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해랑길 군산 54코스 제2부
은파삼거리-군산시 현충시설-부곡산숲길-녹점재-월명공원2길-
군산청소년수련관-월명공원1길-동국사-먹거리타운 입구
1.월명공원길 아침 풍경과 동국사 정경
은파호수공원 입구에서부터 서해랑길 54코스는 군산 구불6길 '달밝음길'과 동행한다. 왜 '달밝음길'이라고 명명했을까? 구불6길 은파 관광안내소-군산역 전체 코스에서 나운배수지-해망굴 구간은 월명(月明)공원길을 걷는 길이다. 그래서 月明달밝음 길이라 명명했을 것이다. 은파섬거리로 나가 군산대학교에서 이어지는 대학로를 북쪽 방향으로 잠시 걸었다. 은파공원 주차장 북쪽 끝에 여러 기념탑들이 솟아 있다. 잠시 내려가서 살펴 보니 현충 시설 5개가 조성되어 있다. 왼쪽부터 군산사범학교 학도의용군 '현충탑', 6.25 전쟁과 월남전에 참전한 호국전사의 '호국무공수훈자 공적비', 연평도 해전에서 전사한 '문광옥 일병 기념비', '월남참전 기념탑', '6.25전쟁참전 기념비'가 차례로 세워져 있다. 밀집된 현충시설을 대하여 길손은 호국영령들께 머리 숙여 참배하였다. 아침의 싱싱한 탐방길에 길손의 마음이 잠시 어둠이 드리웠다. 그럼에도 이분들의 고귀한 희생으로 조국이 이렇게 빛나고 있음에 무한히 감사드리며 평화의 희망을 품는다.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며, 엊그제 민족비극의 6.25전쟁 73주년이 지나갔다. 푸르게 출렁이는 아름다운 6월의 국토산하에 민족비극의 상흔이 아직도 아물리지 않아 아우성치고 있다. 평화, 조국과 민족의 평화, 인류 평화를 간절히 소망한다. 6.25전쟁만이 아니라 조국을 수호하기 위하여 목숨을 바친 모든 호국영령(護國英靈)들을 추모(追慕)한다. 길손은 조종현(1906~1989) 시인의 시조 '나도 푯말이 되어 살고 싶다'를 읊으며 추모의 마음을 더 깊이 새겼다. "나도 푯말이 되어 너랑 같이 살고 싶다./ 별 총총 밤이 들면 노래하고 춤도 추략/ 철 따라 멧새랑 같이 골 속 골 속 울어도 보고.// 중략 // 네가 내가 되어 이렇게 와야 할 걸,/ 내가 네가 되어 이렇게 서야 할 걸,/ 강물이 치흐른다손 이것이 웬 말인가.// 하략 //(조종현의 '나도 푯말이 되어 살고 싶다' 중에서) 저 풍경 속에 평화가 넘치기를 간절히 염원한다.
대학로를 건너 나운3동 부곡길을 따라오르다 숲길로 들어섰다. 능선길로 올라서는데 벌써 땀방울이 솟는다. 새벽에 내리던 세찬 비가 가늘어지더니 그쳐 있지만 아침 날씨는 흐리며 습도가 높다. 안개와 미세먼지가 부옇게 떠돈다. 숲길에서 서남쪽으로 새만금방조제를 어림하지만 무성한 나무들 때문에 보이지 않는다. 서쪽으로 활짝 열린 곳에 이르러 서해 바다를 조망하니 연기를 뿜어내는 공장들이 즐비하다. 그렇다면 저곳이 군산 일반산업단지 일 것이며 그 아래에 군산 외항이 있을 것이다. 금란도는 오른쪽 위에 있을 것이며 동백대교 아래 옛 군산도선장이 있을 것이다. 이렇게 가늠하며 산길을 이어간다.
삼각점이 읶는 산봉으로 올라갔다. 전국의 산을 일주하는 서래야님이 부곡산 97.3m라고 표지판을 달아 놓았다. 산 아래에 '부곡로'라는 도로명이 있어서 아마도 부곡산이라 이른 것 같은데, 이렇게 산 이름을 붙이는 것이 옳은지는 생각해 볼 일이다. 그러고 보니 이 능선은 금강기맥(錦江岐脈)에 속하는 산줄기이다. 전북 완주군과 진안군 경계에 위치한 금만봉에서 분기하여 금강과 만경강을 가르며 옛 백제 땅을 서쪽으로 이어오는 금강기맥은 군산 장계산에서 금강 군산 도선장이 있는 곳으로 꼬리를 내리며 산줄기를 마친다. 서해랑길 54코스는 구불길과 더불어 금강기맥과도 동행하게 된다.
부곡산에서 내려오면 산북중학교~리츠프라자호텔 도로 개설 및 확장 공사로 인하여 등산로 통행을 금지한다는 알림막이 펼쳐져 있지만, 그대로 통과하여 진행하면 서래야님이 명명한 작은부곡산 92.2m에 이른다. 부곡산 능선에서 동쪽을 바라보니 산산태가 일어나 언덕이 붕괴된 곳이 보이고 그 뒤에 아파트 빌딩들이 솟아 있다. 나운3동 중심지로서, 중앙의 푸른 숲이 은파호수공원이며 방금 전 은파호수공원 입구에서 부곡로를 따라 호룩스 카페를 지나 숲으로 들어와 지금 금강기맥 산줄기를 따라가고 있음을 자각한다.
동쪽 조망을 통하여 위치를 재확인하고 조금 더 진행하여 의자가 설치되어 있는 쉼터 언덕으로 올라서면 북쪽 방향 두 나무 줄기 사이로 아침을 맞이하는 빌딩들이 보인다. 군산시 소룡동 일대가 아침빛을 받으며 깨어나고 있다. 그리고 아, 눈이 동그래졌다. 옛 장항제련소의 굴뚝이 향수로 살아와 가슴을 달구었다. 금강 건너 충남 서천군 장항읍 전망산에 솟은 옛 장항제련소 굴뚝이 온 마음을 사로잡았다. 향수를 자아내는 저 굴뚝을 금강기맥 부곡산 산줄기에서 바라보게 되다니 감회가 깊다. 장항제련소는 1936년 전쟁물자 수달을 위해 조선제련주식회사로 창설되어 일본의 구리제련 주생산시설로 사용되었다. 1937년 전망산 위에 90미터 높이의 굴뚝이 완성되어 해발 210m로 한때 항해와 항공의 목표물로 쓰이기도 했고 해방 후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우리나라 산업을 대표하는 상징이었다. 이후 군산 비행장 활주로가 짧아 비행기 이착륙에 장항제련소 굴뚝 높이가 장애가 되어 이 굴뚝이 철거될 위기가 있었지만 1979년 일제가 건립한 굴뚝을 철거하고 높이 120m로 재건축한 것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소룡동 동아아파트 106동 건물을 보면서 산길을 내려가면 공단대로 녹점재 생태터널 위 산책로에 이른다. 공단대로를 개설하면서 금강기맥은 단절되었었는데 '공단대로' 녹점재 위에 생태축을 연결하는 산책로를 복원하여 금강기맥은 이어져 있다. 대단위 태양광발전시설이 설치되어 있는 곳 남쪽은 나운1동 중심지로 빌딩들이 솟아 있다. 태양광발전시설을 북쪽으로 빙 돌아나가면 나운배수지 입구 월명공원2길로 나간다.
