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서예 에세이
한글서예를 읽다-5
꽃들 이미경 선생 서첩을 둘러보며
신웅순 │시조시인ㆍ평론가ㆍ서예가, 중부대 교수
시인은 시로 말하고 화가는 그림으로
말하고 서예가는 글씨로 말을 한다. 시도 아름답고, 그림도, 글씨도 아름답다. 그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예술품은 궁체 글씨가
아닌가 싶다. 서예는 글씨로도 말할 수 있고 글로도 말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선생님의 궁체를 보고 있으면
‘신의 손이 아니면 이런 글씨를 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선생님의 손에서 한글 궁체는 현대화
되었고 더욱 세련되었다. 부드러움 속의 강인함, 강인함 속의
고요로움. 이러한 여유와 절제는 평생 선생님의 한글에 대한 깊은 애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꽃뜰이미경서집』의 편집 후기에서
이현종 선생님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일중 김충현 선생님은 1988년 제 26회 갈물 서예전에 찬조 출품하신「성산별곡육곡병」을
보시 고 신의 경지에 오르셨다고 말하셨습니다. 노산 이은상 선생님은 「만폭동팔담가」와 「관동별 곡」및
「동명일기」등 병풍을 펼치는 순간 문자 그대로 보석이 쏟아지는 현란한 현기증이 느껴 진다면서 “글씨마다 흐르고(流), 맺히고(節), 감돌고(曲), 굽이치면서(轉) 정자에서 흘림과 반흘림이 초성에서 종성까지 반듯하게 대맥을 이어나간다. 그리고
어느 글씨를 쓰건 글씨의 결론은 그것이 예술답게 아름답다는 정답을 얻어내야고야 만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러한 각계의 한결같은 극 찬에도 꽃뜰 선생님은 늘 부끄럽다는 말씀으로 일관하셨습니다. 이세기 선생님은 여백처리에서 실 오라기 만한 틈새를 보여도 궁체가 지니는 특징은 삽시에 소멸된다며 꽃뜰 선생님의
돋보이는 여 백 처리를 칭찬하시고. “옥구슬 금구슬을 꿰어 낸 듯 오색광채를 발한다. 글씨가 구슬인 것은 꽃 뜰의 글씨를 보면 실감된다.”라고 하셨습니다.
그 많은 찬사들도 선생님의 글씨만하겠는가. 선생님은 같은 글자라해도 꼭 같은 형을 쓰지 않는다. 상황에 맞게
변형하여 서로 다른 절묘한 결구를 만들어 낸다. 흐르고, 맺히고, 감돌고, 굽이치는 선생님만이 갖는 묘리가 어디 이뿐이겠는가.
유유히 흐르는 강물 같은, 모래밭에 사뿐 내려 앉는 기러기 같은, 청산을 넘어가는 흰구름 같은, 때로는 이를 풀기도 하고, 맺기도 하는 글씨의 필세는 어느 누구도
따를 이 없을 것이다.
선생님 작품 소재는 유난히도
고전과 시조가 많다. 조국과 한글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 아니고는 이런 글귀를 취하기 어려울 것이다. 선친으로부터 물려받은 한글 사랑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정신이 평생을
한글 서예에 몸 바치게 만든 것이다. 선생님의 써오신 글자 하나 하나가 바로 겨레의 발자국이요 조국의
마음이다. 많은 작품 중에서 서집의 150편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는 큰 행운이며 아쉬움이기도 하다.
작년인가 꽃뜰 선생님을 뵈었다. 서예하는 사람으로 존경하는 큰 어른을 한 번만이라도 뵈어야한다는 생각에서였다.
우아한 인품에 따스한 미소. 달관의 경지는 이를 두고 말함인가 글씨와 함께 평생을 살면
그렇게 되는 것인가 보다.
선생님이 쓰신 시조 작품 중에서도
정완영 선생님의 시조가 유난히도 많다. 백수 선생님으로부터 시조 짓기를 사사받기도 했고 일이당이란 당호를
받기도 했다. 정완영 선생님은 선생님께 ‘궁체 서예의 제일봉의 외로움이 엿보인다’라고 했고 ‘무현고금이라’고도
했다. ‘붓을 놓고난 먼 훗날에도 묵향은 만리에 들릴 것’이라고도 했다. 얼마나 선생님의 궁체를 사랑하셨기에 그런 시까지 남겨놓았을까.
05.꽃뜰 이미경.jpg
- 정완영의 「고향 생각」6.7수
백수 정완영 선생의「고향 생각」.
김천시 남산공원에 백수의「고향
생각」시비가 병풍처럼 둘러 서 있다. 오래 전 거기에서 필자는 백수 선생님과 고향 생각에 대해 많은
생각과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이미경 선생님이 76세에 쓰신 정완영 선생의 시조 「고향 생각」은 우리 궁체 최고의 전범이다.
참으로 격조 높은 시조에 참으로 격조 높은 글씨가 만나 그 누구도 오를 수 없는 큰 산이 되었다. 지면이
적어 한스러울 뿐이다. 담원과의 만남 이은상, 조운과의 만남도
그 큰 산만 못하겠는가. 고전과의 만남은 또한 어떠한가.
쓰르라미 매운 울음이 다 흘러간
극락산 위
내 고향 하늘빛은 열무김치 서러운
맛
지금도 등 뒤에 걸려 사윌 줄을
모르네
이렇게 시작되는 7수의 시조이다. 백수 선생님과 꽃뜰 선생님은 한글 사랑에서 너무나
닮아있다. 차라리 그것은 조국이었다. 숱한 일제의 압력에도
굴복치 않고 이어져 온 한글과 궁체는 서로가 닮아있다. 최고의 시조와 최고의 글씨가 만난다는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필연이 아니면 만날 수가 없다. 시조는 궁체
때문에 궁체는 시조 때문에 더욱 빛을 발하게 되는 것이다. 천의무봉은 이를 두고 한 말일 것이다. 두 선생님과의 만남은 대곡과 남명의 만남이 아니고, 퇴계와 고봉의
만남이 아니고 무엇이랴. 필자도 멀리서 함께 만났으니 이 또한 우연은 아니리라.
어찌 백수의 시조를, 꽃뜰의 궁체를 필자가 논할 수 있으랴만 만난다는 것조차 필자에게는 참으로 과분한 일이다.
이 따뜻한 봄날 최고의 시조와
최고의 궁체를 함께 감상하는 것을 무엇이라 표현하면 좋을까. 이런 단어 하나쯤을 누가 만들어냈으면 좋겠다.
-『월간서예문화』(도서출판
단청,2012.4),2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