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 프로필 이미지
부산교사마라톤 가야지
 
 
 
카페 게시글
가야지기념관 스크랩 {이용철의 에세이} 빼레그리노 / 이용철
타이곤 이용철 추천 0 조회 79 14.04.04 15:38 댓글 4
게시글 본문내용

빼레그리노

 

이용철

 

그는 ‘빼레그리노(peregrino)’, 즉 ‘순례자’다. 매일 아침에 눈을 뜨면 여행을 떠난다. 일터로 가는 길도 순례라 생각한다. 똑 같은 날은 하루도 없다. 햇살과 향기조차도 다르다. 정류장에 서 있는 사람들의 표정이 성스럽다. 밥벌이를 위해 길을 나서는 일은 위대하다. 그는 늘 새로운 세계로 순례를 떠난다. 살아 있는 동안 그는 매일 설레는 마음으로 여행을 갈 것이다. 다다랐던 곳에서 집으로 돌아갈 때도 또 다른 길을 향해 순례 길에 오른다고 여긴다. 사실 그에게 정착할 집은 없다. 철새처럼 잠시 머물다가 낯선 기착지를 찾아 길을 나설 뿐이다.

 

순례는 바람과 같다. 한 곳에 머물 수 없는 숙명이다. 덜컹거리는 길 위에서 두근거림과 무르춤함이 공존한다. 여행은 혼자서 떠나야 한다고 믿는다. 순례는 반드시 혼자여야 한다. 그래야 길 위에서 낯선 순례자를 맞이할 수 있고 받아들일 수 있다. 다른 사람 사이에 끼어들 필요도 없고 간섭 받지 않아서 좋다. 여행을 혼자 가야하는 이유는 영화를 혼자 봐야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내 안의 내가 문을 열고 나와 비로소 나에게 손을 내민다. 다음에는 저절로 술술 풀린다. 이번 여행에는 어떤 이야기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혼자서 길을 걷고,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책을 읽고, 자신과 이야기를 나누고, 혼자서 술을 마신다. 낯선 여관에서 혼자 눈을 감는다. 기억의 깊은 우물 속에서 아름답고 슬픈 이야기를 두레박으로 길어 올렸다. 낡은 여관방에는 얼룩들이 스며있었다. 쥐가 오줌으로 천장에 추상화를 그렸고, 가슴 아파 몸부림치면서 외로움과 그리움에 몸져누웠던 돌아가지 못한 순례자들의 아득하고 적막한 슬픔이 여기저기에 비트적거렸다.

 

골목길이 보고 싶었다. 천 구백 육칠십 년대의 흑백 골목이 그리웠다. 대구 대명동의 애틋한 길을 걷고 싶었다. ‘명덕사거리’에 있었던 ‘대한극장’과 ‘대도극장’의 간판이 눈앞에 아련하게 떠올랐다. 협성상고에 다니던 동네 형이 불었던 밤하늘의 트럼펫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그 길에서 질풍노도의 파고를 헤쳐 나갔다. 시외버스에 몸을 실었다. 첫사랑 소녀의 집 앞을 서성거리고 싶은 마음으로 시간을 거슬러 달렸다. 중학교 입학시험에 합격한 그는 어머니와 함께 교복을 사러 ‘남문시장’으로 갔다. 어머니는 삼 년을 입어야 한다며 좀 넉넉한 옷을 골랐다. 소매를 두어 번 접어서 입고 다녀 친구들 보기가 좀 부끄러웠다. 수업을 마치고 교문 밖을 나오자 저녁놀에 집들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학교 앞에는 언제나 리어카 한 대가 있었는데, 여러 가지 학용품을 진열해 놓고 팔았다. 그 중 유독 만년필에 눈이 갔다. 용돈을 모아 꼭 사리라 다짐했다. 버스비 오원을 아끼기 위해 걸어서 학교를 다녔다. 몇 달을 모은 끝에 드디어 만년필을 샀다. 설레는 마음으로 잉크를 넣고 글씨를 써보았다. 글씨에서 향기가 피어났고, 향내는 나무로 스며들었다. 우거진 숲에서는 새들의 노래가 마을까지 번져갔다. 그의 책상 서랍에는 만년필이 이야기처럼 쌓여갔다.