이제부터는 군산 시민이 사랑하는 월명공원길을 따라간다. 월명공원의 시작은 1906년 군산 각국 거류 지역의 명승지인 해망정 인근을 개발하여 일명 '각국 공원'이라 이름을 정한 이후 일제 강점기가 되어 '군산 공원'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으며, 1972년에는 '군산 공원'을 '월명공원'으로 바꾸어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달 밝은 '月明' 이름은 일본인들의 집단 거주지인 월명산 아래서 시작되었는데, 월명산이라는 산 이름도 일본인에 의해 지어진 것 같다는 주장이 설득력이 있다. 아침의 월명공원길에 산책 나온 사람들로 붐빈다. 아직 7시가 되지 않은 시각 많은 이 지역민들이 월명공원길 아침 트레킹을 즐기고 있다. 몇 사람이 함께, 부부 한 쌍, 홀로 애완견을 거느린 사람, 그리고 단독자로서 월명공원길을 트레킹한다. 삶의 여유일 것이다. 그런데 나운초등학교에서 월명공원길로 진입하는 입구에는 벌써부터 노점상들이 상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길손 같은 게으름뱅이는 이 부지런한 분들이 존경스럽다. 지난 시절 악착스럽게 살아야 했던 한국인들의 근면성 유전자를 새삼 발견하는 것 같아 감동한다. 월명공원길 아침 풍경은 모두 제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아름다운 모습이다. 그래서 고은 시인의 작품 '삶'이 상기된다.
군산시 소룡동에서 송풍동(松豊洞)으로 넘어와 청소년 수련관 입구를 지난다. 청소년 수련관은 군산 지역의 청소년 수련 시설로 지역 청소년들이 사회, 문화적 주체로서 활동할 수 있도록 군산 YMCA에서 시설 및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규모가 엄청나게 크다. 과연 이 시설이 군산 청소년들을 양과 질에서 얼마나 실효성 있게 교육하고 있을까 의문이 든다. 그럼에도 군산 청소년수련관이 이 지역의 청소년 문화를 선도하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월명공원길에서 남쪽으로 내려보면 송풍동 일대에 아파트 건물들이 밀집되어 있다. 송풍동(松豊洞)은 월명산 줄기 아래 경사가 비교적 평탄한 남쪽으로 거주지가 형성되어 있는데, 군산 지역은 송풍동만이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뜻밖에도 아파트들이 밀집되어 있다. 우리나라 도시 전체의 일반적 상황이라고 할 수 있지만 서해랑길 군산 지역을 통과하면서 볼 때 군산 지역의 아파트 밀집이 더 도드라져 보인다. 물론 이 관찰과 판단은 길손의 잘못된 것일 수 있다.
월명공원길은 벚나무 가로수가 즐비하게 식재되어 있다. 일제시대 이후에 심은 벚나무라고 한다. 월명공원길은 봄날 흐드러진 벚꽃이 장관이라고 명성이 난 곳인데, 여름날 이 길을 걸으니 무성한 푸른 잎을 날리는 나뭇가지와 검은 버찌들만 보게 되었다. 어느 봄날 이 벚꽃 잔치를 완상하며 월명공원길을 걷고 싶다. 3.1운동 기념비와 3.1운동 만세상이 있는 체육공원에 이르렀다. 군산 3.1운동의 태동은 군산시 구암동으로, 영명학교 교사와 학생 그리고 예수병원 직원들이 주동이 되어 1919년 3월 6일 설애 장날을 기해 벌였다고 한다. 3.1운동 기념비와 3.1운동 만세상을 1986년 12월 3일 군산의 명소인 이곳에 건립하였고,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하여 그 태동지인 구암동에 3.1운동 100주년 기념관을 건립하였다고 한다. 서해랑길 55코스에서 이곳을 지나갈 것이다.
서해랑길은 길게 동행한 월명공원길(월명공원2길+월명공원1길)과 3.1운동 기념비와 3.1운동 만세상이 있는 체육공원에서 작별한다. 또한 금강기맥과도 이별의 정을 나눈다. 월명공원1길은 수시탑으로 이어지고, 장계산으로 이어지는 금강기맥은 산줄기를 타고 북쪽 해망동으로 내려가 동백대교 아래 금강으로 빠진다. 체육공원 뒷길은 월명산으로 올라가며 서해랑길은 월명안길을 따라 월명동 옛 도심지로 내려간다. 그래서 체육공원 위 여러 길로 갈라지는 이곳을 월명고개라고 이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월명안길을 따라 군산 옛 도심지로 내려간다. 벚나무 가지 사이로 건너편 장항과 군산을 잇는 동백대교가 중앙 뒤에 보이고, 군산 옛 도심지는 바로 아래에 펼쳐져 있다. 옛 도심지 행정구역은 월명동, 신창동, 영화동, 금동, 영동, 해망동 등 무척 복잡하여 구분하기가 어렵다. 월명안길을 따라 내려와 발달장애대안학교 산돌학교 앞을 거쳐 동국사길로 나간다. 주택 벽에 '밤새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아침 인사가 길손을 맞이한다. 밤새 버스 안에서 잠을 못자고 새벽에 군산에 도착하였다. 비가 쏟아지는 어둠의 새벽부터 동트는 아침까지 힘겹게 탐방하고 있는 길손에게, 아침맞이 인사가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월명산 가는 길 입구에서 100m 거리에 있는 동국사를 잠시 살피고 되돌아오기로 한다. 동국사는 군산시 금광동(錦光洞)에 위치한다. 동국사 입구에 위치한 동국사 백주년 기념관은 성보박물관이며 1년 과정의 군산불교대학이 2020년 5월에 개설되었다고 한다. 동국사는 일본 불교의 포교 활동으로 군산에 지어진 일본식 사찰로서, 일본 조동종(曹洞宗) 승려 우치다(內田佛觀)가 1909년 8월 군산의 외국인 거주지 1조 통에 세운 포교소 금강선사(금강사)에서 출발하여, 1913년 지금의 자리에 대웅전과 요사채를 신축하였다. 해방 이후 여러 과정을 거쳐 1970년 대한 불교 조계종 제24교구 선운사에 등록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동국사로 들어가는 정문의 돌기둥에 새겨진 글자들이 흥미를 끈다. 특히 '차문불문(此門不門)' 팻말은 '이 문은 문이 아니다', 즉 '누구나 드나들 수 있는 문'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고은 시인이 1951년 동국사 주지 혜초 스님에게 출가하여 이 구절에 깊은 감명을 받았던 글귀로서, 동국사에는 고은 시인이 머문 방이 지금도 현존한다. 동국사(東國寺)는 현재 대대적으로 공사를 진행하고 있어 경내가 매우 어수선하여 길손의 허둥거리는 마음은 더 갈피를 못잡고 경내 주요지 곳곳과 대웅전 안을 살피지 못하고 대충 넘어갔다. 동국사는 국내에 있는 유일한 일본식 사찰로 화려한 단청이 있는 우리나라의 사찰과 달리 아무런 장식이 없으며, 처마와 외벽에 창이 많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또 대웅전과 요사채가 복도를 통해 연결되어 있는 것이 우리나라 사찰과 다르다. 동국사를 순식간에 외관만 보고 동국사 입구로 나왔다.
동국사길의 군산 근대역사지구 내 도시형 민박 '게스트하우스 동국'은 군산 동국사 앞에 위치한 1970년대 여인숙을 리모델링하였다고 한다. '게스트하우스 동국'을 거쳐 월명산 가는 길 입구로 되돌아오니 10분이 소요되었다. 놀랍다. 동국사 관람은 번갯불에 콩 볶아 먹은 꼴이다. 관심이 있었던 동국사에 들렀다는 것으로 위안하지만 이 탐방길이 알차지 않은 것 같아 불안하다. 그래도 가야할 길, 군산평화박물관 앞으로 나가니 평화의 꽃마차가 생명을 마치고 정차해 있다. 2003년 이라크전쟁 파병반대 운동을 시작으로 14년 동안 전국을 누빈 평화의 꽃마차가 그 생명 활동을 마치고 2017년 군산 월명동 이곳에 정주했다고 설명안내판에 적혀 있다. 영원한 화두 '평화' 그 실천에 앞장선 평화의 꽃마차에 경의를 표한다.
