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은 타볼산에 올라 변모하신 예수님과
이를 목격한 세 명의 제자가 나오는 내용입니다.
이 시점은 예수님의 공생활의 마지막 부분이자
지상의 마지막 미션을 이루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떠나는 시작점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변모사건은 세 개의 공관복음서가
모두 공통되게 이야기하고 있기에
세 명의 제자들에게 뚜렷한 기억으로 남아 전해진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 예수님의 얼굴이 해처럼 빛나고
그분의 옷은 빛처럼 하얘졌다고 전하는데
이는 하늘나라의 예고편에 해당한다고 하겠습니다.
즉, 예루살렘을 향하는 미션이 모두 마친 후
그들이 조우하게될 궁극의 목적지의 모습인 것이지요.
오늘 1독서인 다니엘서에서도
하늘나라에 대한 모습을 그려주고 있는데
타볼산에서 제자들이 본 것과 똑같습니다.
그래서 영화나 드라마에서 하늘나라에 간 사람이 보는 장면도
이렇듯 빛이 찬란한 장면을 보여주곤 합니다.
대다수의 근사체험을 한 이들의 증언과 일치합니다.
예수님의 모습이 마치 하늘나라에 계신듯 보여
그 황홀한 모습에 취한 베드로는
그곳에 초막셋을 지어 그곳에 더 머물고자 청합니다.
얼마나 감미롭고 황홀했을까 짐작해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런데 돌연 상황이 바뀝니다.
광채와 같이 눈부시게 빛나는 구름이 그들을 덮었고
그리곤 구름속에서 우리가 언젠가 들어봤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바로 요르단 강에서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적에
하늘에서 들려온 말씀과 같지요(마태 3:13).
또한 구약에서 이사야 예언자가 예언했던
첫번째 주님의 종에 관한 예언과도 일치합니다(이사 42:1).
난생처음 접해보는 초자연적인 현상과 더불어
하느님의 음성을 처음으로 듣게된 제자들은
엎드려 땅에 얼굴을 파묻을 정도로
큰 두려움에 휩싸여 자지러졌습니다.
이 두려움은 사실 공포라고 하기보다는 경외로움이라고 해야겠지요.
제가 20여년전 뉴질랜드에서 번지점프를 하려는데
막상 아득히 높은 점프대에 올라서 있자니
순간 주변에 펼쳐진 엄청난 자연 경관으로 하여금
제 마음을 압도를 당하여
대자연을 향한 경외감을 느꼈던 적이 있었습니다.
가보셨을지 모르지만
그랜드캐년에서도 비슷한 체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 절벽 위에서 깊은 협곡을 바라보면
그저 ‘와~’하며 감탄할 수 밖에 없습니다.
대자연 앞에서 느끼는 두려움과도 같이
우리가 하느님의 목소리를 듣는다면
제대로 서있을 수도 없을 정도로
다리에 힘이 빠질 것입니다.
그러나
‘동이 트기 전이 가장 어둡다’라는 말처럼
이러한 두려움도 지나가기 마련입니다.
예루살렘을 향하여 마지막 여정에 앞서
두발로 서 있을 수도 없이 큰 두려움을 느끼던 제자들에게도
이제 곧 두 다리에 힘이 생기게 될 것입니다.
오히려 이 경외함의 체험은 제자들은
어떠한 어려움과 고난을 겪게 될지라도
하느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확신을 어느정도 가지게 해줍니다.
이렇듯 인생의 여정 안에서 어두움과 두려움의 순간은
언제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삶으로 이어지는 통로의 역할을 해왔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아씨시의 프란치스코는
나병환자를 가장 두려워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인생 전반에 걸쳐
나병환자에 대한 두려움이 신적인 체험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회개의 생활을 시작하면서
프란치스코는 나병환자를 찾아가 그들을 돌보게 됩니다.
그가 스스로 두려움 속으로 들어간 것이지요.
그 체험에 대해 프란치스코는 유언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님께서 나 프란치스코 형제에게 이렇게 회개생활을 시작하도록 해 주셨습니다.
내가 죄중에 있었기에 나병환자들을 보는 것이 나에게는 너무나 역겨운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 친히 나를 그들에게 데리고 가셨고 나는 그들 가운데서 자비를 베풀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그들 한테서 떠나올 때에는 역겨웠던 바로 그것이 내게 있어 몸과 마음의 단맛으로 변했습니다.
그리고 그 후 얼마 있다가 나는 세속을 떠났습니다.”
우리에게 두려움은 내가 피하고 싶은
그 누구일 수도 있고,
특정한 장소일 수도 있고,
어떤 상황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그 두려움을 직면하지 않고서는
우리 자신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 것임은 분명합니다.
누군가가 말했지요
“바닥을 친 사람만이 솟구쳐 오를 수 있다”고 말입니다.
변화된 삶을 꿈꾸는 자에게는
스스로의 변화가 필요한 법입니다.
자신이 변화한다면,
세상은 나에게 전혀 새로운 차원으로 다가 오게 될 것입니다.
내가 싫어하고 두려워하는
그 무언가를 변화시키려고 하기보다는
스스로 변모할 수 있도록
나의 두려움을 관조하며 바라봅시다.
그 두려움이 여러분을 집어삼키지 못할 것입니다.
두려움 때문에 움크린 그 자리에서
우리의 빛이신 구원자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