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동작동 국립묘지(현충원)
국립묘지는 관악산 기슭의 공작봉을 주봉으로 하여 동작의 능선이 병풍치듯 3면을 감싸고 있으며 앞에는 한강이 굽이쳐 돌고 있다. 43만여 평의 이곳 성역에는 구한 말의 의병들을 위시하여 조국 광복을 위하여 투쟁하신 애국지사, 나라의 발전과 민족의 번영을 위해 평생을 바치신 국가 유공자,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다, 장렬히 산화하신 국군 장병과 경찰관, 예비군 등 165,000여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이 잠들어 있다. 이 중 10만 4천여위는 현충탑내 위패 봉안관에 위패로 봉안 되었고, 시신은 찾았으나 그 이름을 알 수 없는 7,000여 무명용사는 납골당에 모셔져 있으며, 54,000여 위는 묘역에 안장되어 있다. 묘역은 애국지사 묘역, 임정요인 묘역, 국가 유공자묘역, 장병묘역 (장교 - 사병), 경찰 묘역 등으로 나뉘어져 있다. 경내에는 현충탑, 현충문, 충성분수대, 현충지, 현충관(영화관), 사진 전시관, 유품전시관, 각 시도 공원 등이 설치되어 있으며, 1955년 국군묘지로 창설되어 1965년 국립묘지로 승격되었으며, 기관 명칭은 1996. 6.1 국립묘지관리소에서 국립 현충원으로 변경하였다. 매년 6월 6일 현충일에는 거국적인 추념행사가 거행된다.
출처:(대한민국 구석구석, 한국관광공사)
역사적으로 보면 이 지역은 조선시대 단종에게 충절을 바쳤던 사육신(이개, 하위지, 유성원, 유응부, 성삼문, 박팽년)의 제사를 모시던 육신사(六臣祠)가 있던 곳으로 전하여지며 보훈충의(報勳忠義)가 깃들인 곳이다. 지형적으로는, 관(冠)을 쓴 듯 봉우리가 솟았다 하여 관악산이며, 붓끝과 같이 뾰족한 형세라 하여 문필봉(文筆峰)이라 일컬어지는 산세로 감싸여 있다. 이들 산세 속의 펑퍼짐한 지형을 ‘동작포란형(銅雀抱卵形)’이라 하여 동작이 알을 품고 있듯 상서로운 기맥(氣脈)이 흐른다 하였다. 또한, 전면을 흐르는 한강수가 용트림하듯 흐르고 있어 한층 미관을 더하고 있다.
현충문 폭파 사건[편집]
1970년 6월 22일 북한 공작원들에 의한 현충원의 정문인 현충문이 폭파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공작원들이 설치한 폭약은 주요 참배객들을 노리고 설치 되었으나 미리 폭파되는 바람에 다행이 인명피해는 없었다. 공비들은 이후 도주하였으나 추적조에 추격 당해 모두 사살 되었다.
북한 대표단 참배[편집]
2005년 8월 14일, 김기남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등 북측대표단 일행이 현충원에 참배했다. 1985년 미국 레이건 대통령의 비트부르크 참배와 비슷한, 전면전 상대국 군인 국립묘지에 대한 참배였다.[13]
이후 북한은 남측 인사들도 북한에 와서 혁명열사능이나 애국열사능을 참배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지만 한국은 국가보안법상 찬양죄라면서 거부했다. 그러나, 국가보안법상 찬양죄로 상대국 국립묘지 참배를 처벌할 것이라면, 상대국 대표단의 현충원 참배도 거부했어야 국제예양상 타당하다. 국제법 질서는 신의칙에 기초한 호혜주의를 기초로 하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는 국가보안법상 찬양죄는 찬양행위로 인해 대한민국이 멸망할 만한 중대하고 명백한 실질적 위험이 발생해야만 합헌이라고 하여, 사실상 위헌취지의 판시를 했으나, 정부는 계속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무시하고, 사실상 모조리 찬양죄로 처벌하겠다는 입장이다. 북한 대표단은 헌화, 분향은 하지 않고, 6초간 묵념만 했다.
국가보안법 폐지는 북한이 계속 주장하여, 한국 정부는 이를 적화통일의 시도로 보아, 철저하게 무시하고 있기는 하나, 한국 대통령이 북한에 가서 최고의 예우인 의장대 사열을 받은 데 비해서, 한국의 국가보안법은 북한 최고통치자를 반국가단체 구성죄의 수괴로 규정해, 사형, 무기징역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정부는 이러한 국가보안법에 대한 현실에 맞는 손질이 모두 북한의 공작에 넘어가는 것이라고 하여, 일체 거부하고 있다. 역시 호혜주의에 문제가 있다.
전직 대통령 서울현충원 안장 특례 논란[편집]
포화된 서울현충원에 김대중, 김영삼 전직 대통령의 안장을 두고 특혜 논란이 일었다. 2009년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당시 유가족들의 요구에 따라 대전이 아닌 서울현충원에 안장되기로 결정됐다. 이는 유가족들이 "국민과 보다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곳에 모시고 싶다"고 청원한 것이 발단이다. 대전에 이미 부지를 확보해 둔 점과 다른 안장 대상자들과의 형평성 문제, 그리고 서울 현충원 안장시 부지 확보를 위해 추가적으로 공사 비용이 들어가는 점 등으로 인해 관계 당국이 난색을 표했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유가족 의사를 존중할 것을 지시해 성사되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에 이어, 2015년 사망한 김영삼 전 대통령도 유가족들의 특례 요구가 인정되어 서울현충원에 안장됐다. 이미 2004년부터 서울현충원의 포화 상태로 대전에 8위의 묘소를 위한 국가원수 묘역을 만들어 뒀고, 다른 안장 대상자들은 대전현충원에 안장되거나 서울 안장 희망시 봉분없이 현충원 내 납골당인 충혼당에 안치되는데, 국가원수가 모범을 보이기는 커녕 특례를 남용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현재 대전 현충원에 안장된 대통령은 2006년 서거한 최규하 대통령이 유일하다.
출처:(위키백과)
2022-08-03 작성자 명사십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