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직 은퇴자에 일자리 제공한다" 라는 조선일보 5월 18일자 신문기사를 보고 나는 가슴이 설레었다. 서둘러 경기 일자리 센터 홈 페이지를 접속해서 원서를 작성하고 남양주시청에 직접 접수했다.나는 아날로그 세대라 디지털화된 현대사회의 최첨단 기기를 믿지 못하는 디지털 원시인이다..그래서 버스를 타고 물어물어 남양주시청 지역경제과에 찾아가 직접 접수를 했는데 접수번호가 일번이었다 기분이 좋았다. 서류심사 발표날 오전 내내 초조하게 기다렸는데 감감 무소식 이였다.떨어졌다는 생각에 심한 무력증에 빠지며 기분이 말이 아니었다. 작년 이맘때를 생각하면 그래도 이렇게 어떤 결과를 기다릴수 있다는 것을 고맙게 생각하자.죽음의 문턱가지 같다가 간신히 생명의 연장을 받아 취업서류까지 접수하고 이렇게 결과를 기다리는것이 어디냐? 작년에 수술중에나 수술후에 중환자 실에서 세상과 이별했을수도 있었엇는데.생각하면 비몽사몽간에 일년을 보낸것 같다. 재작년 그러니까 2008년 5월 목 디스크로 입원하여 7월달에 수술을 받고 생활하던중 겨우 6개월 만인 2009년 1월경에 나사가 삐집어 나오더니 일년만인 8월달에 수술 부위에 심어둔 보형물의 나사가 반 정도는 이탈하여 튀어나와 그냥두면 식도를 뚫어 생명에 위험이 있으니 재수술을 하라는 것이엇다.이런 개새끼가 있나 수술을 어찌했기에 조여둔 나사가 빠지도록 했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의사의 면상을 갈기고 싶었다. 완전 돌팔이로 보였다.그러나 이건 약과엿다 의사의 반협박에 겁이나 재수술을 하는날 작년 처음 수술때보다 시간이 너무 길어 가족들은 불안함에 안절부절 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다음날, 자고나니 이동식 엑스선 촬영기게가 올라오더니 사진을 찍어간지 얼마되지도 않아 의사가 하는 말이 수술부위에 피가 고여 있으니 다시또 수술을 해야한다고 한다. 세상에 이런놈이 어찌의사냐? 수술부위에 피가 고였다니 그런 기본적인 처리도 못하고 수술을하나. 나는 절망하고 있었다
하는수 없이 또수술실로 들어가 수술 끝난지 겨우 하룻밤자고 또 차거운 수술실에 더러누웠다. 기분 참 더럽다간신히 수술이 끝나고 병실에서 눈을 뜨니 내 처지가 정말처량하였다. 이렇게 자괴감에 빠져 있는데 웃기다 못해 절망같은 일이 또 발생했다, 이번에는 재수술 한곳에 지혈이 되지않아 게속 피가 샌다는 것이다. 이럴수가 진짜 이럴수가 있단말인가?.나는 정말로 그녀석을 죽이고 싶었다. 돌팔이다 이런 돌팔이는 세상에 더는 앖을 것이다 전문의로 수십년을 해 온 작자가 그리고 보니 수술후 외래로 오는 수술 환자들이 의사에게 얼굴 붉히며 따지는데 의사는 가소롭다는듯 환자만 나무라던 광경을 본 기억이 새삼스러이 떠 오른다. 한결같이 그자에게만 이의를 달고 불만을 표하는 환자들이 많았을까?. 어쨌던 간호사들이 내 병실을 들락날락하며 몇시간을 관찰한뒤 밤12시쯤인가 기억도 확실치 않지만 의사가 와서는 지혈을 위한 수술을 하잖다. 나는 분노하여 그만두자고 했다.이대로 죽겠다고 그냥두라고 했다 내말을 들은 우리아들이 깜짝 놀라며 자기 형에게 정화를 하고 큰아들이 부랴불야 달려와 나를 설득을 하고 해서 겨우 결심을 하였다. 아듣들을 보니까 정말 말문이 막히고 부모로서 애처러워 어쩔줄 모르겠다. 한참 사회활동을 왕성하게 하는 이 사랑하는 아들들을 못보고 내가 죽을것 같아서였다
그런데 하룻밤낮 사이에 두번수술을 하고 또 세번째 수술을 들어가는데 의사의 사전 주문이 있얶다 수술도중 기도가 막히면 죽으니 목에 관을 삽입 해야하고 또 수술초기 한참은 마취를 할수 없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마취를 하면 역시 사망의 위험이 있다는 건지 수술 자체가 어렵다는 건지 나는 전혀 아해 못하는 이유로 수술대에 누워 말짱한 정신에 쌩으로 메스가 내 목을 그어가는 것을 느끼며 신음 하고 있었다그런데 의사는 참 웃긴다. 쌩으로 목을 째면서도 나보고 엄살이 심하시네요 란다.수술도중 레지던트에게 던지는 쌍말은 참 민망하였다 마취를 하지 않앗으니 나는 집도의의 말과 행동을 다알수 있었다. 평생에 재수없는 인사를 만났구나 정말 가슴을 쳣다. 이렇게 사선을 넘어 간신히 살아 취업의 문을 두트렷던것이다. 수술후 눈물어린 회복기는 기회가 잇으면 들려드리겠습니다.