동국사길에서 '월명로'로 나와 동쪽을 바라보니 대학로와 월명로가 교차하는 명산사거리가 바로 눈 앞에 있다. 은파호수공원 입구 한원컨벤션 앞 대학로에서 서해랑길 정코스를 따르지 않고 대학로를 따라 북진하면 이곳 명산사거리로 나온다. 길손은 단축 코스를 택하지 않고 정코스를 걸어왔다. 각각의 장단점이 있겠지만 일단 정코스 탐방을 마치고 나서 그 지역에 관심이 더 있으면 다시 탐방한다는 마음으로 길손은 서해랑길을 탐방하고 있다. 서해랑길 지역 담당자들이 정코스를 정할 때는 그 의도가 있을 것이며, 길손은 그 의도에 충실하려고 한다. 동국사길에서 월명로 서쪽 방향으로 진행하여 월명로 횡단보도를 건너 월명동성당 앞 구영6길 먹거리타운 입구로 나갔다. 이제부터는 '시간여행거리'를 따라 1930년대의 군산 근대시간여행을 떠난다.
2.탐방 과정
전체 탐방 거리 :13.03km 중 11.4km
전체 소요 시간 : 4시간 8분 중 3시간 2분
은파순환길 건너편에 구불5길 '물빛길'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길을 건너 은파삼거리로 올라간다.
구불5길 '물빛길'은 이곳에서 끝난다. 서해랑길은 이제 구불6길과 일부 동행한다.
원래의 구불5길은 군산호수공원을 크게 돌아 백석제와 광월산을 지나 은파호수공원 일부를 걷는 18.4km의 길이다. 은파호수공원 입구에서 출발하여 물빛다리를 만난다. 밤이면 화려한 조명 속에서 아름다운 속삭임을 전해주는 은파호수공원의 명물이지만 낮에 만나도 그 아름다운 풍경을 즐기기에는 충분하다. 이 길은 완주 자체의 목적보다는 완벽히 나를 쉬게 할 수 있는 길로 생각하고 걸으면 좋다. 호수를 바라보며 마시는 커피 한 잔에도 구불길은 녹아 있다. 때를 잘 만나 벚꽃이 흐드러지는 계절이라면 그 화려한 숨막힘에 도저히 홀로 걸을 수 없는 길이다.
서해랑길은 지금부터 구불6길 '달밝음길'로 이어지며 54코스에서 일부 동행한다.
2013년 9월 모두 개통된 군산 구불길의 정식 코스는 여덟 개이다. 그 구성은 비단강길, 햇빛길, 큰들길, 구슬뫼길, 물빛길, 달밝음길, 신시도길, 고군산길이다. 정식 코스에 이어지는 테마길이 있다. 햇빛길에 이어지는 미소길, 달밝음길에 이어지는 탁류길, 신시도길에 이어지는 새만금길이 바로 테마길이다. 구불6길인 달밝음길은 은파 관광안내소에서 시작해 군산역에서 끝난다. 나운 배수지, 월명 호수 제방, 점방산 봉수대, 군산 근대 역사 박물관을 거쳐 진포 해양 공원, 째보 선창, 경암동 철길 등 자연 경관도 좋고 볼거리도 많은 코스로 구성되어 있다. 물빛길과 비단강길을 잇는다. 달밝음길 안에는 월명 공원 수시탑에서 군산 근대 역사 문화 경관을 구성하는 구불 6-1길인 탁류길이 있다. 구 일본 제18 은행 군산 지점, 구 조선 은행 군산 지점, 군산 신흥동 일본식 가옥, 동국사 등 일제 강점기의 건축물을 다수 볼 수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서해랑길은 대학로 건너편 한원컨벤션 오른쪽으로 이어간다. 대학로에서 은파공원의 현충시설을 살피고 되돌아온다.
은파공원 광장 주차장 북쪽 끝에 현충 시설 5개가 조성되어 있다. 왼쪽부터 6.25 전쟁과 월남전에 참전한 호국전사의 '호국무공수훈자공적비', 연평도 해전에서 전사한 '문광옥 일병 기념비', '월남참전기념탑', '6.25전쟁참전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맨 왼쪽에 있는 군산사범학교 학도의용군 '현충탑'은 사진에 담기지 않았다.
은파공원의 현충시설을 살피고 되돌아와 은파삼거리 방향을 뒤돌아보았다. 군산대학교가 1.7km 지점에 있다.
군산시 나운3동은 미룡동, 나운동 일부, 신관동 일부, 개사동 일부 등 네 개 법정동을 관할한다. '나운'이라는 명칭은 1789년 간행된 『호구 총수』에 옥구군 북면의 '나운리(羅雲里)'로 처음 등장하며 『한국 지명 총람』에는 "나운(羅云)[나룬이·나랭이]은 나운동에서 으뜸되는 마을. 운중반월의 명당이 있다고 함.”이라고 하여 '羅雲'의 '雲'이 '云'으로 표기되기도 했다는 것을 알려준다. 군산시 나운동은 조선 시대 옥구군 미면 신풍리 나운 마을로 옥구군 미면 지역이었으며, 1910년에 군산부에 편입되었다. 한편, 나운동의 관할하에 있는 현재의 군산시 미룡동은 1914년에 3월 1일 행정 구역이 개편되면서 용둔리, 미제리, 원당리, 산촌리와 동면 지곡리, 사면리, 옥정리 각 일부를 병합하여 미룡리라고 하여 미면에 편입되었다가 1946년에 미룡동으로 개칭하였고, 1973년에 군산시에 편입되어 나운동의 관할이 되었다. 1994년에 나운동을 나운 1동과 나운 2동으로 나누었다. 2003년 2월 17일 나운 2동을 다시 나운 2동과 나운3동으로 분동하였고, 2005년 2월 1일 개사동과 신관동 일부를 나운 2동에 편입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군산시 나운3동을 달리는 대학로를 건너서 오른쪽 골목길로 이어간다. 단축코스를 택하여 대학로를 오른쪽으로 끝까지 따라가면, 군산 내항 진포 해양테마공원에 도착한다.
군산시 나운동 부곡로를 따라 나운현대아파트 방향으로 진행한다.
나운3동 신광빌라 입구에 높이 솟은 나무가 멋지다. 메타세콰이어 나무 같다.
부곡로를 따라 오르다 호룩스 카페를 지나 숲길로 올라간다.
'호룩스' 이름이 무슨 뜻일까? 호룩스 카페를 지나 숲길로 들어간다.
부곡로를 따라 나운현대아파트 앞과 호룩스 카페 앞을 통과하였다. 호룩스 카페 주택 안에 들어가 보고 싶지만 문이 닫혀 있다.
이 구릉은 나운동과 산복동을 경계하는 것 같다. 숲길을 올라 능선을 북쪽으로 따라간다.
숲길의 능선을 따라 정상에 올랐다. 낮은 구릉의 정상에 체육시설이 설치되어 있다.
능선에서 서해 바다를 바라보았다. 금란도는 오른쪽 위에 있을까? 연기를 뿜어내는 곳은 군산일반산업단지일 것이며 군산 외항은 그 왼쪽 아래에 있을 것이라 짐작한다.
전국의 산을 일주하는 서래야님이 부곡산이라 이름 붙인 산에 올랐다. 이렇게 산 이름을 붙이는 것이 옳을까?
서해랑길은 삼각점이 있는 부곡산 정상을 거쳐간다.
부곡산에서 내려오면 부곡산을 우회하는 길과 만나 오른쪽 아래로 내려간다.
산북중학교~리츠프라자호텔 도로 개설 및 확장 공사로 등산로 통행을 금지하는 알림막이 펼쳐져 있다.
등산로 통제 안내 알림막을 통과하여 쉼터 의자가 설치되어 있는 언덕을 내려가면 작은부곡산에 이른다.