 

‘명덕사거리’를 지나 ‘대구교대’ 담 길에는 목련이 하얗게 피어있었다. 동네가 환해졌다. 그 길을 욜랑거리며 지나갔다. 마음도 밝게 팔랑거렸다. 큰 꽃잎은 겨울을 견딘 아픔의 크기만큼 당당하게 피었다. 그러나 목련꽃은 곧 떨어지기 시작했다. 아프리카 세렌게티 초원에서 누 떼가 부어강에 뛰어들 듯이, 목초지로 가기 위해 악어가 기다리는 강물로 죽음을 무릅쓰고 몸을 던지듯이, 검게 변한 목련꽃잎은 바닥을 향해 폭포처럼 몸을 날렸다. 그는 사랑을 잊으려 떨어진 잎들을 밟고 지나갔다. 사랑에는 이유가 없는 법이지. 사랑은 언제 어디에서 다가올지도 모르지만 또한 홀연히 떠나는 것이 아니던가. 사랑은 바람이고 사람은 들풀이다. 바람에 풀이 누웠다가 또다시 일어나는 것처럼, 사랑은 떠나가도 새로운 사랑이 기어이 다가오지 않던가.

 

누구나 몸속에 골목을 갖고 있다. 그의 골목길은 야위고 좁아졌다. 시간이 길을 늙고 주름지게 만들었다. 늙은 길에는 밟고 지나간 무수한 사람들의 한숨과 설렘, 기쁨과 슬픔이 묻혀 있었다. 길은 말이 없어도 그 길에 섰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가 영혼을 낮추는 사람에게 가슴을 연다. 그가 걸어서 올라갔던 언덕에는 옛날에 약국이 있었다. 해질녘에 책가방을 들고 언덕에서 내려오자 슬레이트 지붕 굴뚝에서 저녁연기가 피어올랐다. 고무신을 신고서 연탄불을 가는 어머니 모습이 떠올랐다. 아버지는 빈 반찬통 가방을 들고 주말이면 돌아오셨다. 동생들과 마중 나갔던 골목을 향해 그는 달리기 시작했다.

 

그 길을 따라 걸었다. 아직도 연탄 집은 골목에 시꺼멓게 서 있었다. 모퉁이에 서 있던 이발관은 원룸으로 바뀌었다. 동무들과 뛰어놀았던 골목에는 쓰레기통 몇 개가 덩그렇게 놓여있었고, 집들은 우중충하게 엎드렸다. 여행에서 순례자가 지켜야 할 덕목은 그리움에 물들지 않아야 한다. 문득 떠오르는 보고 싶은 얼굴을 지워야 한다. 떨리는 마음으로 썼던 편지를 불태워야 한다. 그리고 엎드려 흐느끼지 말아야 한다. 영혼이 젖게 되면 되돌아갈 수 없다. 그러나 그게 뜻대로 되는 일인가. 촉촉한 눈가에는 옛 추억이 되살아나고, 발길은 그곳에서 무너질 수밖에 없다. 사랑한다는 것은 무너진 가슴을 부둥켜안고 살아가는 일이다. 칼이 제 몸을 벨 수 없듯이 사랑은 어제를 버리고 싶어도 버릴 수 없는 것이다. 그는 차가운 여관방에서 늙은 골목길을 품고 울음을 감춘 채 새벽을 기다렸다. 사람에게 그리움이 스며들면 온 몸 곳곳에서 가시가 돋는다. 손으로는 만져지지 않는 가시가 생겨 고슴도치처럼 몸을 웅크리게 된다. 그는 상처 입은 짐승처럼 제 몸을 핥았다.