그런데 영 소식이들리지.않아 서운한 마음을 억지로 달래며 쓰고 있던 소설이나 열심히 쓰자 다짐하고 자판을 두드리는데 모바일 벨 소리가 나를 깜짝 놀라게 하였다. 얼른 받았더니 프로 시니여 서류 심사가 통과 되었으니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이었다. 다행이다. 체면치례를 했다. 원서에 사진을 스캔하는 방법을 몰라 막내 아들에게 부탁하여 디카로 사진을 찍고 원서 사진란에 집어넣어 주며 "아버지 합격 하실거예요 저는 아버지를 믿습니다"라는 격려까지 받은 마당에 참으로 다행이었다.
면접날 시간에 늦지 않으려고 전철타고 좌석버스타고 수원에서 또 버스타고 다시 걸어서 면접장에 도착하니 12시도 않 되었다. 나의 면접시간은 2시인데. 바보다. 시간계산을 이렇게 못해서야 일에 효율성이 전혀 없잖아. 그러나 늦는것 보다야 백배 낫지 스스로 위로 하면서 대기실에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어지러운 머리를 정리 하였다. 무슨 질문을 할까가 궁금 했지만 알 길이 없다. "어떤 질문을 하더라도 가장 인간적인 대답을 하리라.합리적인 사고와 유연한 나의 모습을 보여 주리라.경험 속에서 터득한 나의 장점을 잘 보여 드려야 겠다" 등등의 정리를 하고 면접관들 앞에 앉았다.수험생 6명이 5명의 면접관 앞에 앉으니 참으로 불편했다.
다행이 면접관님의 질문에 순발력 있게 잘 정리된 대답을 드렸는데 어떤 수혐생 한분이 내 뒤에 대답하면서 "방금 이선생님이 말씀 하셧듯이 저도 부산에서 40년간......" 어쩌고 저쩌고 하며 나를 거론 하는 것이 영 기분이 찝찝 하였다. 또 면접이 다 끝나고 모두 일어 서는데 면접관 한분이 "이장수씨 47년생 맞지요? 호적이 잘 못 된 것은 아니지요?" 이런 황당한 일이... 면접이 다 끝난 마당에 왼 호적타령 이냐 싶었다. 그런데 되짚어 보니 이유를 알겠다. 내 사진이 워낙 늙어 보이는 사진이었다.70대의 노인 같았다. 나는 아차 하였다. 허탈하였다. 어째서 이렇게 주의력이 부족한가 사진은 나의 간판인데,나의 이미지 인데, 앞으로는 사진을 최우선으로 하자고새삼스런 다짐을 하였다
최종 합격자 발표날은 더욱 초조 하였다.면접 응시생들도 60여명이나 된다고 하였다. 선택된다는 것이 정말로 어렵다는 것을 정말 실감 하였다. 이렇게 힘든 과정을 거쳐 합격 소식을 들었을때는 날것 같았다. 힘든 일이 기다리는 것도 모르고.어쨌던 6월10일,11일 이틀간 교육이 있는 날이다. 혹시 교육 시작 날 부터 지각을 하면 퇴출 될까 싶어 일찍 서둘러 남양주 집에서 5시에 일어나 교육장에 도착하니 8시도 되지 않았다. 또 한번 비 효율의 극치를 보였다. 그러나 일찍 일어난 새가 모이를 쫀다. 비효율 이라도 좋다 부지런 하자. 이틀간의 교육을 끝내고 현장에 배치 되였다.오리엔테이션을 마치고 실무에 들어가던 첫날 시청 일자리 쎈터에서 제공해준 남양주시 기업명부를 자료로 진접읍 팔야리 수십여개의 기업에 전화를 하였다. 우선 일자리 쎈터에서 하는 일을 설명하고 직원을 채용할 게획이 있으면 회사에서 원하는 인재를 추천해 드리겠으며 구직자를 모시고 가서 면접을 시켜 드리겠다고 안내를 하였다.