서래야님이 명명한 작은부곡산을 내려가는 길에도 등산로 통제 안내 알림막이 설치되어 있다.
능선에서 동쪽을 바라보니 산산태가 일어나 언덕이 붕괴되었다. 중앙의 푸른 숲이 은파호수공원이며 서해랑길은 오른쪽 빌딩 뒤쪽에서 오른쪽으로 올라 산길을 따라 이곳에 이르렀다.
나운3동은 동쪽 중앙부에 미룡[미제] 저수지[은파 호수 공원]가 있고, 대체로 낮은 구릉성 산지와 경포천 유역의 충적 평야로 이루어져 있다. 군산시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쪽은 지곡동, 서쪽은 미성동, 남쪽은 옥구읍, 북쪽은 나운 2동과 이웃한다. 동의 남쪽으로 국도 21호인 전주에서 군산 간 자동차 전용 도로가 경유하여 전주, 익산, 김제 방면으로 이동하거나 서해안 고속 도로로 접근하는 것이 용이한 지역이다. 도시 지역과 농촌 지역이 혼합된 도농 혼합 지역이며 신설 아파트 단지와 은파 호수 공원 그리고 군산 대학교로 이어진 주거·휴식·교육 기관이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는 최적의 생활 공간을 갖춘 지역이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쉼터 의자들이 마련된 언덕을 올랐다가 내려간다. 이 쉼터 언덕에서 북쪽 조망이 좋다.
군산시 소룡동(小龍洞) 일대가 조망된다. 조금 더 가까이 가서 조망한다.
군산시 소룡동(小龍洞)은 행정동이며 법정동인 소룡동, 비응도동, 오식도동을 관할한다. '소룡'이라는 명칭은 조선 후기 고문헌 및 고지도에서 확인되지 않는다. 『호구 총수』「옥구」에 북면 소록리(小鹿里)가 등재되어 있어 이 기록이 '소룡'의 단순한 음차 표기가 아닌지 의심하게 한다. 『한국 지명 총람』에 "솔고지[少龍]는 소룡동에 있는 마을. 소나무가 많았다.”라는 기록이 있어, 소룡동이 '솔고지'나 '소룡'으로 불렸음을 확인할 수 있다. 군산시 소룡동 일대 지역은 조선 시대에 옥구현 북면에 속하였다. 1914년 3월 1일 행정 구역을 개편하면서 군산부 북면의 사장리, 신풍리, 돌산리 등을 통합하여 옥구군 미면 신풍리로 개편되었다. 1973년 7월 1일 옥구군 미면 일부가 군산시에 편입되면서 소룡동이 신설되었다. 1983년 2월 1일에는 옥구군 미성읍 일부를 편입하여 동세를 확장하였고, 1998년 1월 1일 옥구군 옥도면과 오식도, 비응도를 오식도동, 비응도동으로 편입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소룡동은 동쪽에 해발 130m 내외의 구릉성 산지인 점방산이 자리하고 있다. 북쪽으로 금강 하류 및 서해와 접해 있으며, 남쪽으로 넓은 간척 평야가 펼쳐져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군산시 소룡동 일대가 조망된다. 그리고 금강 건너 충남 서천군 장항읍 전망산의 LS메탈 상징 굴뚝이 보인다.
소룡동(小龍洞)은 군산시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쪽은 해신동, 남쪽은 미성동과 옥서면 일부, 서쪽은 나운동, 신풍동, 해신동과 이웃하고 있고 북쪽은 금강 하류 건너 충청남도 서천군 장항읍과 이웃하고 있다. 국도 21호선과 26호선이 경유하고 있다. 관내의 점방산은 조선 시대 봉수가 있던 곳으로 봉화재, 천방산, 봉대산, 의송산 봉수로도 불린다. 군산시의 주요 산업 지역으로, 군산 외항을 비롯해 군산 지방 공단, 군산 국가 공단, 군장 국가 공단이 위치하고 도·농·어업 혼합 지역으로 실향민, 전남 이주자 등이 고루 분포하고 있다. 교육 시설로 소룡초등학교, 월명중학교, 전북 외국어고등학교가 위치해 있으며, 주요 관공서로 군산 세무서가 자리하고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체육시설이 설치되어 있는 쉼터를 지나 소룡동 동아아파트 뒤쪽으로 내려간다.
나운3동 호룩스 카페 위 산길로 들어와 소룡동 동아아파트 뒤 산길로 내려간다.
소룡동 동아아파트 106동 건물을 보면서 내려가면 공단대로 녹점재 생태터널 위 산책로에 이른다.
공단대로 생태터널 위 산책로를 따라 월명호수공원 방향으로 진행한다.
공단대로를 개설하면서 단절되었었는데 '공단대로' 녹점재 위에 생태축을 연결하는 산책로를 복원하였다.
생태축 산책로 아래는 '공단대로' 녹점재이다. 녹점재를 알리는 표지판이 산책로 나무 줄기에 붙여 놓았다.
직진하면 '공단대로' 방향일 것이다. 왼쪽으로 꺾어 나운배수지 방향으로 올라간다.
상수도 시설안전 및 화재예방 CCTV가 설치되어 있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는 안쪽에 대단위 태양광발전시설이 설치되어 있다.
군산시 나운1동 중심지가 태양광발전시설 너머에 있다. 현대아파트 103동과 금성교회가 보인다.
태양광발전시설을 빙 돌아서 월명공원2길로 나간다.
월명공원2길과 만나 월명공원2길을 따라 월명호 방향으로 진행한다. 설림산 1.2km 지점이다.
설림산(雪琳山)이라고 불리는 은적산(隱寂山)은 군산시 소룡동에 있으며 월명공원에 포함되어 있다. 은적산은 613년(무왕 14)에 원광(圓光) 법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는 은적사에서 명칭이 유래되었다. 일제 강점기 지도에는 설림산(雪琳山)이라 표기되어 있다. 설림산은 『여지도서』에도 점방산 아래 기슭으로 북쪽 20리[약 7.8㎞]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은적산은 해발 115.8m로 구릉성 산지이다. 북쪽으로 계속되는 산줄기가 월명산, 점방산으로 이어진다. 1912년 6월 18일 착공하고 연인원 10만 명이 동원되어 1915년 1월 4일 준공되어 월명 호수라 불리는 군산 제1 수원지를 구성하는 산지이다. 등산로와 산책로가 잘 조성되어 있으며, 월명산(月明山)을 비롯하여 장계산·설림산·점방산·석치산 등으로 이어진다. 산 남쪽 기슭에 군산시 지정 전통 사찰 제2호 은적사가 있다. 정상에서는 나운동과 소룡동 일대, 그리고 소룡동 공단 지역을 조망할 수 있다. 금강 하류가 서해와 만나는 군산시 해망동·장미동과 마주하고 있는 충청남도 서천군 장항읍 일대까지 조망이 가능하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나운배수지가 태양광발전시설 안쪽에 있는 것 같다.
월명공원2길을 따라 군산청소년수련관 입구까지 계속 이어간다.
군산시 신흥동, 해망동, 금동 일원에 걸쳐 조성되어 있는 월명공원(月明公園)은 옛 도심에 위치한 시민의 안식처이자 관광지로서 정상에서 금강과 서해 바다를 볼 수 있는 곳이다. 현재의 월명공원에 '공원'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1906년이다. 1906년 군산 각국 거류 지역의 명승지인 해망정 인근 약 3.3㏊를 개발하여 일명 '각국 공원'이라 이름을 정했다. 이후 각국 공원은 일제 강점기가 되어 각국 조계 지역 법이 폐지되자 '각국'이라는 단어를 떼어내고 '군산 공원'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1933년에는 2013년 현재 수시탑이 서 있는 산의 토지 2㏊ 정도를 매입하여 공원의 규모를 확대하였다. 1972년에는 해망동 수시탑에서 미룡동의 군산대 뒷산에 이르는 영역을 개발 제한 구역이자 공원 지역으로 지정하고 '군산 공원'을 '월명공원'으로 바꾸어 부르게 되었다. 월명공원 산책길은 세 코스로 구성되어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맨 왼쪽 현위치 지점에서 노란색 줄을 따라 월명호수 동쪽 수변로를 걸어 18번 청소년수련관까지 이어간다.
