인을 한 것을 알 수 있다. 산신, 당나라 숙종, 용녀, 몽부인으로 이어지는 신이한 혼인 가계가 이어져 오고 있다. 그야말로 한국 최고의 다문화가정을 이루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마지막으로 이루어진 건국신화이다. 왕건의 고려 건국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왕건의 외고조부까지 신이한 행적을 나타냈다. 상당히 많은 설화의 화소가 고려의 건국신화를 위해서 쓰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곧, 혼인과 관련해서는 호랑이와 산신 화소, 당나라 임금 화소, 용왕의 딸 화소, 태생을 알 수 없는 꿈 화소까지 들어가 있으며, 그런 혼인화소를 정당화 하기 위해서 호랑이가 나타났다가 사라지며 호경을 구한 신이화소, 꿈에 오줌을 누어 천하를 뒤덮은 홍수화소, 활을 잘 쏴서 용왕의 딸을 아내로 맞이한 신궁화소, 미래를 예언하는 예지화소 등 우리 설화에 자주 등장하는 화소가 적재적소에 개입해서 왕건의 선대조 이야기를 펼치고 있는 것이다. 왕건이 고려를 건국하게 된 당위성이 이미 그의 외고조부부터 진행됐음을 부계(父系)와 모계(母系)를 있는 대로 섞어서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이 신화에서 왕건의 신이한 탄생을 혼인에 두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으며, 왕건의 비범한 능력은 다름 아닌 다문화가정에 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