한편 채용 계획이 있는 기업에는 직접 방문하여 상세한 채용 정보를 얻고자 방문 약속을 햐였다. 마침내 6월 16일 진접읍에 있는 모 유리회사에 방문 하였다.회사 위치를 지도에서 검색하고 출력까지 하여 가방에 잘 챙겼다.여기에도 나의 조급증이 발동하여 약속 시간이 14;00인데 그만 12;30분에 회사에 도착하고 말았다. 이유는 생전 처음 가는 초행길이고 위치도 모르고 소요시간도 전혀 몰랐기 때문이었다.그래서 정류장 이름이 뱅이 삼거리인 정류장에서 88번 버스를 타고 88번 종점인 광릉내에 도착하니 12;00였다. 염천 뙤약볕에 마땅히 갈곳도 없고,따로 방문 약속을 한 기업은 15;00시에 약속이 되었으니 난감하였다.어쩔수 없어 전화를 하였더니 빨리 오라고 하였다. 다행이었다.교통편을 믈으니 버스가 없으니 택시를타고 오란다. 주문대로 택시를 타고 꾸불 꾸불한 길을 따라 조금 들어가니 국도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 회사가 있엇다.택시 요금은 기본이면 된다고 하였는데 영악해 보이는 귀때기 새파란 택시기사는 삼천원을 주니 거스름 돈은 꿀꺽 삼켜버린다.화가 나지만 참았다
회사에 도착하니 상무이사님이 여자분 이신데 일 할수 있는 사람을 잘 추천해 다랴고 하시며 졈심시간이 12;00부터 한시간인데 회사가 후미진 곳에 있어 자신들이 식사를 할려면 차를 타고 나가야하니 시간이 없다고 빨리 얘기하고 간단하게 끝내라고 재촉한다.속상하고 허탈하다. 나는 염천에 줄줄 흐르는 땀도 못 닦았는데....어쨌던 속사로 설명하고 구인표 작성을 부탁 하였더니 시간이 없어서 않되니 두고가면 팩스로 보내겠다고 하며 바쁘게 수고 한다는 말을 던지고는 승용차를 타고 부리나케 가버린다. 멀어저 가는 승용차의 뒷 꽁무니를 보며 늙은 나는 조금 서글펐다.꼬붑 꼬불한 길을 땀을 뻘뻘 흘리며 한참을 걸여 내려오다 보니 보신탕집 간판이 유난히 크게보인다. 그 보신탕집 앞에 방금 나와 헤어진 일행이 타고간 승용차가 주차되어 있엇다
다음날 출근해서 업무를 시작 하기도 전에 우울한 소식을 들었다 .우리시 프로시니어 한분이 그만 두었다는 소식이다.나보다 더 힘들었던 모양이다. 다행이 내가 방문했던 회사에서 구인표가 펙스로 도착되어서 나의 첫 성과물이 되었다. 기분좋았다. 그래 나는 이 일을 꼭 할거야. 그냥 하는게 아니라 잘 할거야. 지금은 현장 방문 위주로 근무한다 .구인표 받는 성과도 꽤 있다. 일자리 쎈터의 홍보도 열심히 한다. 상담사 선생님들이 내가 확보한 구인회사에 구직자와 연결도 하였다.이제 곧 동행면접을 시켜 반가운 취업소식을 전해 드리겠습니다.
첫댓글 시간이ㅡ약입니다.
곧 좋은 일이 올겁니다.
그리고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경기도의 관계자님들이 이 글을 읽어 주실거라 생각합니다. 우리님들이 처해 있는 입장과 현실에 관(공무원)에서는 어떤 생각으로 지내실까? 좋은 말로 고생 많으십니다. 수고 하십니다. 내년에는 좀더 나은 보수를 기대 해주세요. 란 말보다는 고급은퇴자들을 채용한 이상 모든 것에 실망하지 않고 다음의 은퇴자들이 희망과 욕망을 갖게함이 좋겠습니다.
낙동강님 파이팅!!!!! 항상 건강, 행복, 즐거움으로 생활합시다.
쌤들이 너무 수고하시는거 같아요.....한편의 소설을 읽은거 같은.....쌤..홧팅.. 우리 이 프로시니어사업 꼭 성공리에 마치자구요...