군산시 월명공원(月明公園) 산책길은 세 코스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코스는 약 1.5㎞ 거리에 소요 시간은 1시간 가량이다. 공원 입구인 흥천사에서 시작해 해병대 전승탑, 수시탑, 바다 조각 공원, 채만식 문학비, 3·1운동 기념탑, 월명산으로 이어진다. 두 번째 코스는 약 3.7㎞ 거리에 소요 시간은 1시간 30분 가량이다. 청소년 수련원에서 시작해 월명 호수, 점방산 봉수대 사적비, 월명공원 전망대, 설림산, 은적사로 이어진다. 세 번째 코스는 약 3㎞ 거리에 소요 시간은 2시간 가량이다. 공원 입구인 흥천사에서 시작해 수시탑, 삼일 운동 기념비, 월명공원 전망대, 월명 호수, 설림산, 나운 배수지로 이어진다. 월명공원 산책로는 12㎞이다. 월명공원의 정상에 있는 수시탑에 오르면 군산 앞바다와 금강 하굿둑, 그리고 군산 시가지와 장항 제련소 등 군산의 주위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 공원 정상에는 전망대와 바다 조각 공원, 수시탑, 삼일 운동 기념비, 개항 35주년 기념탑, 생각하는 시민상, 채만식 문학비가 있다. 공원 서쪽 설림산 기슭에 은적사가 있으며, 점방산과 설림산 사이를 막아 만든 군산 구 제1 수원지 제방이 있다. 공원 안에는 수령 30년이 넘은 등나무와 벚나무가 우거져 경관이 수려하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월명공원2길을 따라 월명호수가 보이는 곳으로 내려왔다.
월명호수는 군산 시민들에게 식수를 공급하기 위해 만든 곳이다. 군산 제 1수원지라고 불렸고, 월명공원 안에 위치하여 월명호수라고 부른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도심의 산 위에 위치한 호수이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5번 준공표지석 앞쪽에 월명공원 나눔의 숲 안내도가 설치되어 있다.
오른쪽 숲길은 편백치유의 숲으로 가는 길, 왼쪽은 월명호수로 내려가는 길, 서해랑길은 월명공원2길을 계속 따라간다.
안내도를 90도 오른쪽으로 돌려야 위치가 정확하게 잡힌다. 서해랑길은 은적사 방향에서 현위치, 청소년수련관으로 이어진다.
군산의 신흥시가지 나운1동 나운초등학교 방향에서 월명호수로 진입하는 입구에 노점상들이 일찍부터 자리를 잡고 있다.
오른쪽은 석치산으로 오르는 길, 서해랑길은 청소년수련관 방향으로 월명공원2길을 따라 내려간다.
월명공원2길이 청소년회관로와 만난다. 서해랑길은 오른쪽 청소년수련관 방향으로 이어간다.
청소년회관로를 따라 송풍동 청소년수련관 입구를 거쳐간다.
군산시 소룡동에서 송풍동으로 넘어왔다. 송풍동 군산 청소년수련관 규모가 크다.
군산시 송풍동에 있는 청소년 수련관은 군산 지역의 청소년 수련 시설로 지역 청소년들이 사회, 문화적 주체로서 활동할 수 있도록 군산 YMCA에서 시설 및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1946년 4월 군산 YMCA로 창립하여 1951년 6·25로 인한 피난민 구제 사업에 전력을 다하였다. 1994년 10월 시정 참여단 발대식, 1997년 5월 군산 YMCA 청소년 회관 개관, 2004년 5월 10일 도내 최초 인권 축제 실행, 2005년 12월 유아 보육 사업 ‘마을과 아이들’ 사업 추진, 2007년 1월 군산시로부터 재단 법인 한국 YMCA 전국 연맹 유지 재단 군산 YMCA가 청소년 문화의 집 수탁, 2007년 2월 군산시 청소년 문화의 집 개관식, 2010년 7월 군산시로부터 사단 법인 군산 기독교 청년회[YMCA]가 수련관 수탁 운영, 2010년 7월 제1회 청소년 지도자 국제 포럼을 가졌다. 2010년 10월 국가 청소년 문화의 집 평가에서 군산시 청소년 문화의 집이 최우수 기관으로 선정되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송풍동(松豊洞) 청소년회관로를 따라가다가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꺾어 월명공원1길을 따라간다.
군산시 송풍동(松豊洞)은 신풍동이 관할하는 세 개 법정동 중 하나이며, 신풍동의 서쪽에 위치해 있다. '송풍'이라는 지명은 조선 후기 지도와 문헌에서 확인되지 않는다. 1973년 7월 1일 옥구군 미면의 신풍리 전역을 군산시로 편입하여 나운동과 소룡동을 신설하면서 동시에 송산동과 금풍동을 합하여 송풍동으로 개편하였다. 군산시 신풍동은 옥구군 북면의 지역이었다. 1910년 10월 1일 군산부에 편입되었다가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옥구군 미면 신풍리로 편입되었다. 1932년 10월 1일 옥구군 미면 신풍리 일부가 군산부에 편입되어 해망정, 천장정, 송산정, 신풍정, 풍남정으로 개편되었다. 1946년 동명 변경에 의하여 해망동, 송산동, 신풍동으로 개칭하였다. 1952년 7월 14일 송산동을 문화동으로 개칭하였다. 1954년 9월 10일 문화동을 송산동과 금풍동으로 분리하였다. 1973년 7월 1일 옥구군 미면의 신풍리 전 지역이 군산시에 편입되면서 나운동과 소룡동을 신설하는 동시에 송산동과 금풍동을 합하여 송풍동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군산 청소년수련관이 이 지역의 청소년 문화를 선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군산청소년수련관은 H·C 자연 학교, 청소년 자치 활동, 창의적 체험 활동, 청소년 수련 활동 인증 프로그램, 청소년 방과후 아카데미, 문화 교육 프로그램 등으로 청소년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H·C 자연 학교는 Holistic 자연 환경 교육론에 입각하여 자연과 인간이 함께 상생하는 유기적 관계성에 대해 이해하고, 자연을 살피는 이성적 영역, 자연을 오감으로 느끼는 감성적 영역, 자연을 통해 생명 존중과 평화, 나눔의 가치를 실천하는 영성적 영역 등 총제적인 자연 체험 활동을 하며, 생명 존중의 마음을 바탕으로 창의적 활동을 함으로써 자연의 가치와 중요성을 알리고 녹색 성장을 이끌어 갈 지구 환경 지킴이를 배출하는 곳이다. 청소년 자치 활동은 청소년들에게 주체적인 삶의 영위 및 생명·평화의 지도자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문화 교육 프로그램은 지역 사회 아동·청소년 및 시민들의 잠재 능력을 일깨워 자기 실현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다양한 체험 및 활동을 제공하고 있다. 군산청소년수련관에는 관장을 포함하여 17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2010년 7월 1일 군산시로부터 사단 법인 군산 기독 청년회[YMCA]가 수련관을 수탁·운영하고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청소년회관로에서 월명공원1길로 진입하여 월명공원1길을 따라 이어간다.
월명공원1길을 따라 백운사 입구, 염불암 앞을 거쳐 3.1운동 기념비까지 이어간다.
월명공원1길은 백운사 입구를 오른쪽으로 돌아간다.
백운사 입구를 지나 월명공원1길에서 송풍동 일대를 내려보았다. 송풍동 뒤쪽은 신풍동일 것이라 짐작한다.