 

자신을 찾아가는 순례자의 여행은 지나간 시간에 대한 화해다. 자신의 잘못을 이해하고 용서하는 의식이다. 그것은 단순한 자기합리화가 아니라 세상에 찢기고 할퀸 자신의 몸과 마음을 위로하는 일이다. 그는 약전 골목을 지나 ‘계산 성당’으로 갔다. 백 년 넘게 그곳을 지킨 성당의 엄장함에 그는 경건해졌다. 고딕형식의 붉은 벽돌과 회색 벽돌 건물 안, 긴 나무 의자에 조심스럽게 앉았다. 그는 어릴 때 할머니를 따라 성당에 갔었다. 십자가를 바로 볼 수 없었고 벽과 창문에 그려진 알 수 없는 형형색색의 그림들이 무서웠다. 미사가 진행되었고 기도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너무 낯설었다. 숨 막히는 엄숙한 분위기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그 후로 다시는 성당에 가지 못했다. 이제 바늘 떨어지는 소리도 들릴 것 같은 성당 안 낡은 의자에 앉아서 돌아온 탕아처럼 기도했다.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았다. 분노와 원망으로 받은 상처를 내놓았고, 그가 뱉었던 말의 화살과 교만의 행적을 고백했다. 억눌렸던 눈물이 뺨에 흘렀다. 모든 것이 편안했다. 성모마리아 상도 아늑했다. 고요함 속에서 오랫동안 말없이 앉아 있었다. 묵상은 깊은 몰입으로 마음을 비우게 하고, 영혼을 깨끗하게 치유해 주는 것 같았다. 그는 일어서서 오래된 나무 기둥을 쓰다듬었다.

 

그의 골목은 먼 옛날로부터 까마득한 미래로 이어져 있다. 그가 떠난 순례 길에서 그의 몸은 단단해졌고 영혼은 깊어졌다. 무릇 생명과 직결된 고귀한 것은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이다. 우리가 이 보물을 함부로 대했고 하찮고 보잘 것 없다고 여겼다. 물과 공기와 햇살에게 감사했다. 하늘을 우러러보고 흙을 만졌다. 길에서 만난 돌멩이와 들꽃의 존재를 깨달았다. 비가 내리고 바람이 지나간 자리에 때가 되면 파릇하게 풀이 돋았다. 사람들은 늙어갔고 아이들은 풀처럼 자랐다. 자연의 질서를 받아들이고 흙이 됨을 거부하지 않았다. 해가 뜨고 아침이 열리고 뜨거웠던 한낮이 지나 달빛이 은은할 때도 사람들은 길을 나섰고 새로운 전설을 새겼다. 길은 스쳐갔던 모든 사람의 이야기를 담고 늙어갔다. 사람들이 내딛는 한 걸음은 삶의 순례 길이었다. 다른 사람은 흉내 낼 수 없는 자신만의 유일한 그림을 그렸다. 그가 만든 오체투지였다. 늦가을 잎이 떨어지고 그도 길에 엎드렸다. 그 길에 사람들이 "부엔 카미노(Buen camino)" 라고 인사하며 순례를 떠났다.

 

[2014년 에세이문예 여름호]

 
다음검색
댓글
  • 14.04.04 21:30

    첫댓글 달림이는 '빼레그리노'다... 긴 골목길을 돌아 고향집에 온 것 같아요. 잘 읽었습니다.

  • 작성자 14.04.05 20:48

    골목길이 주는 추억과 아늑함....문성만 같은...

  • 14.04.05 00:45

    감히... 외람된 표현이자만, 타이곤님의 글이 한층 더 무르익어간다는 느낌입니다. 그 만큼 관조하는 삶을 살아가는 때문이겠지요. 나도 닮고 싶습니다.'자연의 질서를 받아들이고 흙이 됨을 거부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겠습니다.

  • 작성자 14.04.05 20:47

    길손, 오랜만입니다. 요즘 달리기도 못하고 답답합니다. 아직 '관조'할(?) 나이는 아니지요. 한 80 정도 되면 몰라도...아직 청춘!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