군산시 송풍동(松豊洞)은 월명산 줄기 아래 형성되어 있는 행정 구역이다. 동쪽, 서쪽, 북쪽은 월명산 줄기의 경사가 급하므로 비교적 평탄한 남쪽으로 거주지가 형성되었다. 군산시 송풍동은 군산시의 동(洞) 지역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대학로를 중심으로 북서쪽 방향이다. 신풍동, 문화동, 오룡동, 월명동, 삼학동 등과 이웃하고 있는 주거 지역이다. 교육 시설로 군산중학교, 군산 기계공업 고등학교가 위치해 있다. 군산시가 추진한 2단계 도시 주거 환경 개선 사업 대상 지역이다. 군산시 2단계 도시 주거 환경 개선 사업은 총사업비 2009년까지 305억 원을 투입하여 일곱 개 지구인 금동, 송풍동, 오룡동, 삼학동 일원에 도시 기반을 조성하려는 계획으로 추진되고 있다. 송풍동을 비롯해 주변 노후 주택 밀집 지역에 각종 도시 기반 시설을 건설하고 임대 주택을 확충하려 한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할머니 한 분이 송풍동 송산마을에서 월명공원길로 올라와서 텃밭에서 키운 야채를 팔려고 준비하고 있다.
태고종 소속의 염불사 앞을 돌아간다.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19세기 말~20세기 전반. 군산 염불사 소조여래좌상은 신체와 옷 주름 표현에 명대 티베트 불상과 조선시대 불상양식이 적절하게 혼합된 새로운 불상이다. 불상의 가슴에서 발견된 발원문에 1944년 태어난 손자의 수명장수를 기원하는 내용이 쓰여 있고, 1900년대 초에 은적사에서 산제당산신을 모신 집으로 불상을 옮긴 정황 등으로 미루어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불상은 우견편단에* 항마촉지인**을 지은 형상이며, 왼손은 따로 나무로 조각하여 연결하였다. 늘어뜨린 옷자락은 왼쪽 팔꿈치 부근에서 오메가 모양을 이루는 특징을 보인다. 염불사 소조여래좌상은 19세기부터 근대기에 이르는 불교 조각사와 불상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우견편단(右肩偏袒) :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옷을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겨드랑이로 걸치는 방식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 : 왼손은 무릎 위에 두고 오른손은 내려 손가락으로 땅을 가리키는 손 모양으로, 수행을 방해하는 악마를 항복시키는 의미
이 고개에서 여러 길로 갈라진다. 왼쪽은 장계산과 점방산 방향, 직진은 수시탑, 오른쪽은 월명산으로 각각 갈라진다.
이 안내도를 통해 걸어온 길을 종합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서해랑길은 현위치 11번에서 노란색 줄을 따라 내려간다.
3.1운동 기념비와 만세상 뒤쪽을 왼쪽으로 따라 올라가면 월명산 정상에 이른다.
본 기념비는 1986년 12월 3일 군산 3.1운동 기념비 건립 위원회에서 군산 3.1운동의 태동인 군산 구암동 선인들의 애국심과 크나큰 의지를 기르기 위해서 이곳 푸른 숲이 기상을 상징하는 이 자리에 당국의 보조금과 시내 각급 학생을 비롯한 시민의 충정어린 성금을 모아 이 비를 세우니 나라와 겨레를 사랑하기에 지극하고 온갖 것을 다 바친 선인들의 슬기와 용맹이 우뚝 솟아 보인다. 군산 3.1운동은 1919년 3월 6일 설애 장날을 기해 시작되었다. 이 운동은 영명학교 교사와 학생 그리고 예수병원 직원들이 주동이 되어 벌였다. 이날 시위에서는 그 전날까지 영명학교 숙직실에서 밤을 지새며 만든 독립 선언문 3천 5백장과 태극기 5백장을 나누어 들고 휘두르며 독립만세를 외쳤으며 이밖에 군산 보통학교 학생 수백명이 합세, 애국시위 군중은 삽시간에 5백명으로 늘어 독립만세 소리는 시 전역에 메아리쳤으며, 30일 밤에는 시민 1천여명이 횃불 시위를 벌여 일본인 관헌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31일에는 투옥된 애국자들의 공판중인 법원 군산지원에서 만세시위를 벌이는 등 독립운동은 나라를 빼앗긴 민족이 나라를 찾고 자존과 자주, 자립, 자유와 평화를 누리려는 최선의 길이요, 방법이었으며 마땅하고 엄숙한 주장이었다. 우리는 선인들의 애국심과 크나큰 의지를 오늘에 되새기며 자랑스러운 조국을 더욱 굳건하게 세워가야 할 것이다.
왼쪽 월명공원1길을 따라왔다. 위쪽은 장계산, 오른쪽은 수시탑, 왼쪽 만세상 뒤쪽 길은 월명산으로 각각 이어진다.
월명안길을 따라 군산 옛 도심지로 내려간다.
월명안길을 따라가며 군산 옛 도심지를 내려보았다. 옛 도심지 행정구역은 월명동, 신창동, 영화동, 금동, 해망동 등 무척 복잡하다. 벚나무 가지 사이로 건너편 장항과 군산을 잇는 동백대교가 중앙 뒤에 보인다.
월명산을 중심으로 이 지역에 암자 같은 조그만 절들이 많이 있다.
월명안길을 따라오며 삼불사 앞을 거쳤다.
월명안길을 따라 내려와 언덕의 동신교회 옆으로 내려가 오른쪽 골목길로 진입한다.
월명안길을 따라 발달장애대안학교 산돌학교 앞을 거쳐 동국사길로 나간다. 밤새 버스 안에서 잠을 못자고 군산에 도착하여 새벽부터 아침까지 탐방하고 있는 길손에게, 주택 벽에 적힌 '밤새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맞이인사가 반갑다.
월명산 가는 길인 월명안길을 따라 내려와 동신교회, 발달장애대안학교 산돌학교 앞을 거쳐 동국사길로 나왔다. 이곳에서 100m 거리에 있는 동국사를 잠시 살피고 되돌아온다.
이 지역은 군산시 금광동(錦光洞)에 속한다.
군산시 금광동(錦光洞)은 삼학동에서 관할하는 3개 동 중 하나로 삼학동 북쪽에 위치한다. '금광'이라는 지명은 조선 후기 지도나 고문서에서는 확인할 수 없다. 1932년 전라북도 옥구군 미면 둔율리가 군산부에 편입되어 금광정으로 개편되면서 처음 등장한다. 1932년 둔율리 일부가 군산부(群山府)에 편입되면서 금광정(錦光町)이 되었으며, 1946년 군산부 금광동으로 개칭되었다. 1949년 군산부가 군산시로 바뀌면서 군산시 금광동이 되었다. 1973년 오룡동이 관할하는 법정동으로 개편되었다가 2008년 삼학동 관할 법정동으로 다시 재편되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동국사 입구에 위치한 동국사 백주년 기념관에는 1년 과정의 군산불교대학이 2020년 5월에 개설되어 있다.
군산시 금광동에 있는 조계종 소속의 동국사는 일본식 사찰이다. 일본 조동종(曹洞宗) 승려 우치다[內田佛觀]가 1909년 8월 군산의 외국인 거주지 1조 통에 세운 금강선사[금강사]에서 출발한다. 당시 금강사는 '포교소'였다. 우치다는 1913년 군산 지역 대농장주 구마모토[熊本利平]와 미야자키[宮岐佳太郞] 등 29명의 신도에게 시주를 받아 지금의 자리에 대웅전과 요사채를 신축하였다. 1945년 해방과 함께 미군정에 몰수됐다가 1947년 불하받아 사찰 기능을 재개하였다. 1955년에는 '불교 전북 종무원'에서 인수하여, 김남곡[1913~1983]이 이제부터는 ‘우리나라[海東國] 절이다’는 뜻으로 '동국사'로 등기를 내고, 1970년 대한 불교 조계종 제24교구 선운사에 등록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昭和 9年 6月 吉祥日'이라고 음각되어 있다. 昭和(소화) 글자는 해방 후 지웠다고 하는데 흔적이 보인다.
조동종 금강사(曹洞宗 錦江寺) 명패의 지워진 曹洞宗(조동종)은 일본 불교 종단 명칭이고, 錦江寺(금강사)는 창건 당시의 일본 사찰명이다. 왼쪽에 새겨진 '盧熙潤(노희윤)'은 1952년 쾌유를 기원하기 위해 이름을 새겼지만, 9세에 요절한 한국인이다. 위쪽의 '차문불문(此門不門)' 팻말 고은 시인이 1951년 동국사 주지 혜초 스님에게 출가할 당시 깊은 감명을 받았던 글귀로서, '이 문은 문이 아니다'라는 뜻으로, '누구나 드나들 수 있는 문'이라는 말이라고 한다.
군산시 금광동 135에 위치하는 국가등록문화재 제64호 동국사는 국내에 있는 유일한 일본식 사찰로 화려한 단청이 있는 우리나라의 사찰과 달리 아무런 장식이 없으며, 처마와 외벽에 창이 많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동국사는 한일병합 1년 전(융희3년), 1909년 6월 일본 조동종 승려 우찌다 스님이 일조통에서 금강선사란 이름으로 포교소로 개창하고, 1913년에 현 위치로 옮겨와 대웅전과 요사채를 신축하였다. 1945년 해방을 맞아 정부로 이관되었다가, 1955년 불교전북교당에서 인수하고 당시 전북종무원장 김남곡 스님(1913~1983)께서 동국사로 개명하고, 1970년 대한불교조계종 24교구 선운사에 증여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대웅전은 정면 5칸 측면 5칸 정방형 단층팔자지붕 홑처마 형식의 에도시대 건축 양식으로 외관이 화려하지 않으며 소박한 느낌을 준다. 지붕물매는 75도의 급경사를 이루고, 건물외벽에 미서기문이 많으며, 용마루는 일직선으로 전통한옥과는 대조를 이룬다. 요사채는 몸채를 퇴간으로 둘러싸는 일본 전통양식이고, 복도를 통해 법당과 요사채가 연결되어 있다. 사용된 목재는 모두 일본산 쓰기목이다. 범종은 1919년 일본 경도에서 주조하였고 창건주 및 개산, 시주자, 축원문이 음각되어 있다. 동국사는 우리나라 개화기와 근현대사의 역사를 증명하는 건축물로서 식민지배의 아픔을 확인할 수 있는 교육 자료로서 활용가치가 높다.
동국사의 중요한 볼거리를 잘 정리한 안내도이며 설명판이다.제1정문 돌기둥, 제2정문 돌기둥, 군산 평화의 청동 소녀상, 석조33관세음보살상과 석조12지본존상, 종각, 참사문비, 방공호, 대나무 숲, 봉안당, 등록문화재 제64호 동국사 대웅전, 보물 제1718호 군산 동국사 소조석가여래삼존상 및 복장유물 373점, 쌍림열반도, 금오계첩, 고은(高銀)의 방, 향적원 등이 소개되어 있다.
4.석조33관세음보살상과 석조12지본존상 : 1919년에 돌로 만든 불상들로 33가지 모습을 조각한 관세음보살상 33기와 12지 본존불 8기로 이루어져 있다. 보살상 받침에는 불상을 만든 일본인 이름이 새겨져 있었으나 해방 때 철거되어 소각장 부재 및 민가 주춧돌로 사용했기 때문에 까맣게 그을려 있다.
9.봉안당 : 대웅전 뒷벽에 붙어 있었던 일본인들의 유골 봉안당으로, 해방 후 철거하여 유골은 서해 바다에 수장했다. 현재 시멘트 기단한 남아 있다.
14.고은(高銀)의 방 : 1950년대 초 고은 시인이 주지 혜초의 상좌가 되어 중장(행자 법명은 혜민慧敏)이라는 법명을 받고 토요동인회원으로서 불경 공부를 했던 방이다. 옥스퍼드대 출신 혜초 주지는 을사오적 박제순의 사생아로 알려져 있으며, 군산의 전북상과대학에서 그의 저서 <중관적변증법서설>로 강의했다.
요사채는 왼쪽 대웅전과 연결되어 있고 오른쪽 뒤의 향적원은 절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생활공간이었는데, 2015년에 전통한옥 건물로 신축하여 현재 식당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대웅전 우측 대밭에서 주차장으로 연결된 제2방공호는 지금은 토굴식 창고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방공호는 일본이 연합군의 공습에서 살아남기 위해 파놓았던 땅굴이다.
수리보수 공사 중이어서 전체 면모를 잘 살펴볼 수 없다.
국가등록문화재 제64호인 대웅전은 건축 자재를 일본에서 가져와 지었으며, 우리나라의 전통 사찰과 달리 승려들의 거처인 요사채와 복도로 연결된 것이 특징이다. 정면 5칸, 측면 5칸의 정방형 단층 팔작 지붕 홑처마 형식의 대웅전은 일본 에도 시대 건축 양식으로 외관이 무척 단조롭다. 지붕 물매는 75도의 급경사를 이루고, 건물 외벽에 창문이 많으며, 용마루는 일직선으로 한옥과 대조를 이룬다. 동국사는 2003년 7월 15일 문화재청에 의해 등록문화재 제64호로 지정되었으며, 대웅전에 있는 석가 삼존불상은 전라북도 유형 문화재 제213호로 지정되었다가 2011년 9월 5일 복장유물과 함께 보물 제1718호[군산 동국사 소조석가여래삼존상 및 복장유물]로 승격되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군산 동국사 대웅전은 1932년 조동종(일본 불교의 한 종파) 사찰인 금강사의 불전으로 건축되었다. 광복 후 조계종 사찰인 동국사 대웅전으로 변경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대웅전은 승려들의 거처인 요사채와 복도로 연결되어 있으며 지붕의 경사가 매우 심하다. 건물 외벽에는 미세기 문(두 짝을 한편으로 밀어 겹쳐지게 여닫는 문)이 설치되어 있다. 이러한 양식은 일본 사찰 건축에서 흔히 보이는 특징이다. 대웅전의 법당은 내부가 일부 변형되었지만 대체로 원형이 잘 보존되고 있다. 이 법당은 일제강점기 일본식 사찰 건축 양식과 대한민국 불교의 역사를 보여 주는 중요한 곳이다.
군산 동국사 소조석가여래삼존상은 석가여래와 그의 2대 제자인 가섭과 아난존자로 구성된 삼존이다. 자신을 모시는 아난과 가섭을 좌우에 둔 석가여래삼존으로는 유일하게 150cm가 넘는 대형 불상이다. 불상들에서 나온 전적물이나 복장물(불상을 만들 때, 그 가슴에 넣는 물건의 기록)을 통해 이 불상이 전라도 지역에서 활약하였던 이름이 알려진 조각승에 의해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소조석가여래삼존상은 조선시대 불상 양식이 형식적으로 흐르기 전 단계의 소조 불상으로 매우 중요하다. 세 불상에서 나온 복장물은 후령통(유물 가운데 복장을 넘는 통)의 제작 기법, 내용물, 재질 등을 밝히는 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뒤쪽에 대나무숲은 맹종죽 계열의 일본산 대나무로 죽순용이라고 한다. 마디가 짧고 굵으며, 5월에 낙엽이 지고 새순이 돋는데, 대나무 잎의 모양이 우리나라 대나무와는 확실히 구별된다고 한다. 소각장 뒤편 대나무 숲에서 대웅전 우측까지 50M 제1방공호가 있었으나 지금은 무너져서 폐쇄한 상태라고 한다.
동국사는 대대적으로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평화의 소녀상 뒤에 참사문비가 공사 때문에 옮겨져 있다.
군산 평화의 청동 소녀상 - 2015년에 고광국 작가가 제작한 위안부 기림 청동 평화 소녀상이다. 일본을 응시하고 있는 소녀상 앞에는 광복 70주년을 기념해 검은색 타일 77장으로 만든 연못이 있는데 검은 타일은 대만해협과 거울을 상징한다.
종각 - 국내 유일의 일본 전통 양식의 종각으로, 1919년 교토에서 만든 일본 범종이 달려 있다. 시계가 귀했던 시절에는 군산 시민들에게 시각을 알려주는 역할을 하였으나, 지금은 1년에 한 번 초파일에만 종을 친다.
참사문비 - 일본 불교 조동종에서 발표한 공식 문서를 발췌해 새긴 비문이다. 일본제국주의에 영합한 잘못에 대한 반성과 참회 의지가 담겨 있다. 2013년 이치노헤 스님의 주도로 건립하였다.
1.종각(鐘閣) 1919년 건립. 국내에 현존하는 유일의 일본식 종각으로 범종(梵鐘)은 1919년 교토(京都)에서 고교재치랑(高橋才治郞)이 제작, 범종에는 창건 당시 금강사 내력이 적혀 있다.
2.석조33관세음보살상(石造33觀勢音菩薩像) 1919년 건립. 33가지 모습으로 변화하며 나타나는 관세음보살을 조각한 관세음보살상(觀勢音菩薩像)
3.석조8수본존상(石造8守本尊像) 1922년 건립. 익산(益山) 황등석으로 만든12지신의 수호(守護) 부처 8기
4.군산평화소녀상(群山平和少女像) 2015년 건립. 군산시민과 일본인의 성금을 모아 만든 위반부 기림비
5.참사비(懺謝碑) 2012년 건립. 일제강점기 잘못을 참회하는 조동종(曹洞洞)의 참사문(懺謝文)을 발췌해서 새긴 비문으로 조동종(曹洞洞) 운상사(雲祥寺) 주지 일호창황(一戶彰晃)의 주도로 건립.
대웅전과 요사채가 복도를 통해 연결되어 있는 것이 보인다.
동국사 대웅전은 1913년 신축, 1935년 개축한 국내 유일의 일본식 사원 법당이다. 용마루는 일직선 형태로 전통한옥과는 대조를 이루고, 지붕은 75도의 급경사를 이룬다. 법당과 주거 공간의 구분 없이 복도를 통해 하나로 연결된 점이 특징이다. 외부 목재는 모두 일본산 삼나무인데, 대들보만 백두산에서 벌채한 금강송을 사용하였다. 불상 위 천장에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천개(天蓋)라는 장식물이 달려 있다. 불단(수미단)과 북, 강상(講床)은 일제강점기에 만든 것이며 다다미 바닥은 나무마루로 교체되었다.
시간에 쫓겨서 대웅전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겉모습만 살폈다. 대웅전 안에 모셔진 문화재 자료를 옮겨 적는다.
보물 제1718호 군산 동국사 소조석가여래삼존상 및 복장유물 373점 : 효종 1년(1650)에 진흙으로 만든 삼존불상으로, 해방 후 금산사에서 동국사로 모셔왔다. 삼존상 내부에서 불경, 공예품 등의 복장유물 373점이 발견되었다.
쌍림열반도 : 조선 전기에 제작된 불화로, 2013년에 일본에서 환수하였다. 가로로 길게 그려진 불화로는 가장 오래된 최고본이다. 부처의 열반과 다비식 장면이 담겨 있으며, 사리를 옮기는 장면은 동아시아에서는 최초 발견된 희귀한 사례이다.
금오계첩 : 일본에서 환수한 우리 문화재로, 영조 10년(1754)에 의금부에 근무하는 관원들의 모습을 그림과 글로 기록한 채색 기록화이다.
동국사를 순식간에 외관만 보고 동국사 입구로 나왔다.
군산 근대역사지구 내 도시형 민박(게스트하우스)의 합법화를 이루어낸 펀빌리지 협동조합은 여행객의 법적보호와 안전의 문제를 담보받을 수 없던 게스트하우스의 단점을 완벽히 해결하여 안전하고 즐거운 여행의 기본을 마련하였다. 주민과 지역의 건물을 활용한 게스트하우스 운영지원으로 저렴하고, 안전하며, 살아 있는 동네이야기를 여행객에게 제공하여 지역 주민과 여행객이 모두 즐거운 『선순환 경제 공동체』를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게스트 하우스 동국은 군산 동국사 앞에 위치한 1970년대 여인숙을 리모델링하였다. 근대역사 관광지 중 하나인 국내에 남아있는 유일한 일본식 사찰 동국사 앞에 있다. 객실(방단위O, 도미토리X) 7개와 라운지(공용공간)와 동국사가 훤히 보이는 옥상에 추억을 남길 포토존과 테이블이 준비되어 있다.(군산시청)
동국사를 보고 되돌아오니 10분이 소요되었다. 어처구니가 없다. 동국사에 들렀다는 것으로 위안한다.
월명산 가는 길 입구 맞은편에 군산평화박물관이 있으며 꽃마차가 정차해 있다.
꽃마차는 평화바람과 같이 2003년 이라크전쟁 파병반대 전국 유랑을 시작으로, 평택 대추리, 용산 남일당, 제주 강정마을, 영도 한진중공업과 곳곳의 노동자 농성장, 전국생명평화대행진 등을 다녔습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제 이름을 내세우지 않고 생태, 평화, 평등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과 그들의 눈물, 희망, 연대를 만났습니다. 오랜 유랑을 끝낸 낡은 꽃마차는 2017년 군산 월명동에 정주해 군산평화박물관의 얼굴이 됐습니다. 평화가 위태로운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가 무엇이든 할 수 있었던 꽃마차의 마음이 군산평화박물관을 다녀가는 사람들에게 전해지기 바랍니다.
2003년 이라크전쟁 파병반대 운동을 시작으로 14년 동안 전국을 누빈 평화의 꽃마차가 2017년 군산 월명동에 정주했다.
동국사길에서 '월명로'로 나가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이어간다. 월명로 건너편 길은 구영7길이다.
동국사길에서 '월명로'로 나와 동쪽을 바라보니 대학로와 월명로가 교차하는 명산사거리가 있다. 은파호수공원 입구 한원컨벤션 앞 대학로에서 서해랑길 정코스를 따르지 않고 대학로를 따라 북진하면 명산사거리로 나온다.
동국사길에서 월명로 서쪽 방향으로 진행하여 월명로 건너편 월명동성당으로 이어간다.
월명로 횡단보도를 건너 월명동성당 앞 구영6길 '시간여행거리'로 이어간다.
구영6길 입구에 시간여행거리 안내도가 있다.
군산은 1899년 5월 각국 조계지로 개항을 하여 이사청건물, 군사부청사, 미곡검사소 등 근대양식의 건축물이 많다. 현재는 조선은행, 18은행, 미즈상사, 적산가옥, 대한통운 창고 등을 보수, 복원하여 근대건축관, 근대미술관 등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이 외에도 영화동, 월명동 일원에 170여점의 근대양식의 건축물이 산재하여 있다. 근대 건축물을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시간여행을 하고 있는 기분이 든다.
서해랑길은 구영6길 시간여행거리 먹거리타운으로 들어가 이제부터는 1930년대의 군산 근대시간여행을 떠난다.
첫댓글 월명공원, 동국사 잘 보았습니다.
요며칠 저 지역에 비가 엄청 왔다는데~
피해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다시 가서 차근차근 살피고 싶은
동국사입니다.
꿈마니님 예천은 비 피해 없겠지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